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스데반의 설교
2025-11-09 22:01:49
홍기칠
조회수   37
설교본문 행6:8-7:60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11-09

주일오전설교 251109 스데반의 설교

본문: 6: 8-7: 60

제목: 스데반의 설교

 

I. 서론

지난 주 말씀에서 초대교회 사도들이 유대인 지도자들로부터 핍박을 받아 감옥에 갇혔다가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나와 성전에서 말씀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유대 공회원들이 사도들을 불러 심문하며 예수를 전하지 못하게 하고 채찍질 하여 놓았지만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니 믿는 성도의 수가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교회 성도들이 많아지니 교회내에 헬라파 성도들에게 구제하는 일에 문제가 생기자 사도들이 일곱집사를 세워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사도들은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교회가 체제를 갖추자 더욱 부흥하게 되고 허다한 제사장들까지 주님 앞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스데반 집사가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여 기사와 표적을 많이 행하니 역시 유대 공회원들이 스데반 집사를 잡아오게 하고 거짓증인들을 내세워 성전과 율법을 모독한다는 죄명으로 심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데반은 유대지도자들에게 구약의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의 예를 들면서 유대지도자들이 오히려 성전과 율법을 모독했다고 설교하며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 결과 스데반이 최초로 순교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지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II. 본론

1. 스데반이 고소를 당함(6: 8-15)

성령이 오시고 사탄의 반격이 있었지만 초대교회는 선교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성령은 성도들을 더 넓은 세상으로 밀어내려고 하시며 바울은 이러한 선교를 선도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려고 합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스데반과 빌립, 그리고 사울과 백부장 고넬료에 의해 이방선교가 어떻게 준비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순교자 스데반이 나옵니다. 본문 8-9절에 보면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며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스데반은 노예에서 해방된 자유민들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과 회당에서 논쟁을 했습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성령으로 말씀을 전하자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사람들을 매수하여 이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고 거룩한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한다고 거짓말로 선동하도록 했습니다. 거짓 증인으로 선동한 자들이 스데반이 예수가 이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고 했고, 모세가 전하여 준 규례 즉 율법을 고치겠다고 했다고 거짓증언을 하였습니다. 회당의 구성원들은 공개적으로 논쟁하였으나 스데반의 메시지에 반박을 하지 못하자 그를 중상모략하여 그를 잡아 공회 앞으로 끌어오게 하였습니다.

 

스데반에 대한 죄명은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성전과 율법보다 더 신성하고 귀중한 것이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을 시비거리로 삼았습니다. 그들에게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는 거룩한 성소였고, 율법은 거룩한 경전 즉, 하나님의 생각과 뜻의 계시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한다고 스데반을 심문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한 죄명으로 고소를 당했으며, 스데반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되풀이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과 동일하게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거짓증인들은 그가 나사렛 예수가 성전을 헐고 율법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고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에서 성전과 율법을 포함한 모든 것을 예언하고 예시한 것이 예수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증거한 것입니다.

 

이때 6: 15절을 보면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와 얼굴과 같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가지고 내려왔을 때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난 것과 똑 같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대한 모세의 사역과 스데반의 해석을 둘 다를 인정하셨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2. 스데반의 설교(7:1-53)

스데반에게 성전과 율법에 대한 거짓 증언으로 비난이 퍼부어진 후에 대제사장이 단도직입적으로 이것이 사실이냐?라고 물었습니다. 스데반은 이에 대하여 구약말씀이 메시아를 예언함으로써 성전과 율법에 대한 가르침을 확증해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성전과 율법을 거부하고 무시한 것은 스데반이 아니라 공회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예수님은 성전과 율법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셨는지 증언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46년 동안 지은 헤롯성전을 허물면 삼일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삼일만에 부활하실 몸을 의미했고, 동시에 눈에 보이는 성전을 대신할 영적 몸인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눈에 보이는 옛 성전을 대신할 하나님의 새로운 성전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전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헤롯 성전에 모였지만, 이제 앞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장소가 바로 예수님 자신이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자신이 율법을 완성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함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눈에 보이는 성전을 대신할 영적 성전이 되시고, 율법의 완성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성경도 성전과 율법이 둘 다 예수님을 지향해 왔으며 이제 그분 안에서 완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것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중요성을 증대시키는 것입니다. 이제 그 구약에 대한 스데반의 반론을 살펴보겠습니다.

1) 성전

유대인들이 성전을 소중히 여긴 것은 성전이 지닌 장엄함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하여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여호와를 성전과 동일시한 나머지 성전의 존재가 그들의 보호를 보장해주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성전 파괴는 마치 하나님을 버리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지적하고 있듯이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하나의 건물에 갇혀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은 구약에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네 사람의 인물을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입니다(7:2-8)

아브라함은 그가 아직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에 있을 때 그와 그의 가족들은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고향과 친척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주실 다른 나라로 이주해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갔고 그곳에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으로 그를 인도하시고 그 땅을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400년 정확히 말해서 430년 동안 애굽으로 내려가 종살이를 하며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이미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이 예언하신 내용입니다. 애굽의 노예생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란에서 가나안, 애굽으로, 다시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삭과 야곱과 열두지파에게 새롭게 하셨습니다. 스데반은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지적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했고, 하나님의 사역은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과 다르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씨가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했는데 43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200만명으로 늘어났고 그 후손으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했는데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을 증언했습니다.

 

 

둘째, 요셉입니다(7:9-16)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비록 형들의 미움을 사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지만 그 언약대로 요셉을 모든 환란에서 건져내시고 애굽의 총리로 삼으시고 야곱의 가족들 75명을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이주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가나안의 경계 근처인 브엘세바에서 야곱에게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말라라고 하시면서 그들과 함께 가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와 그의 아들들은 모두 애굽에서 숨을 거두었고 오직 그들의 유해만이 매장되기 위해 가나안 땅으로 옮겨졌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은 헷 족속 에브론에게서 산 헤브론 근처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고, 야곱은 하몰의 아들로부터 세겜땅을 샀으나 자신은 막벨라 굴에 그 조상과 함께 매장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죽은 후 출애굽할 때 그 유골을 메고 오도록 해서 세겜 땅에 매장되었습니다. 스데반은 요셉의 생애가 예수님의 생애를 예표했다는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모두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고 거짓으로 고소당했고, 고난을 당한 후 높임을 받았고, 그들에게 잘못한 자들을 용서했으며 그들의 민족을 구원했습니다. 우리는 눈을 떠서 역사 속에서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세계복음화의 계획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셋째, 모세입니다(7:17-43).

스데반은 모세의 120년 생애를 40년씩 나누어 세 번에 걸쳐 이야기했는데 다른 시대 사람들보다 상세히 다룬 것은 스데반이 모세를 모독했다는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그 재판관들이 모세의 지도력과 율법 수여에 대해 그가 무한한 존경심을 갖고 있음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모세는 40년간 바로왕궁에서 나라를 다스릴 왕궁교육을 받고, 자기 동족을 구원하려다가 애굽인을 죽이는 바람에 살인자로 몰려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거기서 이드로의 양을 치며 40년을 보냈습니다. 그가 80세가 되었을 때 드디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400년이 끝나고 출애굽할 때가 임하자 그 지도자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인 십계명을 받게 됩니다. 스데반은 모세의 사역을 설명하면서 모세 자신과 같은 선지자로서 메시아가 오신다고 예언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해준 사람이 바로 모세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특권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광야에서 어려움을 당하자 모세의 지도권을 거부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을 뿐 아니라 아론에게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다른 신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결국 금송아지를 우상으로 섬기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스데반은 애굽과 미디안과 광야 기간을 통해 모세의 삶과 사역을 추적해보고 각 장소에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모세는 궁전에서 교육받을 때나 미디안 광야에서나 하나님이 성전과 제사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상 떨기나무가 불타던 거룩한 땅은 지성소 보다 훨씬 더 놀라운 곳이었습니다. 모세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성전이 아니라 모든 곳에 임재해 계신다는 것과 거룩한 장소는 어디든지 간에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는 것입니다.

 

넷째, 다윗과 솔로몬입니다. (7:44-50)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여 광야에서 이동할 수 있는 장막을 짓게 하시고, 그 장막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셨고,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말한 요점은 장막이나 성전건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이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왕도 성전을 지은 후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까라고 했습니다. 솔로몬도 성전봉헌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지 않고 그를 받아들이는 곳이면 어디나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이 말을 인용하는 대신 사66:1-2절을 인용합니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다라는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만물을 지으신 분이 어떻게 인간이 지은 건축물 안에 제한될 수 있겠느냐고 논증한 것입니다. 스데반은 구약성경과 시대를 대표하는 네 사람을 들어 하나님은 어떤 건물도 그분을 제한할 수 없고 그분이 거하시는 곳이 바로 성전이며 백성들과 함께 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은 언약에 따라 성전이 아니라 그의 백성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2) 율법

거짓 증인들은 스데반이 거룩한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신성모독죄를 범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스데반은 율법을 무시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들이라고 반박합니다. 스데반은 모세와 율법을 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모세를 그의 출생에서 부터 궁중교육과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불러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킬 지도자로 임명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었으며 그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백성들에게 전해줄 십계명을 포함한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고 그 말에 복종하지 않고 거역하였습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을 배반한 사실을 7: 51-53에서 말하면서 공회원 재판관들을 같은 죄목으로 꾸짖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레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산헤드린 공회원에게 직설적으로 목이 곧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육체의 할례를 받았다고 자랑했지만 그들이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할례받지 못한 마음은 영적 실체가 없는 단지 종교적 의식만을 중요시 하는 마음입니다. 지금도 성도들이 자기가 섬기는 교회의 교인수, 웅장한 교회건물과 큰 규모의 사역들을 자랑하고 예배시간에 사도신경과 주기도를 낭송하고 세례와 성찬식에 참석하지만 이러한 것들의 본질적인 뜻을 깨달지 못하고 단지 종교적인 의식으로만 한다면 할례를 받았다고 자랑하는 유대인들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요컨대 스데반은 그들의 기소내용을 더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세가지를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첫째,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호소를 거부함으로 성령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의 조상들은 모든 선지자를 박해했고, 심지어 예언된 의인 즉 예수님을 죽이기 까지 했으니 공회원들은 그 조상들보다 더 악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 의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들은 천사들을 통해 모세에게 준 율법을 받는 특권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스데반의 설교는 자기변호라기 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었습니다. 즉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성전을 대신하고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는데 그들이 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3. 스데반의 순교(7:54-60)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이런 스데반의 말을 듣고 격분하여 그들 향해 이를 갈며 야수 같이 달려들 때, 스데반은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환상을 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본문 56절에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스데반의 변호자로서, 첫 번째 순교자 스데반을 환영하기 위해 보좌에 앉아 있지 않고 서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 보좌에 계신다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았던 공회원들은 일제히 귀를 막고 크게 소리지르며 그를 성밖으로 내치고 돌로 쳤습니다. 그때 거짓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아래 두었다고 했습니다. 사울도 이 공회원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증인의 한 사람으로 스데반이 하는 말과 그가 돌아 맞아 순교하는 장면을 똑똑히 보았고 그가 죽임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바울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그 후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방인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담대하게 믿음을 따라 산다면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빛은 타인의 죄성을 드러내고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그들의 양심과 영혼을 찌를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에게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후에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59,60절에 마지막 기도를 합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스데반의 죽음에는 유사점이 있습니다. 둘 다 모두 거짓 증인들이 나타났으며, 죄목은 신성모독죄 였습니다. 또한 처형될 때 두가지 기도가 자신을 처형하는 사람들을 용서해달라는 것과 자신들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받아달라고 한 것이 동일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참 제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스승을 따라갔습니다. 유일한 차이점은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렸고, 스데반은 예수님께 기도드린 것입니다. 저자 누가는 스데반과 사울의 극적이 대비로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스데반은 평온한 믿음으로 죽음을 맞이 했지만 사울은 살인적인 분노를 품고 있었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성전에 가두거나 자기 생각과 경험 속에 가두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교회 예배로만 제한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지금도 교회 건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모이는 성도들의 삶이 중요하고, 율법의 조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살아있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스데반은 성령과 지혜와 믿음과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기 때문에 그를 죽음으로 위협하는 핍박자들 앞에서도 담대히 언약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러한 은혜와 능력을 받아 복음을 증거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사울을 크게 감동시키고, 그로 하여금 이방인의 사도가 되도록 이끈 회심에 공헌했고, 세계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과 스데반처럼 우리를 사용하셔서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눈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러한 순교자 스데반처럼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 되시고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구주가 되심을 증거하는 복음의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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