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바울의 선교
2025-08-10 20:47:52
홍기칠
조회수   9
설교본문 롬15:14-21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08-03

주일오전설교 250803 바울의 선교

본문: 15: 14-21

제목: 바울의 선교

 

I. 서론

지난 주 살펴보았던 롬15:1-13절에서 로마서의 본론은 끝이 납니다. 오늘 본문 롬 15:14절부터 16:27 마지막 절까지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와 인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가 예수님의 사도로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고 성화되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도가 되도록 하는 제사장 직분을 어떻게 감당했는가를 전체적으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어떻게 이방인 선교가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II. 본론

1. 바울이 로마서를 쓰게 된 이유

바울이 아직 만나지 못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미리 편지를 쓰게 된 이유를 먼저 설명합니다. 본문 1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처음 1:13절부터 로마성도들을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냥 형제들이 아니라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편지를 쓰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성도들을 향해 진심으로 마음을 다쏟다 보니 그들을 정말 나의 형제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성도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릅니다. 사실 우리 성도들은 일주일에도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제자훈련, 새벽기도 등 육신의 형제들 보다 더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지속적으로 서로 마음을 쏟게 되면 상대가 정말 나의 형제, 자매처럼 친근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바울은 내 형제들아라고 로마성도들을 부르면서 먼저 칭찬합니다. 그들은 선한 사람들이고, 하나님 말씀에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끼리 서로 도우며 권면하고 위로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은 서로 돕고 위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권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로마 성도들에게 바울이 굳이 왜 편지를 써서 보내려 했을까요? 본문 15절에 그 답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 부터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나누며 복음의 감격을 다시 회복시켜 주고 싶어서 편지를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대략 썼다는 말은 대충 썼다는 말이 아니라 로마 성도들이 성숙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에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어떤 부분들에는 과감하게 썼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성찰하고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어서 이 편지를 쓴다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첫째, 구원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3: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온 인류를 죄와 사탄의 올무에서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친히 대속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구주로 영접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롭다 칭함을 받는 이 놀라운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을 가장 많이 핍박하던 자신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를 구원하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것을 생각할 때 마다 바울은 그 구원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했던 것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괴수와 같은 자신을 이방인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일꾼, 이방인의 사도와 제사장으로 불러주신 은혜입니다. 본문 16절에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일꾼이란 주인이 마음에 들어 자기 일을 맡기는 사람을 말하는데 영어로는 minister에 해당 되는데 목사나 성직자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 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없습니다. 16절에서 전도자는 누구의 일꾼이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누구의 복음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한 결과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전도사역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된 것을 평생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다가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생명을 아깝게 여기지 않고 이 복음 전하는 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딤전 1:12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감사했습니다. 고전15:9절에는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자신을 불러 사도라는 직분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자신이 사도라 칭함을 받은 것조차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제사장 직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모든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벧전2:9절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목적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인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제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반드시 전도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선교시대에 전도하는 일에 충성을 다한 최권능(본명 최봉석) 목사님의 기막힌 전도사례가 있습니다. 최목사님은 그 당시 평안도 산골 화전민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찾아가서 밭에서 일하는 그들 가까이 가서 사람 죽는다, 사람 죽는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니 화전민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황급히 달려왔는데 금방 50여명이 몰려왔습니다. 그때 큰 소리로 여러분 예수 믿으시오, 예수 믿으면 천당이요 예수 안 믿으면 지옥이요, 예수 믿으시오라고 외쳤습니다. 화전민들은 하도 황당해서 그를 두들겨 패려하자 도망가면서 또 한번 가슴에 뭔가를 꺼내어 암행어사 출두요라고 외치며 마패를 꺼냈습니다. 화전민들은 또 한번 놀라서 전부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마패가 아니라 노회에서 전도 잘 한다고 준 메달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가서 나는 사람이 보낸 암행어사가 아니오, 하나님이 보낸 암행어사요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요, 그리 아시오하고 당당하게 떠나갔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전도방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 화전민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또 말을 타고 지나가는 일본 순사에게 대뜸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 외치는 바람에 그 순사가 말에서 놀라 떨어졌는데 나중에 그가 예수 믿게 되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생각하면 얼마나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입니까? 그만큼 최권능 목사님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충성했다는 것입니다. 최목사님이 세운 교회가 80여개나 되고, 회심한 사람이 수천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해방 후 1946년 산정현교회는 그의 순교기념비를 건립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는 복음 전하는 일에 이러한 열정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의 감격이 있다면 복음 전하는 은혜의 감격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 바울의 선교 목표

바울선교 사역의 목표가 16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제사장으로 소개합니다. 그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 제물이 되게 하시려고 자신에게 제사장 직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바로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곧 성화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선교사역의 목표는 단순히 사람들을 회심시켜 예수 믿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을 성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본문 18절에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이 성화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교사역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28: 19-20절에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내용으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성화가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화될 수 있습니까? 본문 15절에 성화의 기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에 감동을 받은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고 그 복음 전파의 결과로 16절에 이방인은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성화되는 것은 복음이 전파되고 성령이 그 사람의 마음에 능력으로 부어질 때 성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12:1절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5:9절에도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전도를 통해 복음을 듣고 이방인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화된 삶을 살 때에 그들의 삶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산 제물이 되고 영적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제사장으로 부름받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이 복음을 받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영광 돌리게 하는 것이 그의 선교의 최종 목표였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3. 바울의 선교전략

1) 선교지역

바울 사도는 본문 19절 하반절에서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고 했습니다. 편만하게 전했다는 것은 가득 채웠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거리는 약 2,000km가 넘습니다. 일루리곤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먼 지역입니다. 지금의 이탈리아 북부, 유고슬라비아 지역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는 이미 1,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3차 전도여행도 끝낼 무렵입니다. 바울은 일루리곤까지 바로 간 것이 아니라 큰 도시들을 전도하면서 두루 행하여 갔다는 것입니다. 대구에서 서울까지가 약 300km인데 그 일곱배가 되는 먼 거리와 넓은 지역을 그 당시 바울 혼자 걸어서 혹은 배를 타고 복음을 모두 전했다는 것은 과장한 것이 아닙니까?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행22: 17-21절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부터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할 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는 음성을 환상 중에 들었습니다. 바울은 그 먼 거리까지 전 지역을 전도했다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도시만을 다니며 전도한 것입니다.

 

군사용어로 말하면 주요 고지를 점령하는 선교전략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전도지를 살펴보면 안디옥, 에베소, 빌립보, 고린도, 아테네, 로마 등 주요도시 중심으로 전도를 한 것입니다. 각 도시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 거기에 교회가 생기게 되고 바울이 떠나고 나면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그 지역을 전도하는 전략입니다. 아직 개종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에 살고 있는데도 어떻게 복음전파가 완수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최전방 개척선교가 자신의 선교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개척선교의 임무가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들고 지나간 지역은 그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이 전도함으로 마치 누룩이 밀반죽에 퍼지듯이 복음이 확산되고 그 지역은 복음으로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선교를 완수하고 결국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그가 순교한 지 채 100년이 지나기도 전에 로마제국 방방곡곡에 황제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지 못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복음이 가득 찼습니다. 결국 AD 313년에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자유롭게 예수 믿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 한 사람을 통해 당시 소아시아 지역, 지금의 튀르키에와 유럽의 그리스, 이탈리아 반도 전역은 예수복음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볼 때 바울의 말이 절대로 과장되거나 잘못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20,21절에는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기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52: 15절 말씀처럼 복음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곳에 가서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 자기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이 다져 놓은 사역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곳으로 가서 개척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울이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곳에만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면서, 이미 복음이 이미 전해진 로마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겠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되 오직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영혼 속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 복음을 전할 뿐이지, 기존 교회에 들어가 주도권 쟁탈을 하거나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복음을 도구로 삼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2) 선교도구

바울이 선교할 때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도구가 무엇인지 18-1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을 전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말로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을 듣고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19절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일단 말로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왜 그리스도가 필요한지 복음을 말로 설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행위로 나타난 표적과 기사입니다. 행위는 말을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그 행위는 바로 바울이 행한 기적이었습니다. 16장에 두가지 예가 나옵니다. 빌립보에 사는 한 소녀가 귀신 들려 바울의 사역을 방해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했더니 당장 귀신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양했는데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때 간수가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때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후 그 간수와 온 가족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믿고 크게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말씀이 그것을 확증하는 행위와 기적이 함께 어우러진 것입니다. 이 외에도 바울은 수많은 기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셋째, 이러한 표적과 기사의 배후에는 성령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러한 전도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19절에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전도현장에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수많은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 믿고 돌아오도록 하시려고 주님은 바울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셨습니다. 19:11-12절을 보면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이처럼 성령이 철저하게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복음을 소아시아, 로마까지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당시 세상의 땅끝이라고 생각했던 서바나 지금의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할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에게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특혜가 주어집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과 기적은 전부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의 능력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가장 많이 일어났습니다. 16: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믿는 자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놀라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자랑할 것이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믿고 전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다 해주신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은 성령께서 하신 일을 자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문 17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표적과 기사만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진짜 성령의 능력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입에서 나오는 복음증거의 말에 있습니다. 고전2:4절에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있는 지혜의 말로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말에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한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이미 성도들에게 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을 모시고 있으면 성령의 능력도 그 성도와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전도하는 현장에 성령께서 늘 함께 하셔서 믿기로 작정된 자는 다 예수 믿도록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하는 한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그를 통해 복음이 편만하게 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전도자가 복음을 전할 때 그 말 속에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 시간에도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가정과 이웃과 직장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편만하게 채웠느냐?“ 라고 하시는데 여러분은 무엇이라 답하시겠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요 나의 생명이십니까? 정말 예수님이 나의 영원한 기쁨이요 소망입니까? 예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부터라도 예수가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되시는 구원자이심을 증거합시다. 바울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으니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세계복음화의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주일오전설교 250803 바울의 선교

본문: 15: 14-21

제목: 바울의 선교

 

I. 서론

지난 주 살펴보았던 롬15:1-13절에서 로마서의 본론은 끝이 납니다. 오늘 본문 롬 15:14절부터 16:27 마지막 절까지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와 인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가 예수님의 사도로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고 성화되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도가 되도록 하는 제사장 직분을 어떻게 감당했는가를 전체적으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어떻게 이방인 선교가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II. 본론

1. 바울이 로마서를 쓰게 된 이유

바울이 아직 만나지 못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미리 편지를 쓰게 된 이유를 먼저 설명합니다. 본문 1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처음 1:13절부터 로마성도들을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냥 형제들이 아니라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편지를 쓰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성도들을 향해 진심으로 마음을 다쏟다 보니 그들을 정말 나의 형제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성도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릅니다. 사실 우리 성도들은 일주일에도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제자훈련, 새벽기도 등 육신의 형제들 보다 더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지속적으로 서로 마음을 쏟게 되면 상대가 정말 나의 형제, 자매처럼 친근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바울은 내 형제들아라고 로마성도들을 부르면서 먼저 칭찬합니다. 그들은 선한 사람들이고, 하나님 말씀에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끼리 서로 도우며 권면하고 위로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은 서로 돕고 위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권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로마 성도들에게 바울이 굳이 왜 편지를 써서 보내려 했을까요? 본문 15절에 그 답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 부터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나누며 복음의 감격을 다시 회복시켜 주고 싶어서 편지를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대략 썼다는 말은 대충 썼다는 말이 아니라 로마 성도들이 성숙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에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어떤 부분들에는 과감하게 썼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성찰하고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어서 이 편지를 쓴다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첫째, 구원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3: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온 인류를 죄와 사탄의 올무에서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친히 대속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구주로 영접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롭다 칭함을 받는 이 놀라운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을 가장 많이 핍박하던 자신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를 구원하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것을 생각할 때 마다 바울은 그 구원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했던 것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괴수와 같은 자신을 이방인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일꾼, 이방인의 사도와 제사장으로 불러주신 은혜입니다. 본문 16절에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일꾼이란 주인이 마음에 들어 자기 일을 맡기는 사람을 말하는데 영어로는 minister에 해당 되는데 목사나 성직자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 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없습니다. 16절에서 전도자는 누구의 일꾼이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누구의 복음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한 결과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전도사역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된 것을 평생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다가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생명을 아깝게 여기지 않고 이 복음 전하는 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딤전 1:12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감사했습니다. 고전15:9절에는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자신을 불러 사도라는 직분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자신이 사도라 칭함을 받은 것조차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제사장 직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모든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벧전2:9절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목적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인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제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반드시 전도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선교시대에 전도하는 일에 충성을 다한 최권능(본명 최봉석) 목사님의 기막힌 전도사례가 있습니다. 최목사님은 그 당시 평안도 산골 화전민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찾아가서 밭에서 일하는 그들 가까이 가서 사람 죽는다, 사람 죽는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니 화전민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황급히 달려왔는데 금방 50여명이 몰려왔습니다. 그때 큰 소리로 여러분 예수 믿으시오, 예수 믿으면 천당이요 예수 안 믿으면 지옥이요, 예수 믿으시오라고 외쳤습니다. 화전민들은 하도 황당해서 그를 두들겨 패려하자 도망가면서 또 한번 가슴에 뭔가를 꺼내어 암행어사 출두요라고 외치며 마패를 꺼냈습니다. 화전민들은 또 한번 놀라서 전부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마패가 아니라 노회에서 전도 잘 한다고 준 메달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가서 나는 사람이 보낸 암행어사가 아니오, 하나님이 보낸 암행어사요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요, 그리 아시오하고 당당하게 떠나갔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전도방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 화전민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또 말을 타고 지나가는 일본 순사에게 대뜸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 외치는 바람에 그 순사가 말에서 놀라 떨어졌는데 나중에 그가 예수 믿게 되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생각하면 얼마나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입니까? 그만큼 최권능 목사님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충성했다는 것입니다. 최목사님이 세운 교회가 80여개나 되고, 회심한 사람이 수천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해방 후 1946년 산정현교회는 그의 순교기념비를 건립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는 복음 전하는 일에 이러한 열정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의 감격이 있다면 복음 전하는 은혜의 감격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 바울의 선교 목표

바울선교 사역의 목표가 16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제사장으로 소개합니다. 그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 제물이 되게 하시려고 자신에게 제사장 직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바로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곧 성화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선교사역의 목표는 단순히 사람들을 회심시켜 예수 믿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을 성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본문 18절에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이 성화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교사역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28: 19-20절에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내용으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성화가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화될 수 있습니까? 본문 15절에 성화의 기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에 감동을 받은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고 그 복음 전파의 결과로 16절에 이방인은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성화되는 것은 복음이 전파되고 성령이 그 사람의 마음에 능력으로 부어질 때 성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12:1절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5:9절에도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전도를 통해 복음을 듣고 이방인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화된 삶을 살 때에 그들의 삶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산 제물이 되고 영적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제사장으로 부름받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이 복음을 받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영광 돌리게 하는 것이 그의 선교의 최종 목표였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3. 바울의 선교전략

1) 선교지역

바울 사도는 본문 19절 하반절에서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고 했습니다. 편만하게 전했다는 것은 가득 채웠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거리는 약 2,000km가 넘습니다. 일루리곤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먼 지역입니다. 지금의 이탈리아 북부, 유고슬라비아 지역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는 이미 1,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3차 전도여행도 끝낼 무렵입니다. 바울은 일루리곤까지 바로 간 것이 아니라 큰 도시들을 전도하면서 두루 행하여 갔다는 것입니다. 대구에서 서울까지가 약 300km인데 그 일곱배가 되는 먼 거리와 넓은 지역을 그 당시 바울 혼자 걸어서 혹은 배를 타고 복음을 모두 전했다는 것은 과장한 것이 아닙니까?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행22: 17-21절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부터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할 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는 음성을 환상 중에 들었습니다. 바울은 그 먼 거리까지 전 지역을 전도했다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도시만을 다니며 전도한 것입니다.

 

군사용어로 말하면 주요 고지를 점령하는 선교전략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전도지를 살펴보면 안디옥, 에베소, 빌립보, 고린도, 아테네, 로마 등 주요도시 중심으로 전도를 한 것입니다. 각 도시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 거기에 교회가 생기게 되고 바울이 떠나고 나면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그 지역을 전도하는 전략입니다. 아직 개종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에 살고 있는데도 어떻게 복음전파가 완수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최전방 개척선교가 자신의 선교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개척선교의 임무가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들고 지나간 지역은 그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이 전도함으로 마치 누룩이 밀반죽에 퍼지듯이 복음이 확산되고 그 지역은 복음으로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선교를 완수하고 결국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그가 순교한 지 채 100년이 지나기도 전에 로마제국 방방곡곡에 황제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지 못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복음이 가득 찼습니다. 결국 AD 313년에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자유롭게 예수 믿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 한 사람을 통해 당시 소아시아 지역, 지금의 튀르키에와 유럽의 그리스, 이탈리아 반도 전역은 예수복음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볼 때 바울의 말이 절대로 과장되거나 잘못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20,21절에는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기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52: 15절 말씀처럼 복음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곳에 가서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 자기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이 다져 놓은 사역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곳으로 가서 개척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울이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곳에만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면서, 이미 복음이 이미 전해진 로마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겠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되 오직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영혼 속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 복음을 전할 뿐이지, 기존 교회에 들어가 주도권 쟁탈을 하거나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복음을 도구로 삼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2) 선교도구

바울이 선교할 때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도구가 무엇인지 18-1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을 전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말로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을 듣고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19절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일단 말로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왜 그리스도가 필요한지 복음을 말로 설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행위로 나타난 표적과 기사입니다. 행위는 말을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그 행위는 바로 바울이 행한 기적이었습니다. 16장에 두가지 예가 나옵니다. 빌립보에 사는 한 소녀가 귀신 들려 바울의 사역을 방해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했더니 당장 귀신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양했는데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때 간수가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때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후 그 간수와 온 가족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믿고 크게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말씀이 그것을 확증하는 행위와 기적이 함께 어우러진 것입니다. 이 외에도 바울은 수많은 기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셋째, 이러한 표적과 기사의 배후에는 성령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러한 전도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19절에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전도현장에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수많은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 믿고 돌아오도록 하시려고 주님은 바울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셨습니다. 19:11-12절을 보면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이처럼 성령이 철저하게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복음을 소아시아, 로마까지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당시 세상의 땅끝이라고 생각했던 서바나 지금의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할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에게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특혜가 주어집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과 기적은 전부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의 능력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가장 많이 일어났습니다. 16: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믿는 자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놀라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자랑할 것이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믿고 전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다 해주신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은 성령께서 하신 일을 자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문 17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표적과 기사만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진짜 성령의 능력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입에서 나오는 복음증거의 말에 있습니다. 고전2:4절에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있는 지혜의 말로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말에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한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이미 성도들에게 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을 모시고 있으면 성령의 능력도 그 성도와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전도하는 현장에 성령께서 늘 함께 하셔서 믿기로 작정된 자는 다 예수 믿도록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하는 한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그를 통해 복음이 편만하게 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전도자가 복음을 전할 때 그 말 속에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 시간에도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가정과 이웃과 직장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편만하게 채웠느냐?“ 라고 하시는데 여러분은 무엇이라 답하시겠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요 나의 생명이십니까? 정말 예수님이 나의 영원한 기쁨이요 소망입니까? 예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부터라도 예수가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되시는 구원자이심을 증거합시다. 바울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으니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세계복음화의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주일오전설교 250803 바울의 선교

본문: 15: 14-21

제목: 바울의 선교

 

I. 서론

지난 주 살펴보았던 롬15:1-13절에서 로마서의 본론은 끝이 납니다. 오늘 본문 롬 15:14절부터 16:27 마지막 절까지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와 인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가 예수님의 사도로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고 성화되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도가 되도록 하는 제사장 직분을 어떻게 감당했는가를 전체적으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어떻게 이방인 선교가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II. 본론

1. 바울이 로마서를 쓰게 된 이유

바울이 아직 만나지 못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미리 편지를 쓰게 된 이유를 먼저 설명합니다. 본문 1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처음 1:13절부터 로마성도들을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냥 형제들이 아니라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편지를 쓰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성도들을 향해 진심으로 마음을 다쏟다 보니 그들을 정말 나의 형제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성도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릅니다. 사실 우리 성도들은 일주일에도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제자훈련, 새벽기도 등 육신의 형제들 보다 더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지속적으로 서로 마음을 쏟게 되면 상대가 정말 나의 형제, 자매처럼 친근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바울은 내 형제들아라고 로마성도들을 부르면서 먼저 칭찬합니다. 그들은 선한 사람들이고, 하나님 말씀에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끼리 서로 도우며 권면하고 위로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은 서로 돕고 위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권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로마 성도들에게 바울이 굳이 왜 편지를 써서 보내려 했을까요? 본문 15절에 그 답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 부터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나누며 복음의 감격을 다시 회복시켜 주고 싶어서 편지를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대략 썼다는 말은 대충 썼다는 말이 아니라 로마 성도들이 성숙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에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어떤 부분들에는 과감하게 썼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성찰하고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어서 이 편지를 쓴다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첫째, 구원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3: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온 인류를 죄와 사탄의 올무에서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친히 대속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구주로 영접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롭다 칭함을 받는 이 놀라운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을 가장 많이 핍박하던 자신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를 구원하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것을 생각할 때 마다 바울은 그 구원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했던 것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괴수와 같은 자신을 이방인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일꾼, 이방인의 사도와 제사장으로 불러주신 은혜입니다. 본문 16절에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일꾼이란 주인이 마음에 들어 자기 일을 맡기는 사람을 말하는데 영어로는 minister에 해당 되는데 목사나 성직자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 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없습니다. 16절에서 전도자는 누구의 일꾼이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누구의 복음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한 결과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전도사역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된 것을 평생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다가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생명을 아깝게 여기지 않고 이 복음 전하는 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딤전 1:12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감사했습니다. 고전15:9절에는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자신을 불러 사도라는 직분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자신이 사도라 칭함을 받은 것조차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제사장 직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모든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벧전2:9절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목적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인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제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반드시 전도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선교시대에 전도하는 일에 충성을 다한 최권능(본명 최봉석) 목사님의 기막힌 전도사례가 있습니다. 최목사님은 그 당시 평안도 산골 화전민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찾아가서 밭에서 일하는 그들 가까이 가서 사람 죽는다, 사람 죽는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니 화전민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황급히 달려왔는데 금방 50여명이 몰려왔습니다. 그때 큰 소리로 여러분 예수 믿으시오, 예수 믿으면 천당이요 예수 안 믿으면 지옥이요, 예수 믿으시오라고 외쳤습니다. 화전민들은 하도 황당해서 그를 두들겨 패려하자 도망가면서 또 한번 가슴에 뭔가를 꺼내어 암행어사 출두요라고 외치며 마패를 꺼냈습니다. 화전민들은 또 한번 놀라서 전부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마패가 아니라 노회에서 전도 잘 한다고 준 메달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가서 나는 사람이 보낸 암행어사가 아니오, 하나님이 보낸 암행어사요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요, 그리 아시오하고 당당하게 떠나갔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전도방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 화전민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또 말을 타고 지나가는 일본 순사에게 대뜸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 외치는 바람에 그 순사가 말에서 놀라 떨어졌는데 나중에 그가 예수 믿게 되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생각하면 얼마나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입니까? 그만큼 최권능 목사님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충성했다는 것입니다. 최목사님이 세운 교회가 80여개나 되고, 회심한 사람이 수천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해방 후 1946년 산정현교회는 그의 순교기념비를 건립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는 복음 전하는 일에 이러한 열정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의 감격이 있다면 복음 전하는 은혜의 감격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 바울의 선교 목표

바울선교 사역의 목표가 16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제사장으로 소개합니다. 그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 제물이 되게 하시려고 자신에게 제사장 직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바로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곧 성화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선교사역의 목표는 단순히 사람들을 회심시켜 예수 믿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을 성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본문 18절에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이 성화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교사역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28: 19-20절에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내용으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성화가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화될 수 있습니까? 본문 15절에 성화의 기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에 감동을 받은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고 그 복음 전파의 결과로 16절에 이방인은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성화되는 것은 복음이 전파되고 성령이 그 사람의 마음에 능력으로 부어질 때 성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12:1절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5:9절에도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전도를 통해 복음을 듣고 이방인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화된 삶을 살 때에 그들의 삶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산 제물이 되고 영적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제사장으로 부름받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이 복음을 받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영광 돌리게 하는 것이 그의 선교의 최종 목표였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3. 바울의 선교전략

1) 선교지역

바울 사도는 본문 19절 하반절에서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고 했습니다. 편만하게 전했다는 것은 가득 채웠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거리는 약 2,000km가 넘습니다. 일루리곤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먼 지역입니다. 지금의 이탈리아 북부, 유고슬라비아 지역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는 이미 1,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3차 전도여행도 끝낼 무렵입니다. 바울은 일루리곤까지 바로 간 것이 아니라 큰 도시들을 전도하면서 두루 행하여 갔다는 것입니다. 대구에서 서울까지가 약 300km인데 그 일곱배가 되는 먼 거리와 넓은 지역을 그 당시 바울 혼자 걸어서 혹은 배를 타고 복음을 모두 전했다는 것은 과장한 것이 아닙니까?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행22: 17-21절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부터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할 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는 음성을 환상 중에 들었습니다. 바울은 그 먼 거리까지 전 지역을 전도했다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도시만을 다니며 전도한 것입니다.

 

군사용어로 말하면 주요 고지를 점령하는 선교전략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전도지를 살펴보면 안디옥, 에베소, 빌립보, 고린도, 아테네, 로마 등 주요도시 중심으로 전도를 한 것입니다. 각 도시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 거기에 교회가 생기게 되고 바울이 떠나고 나면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그 지역을 전도하는 전략입니다. 아직 개종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에 살고 있는데도 어떻게 복음전파가 완수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최전방 개척선교가 자신의 선교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개척선교의 임무가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들고 지나간 지역은 그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이 전도함으로 마치 누룩이 밀반죽에 퍼지듯이 복음이 확산되고 그 지역은 복음으로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선교를 완수하고 결국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그가 순교한 지 채 100년이 지나기도 전에 로마제국 방방곡곡에 황제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지 못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복음이 가득 찼습니다. 결국 AD 313년에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자유롭게 예수 믿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 한 사람을 통해 당시 소아시아 지역, 지금의 튀르키에와 유럽의 그리스, 이탈리아 반도 전역은 예수복음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볼 때 바울의 말이 절대로 과장되거나 잘못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20,21절에는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기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52: 15절 말씀처럼 복음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곳에 가서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 자기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이 다져 놓은 사역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곳으로 가서 개척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울이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곳에만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면서, 이미 복음이 이미 전해진 로마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겠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되 오직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영혼 속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 복음을 전할 뿐이지, 기존 교회에 들어가 주도권 쟁탈을 하거나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복음을 도구로 삼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2) 선교도구

바울이 선교할 때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도구가 무엇인지 18-1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을 전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말로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을 듣고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19절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일단 말로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왜 그리스도가 필요한지 복음을 말로 설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행위로 나타난 표적과 기사입니다. 행위는 말을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그 행위는 바로 바울이 행한 기적이었습니다. 16장에 두가지 예가 나옵니다. 빌립보에 사는 한 소녀가 귀신 들려 바울의 사역을 방해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했더니 당장 귀신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양했는데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때 간수가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때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후 그 간수와 온 가족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믿고 크게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말씀이 그것을 확증하는 행위와 기적이 함께 어우러진 것입니다. 이 외에도 바울은 수많은 기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셋째, 이러한 표적과 기사의 배후에는 성령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러한 전도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19절에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전도현장에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수많은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 믿고 돌아오도록 하시려고 주님은 바울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셨습니다. 19:11-12절을 보면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이처럼 성령이 철저하게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복음을 소아시아, 로마까지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당시 세상의 땅끝이라고 생각했던 서바나 지금의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할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에게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특혜가 주어집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과 기적은 전부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의 능력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가장 많이 일어났습니다. 16: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믿는 자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놀라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자랑할 것이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믿고 전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다 해주신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은 성령께서 하신 일을 자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문 17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표적과 기사만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진짜 성령의 능력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입에서 나오는 복음증거의 말에 있습니다. 고전2:4절에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있는 지혜의 말로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말에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한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이미 성도들에게 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을 모시고 있으면 성령의 능력도 그 성도와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전도하는 현장에 성령께서 늘 함께 하셔서 믿기로 작정된 자는 다 예수 믿도록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하는 한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그를 통해 복음이 편만하게 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전도자가 복음을 전할 때 그 말 속에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 시간에도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가정과 이웃과 직장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편만하게 채웠느냐?“ 라고 하시는데 여러분은 무엇이라 답하시겠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요 나의 생명이십니까? 정말 예수님이 나의 영원한 기쁨이요 소망입니까? 예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부터라도 예수가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되시는 구원자이심을 증거합시다. 바울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으니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세계복음화의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주일오전설교 250803 바울의 선교

본문: 15: 14-21

제목: 바울의 선교

 

I. 서론

지난 주 살펴보았던 롬15:1-13절에서 로마서의 본론은 끝이 납니다. 오늘 본문 롬 15:14절부터 16:27 마지막 절까지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와 인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가 예수님의 사도로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고 성화되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도가 되도록 하는 제사장 직분을 어떻게 감당했는가를 전체적으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어떻게 이방인 선교가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II. 본론

1. 바울이 로마서를 쓰게 된 이유

바울이 아직 만나지 못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미리 편지를 쓰게 된 이유를 먼저 설명합니다. 본문 1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처음 1:13절부터 로마성도들을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냥 형제들이 아니라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편지를 쓰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성도들을 향해 진심으로 마음을 다쏟다 보니 그들을 정말 나의 형제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성도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릅니다. 사실 우리 성도들은 일주일에도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제자훈련, 새벽기도 등 육신의 형제들 보다 더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지속적으로 서로 마음을 쏟게 되면 상대가 정말 나의 형제, 자매처럼 친근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바울은 내 형제들아라고 로마성도들을 부르면서 먼저 칭찬합니다. 그들은 선한 사람들이고, 하나님 말씀에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끼리 서로 도우며 권면하고 위로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은 서로 돕고 위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권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로마 성도들에게 바울이 굳이 왜 편지를 써서 보내려 했을까요? 본문 15절에 그 답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 부터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나누며 복음의 감격을 다시 회복시켜 주고 싶어서 편지를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대략 썼다는 말은 대충 썼다는 말이 아니라 로마 성도들이 성숙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에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어떤 부분들에는 과감하게 썼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성찰하고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어서 이 편지를 쓴다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첫째, 구원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3: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온 인류를 죄와 사탄의 올무에서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친히 대속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구주로 영접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롭다 칭함을 받는 이 놀라운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을 가장 많이 핍박하던 자신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를 구원하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것을 생각할 때 마다 바울은 그 구원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했던 것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괴수와 같은 자신을 이방인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일꾼, 이방인의 사도와 제사장으로 불러주신 은혜입니다. 본문 16절에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일꾼이란 주인이 마음에 들어 자기 일을 맡기는 사람을 말하는데 영어로는 minister에 해당 되는데 목사나 성직자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 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없습니다. 16절에서 전도자는 누구의 일꾼이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누구의 복음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한 결과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전도사역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된 것을 평생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다가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생명을 아깝게 여기지 않고 이 복음 전하는 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딤전 1:12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감사했습니다. 고전15:9절에는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자신을 불러 사도라는 직분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자신이 사도라 칭함을 받은 것조차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제사장 직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모든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벧전2:9절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목적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인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제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반드시 전도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선교시대에 전도하는 일에 충성을 다한 최권능(본명 최봉석) 목사님의 기막힌 전도사례가 있습니다. 최목사님은 그 당시 평안도 산골 화전민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찾아가서 밭에서 일하는 그들 가까이 가서 사람 죽는다, 사람 죽는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니 화전민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황급히 달려왔는데 금방 50여명이 몰려왔습니다. 그때 큰 소리로 여러분 예수 믿으시오, 예수 믿으면 천당이요 예수 안 믿으면 지옥이요, 예수 믿으시오라고 외쳤습니다. 화전민들은 하도 황당해서 그를 두들겨 패려하자 도망가면서 또 한번 가슴에 뭔가를 꺼내어 암행어사 출두요라고 외치며 마패를 꺼냈습니다. 화전민들은 또 한번 놀라서 전부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마패가 아니라 노회에서 전도 잘 한다고 준 메달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가서 나는 사람이 보낸 암행어사가 아니오, 하나님이 보낸 암행어사요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요, 그리 아시오하고 당당하게 떠나갔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전도방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 화전민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또 말을 타고 지나가는 일본 순사에게 대뜸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 외치는 바람에 그 순사가 말에서 놀라 떨어졌는데 나중에 그가 예수 믿게 되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생각하면 얼마나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입니까? 그만큼 최권능 목사님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충성했다는 것입니다. 최목사님이 세운 교회가 80여개나 되고, 회심한 사람이 수천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해방 후 1946년 산정현교회는 그의 순교기념비를 건립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는 복음 전하는 일에 이러한 열정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의 감격이 있다면 복음 전하는 은혜의 감격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 바울의 선교 목표

바울선교 사역의 목표가 16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제사장으로 소개합니다. 그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 제물이 되게 하시려고 자신에게 제사장 직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바로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곧 성화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선교사역의 목표는 단순히 사람들을 회심시켜 예수 믿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을 성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본문 18절에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이 성화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교사역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28: 19-20절에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내용으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성화가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화될 수 있습니까? 본문 15절에 성화의 기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에 감동을 받은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고 그 복음 전파의 결과로 16절에 이방인은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성화되는 것은 복음이 전파되고 성령이 그 사람의 마음에 능력으로 부어질 때 성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12:1절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5:9절에도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전도를 통해 복음을 듣고 이방인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화된 삶을 살 때에 그들의 삶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산 제물이 되고 영적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제사장으로 부름받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이 복음을 받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영광 돌리게 하는 것이 그의 선교의 최종 목표였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3. 바울의 선교전략

1) 선교지역

바울 사도는 본문 19절 하반절에서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고 했습니다. 편만하게 전했다는 것은 가득 채웠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거리는 약 2,000km가 넘습니다. 일루리곤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먼 지역입니다. 지금의 이탈리아 북부, 유고슬라비아 지역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는 이미 1,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3차 전도여행도 끝낼 무렵입니다. 바울은 일루리곤까지 바로 간 것이 아니라 큰 도시들을 전도하면서 두루 행하여 갔다는 것입니다. 대구에서 서울까지가 약 300km인데 그 일곱배가 되는 먼 거리와 넓은 지역을 그 당시 바울 혼자 걸어서 혹은 배를 타고 복음을 모두 전했다는 것은 과장한 것이 아닙니까?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행22: 17-21절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부터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할 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는 음성을 환상 중에 들었습니다. 바울은 그 먼 거리까지 전 지역을 전도했다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도시만을 다니며 전도한 것입니다.

 

군사용어로 말하면 주요 고지를 점령하는 선교전략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전도지를 살펴보면 안디옥, 에베소, 빌립보, 고린도, 아테네, 로마 등 주요도시 중심으로 전도를 한 것입니다. 각 도시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 거기에 교회가 생기게 되고 바울이 떠나고 나면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그 지역을 전도하는 전략입니다. 아직 개종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에 살고 있는데도 어떻게 복음전파가 완수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최전방 개척선교가 자신의 선교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개척선교의 임무가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들고 지나간 지역은 그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이 전도함으로 마치 누룩이 밀반죽에 퍼지듯이 복음이 확산되고 그 지역은 복음으로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선교를 완수하고 결국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그가 순교한 지 채 100년이 지나기도 전에 로마제국 방방곡곡에 황제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지 못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복음이 가득 찼습니다. 결국 AD 313년에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자유롭게 예수 믿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 한 사람을 통해 당시 소아시아 지역, 지금의 튀르키에와 유럽의 그리스, 이탈리아 반도 전역은 예수복음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볼 때 바울의 말이 절대로 과장되거나 잘못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20,21절에는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기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52: 15절 말씀처럼 복음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곳에 가서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 자기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이 다져 놓은 사역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곳으로 가서 개척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울이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곳에만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면서, 이미 복음이 이미 전해진 로마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겠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되 오직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영혼 속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 복음을 전할 뿐이지, 기존 교회에 들어가 주도권 쟁탈을 하거나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복음을 도구로 삼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2) 선교도구

바울이 선교할 때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도구가 무엇인지 18-1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을 전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말로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을 듣고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19절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일단 말로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왜 그리스도가 필요한지 복음을 말로 설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행위로 나타난 표적과 기사입니다. 행위는 말을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그 행위는 바로 바울이 행한 기적이었습니다. 16장에 두가지 예가 나옵니다. 빌립보에 사는 한 소녀가 귀신 들려 바울의 사역을 방해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했더니 당장 귀신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양했는데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때 간수가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때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후 그 간수와 온 가족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믿고 크게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말씀이 그것을 확증하는 행위와 기적이 함께 어우러진 것입니다. 이 외에도 바울은 수많은 기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셋째, 이러한 표적과 기사의 배후에는 성령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러한 전도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19절에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전도현장에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수많은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 믿고 돌아오도록 하시려고 주님은 바울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셨습니다. 19:11-12절을 보면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이처럼 성령이 철저하게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복음을 소아시아, 로마까지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당시 세상의 땅끝이라고 생각했던 서바나 지금의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할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에게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특혜가 주어집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과 기적은 전부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의 능력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가장 많이 일어났습니다. 16: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믿는 자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놀라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자랑할 것이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믿고 전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다 해주신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은 성령께서 하신 일을 자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문 17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표적과 기사만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진짜 성령의 능력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입에서 나오는 복음증거의 말에 있습니다. 고전2:4절에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있는 지혜의 말로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말에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한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이미 성도들에게 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을 모시고 있으면 성령의 능력도 그 성도와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전도하는 현장에 성령께서 늘 함께 하셔서 믿기로 작정된 자는 다 예수 믿도록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하는 한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그를 통해 복음이 편만하게 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전도자가 복음을 전할 때 그 말 속에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 시간에도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가정과 이웃과 직장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편만하게 채웠느냐?“ 라고 하시는데 여러분은 무엇이라 답하시겠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요 나의 생명이십니까? 정말 예수님이 나의 영원한 기쁨이요 소망입니까? 예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부터라도 예수가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되시는 구원자이심을 증거합시다. 바울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으니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세계복음화의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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