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초대교회 일곱집사의 임직
2025-11-02 18:48:54
홍기칠
조회수   43
설교본문 행6:1-7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11-02

주일오전설교 251102 초대교회 일곱집사의 임직

본문: 6: 1-7

제목: 초대교회 일곱집사의 임직

 

I. 서론

사도행전 6장부터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인들의 교회에서 세계로 뻗어가는 선교가 시작되는 장입니다. 예루살렘에서의 선교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유대와 사마리아였습니다. 그곳에서 행해진 빌립의 선교를 말하기 전에 스데반과 그의 활동을 소개함으로써 이방인 선교의 기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곱집사를 뽑았는데 그 집사 중 아주 충성된 스데반 집사가 순교함으로 결국 많은 사람들이 흩어짐으로 그들이 곳곳에서 선교의 불을 지피게 되고 세계선교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선교사역은 한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받은 은사에 따라 각 분야별로 협력함으로써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교회가 점점 왕성하게 부흥되자 교회 안에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도 사도들이 맡아서 하니까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일이 소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일곱집사를 선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집사선출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리고 교회 사역의 분담원리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헬라파 유대인들의 원망과 불평

본문 1절에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믿는 자 뿐 아니라 제자가 더 많아졌습니까? 지난 주에 보았듯이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이 핍박을 받았지만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말씀을 가르치고 전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성도가 많아졌다고 하지 않고 제자가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교인이 많아지는 것 보다 제자가 많아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모든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세상과 주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배운 성경말씀을 그대로 다른 형제에게 잘 전해 줄 수 있도록 가르쳐 행하도록 하는 것을 제자화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잘 전하지 못한다 해도 가족들에게 말씀을 잘 전달한다면 바로 제자양육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자가 될 뿐 아니라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며 말씀을 전파하는 자가 되어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도 제자가 많아지고 성도가 많아지니 사랑의 실천이 잘 안 되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성도수가 증가함에 따라 자원을 나누는 일을 조직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의 형편이 잘 고려되지 않아서 어떤 이들이 불만을 제기한 것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이란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팔레스타인 아람어와 히브리어를 사용하고 유대주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본토박이로서 헬라어를 할 줄 몰랐습니다. 반면에 헬라파 유대인이란 외국에 가서 몇 대로 살았던 유대인들로서 모국어인 히브리말을 잘 할 줄 모르고 헬라어만 할 줄 알았습니다. 이들은 각지에서 몰려온 헬라계 유대인들로서 오순절 때 개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가리켜 헬라파 유대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는 언어와 문화차이로 인해 서로 소통이 잘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들 당시 예루살렘교회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교회의 모은 헌금에서 매일 과부들에게 음식을 배급했는데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우월적인 기득권과 편견적인 배타심을 가지고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에게 그 음식배급 명단에서 제외시켰던 것 같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헬라파 유대인들은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서 차별당하고 있다고 원망했습니다. 여느 때 보다 과부들이 많았던 것은 다른 헬라어 사용지역에서 왔던 과부들이 그들의 남은 생애를 예루살렘에서 보내다가 선조들과 함께 묻히기를 원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과부들은 자기 소유의 재산이 없이 매우 가난했습니다. 초대교회 역시 오늘날 우리들 교회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볼 때 교회가 커질수록 성도간에 교제하기를 더욱 힘써야 합니다. 문화수준이 올라갈수록 개인주의가 심해지기 때문에 주일 예배만 드리고 가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성도간의 교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도의 교제가 없으면 원망과 불평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 빠지니까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원망한 것입니다. 당시 교회 재정은 사도들이 관리하면서 가난한 사람과 과부들을 돌보았습니다. 딤전5: 3-9절까지 내용을 보면 집에 자녀가 있는 과부는 그 자녀들이 홀로 된 어머니를 도와야 하고 교회가 구제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60세가 넘고 생활능력이 없는 참 과부는 교회에서 그를 돌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난날 교회를 위해 많은 봉사를 한 과부를 명단에 올려놓고 그가 생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가 교회를 위해 더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순수한 과부를 교회가 도와주어야 하는데 이 일을 교회가 잘 하지 못하고 구제에서 빠뜨리니 원망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완벽한 교회는 예수님이 재림할 때 까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단점 때문에 낙심한다면 스스로 이렇게 자문해보시기 바랍니다. “ 내가 섬길 수 있는 완벽한 교회가 있을까?” 그리고 자신의 교회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그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진실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필요합니다.

 

2. 문제해결을 위한 전략

본문 2절에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초기에 사도들이 교회 내에 이런 과부와 같이 생활을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을 돕는데 신경쓰다 보니 정작 말씀을 준비하고 기도하는 일이 소홀해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씀 사역자인 목회자가 말씀연구와 기도를 제쳐놓고 구제하고 나눠주는 일에 시간을 다 쓴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 강단말씀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게 되므로 성도들의 영의 양식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되면 성도들이 말씀순종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신앙생활이 나태해지고 형식화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는 오로지 기도하고 말씀 연구하여 가르치는 사역에만 전념하도록 해야합니다. 말씀전파에는 반드시 기도가 필요합니다. 목회자 자신도 다른데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 기도와 말씀증거에 전념하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교회도 목회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3,4절에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 힘쓰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성도들이 존경할 만한 헬라파 사람들을 선출해서 그들에게 재정지출의 책임을 맡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집사를 선출하는데 필요한 세가지 조건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첫째, 고결한 성품으로 평판이 좋은 자라야 하며 둘째, 성령충만하고, 셋째, 지혜로운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이란 성령을 따라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이란 엘리트적 지위가 아니라 성숙하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자로서 그들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자란 삶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적절하게 적용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최상의 수단으로 최상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러한 지혜는 성령충만한 결과로 주어지는 거룩한 지혜입니다. 평판이 좋은 사람이란 신앙과 인격이 사회적으로 인정될 뿐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일곱이라는 숫자는 유대공동체에서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전형적인 인원수입니다.

이처럼 사도들이 결정한 우선순위는 정확했습니다. 행정적 부담으로 인해 말씀사역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모든 것을 하려고 해도 안되고, 혹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해서도 안됩니다. 목회자는 성도들로 하여금 각각 받은 은사대로 교회에 일을 분담하여 참여하도록 하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가 교회의 사역자란 의식을 가지고 각자 받은 은사대로 봉사하고 활용할 때 그들의 역량을 키울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 특히 재정을 맡은 분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야 봉사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흔히 교회 재정을 맡아 봉사하던 집사나 장로들이 교회 재정을 잘못 관리하여 교회를 어렵게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지 못해 일 처리를 잘못하게 되는 것이 근본원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하고 믿음이 확실한 사람이 지혜롭게 재정관리를 하도록 해야 교회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재정을 관리하려면 한 두명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일곱을 택하여 세우도록 했는데 교회재정은 항상 복수로 해서 서로 체크하고 검증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재정사고가 나지 않게 됩니다.

 

본문 5,6절에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 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집사란 섬기는 자라는 뜻입니다. 음식과 물질을 나눠주는 섬김을 말합니다. 목회자도 말씀으로 성도들을 섬기는 자입니다. 본문에서처럼 재물을 가지고 섬기는 자도 집사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장로, 집사라는 것은 직분을 나누는 것에 불과합니다. 모두가 주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맡았고, 집사는 구제와 봉사의 일을 맡았습니다. 어떤 사역도 다른 사역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두 사역의 유일한 차이는 그 사역의 목적과 그것이 서로 다른 은사들과 서로 다른 부르심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므로 모든 사역에서 자신을 드리는 일로 부름받습니다.

 

여기서 집사로 선택된 사람들은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헬라파 유대인들을 뽑아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보완할 수 있도록 했으므로 투표하니 전부가 헬라파 유대인들이 뽑히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까지 뽑혔으니 이방인까지 뽑힌 것입니다. 그러니까 헬라파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사람으로서 유대인이 된 사람까지 뽑힌 것입니다. 보통 원망하고 말많은 사람을 소외시키기 쉬운데 이때 이들은 그야말로 은혜롭게 처리했으므로 결과가 너무나 은혜스럽게 된 것입니다. 세워진 일곱 집사는 일단 사도들 앞에 온 재물을 나눠주는 일을 했습니다. 지금도 교회 재정을 관리하는 일은 집사들의 직무이기도 합니다.

 

교회에 집사, 권사, 장로 등 중직자를 세울 때 성도들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 투표로 뽑히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16장을 보면 바울이 기록한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특징이 있었습니다. 누구는 많이 수고했고, 누구는 사람을 받은 사람이고, 누구는 인정된 자라고 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대해서는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도를 위해서 그렇다고 했지만, 이렇게 행한 것은 주님은 다 칭찬하시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들에 대한 평가가 성경에 기록된 것은 하늘의 생명책에도 그대로 인정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시간을 두고 나타나는 하나님이 주의 일꾼을 일으키는 실질적인 여러 증거를 통해 모든 성도들이 인정할 때 중직자들이 일어나고 세워지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선택한 일곱 집사들에게 사도들이 안수하고 세웠다고 했습니다. 안수는 구약시대부터 축복을 주거나 후계자를 임명하기 위해 행해진 의식행위였습니다. 여기에서는 그들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는 것을 알리고 활동에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지도록 축복을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안수하고 세웠다는 말은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들을 세우셨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들을 안수집사라고 해서 이들을 중심으로 교회의 재정과 봉사의 일을 전적으로 맡아 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스데반과 빌립의 이름을 먼저 쓴 것은 후에 사도행전 기록에서 단지 이 두 사람의 사역만 설명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고, 빌립은 사마리아에 가서 최초로 전도하고 에디오피아 내시를 개종시키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일곱집사의 이름은 모두 헬라어입니다. 이것은 장차 복음이 헬라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좋은 기초가 되었을 것입니다.

 

3. 문제해결의 결과

본문 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를 제쳐놓고 구제하는 일을 일을 하다가 잘못을 깨닫고 말씀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고 선택한 일곱집사가 구제와 봉사의 일을 잘 감담하니 교회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말씀사역이 소홀해질 때는 말씀이 널리 퍼져 나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 전파에 전념하기로 결정하고, 구제와 봉사의 일은 집사들이 분담하여 사역했을 때 교회가 부흥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목회자가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고 기도하여 선포하고 집사들이 열심히 봉사한다면 교회가 부흥되리라 확신합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이렇게 하니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사는 제사장의 수는 8,000명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제사장들이야 말로 예수 믿기 정말 힘든 사람들입니다. 구약말씀을 따라 하나님 앞에 제사지내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제사장들인데 당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라고 해서 십자가 달려 죽도록 앞장선 사람들이 이 제사장들의 무리였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을 전하지 못하도록 사도들을 옥에 가두고 핍박했던 사람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었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한두명이 아니라 많은 제사장들이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믿음에 순종한 것은 기적중에 가장 위대한 기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목회자가 말씀대로 가르치고 중직자들이 성령충만하여 지혜롭게 봉사하면 전도와 선교의 열매들이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교회를 파괴하기 위한 마귀의 전반적인 세가지 전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유대지도자들을 통해 힘으로 교회를 억누르려고 했습니다. 둘째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통해 위선으로 교회를 부패시키려고 했습니다. 셋째로 몇몇 다투는 과부들을 통해 지도자들이 기도와 말씀전파에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교회가 오류와 악에 노출되게 애를 쓴 것입니다. 만일 마귀가 이런 간계들 중에서 하나라도 성공했더라면 초대교회는 소멸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충분히 깨어 있어서 마귀의 이러한 간계를 간파하고 방어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사도들처럼 항상 깨어 기도하므로 교회를 파괴시키려는 마귀의 간계를 간파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루살렘 교회가 점점 부흥하여 성도들의 수가 증가하자 교회 내부적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회 구제사역의 불평등한 분배 문제로 헬라파 유대성도와 히브리파 유대성도 간에 갈등이 생기고 원망과 불평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에만 전념하고 일곱 집사를 선출하여 그들에게 교회 행정업무, 재정업무를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들을 선출할 때 믿음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을 선출기준으로 정하여 뽑은 후에 사도들이 안수하여 그들에게 업무를 맡기고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념했더니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심지어 유대지도자들인 제사장들까지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교인수가 많아지고 교회가 부흥되면 사탄의 온갖 유혹이 시작됩니다. 외부적으로 교회의 전도와 선교를 방해하고, 내부적으로는 성도들 중에 위선을 행하게 하거나 성도간에 갈등을 일으켜 원망과 불평을 야기하게 합니다. 이러한 사탄의 핍박과 방해전략을 믿음의 눈으로 잘 간파하여 문제를 미리 방지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목회자는 말씀연구와 기도와 전도에 전념하고, 중직자들을 세워 교회의 행정적 업무를 분담하고, 성도들도 각자 받은 은사대로 봉사하는 체계를 갖추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롭고 인정받은 중직자들을 세워 함께 복음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마치 물결의 파문처럼 중심에서 시작하여 점점 넓게 퍼져나갑니다. 혼자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 파문의 일부가 되어 우선 우리 주변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각자 차례로 다른 사람들을 복음으로 변화시켜 나가면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맡은 일이 비로 작은 일이라 해도 그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믿음과 지혜와 성령충만으로 그 일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처럼 우리교회를 크게 부흥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해 오늘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기도하고 응답받은대로 작은 것에서부터 말씀묵상, 기도, 전도를 실천하여 교회가 부흥되는데 한알의 밀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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