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소중한 평신도 동역자들
2025-08-17 19:36:16
홍기칠
조회수   21
설교본문 롬16:1-16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08-17

주일오전설교 250817 소중한 평신도 동역자들

본문:16: 1-16

제목: 소중한 평신도 동역자들

 

I. 서론

바울사도는 로마서 1-11장에서 구원에 관한 교리, 12-15장에서 성도의 실천적 생활에 대해 언급하고 마지막 16장에서는 그동안 복음을 전하면서 만난 동역자들을 개인적으로 소개하고 인사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최소한 27명의 이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사람도 여러명 있습니다. 그중에는 여자가 7,8명 정도 됩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서의 마지막 장인데 바울이 그동안 자신의 선교를 도와주었던 평신도 동역자들로서 모두 로마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고마움의 인사와 안부를 전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살펴 볼 21-23절에는 바울과 함께 고린도에서 복음을 위해 충성하고 있었던 형제들의 이름이 8명 나오는데 그들을 대신하여 사랑의 안부까지 전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그리스도인들의 교제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동역자들의 활동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16장 개관

먼저 롬16장을 전체적으로 개관해 보겠습니다.

첫째, 기록된 이름들에 주목하십시오.

더 많은 이들에게 인사를 보내지만 이름이 나온 사람은 27명입니다. 15장까지의 내용을 현실 속에서 삶으로 살았던 실존자들입니다. 16장이 있기 때문에 15장까지의 내용을 우리 성도들의 책임과 의무와 권리를 받아들일 수가 있을 뿐 아니라 로마서 전체가 완성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중에 26명은 로마에 있고 뵈뵈는 바울이 쓴 로마서 편지를 들고 로마로 간 인물입니다. 뵈뵈는 바울이 로마에 올 때까지 로마교인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로마에 아직 가보지 않은 바울이 로마에 있는 동역자들의 이름을 많이 알고 있다니 그가 얼마나 동역자들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바울의 이러한 모습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여러 사람들의 인척관계와 동역자 관계에 주목하십시오.

자매, 형제, 일꾼, 성도, 보호자, 동료사역자, 처음 맺은 열매, 친척, 내 어머니 등 각 사람을 소개할 때 그들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그 앞에 붙은 수식어가 다양합니다. 그만큼 동역자들의 수고를 잘 알고 있고 각 사람에게 맞는 수식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놀랍습니다. 인간관계란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수록 그 사람들을 통해 서로에게서 흘러나오는 복은 더욱 다양하고 풍성해집니다.

 

셋째, 얼마나 그리스도로 충만한 관계인지 주목하십시오.

대부분의 절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일일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안부인사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충만한 사람이 그의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이메일을 보낼 때 거기에 그리스도를 이렇게 많이 언급한 적이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우리 대화 가운데 계시고 이메일 안에 계신다면 이는 바울처럼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다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평범한 사람을 발굴해서 복음을 위해 생명을 바쳐 일하는 탁월한 동역자로 만든 것입니다. 바울은 혼자 일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위대함은 평신도의 잠재력을 극대화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최대로 투자하도록 이끄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지도자 였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모든 평신도의 이름은 바울이 값 비싼 댓가를 지불해서 해산의 수고를 다해 길러놓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요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이런 댓가를 지불하고 얻은 형제자매들이었기 때문에 그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수식어를 이름 앞에 하나씩 붙이고 있습니다. 나의 보호자, 나의 동역자, 처음 맺은 열매, 나와 함께 갇힌 자, 내 사랑하는 자,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 받은 자, 주 안에서 수고한 자, 내 어머니, 나의 친척,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자등 별명을 붙여가면서 그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멋진 장면입니까? 우리들도 전도현장에서 복음 전하여 그들이 교회의 충성스런 일꾼으로 인도하면서 이와같은 별명을 붙일 수 있는 많은 형제 자매를 얻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넷째, 이 사람들은 로마에 있는 여러 교회에 흩어져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5절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언급합니다. 14절은 아순그리도와 불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고 언급한 이 형제들이 함께 모이는 가정교회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로마교회는 로마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가정교회들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편지를 써서 각 가정교회에 회람하여 볼 수 있도록 한 것 입니다.

 

다섯째, 가장 많이 등장하는 명령이 문안하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문안하라는 말이 1-16절까지 13번 나옵니다. 로마서는 로마의 모든 성도들에게 쓴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로마의 교회 지도자들이 이 편지를 전달하고 읽고 가르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이름을 언급한 27명 뿐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고 있는 모든 교회들에 인사를 전하라는 것입니다. 문안하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개별적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마음으로 대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동역자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서로 존중과 배려로 문안하는 삶을 살아갈 때 로마서의 동역자로 연합될 것입니다.

 

여섯째, 16장 곳곳에 스며 있는 사랑을 주목하십시오.

바울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네 번이나 사용합니다. 그리고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는 4절에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 내놓았다고 할 정도입니다. 엄청난 사랑이 담긴 말입니다.

 

2. 보호자 뵈뵈

본문 1,2절에서 바울은 먼저 이 편지를 가지고 간 것으로 여겨지는 뵈뵈를 소개합니다. 그녀는 겐그레아에서 로마로 볼 일이 있어서 가는 중에 가까운 곳에 있는 고린도에 들러서 바울이 쓴 편지를 가지고 갔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바울은 그녀를 우리 자매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형제이자 자매로 여긴 것입니다. 한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정하고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남자의 이름이 아닌 여자의 이름을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이 특이합니다. 뵈뵈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16개월 동안 선교할 때 그에게 전도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뵈뵈의 고향은 고린도 지방의 겐그레아 항구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초대교회 안에는 여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기독교 초기부터 여성은 남성과 더불어 복음사역에서 중요한 동역자였습니다. 본문에 이름이 나열된 목록에도 여성이 최소한 7명이나 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남자와 여자로서 각각의 특성과 부르심과 역할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는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한국교회에서도 여성들이 더 많고 교회 구석 구석을 살피며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헌신으로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했다는 사실을 볼 때 여성도들의 노고에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뵈뵈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라고 말하며 추천합니다. 일꾼이라는 말은 집사 혹은 지도자라는 의미입니다. 당시에 여자 집사제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뵈뵈는 교회에 지도자로 활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2절에도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뵈뵈는 재력으로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도 높았으며 일단 개종한 후에 헌신적으로 바울과 그리스도인의 모임을 도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전도 여행자였기 때문에 뵈뵈가 경제적인 보호자가 되어 자기의 모든 재산을 바울을 위해 내어놓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법적인 보호자도 되어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가 가진 모든 것으로 교회와 사도를 섬겼기 때문에 바울은 그녀를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로마교회로 보내는 편지를 전하도록 그녀에게 맡겼을 것입니다. 이처럼 뵈뵈는 귀중한 사람이니까 로마교회가 합당한 예절을 갖추어 그를 영접하고 그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전부 공급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입니다.

3. 동역자 브리스가와 아굴라

본문 3-5절에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부부로서 여성인 브리스가가 먼저 나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행18:2절에 당시 남자를 우대하는 관습대로 아굴라 이름을 먼저 기록했고 아내 이름을 결혼한 여자를 낮추어 부르는 관습에 따라 브리스길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에서 브리스가라고 그대로 호칭했습니다. 여기서 부인 이름을 앞세운 것은 부인의 위치가 교회에서 더 중요하고 대단히 귀하게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는 신앙공동체이고 대부분 남자가 여자가 더 신앙이 깊고 봉사도 더 많이 합니다.

 

바울은 이들 부부를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사도바울도 동역자가 필요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장막을 만드는 데도 동역자였고 복음을 전하는데도 동역자였습니다. 아굴라는 원래는 본도 즉 튀르키에(터어키) 북부 출신이고, 이들 부부는 주후 49년에 글라우디오 황제의 명령으로 모든 유대인과 함께 쫓겨나기 전까지는 로마에 살았고, 이후 쫓겨나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나게 되었고 거기서 천막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이때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 반동안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할 때 그들은 바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정성껏 도왔을 뿐 아니라 바울과 천막을 만드는 동업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이 에베소로 선교를 떠날 때 이 부부도 사업을 정리하고 에베소로 따라갔습니다. 거기서도 바울의 충성스런 동역자 역할을 잘 했습니다.

 

얼마 후에 황제의 추방령이 해제되었을 때에 이 부부는 다시 로마로 돌아와 자기들의 옛집과 직업을 되찾았습니다. 딤후 4:19절을 보면 그들은 다시 에베소로 가서 거기서 자기 집을 교회로 삼아 가정교회를 이끌었습니다. 당시 로마교회는 예배당이 없었고 각 가정이 교회였습니다. 그 가정들이 모여 하나의 지역교회를 이루어 갔습니다. 바울이 이 로마서를 쓴 이유도 각 가정으로 회람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여러 지역을 다니며 바울을 도와 가정교회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동역자라는 말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최우선에 두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따라 자주 옮겨 다녔고 가정을 개방하여 바울의 안식처가 되게 했습니다. 그들에게 직업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 했습니다. 그들의 집은 언제나 교회로 사용되었습니다. 평생토록 자기 집을 교회로 개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움을 많았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바울이 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자기 집을 개방하여 전도한 사람들이 누구나 언제든지 드나들도록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부부나 가족 간의 사생활이 없기 때문에 얼마나 불편한 점이 많겠습니까? 그만큼 이들 부부는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한 것입니다.

더구나 4절에 보면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으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 바울 때문에 장사가 망하게 되자, 사람들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때 이 부부가 생명의 위협을 당하던 바울과 목숨을 걸고 함께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 바울은 그들이 자기를 위해 목숨을 내놓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살아있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4. 기타 동역자들

본문 5-16절에는 그 나머지 복음전파의 동역자들을 이름을 불러가며 각각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소개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바울의 사랑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사랑이란 단어를 여기서 네 번이나 반복해서 말합니다. 본문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에 대한 내 사랑을 당신들이 전해 주면 좋겠습니다. 내 사랑의 말을 그릇에 담아 그 사랑을 그들의 삶에 흘러보내주면 좋겠습니다라는 바울의 진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16절에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문안하라는 말이 본문에서 13번이나 나옵니다. 문안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는 것은 당시에 이마나 뺨에 입을 맞추는 일반적인 인사법이었고, 초대교회에서도 행해진 아름다운 인사와 친교의 형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성도들에게 입맞춤은 거룩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와서 입맞춤을 한 것은 배신의 입맞춤이지 거룩한 입맞춤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순전하고 거룩하고 심오하고 피로 값을 치른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거룩한 입맞춤으로 문안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성도 간의 문안과 인사는 서로 악수하거나 손을 잡아 주거나 가볍게 안아주는 등 가족처럼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친밀감과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혹은 주 안에서를 여덟 번이나 언급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을 치르시고 공의의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무한히 안전하고 행복한 장소인 그리스도 예수 안에함께 거하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마치 광부들이 지하갱도에 갇혀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되었을 때 무사귀환을 간절히 바라고 있던 가족들과 얼싸안고 기뻐하는 것처럼 성도들도 그와 같은 구원의 감격을 서로 나누며 문안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감격으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여덟 번이나 말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 성도들과 함께 살아가는 곳이 바로 그리스도 안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점점 더 강하게 된 이유를 몇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형제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로도 그 형제에 대한 깊은 사랑을 표현합니다. 본문 13절에 주 안에서 택함을 받은 루포라고 했습니다. 다른 성도들을 바라볼 때 그들도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라고 생각하면 어찌 소중한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둘째, 어떤 성도는 그들이 주님과 동행한 시간 때문에 바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5절 후반절에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고 했습니다. 처음 맺은 열매라는 말은 두 번째, 세 번째 열매도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에배네도의 회심은 소아시아지역 선교를 시작할 때 그리스도께로 이끈 첫 번째 사람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처음으로 예수를 믿게 된 초신자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더욱 각별한 애정과 정성을 쏟아야합니다. 그리고 7절에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바울보다 먼저 예수를 믿었지만 지금은 바울에게 복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보다 나중에 믿은 바울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예수 믿을 때 바울은 그 당시 예수를 배척하고 핍박하던 시절인데 그들을 먼저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오랫동안 신앙생활 해 오신 교우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셋째, 복음을 위하 함께 동역자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들에 대한 바울의 사랑은 더욱 강해집니다. 본문 6절에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행하심을 본받아 헌신과 봉사에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9절에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 12절에 주안에서 수고한 드로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복음의 동역자들이 얼마나 수고했는지 평가하며 그들에게 감사하고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교회 안에서 함께 동역하는 성도들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아끼며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바울의 사랑은 동역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고난을 겪으면서 더 강화되었습니다. 7절에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나오는데 바울과 함께 고난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기억들이 얼마나 큰 사랑을 일으키는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까? 어려운 시간을 보낼수록 더 깊은 우정과 사랑이 형성됩니다.

마지막으로 낮은 신분에 있는 자들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8-9절에 또 주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암블리아 우르바노는 노예에게만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리고 10-11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에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권속, 가족이라는 말도 노예를 뜻합니다. 즉 아리스도불로의 집에 있는 노예와 나깃수의 집에 있는 노예 중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문안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의 허마와 15절의 빌롤로고도 노예이름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노예들에게 마음을 크게 썼습니다. 바울 당시에 노예들은 짐승처럼 취급을 받았습니다. 주인과 같이 밥을 먹을 수도 없었고 같은 자리에 앉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노예가 주인과 형제자매처럼 같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노예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저 낮고 연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선의 초기 선교사들이 전도할 때도 양반과 노비가 같은 예배당에서 예배드릴 때 양반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결국 같이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16장은 복음전파의 동역자들을 소개하는 얼마나 놀라운 기록인지 모릅니다. 뵈뵈와 부리스와 아굴라가 얼마나 놀라운 부부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나머지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의 헌신은 일일이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그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 또한 복음증거를 위해 그들의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들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가 부흥하고 전도와 선교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목회자와 평신도 간에 함께 동역하는 팀사역이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목사가 성도들에게 무엇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목회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돌보는 사역에 동참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공동체로 모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기쁨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그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옥의 불길 속에서 구출받아 지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안전한 곳에 와 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함께 동역하는 성도들을 서로 더 사랑하고 더 힘을 모아 이 복음을 더 널리 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주일오전설교 250817 소중한 평신도 동역자들

본문:16: 1-16

제목: 소중한 평신도 동역자들

 

I. 서론

바울사도는 로마서 1-11장에서 구원에 관한 교리, 12-15장에서 성도의 실천적 생활에 대해 언급하고 마지막 16장에서는 그동안 복음을 전하면서 만난 동역자들을 개인적으로 소개하고 인사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최소한 27명의 이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사람도 여러명 있습니다. 그중에는 여자가 7,8명 정도 됩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서의 마지막 장인데 바울이 그동안 자신의 선교를 도와주었던 평신도 동역자들로서 모두 로마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고마움의 인사와 안부를 전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살펴 볼 21-23절에는 바울과 함께 고린도에서 복음을 위해 충성하고 있었던 형제들의 이름이 8명 나오는데 그들을 대신하여 사랑의 안부까지 전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그리스도인들의 교제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동역자들의 활동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16장 개관

먼저 롬16장을 전체적으로 개관해 보겠습니다.

첫째, 기록된 이름들에 주목하십시오.

더 많은 이들에게 인사를 보내지만 이름이 나온 사람은 27명입니다. 15장까지의 내용을 현실 속에서 삶으로 살았던 실존자들입니다. 16장이 있기 때문에 15장까지의 내용을 우리 성도들의 책임과 의무와 권리를 받아들일 수가 있을 뿐 아니라 로마서 전체가 완성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중에 26명은 로마에 있고 뵈뵈는 바울이 쓴 로마서 편지를 들고 로마로 간 인물입니다. 뵈뵈는 바울이 로마에 올 때까지 로마교인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로마에 아직 가보지 않은 바울이 로마에 있는 동역자들의 이름을 많이 알고 있다니 그가 얼마나 동역자들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바울의 이러한 모습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여러 사람들의 인척관계와 동역자 관계에 주목하십시오.

자매, 형제, 일꾼, 성도, 보호자, 동료사역자, 처음 맺은 열매, 친척, 내 어머니 등 각 사람을 소개할 때 그들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그 앞에 붙은 수식어가 다양합니다. 그만큼 동역자들의 수고를 잘 알고 있고 각 사람에게 맞는 수식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놀랍습니다. 인간관계란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수록 그 사람들을 통해 서로에게서 흘러나오는 복은 더욱 다양하고 풍성해집니다.

 

셋째, 얼마나 그리스도로 충만한 관계인지 주목하십시오.

대부분의 절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일일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안부인사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충만한 사람이 그의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이메일을 보낼 때 거기에 그리스도를 이렇게 많이 언급한 적이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우리 대화 가운데 계시고 이메일 안에 계신다면 이는 바울처럼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다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평범한 사람을 발굴해서 복음을 위해 생명을 바쳐 일하는 탁월한 동역자로 만든 것입니다. 바울은 혼자 일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위대함은 평신도의 잠재력을 극대화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최대로 투자하도록 이끄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지도자 였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모든 평신도의 이름은 바울이 값 비싼 댓가를 지불해서 해산의 수고를 다해 길러놓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요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이런 댓가를 지불하고 얻은 형제자매들이었기 때문에 그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수식어를 이름 앞에 하나씩 붙이고 있습니다. 나의 보호자, 나의 동역자, 처음 맺은 열매, 나와 함께 갇힌 자, 내 사랑하는 자,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 받은 자, 주 안에서 수고한 자, 내 어머니, 나의 친척,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자등 별명을 붙여가면서 그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멋진 장면입니까? 우리들도 전도현장에서 복음 전하여 그들이 교회의 충성스런 일꾼으로 인도하면서 이와같은 별명을 붙일 수 있는 많은 형제 자매를 얻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넷째, 이 사람들은 로마에 있는 여러 교회에 흩어져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5절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언급합니다. 14절은 아순그리도와 불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고 언급한 이 형제들이 함께 모이는 가정교회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로마교회는 로마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가정교회들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편지를 써서 각 가정교회에 회람하여 볼 수 있도록 한 것 입니다.

 

다섯째, 가장 많이 등장하는 명령이 문안하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문안하라는 말이 1-16절까지 13번 나옵니다. 로마서는 로마의 모든 성도들에게 쓴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로마의 교회 지도자들이 이 편지를 전달하고 읽고 가르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이름을 언급한 27명 뿐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고 있는 모든 교회들에 인사를 전하라는 것입니다. 문안하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개별적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마음으로 대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동역자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서로 존중과 배려로 문안하는 삶을 살아갈 때 로마서의 동역자로 연합될 것입니다.

 

여섯째, 16장 곳곳에 스며 있는 사랑을 주목하십시오.

바울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네 번이나 사용합니다. 그리고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는 4절에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 내놓았다고 할 정도입니다. 엄청난 사랑이 담긴 말입니다.

 

2. 보호자 뵈뵈

본문 1,2절에서 바울은 먼저 이 편지를 가지고 간 것으로 여겨지는 뵈뵈를 소개합니다. 그녀는 겐그레아에서 로마로 볼 일이 있어서 가는 중에 가까운 곳에 있는 고린도에 들러서 바울이 쓴 편지를 가지고 갔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바울은 그녀를 우리 자매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형제이자 자매로 여긴 것입니다. 한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정하고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남자의 이름이 아닌 여자의 이름을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이 특이합니다. 뵈뵈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16개월 동안 선교할 때 그에게 전도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뵈뵈의 고향은 고린도 지방의 겐그레아 항구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초대교회 안에는 여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기독교 초기부터 여성은 남성과 더불어 복음사역에서 중요한 동역자였습니다. 본문에 이름이 나열된 목록에도 여성이 최소한 7명이나 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남자와 여자로서 각각의 특성과 부르심과 역할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는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한국교회에서도 여성들이 더 많고 교회 구석 구석을 살피며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헌신으로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했다는 사실을 볼 때 여성도들의 노고에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뵈뵈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라고 말하며 추천합니다. 일꾼이라는 말은 집사 혹은 지도자라는 의미입니다. 당시에 여자 집사제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뵈뵈는 교회에 지도자로 활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2절에도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뵈뵈는 재력으로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도 높았으며 일단 개종한 후에 헌신적으로 바울과 그리스도인의 모임을 도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전도 여행자였기 때문에 뵈뵈가 경제적인 보호자가 되어 자기의 모든 재산을 바울을 위해 내어놓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법적인 보호자도 되어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가 가진 모든 것으로 교회와 사도를 섬겼기 때문에 바울은 그녀를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로마교회로 보내는 편지를 전하도록 그녀에게 맡겼을 것입니다. 이처럼 뵈뵈는 귀중한 사람이니까 로마교회가 합당한 예절을 갖추어 그를 영접하고 그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전부 공급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입니다.

3. 동역자 브리스가와 아굴라

본문 3-5절에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부부로서 여성인 브리스가가 먼저 나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행18:2절에 당시 남자를 우대하는 관습대로 아굴라 이름을 먼저 기록했고 아내 이름을 결혼한 여자를 낮추어 부르는 관습에 따라 브리스길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에서 브리스가라고 그대로 호칭했습니다. 여기서 부인 이름을 앞세운 것은 부인의 위치가 교회에서 더 중요하고 대단히 귀하게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는 신앙공동체이고 대부분 남자가 여자가 더 신앙이 깊고 봉사도 더 많이 합니다.

 

바울은 이들 부부를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사도바울도 동역자가 필요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장막을 만드는 데도 동역자였고 복음을 전하는데도 동역자였습니다. 아굴라는 원래는 본도 즉 튀르키에(터어키) 북부 출신이고, 이들 부부는 주후 49년에 글라우디오 황제의 명령으로 모든 유대인과 함께 쫓겨나기 전까지는 로마에 살았고, 이후 쫓겨나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나게 되었고 거기서 천막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이때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 반동안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할 때 그들은 바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정성껏 도왔을 뿐 아니라 바울과 천막을 만드는 동업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이 에베소로 선교를 떠날 때 이 부부도 사업을 정리하고 에베소로 따라갔습니다. 거기서도 바울의 충성스런 동역자 역할을 잘 했습니다.

 

얼마 후에 황제의 추방령이 해제되었을 때에 이 부부는 다시 로마로 돌아와 자기들의 옛집과 직업을 되찾았습니다. 딤후 4:19절을 보면 그들은 다시 에베소로 가서 거기서 자기 집을 교회로 삼아 가정교회를 이끌었습니다. 당시 로마교회는 예배당이 없었고 각 가정이 교회였습니다. 그 가정들이 모여 하나의 지역교회를 이루어 갔습니다. 바울이 이 로마서를 쓴 이유도 각 가정으로 회람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여러 지역을 다니며 바울을 도와 가정교회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동역자라는 말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최우선에 두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따라 자주 옮겨 다녔고 가정을 개방하여 바울의 안식처가 되게 했습니다. 그들에게 직업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 했습니다. 그들의 집은 언제나 교회로 사용되었습니다. 평생토록 자기 집을 교회로 개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움을 많았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바울이 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자기 집을 개방하여 전도한 사람들이 누구나 언제든지 드나들도록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부부나 가족 간의 사생활이 없기 때문에 얼마나 불편한 점이 많겠습니까? 그만큼 이들 부부는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한 것입니다.

더구나 4절에 보면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으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 바울 때문에 장사가 망하게 되자, 사람들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때 이 부부가 생명의 위협을 당하던 바울과 목숨을 걸고 함께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 바울은 그들이 자기를 위해 목숨을 내놓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살아있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4. 기타 동역자들

본문 5-16절에는 그 나머지 복음전파의 동역자들을 이름을 불러가며 각각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소개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바울의 사랑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사랑이란 단어를 여기서 네 번이나 반복해서 말합니다. 본문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에 대한 내 사랑을 당신들이 전해 주면 좋겠습니다. 내 사랑의 말을 그릇에 담아 그 사랑을 그들의 삶에 흘러보내주면 좋겠습니다라는 바울의 진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16절에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문안하라는 말이 본문에서 13번이나 나옵니다. 문안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는 것은 당시에 이마나 뺨에 입을 맞추는 일반적인 인사법이었고, 초대교회에서도 행해진 아름다운 인사와 친교의 형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성도들에게 입맞춤은 거룩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와서 입맞춤을 한 것은 배신의 입맞춤이지 거룩한 입맞춤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순전하고 거룩하고 심오하고 피로 값을 치른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거룩한 입맞춤으로 문안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성도 간의 문안과 인사는 서로 악수하거나 손을 잡아 주거나 가볍게 안아주는 등 가족처럼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친밀감과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혹은 주 안에서를 여덟 번이나 언급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을 치르시고 공의의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무한히 안전하고 행복한 장소인 그리스도 예수 안에함께 거하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마치 광부들이 지하갱도에 갇혀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되었을 때 무사귀환을 간절히 바라고 있던 가족들과 얼싸안고 기뻐하는 것처럼 성도들도 그와 같은 구원의 감격을 서로 나누며 문안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감격으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여덟 번이나 말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 성도들과 함께 살아가는 곳이 바로 그리스도 안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점점 더 강하게 된 이유를 몇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형제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로도 그 형제에 대한 깊은 사랑을 표현합니다. 본문 13절에 주 안에서 택함을 받은 루포라고 했습니다. 다른 성도들을 바라볼 때 그들도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라고 생각하면 어찌 소중한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둘째, 어떤 성도는 그들이 주님과 동행한 시간 때문에 바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5절 후반절에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고 했습니다. 처음 맺은 열매라는 말은 두 번째, 세 번째 열매도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에배네도의 회심은 소아시아지역 선교를 시작할 때 그리스도께로 이끈 첫 번째 사람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처음으로 예수를 믿게 된 초신자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더욱 각별한 애정과 정성을 쏟아야합니다. 그리고 7절에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바울보다 먼저 예수를 믿었지만 지금은 바울에게 복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보다 나중에 믿은 바울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예수 믿을 때 바울은 그 당시 예수를 배척하고 핍박하던 시절인데 그들을 먼저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오랫동안 신앙생활 해 오신 교우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셋째, 복음을 위하 함께 동역자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들에 대한 바울의 사랑은 더욱 강해집니다. 본문 6절에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행하심을 본받아 헌신과 봉사에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9절에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 12절에 주안에서 수고한 드로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복음의 동역자들이 얼마나 수고했는지 평가하며 그들에게 감사하고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교회 안에서 함께 동역하는 성도들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아끼며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바울의 사랑은 동역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고난을 겪으면서 더 강화되었습니다. 7절에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나오는데 바울과 함께 고난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기억들이 얼마나 큰 사랑을 일으키는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까? 어려운 시간을 보낼수록 더 깊은 우정과 사랑이 형성됩니다.

마지막으로 낮은 신분에 있는 자들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8-9절에 또 주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암블리아 우르바노는 노예에게만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리고 10-11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에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권속, 가족이라는 말도 노예를 뜻합니다. 즉 아리스도불로의 집에 있는 노예와 나깃수의 집에 있는 노예 중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문안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의 허마와 15절의 빌롤로고도 노예이름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노예들에게 마음을 크게 썼습니다. 바울 당시에 노예들은 짐승처럼 취급을 받았습니다. 주인과 같이 밥을 먹을 수도 없었고 같은 자리에 앉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노예가 주인과 형제자매처럼 같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노예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저 낮고 연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선의 초기 선교사들이 전도할 때도 양반과 노비가 같은 예배당에서 예배드릴 때 양반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결국 같이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16장은 복음전파의 동역자들을 소개하는 얼마나 놀라운 기록인지 모릅니다. 뵈뵈와 부리스와 아굴라가 얼마나 놀라운 부부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나머지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의 헌신은 일일이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그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 또한 복음증거를 위해 그들의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들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가 부흥하고 전도와 선교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목회자와 평신도 간에 함께 동역하는 팀사역이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목사가 성도들에게 무엇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목회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돌보는 사역에 동참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공동체로 모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기쁨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그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옥의 불길 속에서 구출받아 지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안전한 곳에 와 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함께 동역하는 성도들을 서로 더 사랑하고 더 힘을 모아 이 복음을 더 널리 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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