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설교본문 | 롬15:2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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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홍기칠 목사 |
설교일 | 2025-08-10 |
주일오전설교 250810 바울의 최종 헌신과 선교비전
본문: 롬15:22-33
제목: 바울의 최종 헌신과 선교비전
I. 서론
바울은 3차 전도여행(AD 56년경) 중에 고린도에서 3개월 정도 머물고 있을 때 이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그 무렵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마게도냐와 아가야 성도들로부터 구제헌금을 거두어 돌아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로마로 가기 전에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구제헌금을 전달하고 돌아와 로마로 들렀다가 그의 마지막 선교지로 생각한 스페인을 방문하고자 하는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의 최종 헌신과 선교 비전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주신 헌신과 선교 비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II. 본론
- 최종 선교비전
예수님께서는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시며 모든 성도들에게 선교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품고 각자 있는 현장에서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면에서 가장 모범을 보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나서 즉시 이런 선교비전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며 20여년의 세월을 거치며 여러 가지 환란과 핍박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로마복음화와 그 당시 세계의 땅끝이라고 생각했던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비전이 구체화되고 그 사명을 마지막까지 감당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우리들도 큰 틀에서 세계복음화의 비전은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그 사명을 감당할지는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그때 그때 구체적인 인도를 하실 줄 믿습니다. 이제 본문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에게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감당하게 하셨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22절에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일찍부터 당시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에 가려고 열망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여러 번 방해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에베소, 밀레도, 두로, 예루살렘, 가이샤라에서 전혀 자신의 계획에 없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가 결국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원숙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런 바울에 의해 뿌려진 복음의 씨가 바로 로마복음화를 위한 발판이 되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바울이 육로나 해로를 통해 로마로 가는 것은 신변상 위험과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오히려 죄수 신분으로 호위를 받으며 가게 되어 이 두가지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는 놀라운 응답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의 모든 생각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아나니아가 와서 안수해 줄 때 시력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메섹에 있는 유대인 회당으로 찾아가 자신이 겪은 경험과 더불어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 되심을 간증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유대인들이 그를 배척하고 죽이려 하자 얼마나 다급했던지 밤에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가 다메섹을 간신히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아라비아 광야로 들어가 3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철저하게 자신의 영성을 훈련했습니다. 3년이 지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제자들을 만나러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회심을 거짓이라 했고,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바울을 배신자라며 역시 죽이려 했습니다. 모든 기대와 희망을 잃어버린 바울은 북쪽으로 올라가 자기 고향인 다소로 가서 신앙생활에만 정진했습니다. 그리고 1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즉 청년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13년이라는 시간이 특별한 일 없이 기도와 말씀만 묵상하며 보낸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안디옥의 바나바가 찾아왔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바울에게 자기 교회에 가서 함께 동역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바울은 목회하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안디옥에 가서 열심히 동역했습니다. 그런데 또 뜻하지 않게 안디옥 성도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그때부터 바울은 1,2,3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았지만 소아시아와 유럽 곳곳에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3차 전도여행을 시작했는데 에베소에서 마게도냐를 바라보면서 로마에 대한 선교비전이 더 확실해 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이제 20년이 지났습니다. 그 20년 동안 매일 주어진 삶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바울이 로마를 거쳐 스페인까지 복음 전하겠다는 선교비전은 20년 동안 스스로 훈련하며 수십개의 도시를 수천 km를 전도하며 다닌 경험의 결과였습니다. 우리도 삶의 결과로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포착하고 그 비전을 위해 작은 일에도 소홀함이 없이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비전이 실현되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주신 비전도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점점 더 구체적인 성취로 응답하실 것을 믿습니다.
23절에서 “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지방이란 고린도 지방을 말하는데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당시 고린도에 가서 1년 6개월 동안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왔다가 3차 전도여행으로 고린도에 다시와서 3개월 동안 머물면서 성도들에게 말씀 전하면서 로마서를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고린도에 머문 것은 1년 9개월이 됩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 더 이상 일할 것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개척선교사이기 때문에 그곳에 고린도교회를 세우고 나면 그곳 성도들이 그 지역전도를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에도 “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가고 싶었던 선교지는 서바나 즉 스페인인데 이곳은 당시 로마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땅끝이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땅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지키기 위해 스페인으로 가고자 하는 열망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먼저 로마로 가서 교인들을 함께 지내면서 성도의 교제를 나누다가 그들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으로 가려는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로마에서 죄수의 몸으로 2년 동안 로마에 감금되어 있었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로마교인들과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잠시 풀려나 그레데, 니고볼리와 기타 지역을 순회 전도하는 도중에 다시 체포되어 로마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AD 67년 경에 네로황제에 의해 순교를 당했습니다.
순교 당하기 전에 23, 24절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로마성도들에게 당당히 자기를 스페인 선교사로 보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신학자들 가운데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잠시 풀려난 2년 동안 스페인에 선교하러 갔다는 신학자도 있고, 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도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어느 주장이 맞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2. 예루살렘으로 구제헌금을 전달하러 간 바울의 헌신
그런데 25, 26절을 보면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기 전에 먼저 예루살렘을 가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스페인과 거의 반대 방향으로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유럽의 마게도냐에서 전도하는 과정에서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돕기 구제헌금을 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가난한 유대인 성도들이 많고 지금은 핍박과 기근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사랑의 구제헌금을 한 것입니다. 그 헌금을 바울에게 전달해달라고 간청을 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는 것은 여러 가지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지만 기꺼이 가기로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로마복음화의 비전을 주셨지만 우선 급한 일부터 충실하게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27절 마게도냐와 아가야 성도들이 헌금한 이유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방인 성도들은 유대성도들에게 영적인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마땅히 육신적인 물질로 갚아야 할 빚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유대성도들이 그들의 영적 축복인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나눠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서 죄악 가운데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이방인 성도들도 형편이 어려웠지만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채무의식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가난한 유대 성도들을 위해 물질적으로 돕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사랑의 빚을 갚은 것입니다. 다른 형제에게 봉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영국과 미국 선교사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150여년 전 영국 선교사인 토마스는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간지 얼마되지 않아 강변에서 성경책 한권을 강변에 던져주고 27세 나이로 조선의 최초 선교사로서 순교했습니다. 후에 그 성경책을 가져간 사람이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알렌, 아펜젤러, 언더우드 등 수많은 선교사들이 20대 젊은 청년시절에 조선 땅으로 들어와 복음을 전함으로 조선의 복음화가 본격화 되었고 조선의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28절에 “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사랑의 모금을 하고 그것을 예루살렘 모교회에 가져다 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봉사와 섬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라는 말은 “이방인 성도들이 헌금한 것을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확실하게 전달하고, 그것이 유대교회가 이방인에게 준 신령한 선물인 복음의 열매임을 확실히 증거하고 난 후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도들도 동일한 채무의식을 가지고 다른 누군가에게 계속 사랑의 빚을 갚아나가도록 하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려는 계획을 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교훈은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에 사랑에 대한 채무감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이 사랑의 빚을 갚아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라는 채무의식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으면 헌신, 봉사하고도 교만하지 않게 됩니다. 세상에 빚 갚는 사람이 교만해지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평생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빚진 자라는 채무의식을 가지고 수많은 곳을 다니며 전도하고 헌신 봉사했지만 교만하지 않고 끝까지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29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 아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몸은 예루살렘 교회를 향하고 있지만 그 마음은 로마성도들을 만날 기쁨과 주님이 주신 축복과 은혜를 그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3. 바울의 중보기도 요청
30-33절에는 바울 자신이 지난 전도계획과 완수해야 할 책임에 대해 중보기도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30절에 “형제들아 내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에 그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함께하심을 믿고 그를 의지하여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됩니다.
또한 여기서 ‘권하노니’라는 말의 원래의 뜻은 ‘시간이 급합니다, 제발 빨리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팽팽한 긴장감과 강한 요청이 이 말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나와 힘을 같이 하여’라고 했는데 이 용어는 본래 전투용어입니다. 사생결단하려는 사람처럼 전력을 쏟아 기도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즉, “로마성도들이여 나는 지금 내 앞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전력을 다해 생명을 걸고 기도하고 있으니 여러분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라는 호소가 담겨 있습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렇게 기도해달라고 요청했겠습니까?
바울이 이토록 다급하게 기도요청을 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31,32절에 세가지 기도제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루살렘에 있는 불순종하는 유대인들이 끊임없이 바울을 괴롭히고 죽이려고까지 했는데 그들의 음모에 희생당하면 복음전도에 방해를 받게 되니 그들로부터 구출되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다는 것은 사자굴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살기등등한 눈으로 바울을 죽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유대교 열성분자들이 도처에 숨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밥도 먹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한 40명의 결사대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공공연하게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율법이 소용없고, 한낱 목수의 아들인 인간예수를 믿어야 구원받는 다고 하니 하나님을 모독하고 율법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고 유대인의 체통을 깎아내리는 저 배신자를 살려 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끔직합니까? 이처럼 사방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 바울로서는 어떻게 다급하게 기도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구출은 단순히 육체적인 위험으로부터의 구출뿐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둘째, 예루살렘교회의 유대성도들에 대해서도 아직 율법적인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믿음이 약한 그들이 이방인 성도들의 헌금을 기쁨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지역에 극심한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식량을 구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는데 특히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더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가문에서 쫓겨나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정도로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슬람권 나라에서는 이슬람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게 되면 그 가문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은 그의 헌금을 받으면 바울이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선동을 용납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유대성도들이 선뜻 그 헌금을 받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예루살렘 성도들이 반대파 때문에 그 헌금을 받지 않게 되면 그 헌금을 가지고 간 바울의 처지가 얼마나 난감하겠습니까? 더욱이 먹을 것을 먹지 않고 한푼 두푼 정성을 모아 헌금을 보낸 마게도냐와 아가야 이방인 성도들의 감정이 얼마나 상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셋째, 로마성도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쁨으로 그들에게 가서 함께 쉴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전달한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로마에 가서 로마성도들과 교제하고 위로를 받으며 푹 쉬기를 원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도바울이라도 그도 연약한 인간이므로 그에게도 위로와 휴식이 필요하고 사랑하는 성도들과 기쁨의 교제가 그리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로 가서 쉬고 싶고, 위로도 받고 싶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바울의 간절한 중보기도요청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 나가서 위험을 무릅쓰고 선교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천주교, 사회주의가 주종을 이루는 중동, 인도, 중국,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 소수민족 등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이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언제 어떤 병에 걸려 어려움을 당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복음 전하다가 순교한 외국 선교사들의 무덤이 있는 양화진이나 동산의료원 청라언덕에 가보면 젊은 시절에 순교한 선교사가 많습니다. 지금도 북한에 우리나라 선교사들 6명이 억류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기도가 얼마나 절박한지 모릅니다. 또한 함심하여 기도하는 중보기도의 능력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과 관계되는 기도일수록 힘과 정열을 다 쏟는 전투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마귀를 향한 선전 포고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가면 군대마귀가 일어섭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이 함심해서 전심으로 기도하면 틀림없이 마귀는 물러가고 말 것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그 사탄의 권세를 꺾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속지만 않고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전도하면 됩니다.
마지막 33절에는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이라고 하면서 중보기도 부탁을 마무리 합니다. 지금 바울은 그 어느 때 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을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교회 성도들과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도 로마의 군사적, 정치적 평화보다 예수께서 주시는 영적 일치와 사랑의 친교에 의한 평화가 시급히 요구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평강을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 밖에 없으며 그 하나님께서 로마 성도들과 함께 계시기를 기도하면서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감당하기 위해 로마복음화에 이어 스페인까지 복음화하는 비전을 품고 전도하다가 순교 당했지만 그 복음의 씨았이 열매맺어 로마가 복음화 되고 세계복음화의 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로마와 스페인 복음화에 앞서 이방인 성도들이 헌금한 것을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하는 헌신과 봉사를 다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세계복음화의 선교비전을 가지고 우선 가능한 내 주변부터 복음화하는데 열심을 내야 하겠습니다. 믿지 않는 가족이나 내 주변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면서 어떻게 세계복음화 할 수 있겠습니까? 선교비전이 분명해졌다면 기도로, 물질로, 시간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 위험을 무릅쓰고 선교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내가 있는 곳에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최선을 다해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며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바울처럼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품고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해 헌신하고 복음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끝>
주일오전설교 250810 바울의 최종 헌신과 선교비전
본문: 롬15:22-33
제목: 바울의 최종 헌신과 선교비전
I. 서론
바울은 3차 전도여행(AD 56년경) 중에 고린도에서 3개월 정도 머물고 있을 때 이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그 무렵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마게도냐와 아가야 성도들로부터 구제헌금을 거두어 돌아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로마로 가기 전에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구제헌금을 전달하고 돌아와 로마로 들렀다가 그의 마지막 선교지로 생각한 스페인을 방문하고자 하는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의 최종 헌신과 선교 비전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주신 헌신과 선교 비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II. 본론
- 최종 선교비전
예수님께서는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시며 모든 성도들에게 선교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품고 각자 있는 현장에서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면에서 가장 모범을 보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나서 즉시 이런 선교비전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며 20여년의 세월을 거치며 여러 가지 환란과 핍박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로마복음화와 그 당시 세계의 땅끝이라고 생각했던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비전이 구체화되고 그 사명을 마지막까지 감당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우리들도 큰 틀에서 세계복음화의 비전은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그 사명을 감당할지는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그때 그때 구체적인 인도를 하실 줄 믿습니다. 이제 본문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에게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감당하게 하셨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22절에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일찍부터 당시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에 가려고 열망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여러 번 방해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에베소, 밀레도, 두로, 예루살렘, 가이샤라에서 전혀 자신의 계획에 없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가 결국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원숙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런 바울에 의해 뿌려진 복음의 씨가 바로 로마복음화를 위한 발판이 되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바울이 육로나 해로를 통해 로마로 가는 것은 신변상 위험과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오히려 죄수 신분으로 호위를 받으며 가게 되어 이 두가지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는 놀라운 응답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의 모든 생각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아나니아가 와서 안수해 줄 때 시력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메섹에 있는 유대인 회당으로 찾아가 자신이 겪은 경험과 더불어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 되심을 간증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유대인들이 그를 배척하고 죽이려 하자 얼마나 다급했던지 밤에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가 다메섹을 간신히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아라비아 광야로 들어가 3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철저하게 자신의 영성을 훈련했습니다. 3년이 지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제자들을 만나러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회심을 거짓이라 했고,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바울을 배신자라며 역시 죽이려 했습니다. 모든 기대와 희망을 잃어버린 바울은 북쪽으로 올라가 자기 고향인 다소로 가서 신앙생활에만 정진했습니다. 그리고 1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즉 청년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13년이라는 시간이 특별한 일 없이 기도와 말씀만 묵상하며 보낸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안디옥의 바나바가 찾아왔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바울에게 자기 교회에 가서 함께 동역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바울은 목회하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안디옥에 가서 열심히 동역했습니다. 그런데 또 뜻하지 않게 안디옥 성도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그때부터 바울은 1,2,3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았지만 소아시아와 유럽 곳곳에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3차 전도여행을 시작했는데 에베소에서 마게도냐를 바라보면서 로마에 대한 선교비전이 더 확실해 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이제 20년이 지났습니다. 그 20년 동안 매일 주어진 삶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바울이 로마를 거쳐 스페인까지 복음 전하겠다는 선교비전은 20년 동안 스스로 훈련하며 수십개의 도시를 수천 km를 전도하며 다닌 경험의 결과였습니다. 우리도 삶의 결과로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포착하고 그 비전을 위해 작은 일에도 소홀함이 없이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비전이 실현되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주신 비전도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점점 더 구체적인 성취로 응답하실 것을 믿습니다.
23절에서 “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지방이란 고린도 지방을 말하는데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당시 고린도에 가서 1년 6개월 동안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왔다가 3차 전도여행으로 고린도에 다시와서 3개월 동안 머물면서 성도들에게 말씀 전하면서 로마서를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고린도에 머문 것은 1년 9개월이 됩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 더 이상 일할 것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개척선교사이기 때문에 그곳에 고린도교회를 세우고 나면 그곳 성도들이 그 지역전도를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에도 “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가고 싶었던 선교지는 서바나 즉 스페인인데 이곳은 당시 로마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땅끝이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땅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지키기 위해 스페인으로 가고자 하는 열망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먼저 로마로 가서 교인들을 함께 지내면서 성도의 교제를 나누다가 그들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으로 가려는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로마에서 죄수의 몸으로 2년 동안 로마에 감금되어 있었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로마교인들과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잠시 풀려나 그레데, 니고볼리와 기타 지역을 순회 전도하는 도중에 다시 체포되어 로마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AD 67년 경에 네로황제에 의해 순교를 당했습니다.
순교 당하기 전에 23, 24절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로마성도들에게 당당히 자기를 스페인 선교사로 보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신학자들 가운데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잠시 풀려난 2년 동안 스페인에 선교하러 갔다는 신학자도 있고, 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도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어느 주장이 맞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2. 예루살렘으로 구제헌금을 전달하러 간 바울의 헌신
그런데 25, 26절을 보면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기 전에 먼저 예루살렘을 가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스페인과 거의 반대 방향으로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유럽의 마게도냐에서 전도하는 과정에서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돕기 구제헌금을 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가난한 유대인 성도들이 많고 지금은 핍박과 기근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사랑의 구제헌금을 한 것입니다. 그 헌금을 바울에게 전달해달라고 간청을 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는 것은 여러 가지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지만 기꺼이 가기로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로마복음화의 비전을 주셨지만 우선 급한 일부터 충실하게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27절 마게도냐와 아가야 성도들이 헌금한 이유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방인 성도들은 유대성도들에게 영적인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마땅히 육신적인 물질로 갚아야 할 빚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유대성도들이 그들의 영적 축복인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나눠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서 죄악 가운데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이방인 성도들도 형편이 어려웠지만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채무의식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가난한 유대 성도들을 위해 물질적으로 돕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사랑의 빚을 갚은 것입니다. 다른 형제에게 봉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영국과 미국 선교사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150여년 전 영국 선교사인 토마스는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간지 얼마되지 않아 강변에서 성경책 한권을 강변에 던져주고 27세 나이로 조선의 최초 선교사로서 순교했습니다. 후에 그 성경책을 가져간 사람이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알렌, 아펜젤러, 언더우드 등 수많은 선교사들이 20대 젊은 청년시절에 조선 땅으로 들어와 복음을 전함으로 조선의 복음화가 본격화 되었고 조선의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28절에 “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사랑의 모금을 하고 그것을 예루살렘 모교회에 가져다 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봉사와 섬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라는 말은 “이방인 성도들이 헌금한 것을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확실하게 전달하고, 그것이 유대교회가 이방인에게 준 신령한 선물인 복음의 열매임을 확실히 증거하고 난 후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도들도 동일한 채무의식을 가지고 다른 누군가에게 계속 사랑의 빚을 갚아나가도록 하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려는 계획을 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교훈은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에 사랑에 대한 채무감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이 사랑의 빚을 갚아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라는 채무의식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으면 헌신, 봉사하고도 교만하지 않게 됩니다. 세상에 빚 갚는 사람이 교만해지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평생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빚진 자라는 채무의식을 가지고 수많은 곳을 다니며 전도하고 헌신 봉사했지만 교만하지 않고 끝까지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29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 아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몸은 예루살렘 교회를 향하고 있지만 그 마음은 로마성도들을 만날 기쁨과 주님이 주신 축복과 은혜를 그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3. 바울의 중보기도 요청
30-33절에는 바울 자신이 지난 전도계획과 완수해야 할 책임에 대해 중보기도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30절에 “형제들아 내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에 그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함께하심을 믿고 그를 의지하여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됩니다.
또한 여기서 ‘권하노니’라는 말의 원래의 뜻은 ‘시간이 급합니다, 제발 빨리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팽팽한 긴장감과 강한 요청이 이 말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나와 힘을 같이 하여’라고 했는데 이 용어는 본래 전투용어입니다. 사생결단하려는 사람처럼 전력을 쏟아 기도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즉, “로마성도들이여 나는 지금 내 앞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전력을 다해 생명을 걸고 기도하고 있으니 여러분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라는 호소가 담겨 있습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렇게 기도해달라고 요청했겠습니까?
바울이 이토록 다급하게 기도요청을 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31,32절에 세가지 기도제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루살렘에 있는 불순종하는 유대인들이 끊임없이 바울을 괴롭히고 죽이려고까지 했는데 그들의 음모에 희생당하면 복음전도에 방해를 받게 되니 그들로부터 구출되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다는 것은 사자굴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살기등등한 눈으로 바울을 죽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유대교 열성분자들이 도처에 숨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밥도 먹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한 40명의 결사대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공공연하게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율법이 소용없고, 한낱 목수의 아들인 인간예수를 믿어야 구원받는 다고 하니 하나님을 모독하고 율법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고 유대인의 체통을 깎아내리는 저 배신자를 살려 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끔직합니까? 이처럼 사방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 바울로서는 어떻게 다급하게 기도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구출은 단순히 육체적인 위험으로부터의 구출뿐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둘째, 예루살렘교회의 유대성도들에 대해서도 아직 율법적인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믿음이 약한 그들이 이방인 성도들의 헌금을 기쁨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지역에 극심한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식량을 구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는데 특히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더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가문에서 쫓겨나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정도로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슬람권 나라에서는 이슬람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게 되면 그 가문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은 그의 헌금을 받으면 바울이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선동을 용납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유대성도들이 선뜻 그 헌금을 받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예루살렘 성도들이 반대파 때문에 그 헌금을 받지 않게 되면 그 헌금을 가지고 간 바울의 처지가 얼마나 난감하겠습니까? 더욱이 먹을 것을 먹지 않고 한푼 두푼 정성을 모아 헌금을 보낸 마게도냐와 아가야 이방인 성도들의 감정이 얼마나 상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셋째, 로마성도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쁨으로 그들에게 가서 함께 쉴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전달한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로마에 가서 로마성도들과 교제하고 위로를 받으며 푹 쉬기를 원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도바울이라도 그도 연약한 인간이므로 그에게도 위로와 휴식이 필요하고 사랑하는 성도들과 기쁨의 교제가 그리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로 가서 쉬고 싶고, 위로도 받고 싶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바울의 간절한 중보기도요청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 나가서 위험을 무릅쓰고 선교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천주교, 사회주의가 주종을 이루는 중동, 인도, 중국,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 소수민족 등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이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언제 어떤 병에 걸려 어려움을 당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복음 전하다가 순교한 외국 선교사들의 무덤이 있는 양화진이나 동산의료원 청라언덕에 가보면 젊은 시절에 순교한 선교사가 많습니다. 지금도 북한에 우리나라 선교사들 6명이 억류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기도가 얼마나 절박한지 모릅니다. 또한 함심하여 기도하는 중보기도의 능력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과 관계되는 기도일수록 힘과 정열을 다 쏟는 전투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마귀를 향한 선전 포고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가면 군대마귀가 일어섭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이 함심해서 전심으로 기도하면 틀림없이 마귀는 물러가고 말 것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그 사탄의 권세를 꺾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속지만 않고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전도하면 됩니다.
마지막 33절에는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이라고 하면서 중보기도 부탁을 마무리 합니다. 지금 바울은 그 어느 때 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을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교회 성도들과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도 로마의 군사적, 정치적 평화보다 예수께서 주시는 영적 일치와 사랑의 친교에 의한 평화가 시급히 요구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평강을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 밖에 없으며 그 하나님께서 로마 성도들과 함께 계시기를 기도하면서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감당하기 위해 로마복음화에 이어 스페인까지 복음화하는 비전을 품고 전도하다가 순교 당했지만 그 복음의 씨았이 열매맺어 로마가 복음화 되고 세계복음화의 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로마와 스페인 복음화에 앞서 이방인 성도들이 헌금한 것을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하는 헌신과 봉사를 다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세계복음화의 선교비전을 가지고 우선 가능한 내 주변부터 복음화하는데 열심을 내야 하겠습니다. 믿지 않는 가족이나 내 주변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면서 어떻게 세계복음화 할 수 있겠습니까? 선교비전이 분명해졌다면 기도로, 물질로, 시간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 위험을 무릅쓰고 선교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내가 있는 곳에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최선을 다해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며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바울처럼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품고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해 헌신하고 복음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끝>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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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 소중한 평신도 동역자들 | 롬16:1-16 | 2025-08-17 | 홍기칠 목사 |
74 | 바울의 최종 헌신과 선교비전 | 롬15:22-33 | 2025-08-10 | 홍기칠 목사 |
73 | 바울의 선교 | 롬15:14-21 | 2025-08-03 | 홍기칠 목사 |
72 | 모든 열방이 주님께 영광을 | 롬15:1-13 | 2025-07-27 | 홍기칠 목사 |
71 | 믿음을 따라 행하라 | 롬14:13-23 | 2025-07-20 | 홍기칠 목사 |
70 | 주를 위하여 행하라 | 롬14:5-12 | 2025-07-13 | 홍기칠 목사 |
69 | 형제를 비판하지 말고 포용하라 | 롬14:1-6 | 2025-07-06 | 홍기칠 목사 |
68 |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 롬13:11-14 | 2025-06-29 | 홍기칠 목사 |
67 | 사랑은 율법의 완성 | 롬13:8-10 | 2025-06-22 | 홍기칠 목사 |
66 |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 롬13:1-7 | 2025-06-15 | 홍기칠 목사 |
65 | 그리스도인의 대인관계 | 롬12:14-21 | 2025-06-08 | 홍기칠 목사 |
64 | 사랑으로 봉사하라 | 롬12:9-13 | 2025-06-01 | 홍기칠 목사 |
63 | 받은 은사대로 봉사하라 | 롬12:3-8 | 2025-05-25 | 홍기칠 목사 |
62 | 구원받은 자의 삶 | 롬12:1-2 | 2025-05-18 | 홍기칠 목사 |
61 |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의 신비 | 롬11:25-36 | 2025-05-11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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