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선교
2025-12-28 21:38:08
홍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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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행14:1-28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12-28

주일오전설교 251228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선교

본문:14: 1-28

제목: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선교

 

I. 서론

13장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수리아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구브로 섬의 살라미와 바보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거기서 마술사 바예수를 만나 그의 거짓과 악행을 폭로하고 얼마동안 맹인이 되게 하는 것을 보고, 서기오 바울 총독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서 안식일 유대인 회당에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요약 설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게 된 이유와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하고 이 예수를 영접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 중많응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었으나 유대인 일부가 바울을 비방하며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추방하도록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들이 이고니온과 루스드라로 가서 선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핍박 가운데도 어떻게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이고니온 선교(1-7)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남동쪽으로 약 160km 정도 가면 그리스의 농업과 상업의 중심도시인 이고니온이 나옵니다. 그때는 걸어 다녔기 때문에 약 일주일 정도 걸려서 핍박을 피해 복음을 증거하러 이고니온으로 왔습니다. 두 사도가 이고니온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니 유대와 헬라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박해하는 자를 통해 바울과 바나바의 믿음을 더 강하게 연단하셔서 거기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은혜의 말씀을 전하며 표적과 기사를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바나바가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 표적과 기사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계시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핵심입니다. 표적과 기사는 사도들의 권위를 확증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음을 강력하게 증거하니 그것을 시기하는 유대인들을 따르는 자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사도들의 말과 표적의 진실성을 확신하고 사도 편이 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을 시기하던 유대인들이 중상모략을 하며 이방인들로 하여금 바울과 바나바에게 악감정을 품게 했습니다. 사람들의 종교심은 복음적인 것 보다는 율법적인 것을 더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언가 내가 노력하고 애를 써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해야 자기 공로가 빛이 나니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필요없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은혜로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을 때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이 단순한 복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가 아니고는 알 수 도 없고 받을 수도 없습니다. 우상숭배자들은 복음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상숭배 자체가 열심히 섬기고 고행을 하고 자기를 괴롭히고 하는 그 일을 통해 신의 경지에 들어가는 줄로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끔 성도들조차도 무언가 열심히 더 열심히 기도하고 교회 봉사를 많이 해야 구원받을 줄 착각하는 사람들은 예수 믿기 전의 생각이 아직 변화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성도가 더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는 것은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에 대해 악감정을 품고 있는 율법주의적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그렇게 믿기만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고 혼돈을 일으키도록 만든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에 대한 중상모략은 계획적인 폭력으로 어어졌습니다. 이방인들과 유대인들과 당국의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다행히 사도들은 그 사실을 알고 루가오니아 지방에 있는 도시 루스드라와 더베 근방으로 피신했습니다. 예수님께서 10:23절에서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복음을 전하는데만 힘썼던 것입니다. 이 도시들은 인구도 많지 않고 중요한 교역로도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조용한 도시였지만 그들은 거기서도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무것도 그들을 잠잠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2. 루스드라 선교(8-20)

1) 나면서 못 걷던 사람을 치유하자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섬기려 함(1-14)

본문 8절을 보면 두 사도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듣고 있었는데 바울이 그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본문 10절에 큰 소리로 말하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하니 그 사람이 곧 일어나 걸었습니다. 이 기적은 행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3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이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고 그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뛰어 서서 걸으며 하나님께 찬송한 사건과 너무 비슷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놀라운 기적을 보자 군중들이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큰 소리를 지르며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고 하면서 바나바는 그들이 섬기는 신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헤르메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을 가지고 사도들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지내려고 했습니다.

깜작놀란 두 사도는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로 뛰어 들어가 소리를 질러 본문 15절처럼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는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고 외쳤습니다.

 

이러한 광신적인 행위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지방에 전해오는 전설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당시보다 약 50년 전에 라틴 시인 오비디우스는 그의 작품<변용>에서 오래된 그 지방의 전설을 서술한 바 있습니다. 최고 신 제우스와 그의 아들 헤르메스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브루기아 산지를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고 사람들의 집에 나그네로 묵으려 했으나 수없이 거절 당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그들은 지푸라기와 늪에서 나는 갈대로 지붕을 이은 초라한 오두막에 묵어 갈 수 있었습니다. 이 집에는 필레몬과 바우키스라는 늙은 농부 내외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그 손님들을 후하게 대접했습니다. 그 후에 신들은 그들에게는 보상을 내렸지만 그들을 박대했던 집들은 홍수로 다 쓸어버렸습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는데 만약 신들이 다시 그 지역을 방문한다면 불친절했던 브루기아 사람들과 같은 불행을 당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루스드라 근처에 두 개의 비문과 돌로 된 제단 하나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함께 지역의 수호신으로 숭배를 받았음을 보여 줍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그 신들이 다시 방문했다고 믿고 소리를 지르며 바나바를 제우스,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불렀기 때문에 두 사도는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습니다. 그곳 제사장이 소와 화관을 가지고 자기들에게 제사 지내려 했을 때에야 사건의 진상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에 두 사도는 그 행위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기 위해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그들이 하려는 행동을 막고 그들과 똑같은 인간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2) 바울의 설교(15-18)

바울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교도들에게 복음에 대해 설교를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행한 첫 번째 설교와는 달리 그 이방인들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복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에 맞게 복음을 설명했습니다.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성경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알고 있으며 볼 수 있는 그들 주변의 자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복음을 전할 때 전도대상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우상숭배를 버리고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하늘에서 비를 내리시며, 철 따라 땅에서 추수하게 하셔서, 그들의 몸을 위해 먹을 것을 주시고 즐거움으로 그들의 마음을 만족케 하시는 선하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권했습니다. 이러한 자연환경과 섭리를 보고 선하신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이러한 장엄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압도되게끔 하여, 그들이 자신들에게 제사하지 못하도록 겨우 말릴 수 있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들이 자기 갈길을 가도록 방임하셨지만 이제는 자신들을 통해 이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으니 속히 이 복음을 듣고 돌아오라고 강력히 권고한 것입니다.

 

3) 바울이 돌에 맞고도 다시 복음을 전함(19-20)

이때 그 곳에 있는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 있던 유대인들에게도 알리니 그들도 여기까지 와서 그들과 같이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 알고 성밖으로 내버렸습니다. 이고니온에서는 바울을 돌로 치려고 음모를 꾸몄지만 여기 루스드라에서는 실제로 그를 돌로 쳤습니다. 그것은 정당한 사법상 형 집행이 아니라 사적인 폭행이었습니다. 군중들이 던진 돌에 맞을 때 바울은 스데반을 떠 올리며 그의 기도를 기억하며 같은 기도를 드리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그러나 복음의 원수들은 그를 죽이지 못했습니다. 단지 그가 죽은 줄로 알고 내다 버렸던 것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으며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성밖으로 내쳐진 바울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둘러서서 보며 어떻게 도울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때 바울이 깨어나 다시 그 루스드라 성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돌에 맞았으니 그야말로 피투성이가 다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케 하셔서 다시 성에 들어가 복음증거하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자기만 살고자 했다면 다른 곳으로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 성에서 돌에 맞아 성밖으로 내침을 당했는데 어떻게 다시 그 성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성에 다시 들어간 것은 바울의 믿음의 도전이요 복음에 대한 열정이 더 컷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톤은 복음을 전하다가 두 번씩이나 사자에게 물려 뜯겼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명을 다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결코 데려가시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때 바울도 사명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죽지 않고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이 고린도후서에 쓴 것처럼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았던것입니다.

 

바울사도의 고생목록이 기록된 고후11:24-27절을 보면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로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했습니다. 이런 극한 고난 속에서도 그는 오히려 교회를 염려하고 약한 것을 오히려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고난당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 고난 중에도 주님이 붙들어 주셨고 놀라운 복음의 열매들이 맺혔기 때문입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처럼 생각하며 환호했다가 어느새 폭력배로 변해버렸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사람들의 환호소리를 듣고 그들에게 마음을 빼았겨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처럼 군중들의 본성을 알고 그것을 신뢰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며 사역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도할 때 두가지 결과가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는 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하는 자도 있습니다. 믿는 자가 일어나면 감격해서 더 전하게 되고 반대자들을 통해 우리 힘으로는 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된다는 것을 깨닫고 더 연단 받아 낙심하지 않고 더 기도해야 됩니다. 박해나 반대를 당하더라도 계속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과 함께 표적도 주셔서 하나님의 큰 권능이 나타나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1:2-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환난이 있다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나로하여금 더 담대한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이기 때문입니다. 고난 중에도 인내하며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온전한 믿음을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능력도 주시고 체험도 주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복음증거의 열매를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3. 바울과 바나바가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옴(21-28)

다음 날 아침에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로 가서 거기서 또다시 복음을 전하므로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을 거쳐 처음에 파송받았던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더베에서 회심한 사람 가운데 더베 사람 가이오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면서 지난번 전도한 곳을 순회하면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기도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안디옥으로 돌아 온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얼마 전에 위협당하고 육체적 공격을 받았던 그 모든 도시에 있는 신자들을 방문하여 믿음을 굳게 하고 돌아오면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신자들을 격려하고 믿음을 굳게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복음전하는 것이 힘들어도 우리의 도움과 격려가 필요한 새신자들을 지지해 주어야 합니다. 전도할 때마다 우리는 새신자들을 위한 분명한 후속전략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안디옥에 도착하자마자 성도들에게 선교보고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과 함께 하시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문을 열어주셨는가를 보고한 것입니다. 마술사들, 로마 정부 관리의 회심과 유력한 권력자들의 더러운 음모, 폭도들의 장면, 황급한 피신, 바울이 피하지 못하여 죽을 뻔했던 순간, 그리고 거기서 새롭게 형제자매가 된 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상세히 설명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선교보고를 들은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하며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복음은 이방인에게로 널리 증거된 것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두 선교사를 따뜻하게 맞아 위로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선교여행은 종료되었습니다. 이 여행은 아마도 1년 정도 걸렸을 것입니다. 그들은 안디옥에서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무르면서 2차 선교여행을 준비했습니다. 바울은 안디옥에 머물면서 자기가 전도한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썼을 것입니다. 이 서신서에는 이방인 신자들이 유대법에 따라야 하는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지도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첫 번째 선교여행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선교사들이 하나님이 지도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신 분도, 그들을 보내신 분도, 그들을 이곳저곳으로 이끄신 분도, 그리고 그들의 말씀전파에 능력을 부어주셔서 회심자들을 생겨나게 하고, 교회를 설립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의 성령이셨습니다. 보내는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그들에게 선교사역을 위탁했으며, 그들은 돌아와서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이방선교의 문이 열렸으므로 오직 영광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할렐루야!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쉽게 수용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하며 핍박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 어느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증거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했습니다. 역경 중에도 복음증거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바울과 바나바처럼 동역자들이 서로 붙잡아 주고, 기도해주고, 함께 역경을 돌파해가는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전도의 열매를 맺게 하실 줄 믿습니다. 2026년 새해에는 우리교회가 본격적으로 전도하는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를 비롯하여 모든 성도들이 더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현장에 나가서 전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자, 믿기로 작정된 자를 만나 이 구원의 방주로 인도해 오시기를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오늘 바울과 바나바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그 열매를 맺는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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