주일오전설교

사랑으로 봉사하라
2025-06-02 08:55:09
홍기칠
조회수   26
설교본문 롬12:9-13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06-01

주일오전 설교 250601 사랑으로 봉사하라

본문: 12:9-13

제목: 사랑으로 봉사하라

 

I. 서론

12장은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 대한 권면이라고 했습니다. 1-8절까지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우리 삶 전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바치는 영적 예배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길 때 각자 받은 은사대로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본문 9-13절은 교회 안에서 봉사하기 위해 꼭 지켜야 할 네가지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봉사의 원리 네가지를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II. 본론

1. 거짓없는 사랑으로 봉사하라

9절에 보니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했습니다.

1) 거짓과 위선이 없는 사랑

사랑에는 거짓이 없다고 할 때, 이 문장의 문자적 해석은 무대에서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대에서는 주어진 배역의 역할에 따라 말하기 때문에 그 말은 자신의 말이 아닙니다. 전혀 진실하지 않는 사람이 진실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무대입니다.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에 거짓이 숨어있거나 연극하듯이 할 수 없습니다. 얻을 유익을 따져보고 사랑하는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그것은 거짓된 사랑입니다.

 

다시말해서 사랑에 거짓이 없다는 것은 위선없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위선은 두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하나는 내면보다 외면을 더 좋게 보이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는 실제로 내면을 그렇지 않으면서 사랑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합니다. 고전13:3절에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서도 겉으로는 휼륭해 보이는 희생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선에 대해 예수님은 15:7-8절에서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했습니다. 입술로만 찬양하고 마음으로 찬양하지 않는 것은 위선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위선만큼 예수님을 화나게 한 것도 없었습니다. 23: 25,27절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라고 하시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겉과 속이 다른 외식을 질책하셨습니다.

 

위선의 또 다른 모습은 다른 사람의 허점에 이목을 집중시켜 자신의 허점을 감추는 방식입니다. 6:42절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고 하시며 외식하는 자들을 질책하셨습니다.

 

또한 위선은 두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얻고 지키려는 목적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높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위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어떤 죄를 덮기 위한 것입니다. 13장에서 예수님은 18년 동안 허리를 펴지 못하던 여인을 고쳐주셨는데 그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회당장은 화가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4절에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15절에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회당장에 대해 안식일에 대한 열심을 위선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위선자인 이유는 그 종교적 열정 뒤에 돈을 추구하는 본심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병든 여인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의 소나 나귀만 신경 쓴 것입니다. 안식일에 대한 그들의 열심은 순전히 위선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진짜 사랑은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랑에는 이런 위선이 없어야 합니다. 위선은 거짓, 숨김, 속임수, 은폐, 오도, 감추기입니다. 위선은 사랑과 반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에는 위선이 없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2)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선악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이 됩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특히 힘의 논리가 선과 악을 만듭니다. 선악은 우리의 생각이나 힘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객관적인 근거에 따라 구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규정한 객관적인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에 속하라는 것은 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악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바울은 지금 단순히 악을 피하는 수준이 아니라 미워하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선을 선택하는데 그치지 말고 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악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다치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합니다. 악한 마음은 형제를 해하려는데 사용되기 때문에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고 있으면서 형제를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결국 형제를 해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마음에 악을 품고 있으면 안됩니다.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형제에게 유익이 될 수 있는 것이 선이라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그 선을 따르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선한 의도, 선한 감정, 선한 목적, 선한 동기가 없이는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에 거짓이 없는 이유는 사랑이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고전 13:6절은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라고 했습니다. 불의와 진리, 악과 선은 절대로 한 자리에 같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악을 미워하는 것은 곧 선을 행하는 것이고, 선을 행하는 것은 곧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는 이 두가지 중에 어디에 더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삶의 결과가 달라집니다. 악을 미워하는 것에 비중을 두면 미워하는 악을 제거하기 위해 물리적인 힘을 사용할 수 있고 그 결과 악을 제거함과 동시에 다른 악을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악을 미워하되 선을 행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거짓없는 사랑,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함이 인간관계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납니까? 본문 10절에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형제는 혈연적인 친형제 뿐 아니라 교회 성도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이기 때문에 형제의 개념에 포함됩니다.

 

가정에서도 부부 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그리고 친형제 간에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서로 요구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요구에 합일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친구 사이는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사이가 아닙니다. 서로 부담없이 주고 받으면서 유익이 되는 관계입니다. 형제끼리 우애해야 한다는 것은 친구같은 형제, 형제같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을 해줄까 생각합니다. 이와같이 우애관계를 맺어 갈 때 형제라는 것은 이 세상 어떤 친구보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애하는 관계는 서로에게 행하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거리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부지간은 무촌이라서 거리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돌아서면 남이 됩니다. 부부가 거리를 인정할 때 서로의 다른 부분을 인정하고 존중하게 됩니다. 부모 자식간의 거리는 일촌입니다.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면 이 일촌의 거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녀와 반드시 일촌의 거리가 있어야 내 몸에서 태어난 자녀라도 존중하고 그 생각과 감정을 높여줄 수 있습니다. 형제지간에는 이촌입니다. 역시 형제자매간에도 이 이촌거리를 인정해야 서로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습니다. 거리를 인정하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지배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랫사람이 윗사람보다 올라가려 하지 않습니다. 서로 마음과 뜻과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게 되므로 이 속에서 거짓없는 사랑이 품어지는 것입니다. 고전 13장에서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다고 했는데 그 말은 존중과 예의가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은 형제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한 교회에 소속되어 있으면 믿음 안에서 서로 형제라는 뜨거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10절 하반절에 서로 먼저하며라고 했습니다. 우애나 존경도 서로 먼저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깨달은 사람이 먼저 하면 됩니다. 그렇게 사랑을 행하면 마침내 그 사랑이 상대를 움직이게 됩니다. 상대방의 은사나 재능과 의견을 비판하지 않고 존중하고 인정하고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인간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구별하려는 악한 면이 있습니다. 서로 비교해서 조금 못하다고 생각되면 얕잡아보려고 하는 악한 습성이 있습니다. 오히려 비교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기 위해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실한 사랑입니다. 성도는 주님이 주신 사랑의 새계명을 따라야 합니다. 13:34절에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면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준은 율법의 옛 계명인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기 위해 자기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한 사랑입니다. 봉사도 바로 이 새계명에 뿌리를 둔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나의 구주와 주인으로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5: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믿으면 구원받는 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요일3:14절에는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고 여전히 사망의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앞의 요5:24절과 모순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행함이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처럼, 우리가 구원받는 증거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과연 구원받았는지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예수님이 나와 모든 형제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가 어찌 그 사랑을 실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주신 새계명이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믿음의 증거는 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열심히 봉사하라

본문 11절에 보면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열심을 품고라는 말은 가슴에 불을 안고’, 성령으로라는 뜻입니다. 즉 성령이 충만하여 가슴이 뜨거워진 상태를 말합니다. 성령의 내적 불길이 뜨거워져서 사랑이 식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개인적인 경건의 훈련과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도는 운동과 같아서 규칙적으로 열심히 할 때 믿음에 힘이 생기고 또 기도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같이 뜨거운 열정은 은혜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예수님은 미지근한 것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3:15-16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는 말씀이지만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열심없이 교회생활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계시록의 말씀은 주님께서 신앙생활에 열심히 없는 사람을 주님이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서는 열심히 주를 섬기고 봉사하는 사람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 표현대로라면 광신자 티를 내지 않을수록 신사적인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길 때 사람들의 비난을 듣거나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지나친 일은 피하면서 지혜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열심을 내는 성도를 질투하거나 시기하는 나쁜 마음으로 그런 비난을 한다면 그 사람이 주님께 책망을 들어 마땅한 것입니다. 교회 일에 열심을 내지 못하는 성도는 나중에 주님 앞에 섰을 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3. 어려워도 봉사하라

본문 12절에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란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고 했습니다. 환난이 있을 때는 그 환난이 나의 신앙의 훈련기회라는 것을 알고 인내해야 합니다. 참아야 참된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미지근하다가 구원의 확신이 생기면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때 마귀는 성도를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당하면서도 봉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가 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고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새 힘과 능력을 공급받아 열심히 봉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 하루 겨우 오전 예배 한번만 참석하는 선데이 크리스챤으로는 사랑을 실행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몸을 입고 봉사하기 때문에 자주 어려운 일을 만납니다. 교회봉사하는 과정에서 건강이 상하거나 시간에 쫓기거나 가정에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고, 남에게 욕을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럴 때일수록 기뻐하면서 봉사하고, 인내하면서 봉사하고, 기도에 더 힘쓰면서 봉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은사가 있는데도 핑계를 대며 봉사를 피한다면 주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4. 나누면서 봉사하라

본문 13절에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로마서가 쓰여 질 당시 각 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이 많았습니다. 기독교가 공인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그들 가운데는 핍박을 받으며 정처없이 도망 다니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었기 때문에 여관같은 곳에 숙박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도시를 가든지 예수 믿는 성도들의 집에 가서 의식주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이라도 이름만 듣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믿는 형제들이 자기 집으로 찾아올 때 거절하기란 대단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너무 자주 찾아오는 손님들 때문에 시험에 든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의 형제들을 귀한 손님으로 여기고 극진히 대접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교회 울타리를 넘어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을 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불평하지 말고 가진 것을 나누어 주면서 봉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즈음도 우리가 진정으로 교회 안에서 형제를 섬기려면 가진 것을 나누고, 경우에 따라서는 내가 손해를 보면서도 봉사해야 합니다. 원래 봉사는 희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의 일상생활에도 관심을 갖고 계시며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참 사랑은 가정을 넘어 교회 안에서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에게 향합니다. 더 나아가 교회 밖에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확대되어 가는 것이 거짓 없는 사랑의 특색입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려면 상대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 분의 입장에 서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난 뒤에는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나누어야 합니다. 성도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채워주는 삶을 살아갈 때, 성도의 만남과 친교 속에서 천국이 세워지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서 나그네 인생들입니다. 그러므로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에 힘쓸 때 내세 천국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본문 9-13절에서 교회봉사의 네가지 원리를 살펴보았습니다. 사랑하면서 봉사하라, 열심히 봉사하라, 어려워도 봉사하라, 나누면서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러한 봉사를 하지 못하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기 원하십니까? 교회 안에서부터 주님이 가르쳐 주신 봉사의 원리를 따라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의 삶이 매일매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산 제사의 영적 예배를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봉사는 친형제 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성도에게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밖의 온 세상으로 그 거짓없는 사랑의 봉사가 확장되어 나갈 때 세계복음화의 문들이 열리고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 질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거짓없는 진실된 사랑으로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여 가정과 교회와 세상을 섬기는 봉사의 삶을 사시며 주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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