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 설교본문 | 행5:17-42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5-10-26 |
주일오전설교 251026 박해 속에서도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들
본문: 행5: 17-42
제목: 박해 속에서도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들
I. 서론
지난 주일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바나바처럼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기 위하여 자기 소유를 팔아 일부를 감추고 마치 모두 바친 것처럼 거짓말 하다가 성령을 속인 죄로 모두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건을 두려워했지만 사도들은 더욱 담대히 복음을 전하자 그들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와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고침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처럼 사도들을 통해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자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이 시기심이 일어나 사도들을 핍박하였으나 사도들은 오히려 더 담대하게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고 전도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복음증인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유대지도자들의 박해
본문 17-20절에 보니 유대 지도자들은 사도들에게 예수 이름을 전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거절당하자 화가 났는데 사도들의 복음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자기들 보다 더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니 시기심이 생겨서 그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대제사장과 함께 있던 사두개인들은 몇 주 전에 예수님께 사형선고를 내렸던 그 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은 부활이나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옥에 가둠으로써 그들을 침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도들이 침묵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았습니다. 한 밤중에 주의 천사가 밤에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끌어내어 성전에 가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주의 사자가 명한대로 즉시 성전으로 가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에 성전은 복잡했습니다. 사람들이 해가 돋을 때에 기도와 예배를 위해 성전으로 오기 때문입니다. 주의 천사가 사도들에게 내린 명령을 행할 때는 핍박이 따를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도들은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새생명에 관한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했습니다.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생명의 말씀입니다. 지식과 교리로는 사람을 결코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성령을 통한 말씀의 가르침은 그 속에 진리의 씨앗이 들어있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해 사도들에게 이 생명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사도들의 담대함은 우리에게 모범이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을 때 용감하게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도 말씀에 순종할 때 종종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감수하면서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본문 21-26절에 보니 이 소식을 들은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한 유대 지도자들이 공회와 이스라엘 원로들를 다 모으고 성전 수위대장과 대원들을 옥에 보내어 그들을 잡아오라고 했습니다. 부하들이 옥에 가보니 옥문은 잠겨 있는데 사도들은 없고 그들이 성전에 서서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고 보고했습니다. 그 기적이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에 그 뒤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전 맡은 수위대장이 부하들과 같이 가서 사도들을 잡아왔으나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해서 폭력은 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과 백성들의 폭동을 두려워 했던 것입니다.
본문 27-28절에 “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공회원들은 예수님을 재판에 넘겼던 71명과 동일한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고, 안정된 지위를 위협하며, 그들의 위선적 동기들을 백성에게 폭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도들을 잡아오도록 하여 심문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백성들을 선동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빌라도 총독의 불의한 재판을 이끌어 낸 당사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라는 이름조차 부르기를 싫어하고 “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말라”고 했고, 이 사람의 피가 자신들의 죄값으로 여겨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라는 이름에 대한 증오감이 매우 컸습니다. 시기심이 가득했던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사도들이 그들의 예수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다고 무의식적으로 시인했습니다.
2. 사도들의 반론
본문 29-32절에 보니 “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기 위해 인간적 권위에 불순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맨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필요성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권위자시며 어디서나 최고의 법정에서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순종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갈릴리 어부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로 변화된 베드로는 이 종교지도자들에게 말하면서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라는 말로 그들과 같은 유산을 갖고 있음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 지도자들에게 그들이 전해 들어 온 홍해를 가르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말하니 그 지도자들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였으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했으나 하나님은 예수님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생각했는데 그 하나님이 자기들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하니 그들은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라는 말을 꺼내기도 싫었는데 베드로에게 “너희가 예수를 나무에 달아 죽었도다”는 말을 다시 한번 들었으니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베드로는 계속해서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을 뿐 아니라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오른 손’은 가장 명예롭고 권위있는 자리를 의미합니다.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계시는 가장 높은 권능의 자리까지 올라가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높이신 이유는 그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며 구주십니다. 우리는 죽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 보좌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 예수가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이 그를 높이신 것을 믿고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담대히 선포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구주’이신 까닭은 그의 죽음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사함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해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백성의 회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죄의 형벌을 친히 감당한 것이었기에 사람들은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을 받음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공회 앞에 섰던 사도들은 그들의 말에 자신들이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눈으로 목격한 증인일 뿐 아니라 입으로 증언하는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으뜸가는 증인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성령이십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증언 가운데 성령을 포함시킨 것은 오순절에 권능으로 오신 성령을 다시 지적한 것이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고, 그분을 구세주로 높이 올리셨으며, 그분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그와 동일한 성령이 아직도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그들이 깨닫고 회개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공회는 이러한 사도들의 반론과 회개를 촉구하는 말을 듣고 크게 분노하였으므로 사도들을 당장 죽이려고 했습니다. 아마도 지도자로 존경받는 가마리엘의 설득이 없었다면 그 공회원들은 예수를 죽였던 것처럼 사도들을 분명히 죽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34-39절에서 그 당시 율법교사로서 모든 백성에게 존경받던 바리새인 가마리엘이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유대지도자들을 설득했습니다. 가마리엘은 바울이 유대교에 있을 때 그 문하에서 배운 스승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최고 명문대 총장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매우 점잖고 학식이 있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유대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회심한 후에는 가마리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가마리엘이 그들을 설득한 요지는 혁명은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도들의 문제에 너무 집착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그냥 두면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마리엘은 유대역사에 있었던 드다와 갈릴리 사람 유다의 일을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드다는 유대인들을 로마 압제에서 해방시키겠다고 선동하여 400명이나 그를 따랐으나 그 반란은 실패하고 죽임을 당하니 따르던 사람들이 흩어졌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갈릴리 사람 유다도 로마가 호구조사를 하던 때에 일어나 몇몇 사람을 꾀어 자신의 지도하에 로마를 대항하여 혁명을 일으키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따르던 사람들이 흩어졌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 다 혁명을 주장을 하며 추종자들을 확보했지만 각각 죽임을 당했고 그를 따르던 자들은 다 흩어졌고 그 활동은 시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베드로와 사도들이 예수에 관한 운동을 하는 것도 그것이 인간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면 드다와 유다 사건처럼 저절로 무너지거나 사라질 것이고, 만약 하나님께로 부터 났으면 그들과 싸우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므로 현명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라는 개념은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두려운 것이었으므로 그들에게 가마리엘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조언은 위기를 해소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유대공동체에서 존경받는 바리새인 가마리엘을 사용하셔서 사도들이 석방되도록 도우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늘 사용하시는 흥미진진한 전략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는 바로왕을 사용하셨고 다니엘에게는 느부가넷살과 벨사살, 다리오 왕을 사용하셨으며,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할 때에도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사용하셨습니다. 구약은 하나님이 반역자들, 간음한 자들, 도적들, 심지어 당나귀마저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셨습니다.
본문 40절에 “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라고 했습니다. 공회는 가마리엘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들을 죽이지 않기로 하고 채찍질 하여 놓아주었습니다. 사도들이 벌이고 있는 운동이 저절로 사라질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가마리엘이 사도들의 목숨을 구했지만, 그의 진짜 의도는 아마도 산헤드린 내부의 분열을 막고 로마인들을 자극시키지 않기 위한 것일 것입니다. 사도들이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으므로 이들을 처형하는 것이 폭동을 촉발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회는 사도들을 순순히 놓아주지 않고 채찍질한 후에 풀어주었다고 했습니다. 유대법에 의하면 채찍질 할 때는 죄수를 무릎꿇게 하고 세 줄로 된 가죽 채찍으로 가슴을 한번 칠때마다 등을 두 번씩 매질을 합니다. 이렇게 39대를 때리는 것이 죄수에게 내리는 형벌이었습니다. 이 매질은 막13:9절에서 예수님께서 “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리 이는 저희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고 하신 말씀을 이룬 것입니다. 복음 전하다가 당하는 이런 핍박의 고통은 베드로와 사도들 뿐 아니라 나중에 사도된 바울의 경우에도 엄청난 핍박과 고통을 겪었던 것을 고린도 전후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채찍질 한 후에 다시 예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풀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 중에 그 누구도 그 명령을 들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본문 41절에 “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가슴과 등이 참혹하게 갈기갈기 찣기고 터져서 피를 흘리면서 물러 나왔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은 것을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로 인한 이러한 능욕이 오히려 ‘ 가장 가치있는 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초대교회에 덮친 두 박해의 물결에 대한 기사를 마무리 합니다. 첫 번째 박해에서 공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에 대한 금지령과 경고를 내렸는데 이는 사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계속 담대하게 말씀을 전파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박해에서 그들은 금지령을 받고 옥에 갇히고 매를 맞았는데, 이는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해 영예로운 고난을 당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게끔 했습니다.
마귀는 힘으로 교회를 파괴시키려는 시도를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네로 황제 치하에서 베드로와 바울을 포함한 그리스도인들은 투옥당하고 처형당했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자신에게 신적 경의를 표할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억압했습니다. 그는 사도요한을 밧모섬으로 추방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회심하기 이전에 최후로 박해를 가한 황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인데 그는 기독교를 근절시키려는 의도로 네가지 칙령을 공포했습니다. 그는 교회를 불태우고, 성경을 압수하며, 성직자들을 고문하고, 그리스도인 공무원은 그 시민권을 박탈하고 만일 뉘우치지 않으면 처형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몇몇 공산국가와 힌두고, 회교국가들에서 선교사들과 교회는 수많은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은 예수믿는 성도들을 모두 정치범수용소에 가두고 온갖 고문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선교사들이 장기간 억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박해도 교회와 성도들을 굴복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런 박해가 성도들의 기도와 찬양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더욱 결속시키고 말씀을 더욱 담대하게 증거하는 촉매제가 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진리요 성령의 능력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42절에 “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손에서 고난을 당했지만 그것을 두려워하기는 커녕 더욱 담대하게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가르치고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르신 참 제사장이요, 사탄의 권세를 꺾으시고 죽음을 이기신 참 왕이요,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길을 여시고 화목하게 하신 참 선지자이십니다. 사도들은 이 복음을 날마다 증거했습니다. 사도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바로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이시고 모든 말씀의 완성자이심을 선포했습니다. 이것은 유대 공회에서 절대로 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협박과 채찍질과 투옥, 그리고 죽음조차도 이 증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핍박이 심해질수록 그 성령의 불길을 더 확신시킬 뿐이었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권세자들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을 당해도 침묵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든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며 살아야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도록 요구하는 위협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성령충만하고 그의 인도하심을 바란다면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거의 이야기 하지 않거나 한번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는 태도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복음 때문에 핍박을 당하는 것을 축복이라 생각하며 기뻐할 만한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고난 당하셨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것처럼 핍박을 주시는 것을 오히려 찬양했습니다. 여러분이 복음증거 때문에 조롱받거나 고난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그 이름을 위해 여러분이 핍박당하기에 합당한 참 그리스도인으로 여기셨기 때문임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이 신실한 그리스도인임을 보여주는 증표로 생각하십시오.
무엇보다 복음증거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이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복음을 담대히 증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 전하는 자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사도들이 풀려나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들처럼 모이기를 힘쓰고 있는지, 말씀을 공부하고 전도하기를 힘쓰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예배시간이나 말씀공부하는 시간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교회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부지런히 말씀을 듣고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하며 우리의 신앙을 확고히 하면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러한 복음의 증인 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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