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설교본문 | 갈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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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홍기칠 목사 |
설교일 | 2025-06-04 |
수요설교 25064 그리스도의 복음
본문: 갈1: 1-5
제목: 그리스도의 복음
I. 서론
수요 저녁예배에 지금까지 요한복음 강해설교를 했는데 지난주 수요일까지 요한복음 21장을 모두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부터 수요 저녁예배에 갈라디아서를 강해하려고 합니다. 베드로 전후서는 내용이 많아서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선언서, 혹은 이신칭이의 교리가 강조된 소로마서 등으로 불립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은 바로 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 나타난 근본 진리를 재발견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로마서가 조직적이고 논리적인데 비해 갈라디아서는 단호하고 전투적입니다.
본서의 저자는 사도바울입니다. 갈라디아서의 수신자는 갈라디아 지방의 여러 교회들입니다. 갈라디아에서의 바울의 전도는 성공적이었고 이방인들이 열광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에 유대주의 선생들이 들어와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고 구원받으려면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교회를 분열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그와 같은 주장은 다른 복음이라고 반박하고 구원의 유일한 조건인 믿음 외에 율법을 더 첨가함으로써 진리를 변질시키려는 율법주의자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유대주의의 모순에 대한 복음의 입장을 올바르게 밝히기 위해 본서를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갈라디아서를 오늘부터 차례로 강해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의 인사인데 이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갈라디아서를 먼저 개관해 보겠습니다.
II. 본론
- 배경과 내용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을 기록한 책이고,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걸어간 발자취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리고 로마서에서 유다서까지를 서신서라고 하는데 이 서신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동안 하신 교훈과 걸어가신 자취에 대해 올바른 해석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중에 이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서신으로 갈라디아서는 이단이 들어왔으므로 이단을 물리치고자 기록한 책이므로 매우 전투적인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전체의 요절은 구약 하박국에 나오는 말씀인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신약성경에는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쓰여진 것입니다. 로마서는 의인에 대해 특히 강조하는데 비해, 갈라디아서는 의인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갈라디아 성도들이 믿음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삶도 잘못되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의 수신자는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입니다. 갈라디아에 여러 도시가 있고 교회도 여러 개가 있었는데 그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교회들이 돌아가면서 보라고 보낸 것이 갈라디아서입니다. 갈라디아서를 쓴 목적은 율법주의 이단을 몰아내고자 썼는데 교회 안에는 율법주의 이단과 무율법주의 이단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이단들이 많습니다. 무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아 의인이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그 은혜에 감사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산다고 해서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무율법주의에 빠진 자들은 말씀을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처음 갈라디아 지방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 죄가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바울의 말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이 그들에게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하는 말에 그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너무 충격이 커서 다른 편지와는 달리 당장 충고합니다. “ 너희들이 예수를 믿었는데 금방 다른 사람이 와서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하는 말에 넘어가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고 강하게 책망하는 것을 시작하는 것이 갈라디아서입니다.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구원받기 위해서는 율법에 순종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아야한다는 것입니다. 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 가운데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의 구성을 살펴보면 1-2장은 역사적 내용으로 바울이 어떻게 사도가 되었는지 사도권에 대한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4장은 교리에 관한 내용으로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천국가는 길임을 강조했습니다. 5-6장은 실천적, 권고적 부분으로 그렇게 예수를 믿었으면 이제 성령 안에서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신 것은 사랑으로 종노릇하라고 자유케 하셨음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갈라디어서 전체가 십자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가장 귀한 사랑의 본보기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의 특징은 다섯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자서전적입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전기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다. 자신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그가 전한 복음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사도권을 주장합니다.
둘째, 신학적, 교리적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적 의의, 이신칭의,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적 평가 등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셋째, 구원론적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연약한 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구원이나 성화를 이룩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구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넷째, 실천적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다음에는 복음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율법을 지키려는 인간의 노력보다 십자가의 힘과 성령의 능력이 더욱 요구됩니다.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방종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이 직접 쓴 편지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당시 관례대로 대필을 한적이 있지만 여기서는 직접 썼는데 아마도 유대교 선생들의 가르침에 넘어간 갈라디아인들의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2. 바울의 사도권
오늘 본문 1-5절은 인사말이 나오는데 서신의 형식을 따라 1절 발신자, 2절 수신자, 3-5절은 축도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른 서신서와 형식은 같지만 어조는 논쟁적이고 전투적입니다.
본문 1절에 “ 사람들에게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음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사도권의 신적 기원을 강력히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사람들에게서 보냄을 받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당시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은 그가 예수님의 12제자 중 하나도 아니요 맛디아처럼 공식적으로 선출된 사도도 아니며 다만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을 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교인들을 미혹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사도의 자격에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또한 사람을 통해 사도가 되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람으로 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통해 사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의 근원과 경로가 하나님 아버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말할 때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함께 언급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한 권위를 가지셨음을 나타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부활의 사실을 언급한 것은 자신의 소명이 헛된 공상이나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또한 비록 예루살렘의 사도들처럼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예수님과의 교제나 만남은 없었지만 다메섹에서 부활하여 살아계신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받았으며 이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 의롭게 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바울의 사도직을 뒷받침하는 권위임과 동시에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한 것은 예수님께서 특별히 메시지를 주시고 교회에 전하도록 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했습니다.
예수란 말은 구원자란 뜻입니다. 원래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인데 줄여서 구원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란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이고 메시아란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문제 해결하신 참 제사장이요, 사탄의 권세를 꺾으신 참 왕이요,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는 참 선지자라는 뜻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로써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란 증거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바로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의 구원이나 직분이 주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은혜로 받은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을 기록한 분은 선지자들이고, 신약을 기록한 분들은 사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분상 사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으니 사명적으로는 사도와 같습니다.
3.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축복함
본문 2절에 “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라고 했습니다. 함께 있는 모든 형제들로 더불어 편지를 보낸다는 것은 같은 동료로서 함께 나누는 우정관계를 나타냅니다. 불특정한 형제가 공동 발신인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곳이 처음이며 형제들이란 이 서신의 기록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안디옥에서 그와 동역했던 바나바와 예언자들, 교사들인 것 같습니다. 동역하는 형제들을 언급하는 것은 바울 서신의 특징입니다. 이 서신의 가르침이 바울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역자들도 동일하게 지니고 있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사도는 자기와 함께 있는 다른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문안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야말로 직책으로는 사도이기 때문에 대단히 높은 지위에 있지만 구원받는 자의 위치로 보면 똑같이 주님의 십자가로 생명을 얻는 다같은 형제라는 것입니다. 즉 자기만 대단한 존재가 아닌 형제들과 동일한 신분이라고 겸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하나님 자녀로서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 함께 봉사할 때는 나 혼자 대단한 사람이 아님을 알고 서로 도와가면서 복음을 봉사한다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수신자가 갈라디아 여러교회들인데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 서신이 돌려가면서 읽는 회람서신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사도행전 기록에 보면 바울이 갈라디아 남쪽에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 데베, 루스드라 , 이고니온 등에 세차레나 자주 찾아갖고 또한 바울이 교회 이름을 부를 때 로마행정지역에 근거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당시 로마제국에 의해 행정적으로 명명된 소아시아의 남쪽 갈라디아 지방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바울이 다른 서신서들에 비해 여기서는 수신자에 대해 칭찬하고 존경하는 내용이 없는 것은 이 지역교회들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바울로부터 복음의 진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곁길로 가고 있는 자들을 책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문 3절에 “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 사랑의 주관적인 면을, 평강은 객관적인 면을 표현하며 하나님을 믿는 수신자들이 은혜와 평화가운데 날마다 축복된 삶을 살아 가기를 소망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은혜로 왔습니다. 은혜란 자격없는 자에게 가장 귀중한 것을 사랑으로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죄인인 인생은 아무도 구원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롬5:8절을 보면 “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를 범하여 죄인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그 죄값을 갚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의인으로 인정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즉 죄인은 의인이 되고 원수가 화목하여 아들이 된다”라고 하셨으니 이것이야 말로 파격적인 은혜요 사랑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이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했습니다. 평강이란 은혜받은 사람이 누리는 평안한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평강은 은혜받은 증거입니다. 죄인은 항상 불안합니다. 원수는 항상 증오 속에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에 되어 그 사랑가운데 평강을 누리며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바울사도는 이 인사말에서 갈라디아 성도들이 이미 받은 은혜를 다시 상기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 은혜가 지속되기를 바라며 그들에게 이 은혜를 다시 한번 일깨운 것입니다.
본문 4절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서신서들에서는 수신자들을 위로하고 그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으로 끝맺지만 여기서는 예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4-5절을 더 첨가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울신학의 핵심 주제입니다. 바울은 유대교적 율법주의자들이 십자가 사역을 통한 구원의 복음을 부인하고 무시하기 때문에 복음이 변질될 위험이 있으므로 십자가 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 구원의 능력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행위는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이며 그의 주되심은 전적으로 위로부터 수직으로 내려온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마귀가 지배하는 이 악한 세대 에 매여 있는 우리를 죄에서 구해내시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셋째, 그의 죽으심은 희생적, 대속적, 최종적인 것으로서 죄인들에 대한 의로우신 요구들을 충족시켰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시켰으며 사람들의 죄를 단번에 제거하셨습니다. 따라서 율법을 섬긴다는 이유을 들어 복음진리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무시하는 율법주의자들의 태도는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시기 위하여 하신 것이 바로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좀처럼 아버지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약 롬8:15절에서 “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오심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되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식이란 자각을 느끼게 되면 저절로 아버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을 때에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오셨으므로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라는 말씀에서 이 악한 세대란 현재의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악한 세대에 살고있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자 죽으신 것입니다. 롬12: 2절을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악한 세대에서 구원받았으니 이 악한 세상, 이 세상의 사고방식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모두 이기주의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다시 이기주의로 돌아가서 자신과 자신의 가정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계명을 주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 사랑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 수 없기 때문에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면 죽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형제를 위하여 살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뿐 아니라 상급을 얻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하면서 첫인사를 끝맺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구속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역 때문에 세세무궁토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바울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마다 감사한 마음이 넘쳐 났으며, 이것은 온갖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힘이 되게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생명을 건져주신 예수님께 영원한 영광이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을 내어 주셨고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내어주셨으니 전부가 희생입니다. 희생없는 사랑은 거짓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예수님을 잘 믿다가 ‘믿기만 한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르는 말에 넘어갔습니다. 그들은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거짓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오직 성경말씀대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악한 세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자기 몸을 내어주셨으니 우리도 이 복음을 정확하게 전함으로 악한 세대에 살고 있는 세상사람들을 살려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정확하게 증거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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