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설교본문 | 요19:1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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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홍기칠 목사 |
설교일 | 2025-04-30 |
수요설교 250430 다 이루었다
본문: 요19: 17-30
제목: 다 이루었다
I. 서론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3년 동안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사명을 감당하시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하신 말씀이 일곱가지인데 이것을 가상칠언으라고도 합니다. 가상칠언은 첫째,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둘째,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셋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넷째,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다섯째, 내가 목마르다, 여섯째, 다 이루었다, 마지막 일곱째,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십자가에서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주요한 말씀이 여섯 번째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그 의미를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II. 본론
1. 왜 십자가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저주스러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로마에서 십자가형은 가장 흉악한 범죄자나 반역자를 사형시키는 가장 잔인한 방법이었습니다. 로마사람들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십자가 처형을 당하지 않습니다. 식민지 사람들만 받는 형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까지 많은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여섯시간 만에 돌아가셨지만 보통은 십자가에 매달려 며칠동안 극심한 고통을 당하다가 죽게 됩니다.
주님이 가장 저주스럽고 잔혹한 죽음을 당해야하는 이유는 갈3: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저주 받은 자의 죽음에 대한 한가지 원칙이 나옵니다. 신21:22,23절에 보면 “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렵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율법을 어김으로써 받은 율법의 모든 저주를 한 몸에 다 짊어지시고 저주받은 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는 사형선고를 할때는 분명한 죄목이 있어야 하고 그 죄를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받았던 재판에는 이와같은 요건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먼저 대제사장들의 불법 심문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일단 잡아놓고서 그를 죽일 죄목을 찾느라고 밤새도록 법석을 떨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 낸 죄목은 먼저 ‘행악자’라는 것입니다. 행악자란 고질적으로 악을 행하는 흉악범을 말합니다. 그것이 빌라도 총독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못하게 한다는 것과 로마 가이사 황제가 있는데도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 한다는 것을 빌라도에게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였으므로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죄를 걸어 고소를 합니다. 그 어느 것도 로마법에 사형시킬 죄목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그들에게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한다고 세 번이나 말합니다. 그럼에도 대제사장들과 무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가이사 황제에게 반역하는 것이 된다고 협박합니다. 결국 빌라도 총독은 그 협박에 위협을 느껴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는 비굴하고 비양심적인 재판을 하고 말았습니다.
십가가 형이 확정되자 로마군인 네명이 팀을 이루어 예수님을 인계 받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골고다 언덕까지 끌고 가서 거기서 십자가 사형집행을 할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부수입은 못박힌 예수님의 옷을 얻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수공업에 의해 옷을 만들었기에 옷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형되는 사람의 옷을 가지는 행위는 관습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 남성은 머리에 쓰는 터번, 신발, 속옷, 외투한 벌, 허리 띠 등 다섯가지 정도로 이루어졌습니다. 네 사람의 군인들은 계급에 따라 나눠 가지고 마지막 속옷이 남았는데 이것은 무릎까지 오는 통으로 짠 옷이므로 네 조각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비뽑기를 해서 한사람이 가지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이미 시편 22:18절에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놓고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서로 옷을 나눠 가지는데만 관심이 있었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 군인들을 십자가에서 내려다 보신 예수님은 오히려 눅23:34절에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전부 구약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은 온 몸을 다 주고 가셨을 뿐 아니라 벌거벗은 채 속옷까지 다 주고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죄의 십자가 였습니다.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시며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까지 용서하는 사죄의 십자가 였습니다. 제일 가까이 있던 양 옆의 강도들이 이 기도를 들었습니다. 한편 강도는 예수를 비난했으나 한편 강도는 “ 이분이야 말로 정말 우리를 구원할 유대인의 왕이구나,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자기를 십자게에 못박고 옷을 제바뽑아 나누어 가지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용서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나?, 이분이야말로 분명히 하나님이시다”라고 생각하고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와 네가 오늘날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대답하시며 그 강도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순간까지 복음을 전하시고 죄인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그리고 본문 25-2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곁에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라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고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하시고 요한에게 자기 어머니를 돌보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는 효도의 십자가 였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정오부터 오후 세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깜깜하여 지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큰 소리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시고, 다시 크게 소리 질러 다 이루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 때 성전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그 휘장이 찢어짐으로 이제는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도 누구나 직접 하나님 앞에 나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관계가 완전히 용서받고 회복된 것입니다.
2. 다 이루었다는 말의 의미
예수님께서 달리신지 6시간이 지날 무렵 본문 30절처럼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마지막 숨을 거두신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 속에 담긴 뜻을 살펴봅시다.
1) 하나님의 인류구원계획의 완성
하나님께서 인류의 최초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에덴 동산에서 살면서 그 동산과 만물을 잘 다스리라고 명령하면서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시고 인간은 그가 지으신 만물을 관리하는 사명을 주신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것을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거짓말로 유혹합니다. 아담 하와는 그 거짓 유혹에 속아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인간의 모든 문제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 죄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온갖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어서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아야 하는 운명속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대로 지은 인간이 모두 지옥형벌을 받아야 되므로 이들을 살리기 위해 창3:15절의 구원계획을 선포하셨습니다. 즉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담 하와를 속인 사탄에게 한 말입니다. 즉 앞으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탄과 사망의 모든 권세를 다 깨뜨리고 온 인류를 거기서 구원하는 길을 여시겠다는 복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드디어 이 인류구원의 언약이 다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요6:38절에 “내가 하늘에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 하나님의 인류구원계획의 뜻을 완전히 성취하셨습니다.
2) 재창조의 완성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것은 아담의 타락 이후 지연되었던 진정한 창조의 완성을 뜻합니다. 창세기에서 천지만물을 모두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을 취했습니다. 그 안식은 6일까지의 창조의 아름다운 완성에 기인합니다. 창2:1절은 “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창2:1절의 다 이루심은 우주물질계와 생명계의 창조상황에 대한 장엄한 완성의 선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여섯 번째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이 창2:1절을 염두에 두신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이제 천지창조 후 타락한 인류를 새롭게 하실 창조의 기초가 다 완성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주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 인류를 재창조하시기 위한 죄값의 탕감과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인간형을 만드시는 시초가 완성되었으며, 새로운 지구와 우주의 질서회복을 위한 재창조의 기초가 다 이루어졌다는 위대한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재창조는 에덴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전파를 통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거듭난 새사람의 재창조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3) 죄 용서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
우주의 재창조는 우주의 죄에 대한 소멸을 전제로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알고 믿는다면 더 이상 정죄와 죽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값을 치르고 용서하여 줌으로 죄인이 살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고후5:21절에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은 대속의 죽음을 통한 값없이 주는 용서와 칭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죄의 용서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화해의 길을 열게 하셨습니다. 이 죄가 해결됨으로써 하나님과 막혔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마침내 아버지로서의 본래 관계로 인간에게 다가오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인류가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고 살았던 오랜 역시 이후의 대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는 순간 아무도 접근할 수 없게 막아두었던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히10:20절에는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누구나 담대히 나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4) 사탄과 죄와 죽음에서 해방된 자유
죄지은 자는 죄의 종이되고 사탄의 종이 됩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 악의 도미노 현장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쓰러진 이후 모든 인류가 그와 함께 모두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이 죄와 악의 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죄로 인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순수한 피해자였던 예수님은 죽으시면서도 그것을 악으로 갚지 않고 죄와 악을 범한 자들이 사탄의 종이 되는 것에서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신 것입니다. 롬8:2절에서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또한요8:31절에 예수님께서 “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성취한 해방과 자유가 저절로 된다기 보다는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에 거함으로 제자가 되고, 그 진리를 알고 행할 때 자유케 된다는 것입니다. 첫 창조는 당연히 모든 것들이 자유 속에서 성장과 성숙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이제 재창조의 완성을 통해 그것이 다시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예수 닮은 삶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히2:14-15절은 “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요일 3:8절에도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인간들이 더 이상 사탄과 죽음에 종노릇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첫 창조물들을 무참하게 유린한 사탄의 세력은 이제 재창조에 대하여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사탄은 심판을 받고 유황불 못에 갇히게 되고 죽음도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 성도는 잠시의 죽음 후에 영원한 부활로 예수님의 부활과 영생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5) 성령을 선물로 주심
십자가에서 악의 제거는 성령님께서 임하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줍니다. 사람에게 있던 죄를 추구케 하는 사탄의 영이 나가고 성령님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14: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우너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은사를 주셔서 악을 이기며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토록 하시며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하십니다. 그동안 인간들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않음으로 사탄의 종이 되었고, 하나님 세계에서 버림받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십자가를 통해 성령님과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과 연합되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타락을 되돌리는 재창조의 완성을 통하여 가능케 된 선물이었습니다. 이 성령님은 창6:3절에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언급된 그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다시 돌아와 믿는 성도 안에 성령이 내주하시고 동행하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은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이루신 엄청난 일인 것입니다.
6)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 건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예수님 자신이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시고 그 나라의 왕으로 등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에 새 하나님의 왕국 즉 교회공동체를 형성하라는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죽게 내주긴 했어도 예수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십자가 위에 죄 패가 아닌 ‘나세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패를 붙이게 했습니다. 이것에 대해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이것을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정정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빌라도는 ‘내가 쓸 것을 썼다’라고 말하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의미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왕됨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십자가에 붙인 패는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 3개국어로 쓰게 했습니다. 히브리어는 당시 유대인들이 쓰던 아람어를 가리키고, 로마어는 당시 로마사람들이 쓰던 라틴어이고, 헬라어는 당시 만국통용 언어였습니다. 히브리어는 종교룰 대표하고, 로마어는 정치로 세계를 지배하는 로마언어이며, 헬라어는 철학과 학문을 대표하는 언어였습니다. 이것은 종교인, 정치인, 학자도 모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왕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를 조롱하기 위해 쓴 것인데 하나님은 그것을 바꾸어서 진리를 증거하는 웅변적인 증거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왜 십자가를 통해 왕으로 즉위하셔야 했을 까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악에 대한 승리이며 동시에 이 세상 임금인 사탄을 축출한 사건입니다. 요12:31-33절에서 “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사탄의 왕국을 무너뜨리고 진리의 왕국으로 등극하시는 일은 구약성경에 이미 예언된 사실입니다. 이 왕국의 탄생은 하나님 창조때 세운 왕국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자 왕이신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창1:1절과 1:28절의 회복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과 피조세계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왕국의 다른 말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의 미래는 계21장에 나오는 새하늘과 새땅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가 왕으로 등극하신 사건일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 건설과 교회공동체 형성의 기반이 됩니다. 베드로가 마16:16절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신앙고백한 것을 바탕으로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심을 고백하고 이 신앙고백을 증거하는 사명을 띠고 있습니다. 즉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 되셨음을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잔인한 로마의 십자가형을 당하신 것은 온 인류의 죄값이 그만큼 엄청난 것이므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족되기 위해서는 그 길이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말씀 속에는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담긴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창3:15절의 하나님의 인류구원계획을 성취하셨다는 것이고, 타락한 인류의 재창조와 죄용서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 죄와 사탄과 죽음에서 해방된 자유를 누리고, 성령을 선물로 받을 뿐 아니라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신다는 놀라운 언약이 담긴 말씀입니다.
이처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를 누가 대적하고 정죄하겠습니까? 누가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여러분에게 장차 누릴 하늘 영광을 빼앗아가고, 입술의 찬송을 빼앗아 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 이루었다’는 이 외침으로 하늘에 있는 모든 복과 특권을 우리가 다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날마다 바라보며 그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갑시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갈수록 ‘다 이루었다’는 주님의 음성을 더 분명하고 또렷하게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볼 때 마다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모든 문제 해결자 되시는 주님께서 주시는 새 힘과 능력으로 하늘 소망을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며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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