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2025-05-26 12:16:51
홍기칠
조회수   37
설교본문 요21:1-14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05-21

수요설교 250521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본문: 21:1-14

제목: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I. 서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만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공식적으로 만나신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를 개인적으로 만났으며, 그 다음 열 제자들과 만나시고 나중에 도마가 돌아오자 열한 제자와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로 본문에서 일곱 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고향 갈릴리로 돌와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과 그 제자들 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이란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갈릴리 바닷가로 찾아오신 주님

부활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제자들은 갈릴리로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나타나신 것은 처음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이 있었던 곳이었고, 갈릴리는 제자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삶의 현장 속으로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 오신 것입니다.

 

7명의 제자들은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보고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부활도 보았고, 세상에 보내는 사명을 받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사명을 받기 전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일상생활을 살아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언제 오신다고 분명한 날짜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을 기다라다 보니 어느날 베드로가 나는 오늘 밤 고기잡으러 가겠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따라가겠다고 호응하며 그렇게 나머지 동료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갈릴리는 그들의 생활의 터전입니다. 왜 베드로가 고기잡으러 가자고 했을까요? 아마도 베드로와 그 제자들이 갈릴리로 와서 여러 날 지내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는지도 모릅니다. 조그만 고향 땅에 와서 빈둥거리며 논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주님이 오실 때 까지 고기를 잡아서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맨 먼저 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것이 예수 제자들이었습니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는 각자 생활의 터전에서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가장이라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열심히 일하며 신앙생활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탄 것입니다. 3년 만에 다시 배를 몰아 고기잡는 일을 하다보니 아마도 처음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고기잡던 방식대로 밤중에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따라 이상하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다 당겼다를 반복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아침이면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항구로 돌아가리라고 기대했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새벽녘에 지친 채로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본문 5절에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자들은 지친 음성으로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본문 6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다고 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아 항구로 들어오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요한이 저기 주님이 서 계신다라고 놀라서 외치니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른 후 급히 바다로 뛰어내렸고 다른 제자들은 물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육지로 올라왔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예배시간에만 계신다고 믿으면 우리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이 나타나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고기잡는 동안 밤새도록 해변에서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밤새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고기 잡다가 허탕만 치고 있는 곳에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잠잠히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가슴 뭉클한 장면입니까?

 

또 날이 새어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신 것을 보았다 해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내지 않으면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들과 함께 약 십리길을 동행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들은 낯선 사람이 옆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들과 함께 길을 가기 원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약성경 이야기를 듣고 그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이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부활 하신 주님의 모습은 주께서 눈을 열어주는 자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빈 그물을 채우는 비결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순종하였더니 작은 그물에서 큰 고기 153마리가 잡혔습니다. 그 푸덕거리는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상상만 해도 얼마나 신이 납니까?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밤새도록 빈 그물을 가지고 고생한 것은 나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생각하니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빈 그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홍해가 가로막는 위기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걸어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목이 타는 갈증을 겪었기에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먹을 것이 없어 베고픔을 느꼈기에 떡다섯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먹고도 남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12년 혈루병으로 고생했기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지 마자 낫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그물이 비어 있습니까?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까? 이럴 때 우리 인생의 바닷가에 서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 이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물이 비어 있는 사람이 더 빨리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을 들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빈 그릇을 채우는 비결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고기를 잘 잡는 자기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을 우습게 보고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빈 그물 인생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나도 그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부활의 주님을 속히 만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하늘의 부활을 빈 그물 가득 채우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3.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발견하자 급히 육지로 나왔습니다. 와서 보니 숯불이 피워져있고 그 위에는 떡과 생선이 구수한 냄새를 피우며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도에게 잡은 고기를 좀 더 가져 오게 하시고 고기를 더 많이 숯불에 얹어서 구우셨습니다. 준비가 다 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숯불 위에 있는 떡을 제자들에게 일일이 가져다 주셨습니다. 맛있게 익은 생선도 나눠주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어린 자식을 앉혀놓고 뭐든 더 먹이고 싶어하는 마치 어머니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 지치고, 배고프고, 한기를 느끼는 제자들에게 이만큼 반가운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 해가 두둥실 떠오르는 바닷가에서 따뜻하게 데운 떡과 생선으로 배를 채우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굳어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고, 긴장했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온유하신 부활의 주님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 시간을 보내는 제자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광야에서 주려 있던 사람들을 먹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 한 끼 밥상을 차려주시는 분입니다. 이 밥상은 따뜻한 밥상입니다. 이 아침 밥상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마련한 것을 먹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부활하신 주님의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부활하기 이전에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신 주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셨다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여 영화로운 몸을 입으신 주님께서 고기와 떡을 구워서 주시는 모습은 의외의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부활의 주님이 바로 이렇게 한없이 따뜻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먹여주실 때 배불리 먹여주시는 분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미리 준비해 놓으셨고, 뚜 기적적으로 잡은 물고기를 153마리나 되게 하셨는데 그 양은 7명의 제자들과 예수님이 먹고도 남은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0:10절 말씀처럼 양으로 생명을 얻데 하실 뿐 아니라 삶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얻는 복은 언제나 넘치는 복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가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넘치게 채워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4: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배고픔과 고단함을 아십니다. 실패로 마음이 가라앉은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11:28절 말씀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따끈한 떡과 생선을 가지고 우리를 먹이시고 쉬게 해 주십니다. 고후9:8절에도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상황을 바꾸어 본다면, 만약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아 녹초가 되어 물에서 올라오는데 자 전부 이리 모여라 나하고 기도하자, 너희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못잡은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회개할 것을 회개해야되라고 하셨다면 그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혹은 예수님이 대제사장 뜰에서 심문받을 때 세 번이나 자기를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베드로, 너 이리 좀 와, 너 양심이 있냐, 없냐?라고 얼마든지 나무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가슴에 묻어두고 부지런히 떡을 떼어 제자들을 먹이시고 생선도 구워서 먹이셨습니다. 추위에 떠는 지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사람에게 영은 육보다 중요합니다. 영적 문제가 육신적 문제를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 문제를 다루기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느끼는 요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배가 고픕니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병으로 고통을 받습니까? 그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일을 다루면 다룰수록 좀 더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굶주린 자에게 장황한 설교는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을 두고 성경공부를 한다면 그 또한 감동적이지 못합니다. 부활의 주님의 오늘 이 본문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포근하다, 훈훈하다, 정말 인간적이다라는 이런 느낌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어야 그 마음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부활의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이해하시기 위해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빈 그물을 가지고 땀을 흘릴 때든지,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올 때든지 주님은 항상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너무나 좋으신 인간적인 주님을 모시고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했습니까? 혼자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치거나 병들어 아픕니까? 혼자 흐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사명을 주시는 주님

12절에 보면 식사에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그분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이신 것을 금방 알아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로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영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한끼 밥을 먹어보지 않고는 결코 우리는 영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밥을 먹인 다음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15절에 보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전이나 이후나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한끼 밥을 먹여주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13: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그 상황은 말 그대로 먹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의 절박한 상황인 질병, 경제문제, 정신적 문제에 대해 간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고기잡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실패하고 있을 주님은 그 시간에 우리가 꼭 필요한 놀라운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다윗은 바로 하나님이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신에게 밥상을 차려주셨다고 말합니다. 23: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게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늘 동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란 시가 있습니다. 그 시 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쌍은 내것, 또 한쌍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멈춘 그곳에서

내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인생길에는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펐던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나 보세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그때

거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을 저를 떠나 계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셨고 너를 조금도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었느니라

그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참으로 좋으시고 인간적이며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십니다. 당신이 너무 지쳐 걸어가지 못할 때는 등에 업고 걸으시는 주님, 그분이 바로 여러분이 믿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일곱명의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새벽녘에 뭍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큰 고기 153마리나 잡아 그물이 찢어질 것 같이 가득 잡았습니다.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구워 아침 식사를 미리 준비하여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전이나 이후에 언제나 그들에게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갈릴리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풍성히 채워주시는 주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어 본 체험이 있어야 그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빈 그물일 때 가득 채움을 받은 기쁨은 더 큽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더라도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때 그때 필요를 풍성하게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날마다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며 주님 주시는 사명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수요설교 250521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본문: 21:1-14

제목: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I. 서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만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공식적으로 만나신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를 개인적으로 만났으며, 그 다음 열 제자들과 만나시고 나중에 도마가 돌아오자 열한 제자와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로 본문에서 일곱 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고향 갈릴리로 돌와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과 그 제자들 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이란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갈릴리 바닷가로 찾아오신 주님

부활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제자들은 갈릴리로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나타나신 것은 처음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이 있었던 곳이었고, 갈릴리는 제자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삶의 현장 속으로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 오신 것입니다.

 

7명의 제자들은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보고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부활도 보았고, 세상에 보내는 사명을 받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사명을 받기 전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일상생활을 살아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언제 오신다고 분명한 날짜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을 기다라다 보니 어느날 베드로가 나는 오늘 밤 고기잡으러 가겠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따라가겠다고 호응하며 그렇게 나머지 동료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갈릴리는 그들의 생활의 터전입니다. 왜 베드로가 고기잡으러 가자고 했을까요? 아마도 베드로와 그 제자들이 갈릴리로 와서 여러 날 지내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는지도 모릅니다. 조그만 고향 땅에 와서 빈둥거리며 논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주님이 오실 때 까지 고기를 잡아서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맨 먼저 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것이 예수 제자들이었습니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는 각자 생활의 터전에서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가장이라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열심히 일하며 신앙생활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탄 것입니다. 3년 만에 다시 배를 몰아 고기잡는 일을 하다보니 아마도 처음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고기잡던 방식대로 밤중에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따라 이상하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다 당겼다를 반복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아침이면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항구로 돌아가리라고 기대했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새벽녘에 지친 채로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본문 5절에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자들은 지친 음성으로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본문 6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다고 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아 항구로 들어오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요한이 저기 주님이 서 계신다라고 놀라서 외치니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른 후 급히 바다로 뛰어내렸고 다른 제자들은 물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육지로 올라왔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예배시간에만 계신다고 믿으면 우리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이 나타나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고기잡는 동안 밤새도록 해변에서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밤새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고기 잡다가 허탕만 치고 있는 곳에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잠잠히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가슴 뭉클한 장면입니까?

 

또 날이 새어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신 것을 보았다 해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내지 않으면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들과 함께 약 십리길을 동행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들은 낯선 사람이 옆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들과 함께 길을 가기 원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약성경 이야기를 듣고 그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이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부활 하신 주님의 모습은 주께서 눈을 열어주는 자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빈 그물을 채우는 비결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순종하였더니 작은 그물에서 큰 고기 153마리가 잡혔습니다. 그 푸덕거리는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상상만 해도 얼마나 신이 납니까?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밤새도록 빈 그물을 가지고 고생한 것은 나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생각하니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빈 그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홍해가 가로막는 위기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걸어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목이 타는 갈증을 겪었기에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먹을 것이 없어 베고픔을 느꼈기에 떡다섯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먹고도 남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12년 혈루병으로 고생했기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지 마자 낫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그물이 비어 있습니까?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까? 이럴 때 우리 인생의 바닷가에 서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 이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물이 비어 있는 사람이 더 빨리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을 들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빈 그릇을 채우는 비결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고기를 잘 잡는 자기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을 우습게 보고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빈 그물 인생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나도 그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부활의 주님을 속히 만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하늘의 부활을 빈 그물 가득 채우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3.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발견하자 급히 육지로 나왔습니다. 와서 보니 숯불이 피워져있고 그 위에는 떡과 생선이 구수한 냄새를 피우며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도에게 잡은 고기를 좀 더 가져 오게 하시고 고기를 더 많이 숯불에 얹어서 구우셨습니다. 준비가 다 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숯불 위에 있는 떡을 제자들에게 일일이 가져다 주셨습니다. 맛있게 익은 생선도 나눠주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어린 자식을 앉혀놓고 뭐든 더 먹이고 싶어하는 마치 어머니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 지치고, 배고프고, 한기를 느끼는 제자들에게 이만큼 반가운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 해가 두둥실 떠오르는 바닷가에서 따뜻하게 데운 떡과 생선으로 배를 채우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굳어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고, 긴장했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온유하신 부활의 주님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 시간을 보내는 제자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광야에서 주려 있던 사람들을 먹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 한 끼 밥상을 차려주시는 분입니다. 이 밥상은 따뜻한 밥상입니다. 이 아침 밥상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마련한 것을 먹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부활하신 주님의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부활하기 이전에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신 주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셨다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여 영화로운 몸을 입으신 주님께서 고기와 떡을 구워서 주시는 모습은 의외의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부활의 주님이 바로 이렇게 한없이 따뜻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먹여주실 때 배불리 먹여주시는 분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미리 준비해 놓으셨고, 뚜 기적적으로 잡은 물고기를 153마리나 되게 하셨는데 그 양은 7명의 제자들과 예수님이 먹고도 남은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0:10절 말씀처럼 양으로 생명을 얻데 하실 뿐 아니라 삶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얻는 복은 언제나 넘치는 복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가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넘치게 채워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4: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배고픔과 고단함을 아십니다. 실패로 마음이 가라앉은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11:28절 말씀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따끈한 떡과 생선을 가지고 우리를 먹이시고 쉬게 해 주십니다. 고후9:8절에도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상황을 바꾸어 본다면, 만약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아 녹초가 되어 물에서 올라오는데 자 전부 이리 모여라 나하고 기도하자, 너희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못잡은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회개할 것을 회개해야되라고 하셨다면 그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혹은 예수님이 대제사장 뜰에서 심문받을 때 세 번이나 자기를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베드로, 너 이리 좀 와, 너 양심이 있냐, 없냐?라고 얼마든지 나무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가슴에 묻어두고 부지런히 떡을 떼어 제자들을 먹이시고 생선도 구워서 먹이셨습니다. 추위에 떠는 지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사람에게 영은 육보다 중요합니다. 영적 문제가 육신적 문제를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 문제를 다루기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느끼는 요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배가 고픕니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병으로 고통을 받습니까? 그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일을 다루면 다룰수록 좀 더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굶주린 자에게 장황한 설교는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을 두고 성경공부를 한다면 그 또한 감동적이지 못합니다. 부활의 주님의 오늘 이 본문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포근하다, 훈훈하다, 정말 인간적이다라는 이런 느낌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어야 그 마음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부활의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이해하시기 위해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빈 그물을 가지고 땀을 흘릴 때든지,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올 때든지 주님은 항상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너무나 좋으신 인간적인 주님을 모시고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했습니까? 혼자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치거나 병들어 아픕니까? 혼자 흐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사명을 주시는 주님

12절에 보면 식사에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그분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이신 것을 금방 알아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로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영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한끼 밥을 먹어보지 않고는 결코 우리는 영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밥을 먹인 다음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15절에 보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전이나 이후나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한끼 밥을 먹여주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13: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그 상황은 말 그대로 먹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의 절박한 상황인 질병, 경제문제, 정신적 문제에 대해 간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고기잡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실패하고 있을 주님은 그 시간에 우리가 꼭 필요한 놀라운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다윗은 바로 하나님이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신에게 밥상을 차려주셨다고 말합니다. 23: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게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늘 동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란 시가 있습니다. 그 시 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쌍은 내것, 또 한쌍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멈춘 그곳에서

내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인생길에는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펐던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나 보세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그때

거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을 저를 떠나 계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셨고 너를 조금도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었느니라

그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참으로 좋으시고 인간적이며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십니다. 당신이 너무 지쳐 걸어가지 못할 때는 등에 업고 걸으시는 주님, 그분이 바로 여러분이 믿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일곱명의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새벽녘에 뭍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큰 고기 153마리나 잡아 그물이 찢어질 것 같이 가득 잡았습니다.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구워 아침 식사를 미리 준비하여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전이나 이후에 언제나 그들에게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갈릴리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풍성히 채워주시는 주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어 본 체험이 있어야 그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빈 그물일 때 가득 채움을 받은 기쁨은 더 큽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더라도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때 그때 필요를 풍성하게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날마다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며 주님 주시는 사명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수요설교 250521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본문: 21:1-14

제목: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I. 서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만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공식적으로 만나신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를 개인적으로 만났으며, 그 다음 열 제자들과 만나시고 나중에 도마가 돌아오자 열한 제자와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로 본문에서 일곱 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고향 갈릴리로 돌와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과 그 제자들 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이란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갈릴리 바닷가로 찾아오신 주님

부활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제자들은 갈릴리로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나타나신 것은 처음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이 있었던 곳이었고, 갈릴리는 제자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삶의 현장 속으로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 오신 것입니다.

 

7명의 제자들은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보고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부활도 보았고, 세상에 보내는 사명을 받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사명을 받기 전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일상생활을 살아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언제 오신다고 분명한 날짜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을 기다라다 보니 어느날 베드로가 나는 오늘 밤 고기잡으러 가겠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따라가겠다고 호응하며 그렇게 나머지 동료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갈릴리는 그들의 생활의 터전입니다. 왜 베드로가 고기잡으러 가자고 했을까요? 아마도 베드로와 그 제자들이 갈릴리로 와서 여러 날 지내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는지도 모릅니다. 조그만 고향 땅에 와서 빈둥거리며 논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주님이 오실 때 까지 고기를 잡아서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맨 먼저 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것이 예수 제자들이었습니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는 각자 생활의 터전에서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가장이라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열심히 일하며 신앙생활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탄 것입니다. 3년 만에 다시 배를 몰아 고기잡는 일을 하다보니 아마도 처음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고기잡던 방식대로 밤중에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따라 이상하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다 당겼다를 반복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아침이면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항구로 돌아가리라고 기대했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새벽녘에 지친 채로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본문 5절에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자들은 지친 음성으로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본문 6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다고 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아 항구로 들어오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요한이 저기 주님이 서 계신다라고 놀라서 외치니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른 후 급히 바다로 뛰어내렸고 다른 제자들은 물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육지로 올라왔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예배시간에만 계신다고 믿으면 우리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이 나타나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고기잡는 동안 밤새도록 해변에서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밤새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고기 잡다가 허탕만 치고 있는 곳에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잠잠히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가슴 뭉클한 장면입니까?

 

또 날이 새어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신 것을 보았다 해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내지 않으면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들과 함께 약 십리길을 동행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들은 낯선 사람이 옆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들과 함께 길을 가기 원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약성경 이야기를 듣고 그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이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부활 하신 주님의 모습은 주께서 눈을 열어주는 자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빈 그물을 채우는 비결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순종하였더니 작은 그물에서 큰 고기 153마리가 잡혔습니다. 그 푸덕거리는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상상만 해도 얼마나 신이 납니까?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밤새도록 빈 그물을 가지고 고생한 것은 나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생각하니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빈 그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홍해가 가로막는 위기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걸어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목이 타는 갈증을 겪었기에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먹을 것이 없어 베고픔을 느꼈기에 떡다섯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먹고도 남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12년 혈루병으로 고생했기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지 마자 낫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그물이 비어 있습니까?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까? 이럴 때 우리 인생의 바닷가에 서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 이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물이 비어 있는 사람이 더 빨리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을 들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빈 그릇을 채우는 비결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고기를 잘 잡는 자기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을 우습게 보고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빈 그물 인생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나도 그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부활의 주님을 속히 만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하늘의 부활을 빈 그물 가득 채우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3.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발견하자 급히 육지로 나왔습니다. 와서 보니 숯불이 피워져있고 그 위에는 떡과 생선이 구수한 냄새를 피우며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도에게 잡은 고기를 좀 더 가져 오게 하시고 고기를 더 많이 숯불에 얹어서 구우셨습니다. 준비가 다 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숯불 위에 있는 떡을 제자들에게 일일이 가져다 주셨습니다. 맛있게 익은 생선도 나눠주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어린 자식을 앉혀놓고 뭐든 더 먹이고 싶어하는 마치 어머니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 지치고, 배고프고, 한기를 느끼는 제자들에게 이만큼 반가운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 해가 두둥실 떠오르는 바닷가에서 따뜻하게 데운 떡과 생선으로 배를 채우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굳어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고, 긴장했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온유하신 부활의 주님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 시간을 보내는 제자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광야에서 주려 있던 사람들을 먹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 한 끼 밥상을 차려주시는 분입니다. 이 밥상은 따뜻한 밥상입니다. 이 아침 밥상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마련한 것을 먹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부활하신 주님의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부활하기 이전에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신 주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셨다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여 영화로운 몸을 입으신 주님께서 고기와 떡을 구워서 주시는 모습은 의외의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부활의 주님이 바로 이렇게 한없이 따뜻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먹여주실 때 배불리 먹여주시는 분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미리 준비해 놓으셨고, 뚜 기적적으로 잡은 물고기를 153마리나 되게 하셨는데 그 양은 7명의 제자들과 예수님이 먹고도 남은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0:10절 말씀처럼 양으로 생명을 얻데 하실 뿐 아니라 삶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얻는 복은 언제나 넘치는 복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가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넘치게 채워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4: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배고픔과 고단함을 아십니다. 실패로 마음이 가라앉은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11:28절 말씀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따끈한 떡과 생선을 가지고 우리를 먹이시고 쉬게 해 주십니다. 고후9:8절에도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상황을 바꾸어 본다면, 만약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아 녹초가 되어 물에서 올라오는데 자 전부 이리 모여라 나하고 기도하자, 너희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못잡은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회개할 것을 회개해야되라고 하셨다면 그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혹은 예수님이 대제사장 뜰에서 심문받을 때 세 번이나 자기를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베드로, 너 이리 좀 와, 너 양심이 있냐, 없냐?라고 얼마든지 나무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가슴에 묻어두고 부지런히 떡을 떼어 제자들을 먹이시고 생선도 구워서 먹이셨습니다. 추위에 떠는 지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사람에게 영은 육보다 중요합니다. 영적 문제가 육신적 문제를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 문제를 다루기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느끼는 요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배가 고픕니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병으로 고통을 받습니까? 그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일을 다루면 다룰수록 좀 더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굶주린 자에게 장황한 설교는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을 두고 성경공부를 한다면 그 또한 감동적이지 못합니다. 부활의 주님의 오늘 이 본문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포근하다, 훈훈하다, 정말 인간적이다라는 이런 느낌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어야 그 마음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부활의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이해하시기 위해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빈 그물을 가지고 땀을 흘릴 때든지,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올 때든지 주님은 항상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너무나 좋으신 인간적인 주님을 모시고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했습니까? 혼자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치거나 병들어 아픕니까? 혼자 흐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사명을 주시는 주님

12절에 보면 식사에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그분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이신 것을 금방 알아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로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영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한끼 밥을 먹어보지 않고는 결코 우리는 영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밥을 먹인 다음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15절에 보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전이나 이후나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한끼 밥을 먹여주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13: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그 상황은 말 그대로 먹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의 절박한 상황인 질병, 경제문제, 정신적 문제에 대해 간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고기잡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실패하고 있을 주님은 그 시간에 우리가 꼭 필요한 놀라운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다윗은 바로 하나님이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신에게 밥상을 차려주셨다고 말합니다. 23: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게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늘 동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란 시가 있습니다. 그 시 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쌍은 내것, 또 한쌍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멈춘 그곳에서

내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인생길에는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펐던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나 보세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그때

거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을 저를 떠나 계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셨고 너를 조금도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었느니라

그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참으로 좋으시고 인간적이며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십니다. 당신이 너무 지쳐 걸어가지 못할 때는 등에 업고 걸으시는 주님, 그분이 바로 여러분이 믿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일곱명의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새벽녘에 뭍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큰 고기 153마리나 잡아 그물이 찢어질 것 같이 가득 잡았습니다.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구워 아침 식사를 미리 준비하여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전이나 이후에 언제나 그들에게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갈릴리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풍성히 채워주시는 주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어 본 체험이 있어야 그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빈 그물일 때 가득 채움을 받은 기쁨은 더 큽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더라도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때 그때 필요를 풍성하게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날마다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며 주님 주시는 사명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수요설교 250521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본문: 21:1-14

제목: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I. 서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만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공식적으로 만나신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를 개인적으로 만났으며, 그 다음 열 제자들과 만나시고 나중에 도마가 돌아오자 열한 제자와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로 본문에서 일곱 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고향 갈릴리로 돌와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과 그 제자들 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이란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갈릴리 바닷가로 찾아오신 주님

부활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제자들은 갈릴리로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나타나신 것은 처음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이 있었던 곳이었고, 갈릴리는 제자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삶의 현장 속으로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 오신 것입니다.

 

7명의 제자들은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보고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부활도 보았고, 세상에 보내는 사명을 받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사명을 받기 전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일상생활을 살아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언제 오신다고 분명한 날짜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을 기다라다 보니 어느날 베드로가 나는 오늘 밤 고기잡으러 가겠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따라가겠다고 호응하며 그렇게 나머지 동료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갈릴리는 그들의 생활의 터전입니다. 왜 베드로가 고기잡으러 가자고 했을까요? 아마도 베드로와 그 제자들이 갈릴리로 와서 여러 날 지내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는지도 모릅니다. 조그만 고향 땅에 와서 빈둥거리며 논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주님이 오실 때 까지 고기를 잡아서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맨 먼저 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것이 예수 제자들이었습니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는 각자 생활의 터전에서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가장이라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열심히 일하며 신앙생활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탄 것입니다. 3년 만에 다시 배를 몰아 고기잡는 일을 하다보니 아마도 처음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고기잡던 방식대로 밤중에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따라 이상하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다 당겼다를 반복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아침이면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항구로 돌아가리라고 기대했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새벽녘에 지친 채로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본문 5절에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자들은 지친 음성으로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본문 6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다고 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아 항구로 들어오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요한이 저기 주님이 서 계신다라고 놀라서 외치니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른 후 급히 바다로 뛰어내렸고 다른 제자들은 물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육지로 올라왔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예배시간에만 계신다고 믿으면 우리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이 나타나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고기잡는 동안 밤새도록 해변에서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밤새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고기 잡다가 허탕만 치고 있는 곳에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잠잠히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가슴 뭉클한 장면입니까?

 

또 날이 새어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신 것을 보았다 해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내지 않으면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들과 함께 약 십리길을 동행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들은 낯선 사람이 옆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들과 함께 길을 가기 원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약성경 이야기를 듣고 그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이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부활 하신 주님의 모습은 주께서 눈을 열어주는 자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빈 그물을 채우는 비결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순종하였더니 작은 그물에서 큰 고기 153마리가 잡혔습니다. 그 푸덕거리는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상상만 해도 얼마나 신이 납니까?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밤새도록 빈 그물을 가지고 고생한 것은 나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생각하니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빈 그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홍해가 가로막는 위기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걸어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목이 타는 갈증을 겪었기에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먹을 것이 없어 베고픔을 느꼈기에 떡다섯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먹고도 남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12년 혈루병으로 고생했기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지 마자 낫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그물이 비어 있습니까?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까? 이럴 때 우리 인생의 바닷가에 서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 이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물이 비어 있는 사람이 더 빨리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을 들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빈 그릇을 채우는 비결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고기를 잘 잡는 자기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을 우습게 보고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빈 그물 인생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나도 그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부활의 주님을 속히 만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하늘의 부활을 빈 그물 가득 채우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3.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발견하자 급히 육지로 나왔습니다. 와서 보니 숯불이 피워져있고 그 위에는 떡과 생선이 구수한 냄새를 피우며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도에게 잡은 고기를 좀 더 가져 오게 하시고 고기를 더 많이 숯불에 얹어서 구우셨습니다. 준비가 다 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숯불 위에 있는 떡을 제자들에게 일일이 가져다 주셨습니다. 맛있게 익은 생선도 나눠주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어린 자식을 앉혀놓고 뭐든 더 먹이고 싶어하는 마치 어머니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 지치고, 배고프고, 한기를 느끼는 제자들에게 이만큼 반가운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 해가 두둥실 떠오르는 바닷가에서 따뜻하게 데운 떡과 생선으로 배를 채우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굳어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고, 긴장했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온유하신 부활의 주님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 시간을 보내는 제자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광야에서 주려 있던 사람들을 먹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 한 끼 밥상을 차려주시는 분입니다. 이 밥상은 따뜻한 밥상입니다. 이 아침 밥상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마련한 것을 먹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부활하신 주님의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부활하기 이전에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신 주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셨다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여 영화로운 몸을 입으신 주님께서 고기와 떡을 구워서 주시는 모습은 의외의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부활의 주님이 바로 이렇게 한없이 따뜻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먹여주실 때 배불리 먹여주시는 분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미리 준비해 놓으셨고, 뚜 기적적으로 잡은 물고기를 153마리나 되게 하셨는데 그 양은 7명의 제자들과 예수님이 먹고도 남은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0:10절 말씀처럼 양으로 생명을 얻데 하실 뿐 아니라 삶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얻는 복은 언제나 넘치는 복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가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넘치게 채워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4: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배고픔과 고단함을 아십니다. 실패로 마음이 가라앉은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11:28절 말씀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따끈한 떡과 생선을 가지고 우리를 먹이시고 쉬게 해 주십니다. 고후9:8절에도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상황을 바꾸어 본다면, 만약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아 녹초가 되어 물에서 올라오는데 자 전부 이리 모여라 나하고 기도하자, 너희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못잡은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회개할 것을 회개해야되라고 하셨다면 그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혹은 예수님이 대제사장 뜰에서 심문받을 때 세 번이나 자기를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베드로, 너 이리 좀 와, 너 양심이 있냐, 없냐?라고 얼마든지 나무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가슴에 묻어두고 부지런히 떡을 떼어 제자들을 먹이시고 생선도 구워서 먹이셨습니다. 추위에 떠는 지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사람에게 영은 육보다 중요합니다. 영적 문제가 육신적 문제를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 문제를 다루기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느끼는 요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배가 고픕니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병으로 고통을 받습니까? 그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일을 다루면 다룰수록 좀 더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굶주린 자에게 장황한 설교는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을 두고 성경공부를 한다면 그 또한 감동적이지 못합니다. 부활의 주님의 오늘 이 본문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포근하다, 훈훈하다, 정말 인간적이다라는 이런 느낌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어야 그 마음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부활의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이해하시기 위해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빈 그물을 가지고 땀을 흘릴 때든지,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올 때든지 주님은 항상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너무나 좋으신 인간적인 주님을 모시고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했습니까? 혼자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치거나 병들어 아픕니까? 혼자 흐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사명을 주시는 주님

12절에 보면 식사에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그분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이신 것을 금방 알아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로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영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한끼 밥을 먹어보지 않고는 결코 우리는 영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밥을 먹인 다음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15절에 보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전이나 이후나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한끼 밥을 먹여주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13: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그 상황은 말 그대로 먹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의 절박한 상황인 질병, 경제문제, 정신적 문제에 대해 간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고기잡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실패하고 있을 주님은 그 시간에 우리가 꼭 필요한 놀라운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다윗은 바로 하나님이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신에게 밥상을 차려주셨다고 말합니다. 23: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게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늘 동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란 시가 있습니다. 그 시 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쌍은 내것, 또 한쌍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멈춘 그곳에서

내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인생길에는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펐던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나 보세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그때

거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을 저를 떠나 계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셨고 너를 조금도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었느니라

그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참으로 좋으시고 인간적이며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십니다. 당신이 너무 지쳐 걸어가지 못할 때는 등에 업고 걸으시는 주님, 그분이 바로 여러분이 믿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일곱명의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새벽녘에 뭍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큰 고기 153마리나 잡아 그물이 찢어질 것 같이 가득 잡았습니다.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구워 아침 식사를 미리 준비하여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전이나 이후에 언제나 그들에게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갈릴리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풍성히 채워주시는 주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어 본 체험이 있어야 그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빈 그물일 때 가득 채움을 받은 기쁨은 더 큽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더라도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때 그때 필요를 풍성하게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날마다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며 주님 주시는 사명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수요설교 250521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본문: 21:1-14

제목: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I. 서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만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공식적으로 만나신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를 개인적으로 만났으며, 그 다음 열 제자들과 만나시고 나중에 도마가 돌아오자 열한 제자와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로 본문에서 일곱 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고향 갈릴리로 돌와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과 그 제자들 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이란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갈릴리 바닷가로 찾아오신 주님

부활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제자들은 갈릴리로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나타나신 것은 처음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이 있었던 곳이었고, 갈릴리는 제자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삶의 현장 속으로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 오신 것입니다.

 

7명의 제자들은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보고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부활도 보았고, 세상에 보내는 사명을 받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사명을 받기 전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일상생활을 살아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언제 오신다고 분명한 날짜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을 기다라다 보니 어느날 베드로가 나는 오늘 밤 고기잡으러 가겠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따라가겠다고 호응하며 그렇게 나머지 동료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갈릴리는 그들의 생활의 터전입니다. 왜 베드로가 고기잡으러 가자고 했을까요? 아마도 베드로와 그 제자들이 갈릴리로 와서 여러 날 지내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는지도 모릅니다. 조그만 고향 땅에 와서 빈둥거리며 논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주님이 오실 때 까지 고기를 잡아서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맨 먼저 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것이 예수 제자들이었습니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는 각자 생활의 터전에서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가장이라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열심히 일하며 신앙생활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탄 것입니다. 3년 만에 다시 배를 몰아 고기잡는 일을 하다보니 아마도 처음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고기잡던 방식대로 밤중에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따라 이상하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다 당겼다를 반복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아침이면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항구로 돌아가리라고 기대했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새벽녘에 지친 채로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본문 5절에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자들은 지친 음성으로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본문 6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다고 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아 항구로 들어오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요한이 저기 주님이 서 계신다라고 놀라서 외치니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른 후 급히 바다로 뛰어내렸고 다른 제자들은 물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육지로 올라왔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예배시간에만 계신다고 믿으면 우리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이 나타나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고기잡는 동안 밤새도록 해변에서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밤새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고기 잡다가 허탕만 치고 있는 곳에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잠잠히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가슴 뭉클한 장면입니까?

 

또 날이 새어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신 것을 보았다 해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내지 않으면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들과 함께 약 십리길을 동행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들은 낯선 사람이 옆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들과 함께 길을 가기 원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약성경 이야기를 듣고 그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이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부활 하신 주님의 모습은 주께서 눈을 열어주는 자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빈 그물을 채우는 비결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순종하였더니 작은 그물에서 큰 고기 153마리가 잡혔습니다. 그 푸덕거리는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상상만 해도 얼마나 신이 납니까?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밤새도록 빈 그물을 가지고 고생한 것은 나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생각하니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빈 그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홍해가 가로막는 위기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걸어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목이 타는 갈증을 겪었기에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먹을 것이 없어 베고픔을 느꼈기에 떡다섯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먹고도 남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12년 혈루병으로 고생했기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지 마자 낫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그물이 비어 있습니까?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까? 이럴 때 우리 인생의 바닷가에 서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 이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물이 비어 있는 사람이 더 빨리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을 들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빈 그릇을 채우는 비결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고기를 잘 잡는 자기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을 우습게 보고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빈 그물 인생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나도 그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부활의 주님을 속히 만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하늘의 부활을 빈 그물 가득 채우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3.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발견하자 급히 육지로 나왔습니다. 와서 보니 숯불이 피워져있고 그 위에는 떡과 생선이 구수한 냄새를 피우며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도에게 잡은 고기를 좀 더 가져 오게 하시고 고기를 더 많이 숯불에 얹어서 구우셨습니다. 준비가 다 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숯불 위에 있는 떡을 제자들에게 일일이 가져다 주셨습니다. 맛있게 익은 생선도 나눠주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어린 자식을 앉혀놓고 뭐든 더 먹이고 싶어하는 마치 어머니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 지치고, 배고프고, 한기를 느끼는 제자들에게 이만큼 반가운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 해가 두둥실 떠오르는 바닷가에서 따뜻하게 데운 떡과 생선으로 배를 채우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굳어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고, 긴장했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온유하신 부활의 주님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 시간을 보내는 제자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광야에서 주려 있던 사람들을 먹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 한 끼 밥상을 차려주시는 분입니다. 이 밥상은 따뜻한 밥상입니다. 이 아침 밥상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마련한 것을 먹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부활하신 주님의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부활하기 이전에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신 주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셨다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여 영화로운 몸을 입으신 주님께서 고기와 떡을 구워서 주시는 모습은 의외의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부활의 주님이 바로 이렇게 한없이 따뜻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먹여주실 때 배불리 먹여주시는 분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미리 준비해 놓으셨고, 뚜 기적적으로 잡은 물고기를 153마리나 되게 하셨는데 그 양은 7명의 제자들과 예수님이 먹고도 남은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0:10절 말씀처럼 양으로 생명을 얻데 하실 뿐 아니라 삶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얻는 복은 언제나 넘치는 복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가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넘치게 채워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4: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배고픔과 고단함을 아십니다. 실패로 마음이 가라앉은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11:28절 말씀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따끈한 떡과 생선을 가지고 우리를 먹이시고 쉬게 해 주십니다. 고후9:8절에도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상황을 바꾸어 본다면, 만약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아 녹초가 되어 물에서 올라오는데 자 전부 이리 모여라 나하고 기도하자, 너희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못잡은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회개할 것을 회개해야되라고 하셨다면 그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혹은 예수님이 대제사장 뜰에서 심문받을 때 세 번이나 자기를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베드로, 너 이리 좀 와, 너 양심이 있냐, 없냐?라고 얼마든지 나무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가슴에 묻어두고 부지런히 떡을 떼어 제자들을 먹이시고 생선도 구워서 먹이셨습니다. 추위에 떠는 지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사람에게 영은 육보다 중요합니다. 영적 문제가 육신적 문제를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 문제를 다루기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느끼는 요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배가 고픕니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병으로 고통을 받습니까? 그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일을 다루면 다룰수록 좀 더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굶주린 자에게 장황한 설교는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을 두고 성경공부를 한다면 그 또한 감동적이지 못합니다. 부활의 주님의 오늘 이 본문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포근하다, 훈훈하다, 정말 인간적이다라는 이런 느낌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어야 그 마음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부활의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이해하시기 위해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빈 그물을 가지고 땀을 흘릴 때든지,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올 때든지 주님은 항상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너무나 좋으신 인간적인 주님을 모시고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했습니까? 혼자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치거나 병들어 아픕니까? 혼자 흐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사명을 주시는 주님

12절에 보면 식사에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그분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이신 것을 금방 알아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로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영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한끼 밥을 먹어보지 않고는 결코 우리는 영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밥을 먹인 다음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15절에 보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전이나 이후나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한끼 밥을 먹여주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13: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그 상황은 말 그대로 먹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의 절박한 상황인 질병, 경제문제, 정신적 문제에 대해 간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고기잡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실패하고 있을 주님은 그 시간에 우리가 꼭 필요한 놀라운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다윗은 바로 하나님이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신에게 밥상을 차려주셨다고 말합니다. 23: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게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늘 동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란 시가 있습니다. 그 시 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쌍은 내것, 또 한쌍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멈춘 그곳에서

내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인생길에는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펐던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나 보세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그때

거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을 저를 떠나 계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셨고 너를 조금도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었느니라

그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참으로 좋으시고 인간적이며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십니다. 당신이 너무 지쳐 걸어가지 못할 때는 등에 업고 걸으시는 주님, 그분이 바로 여러분이 믿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일곱명의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새벽녘에 뭍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큰 고기 153마리나 잡아 그물이 찢어질 것 같이 가득 잡았습니다.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구워 아침 식사를 미리 준비하여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전이나 이후에 언제나 그들에게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갈릴리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풍성히 채워주시는 주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어 본 체험이 있어야 그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빈 그물일 때 가득 채움을 받은 기쁨은 더 큽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더라도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때 그때 필요를 풍성하게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날마다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며 주님 주시는 사명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수요설교 250521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본문: 21:1-14

제목: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I. 서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만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공식적으로 만나신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를 개인적으로 만났으며, 그 다음 열 제자들과 만나시고 나중에 도마가 돌아오자 열한 제자와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로 본문에서 일곱 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고향 갈릴리로 돌와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과 그 제자들 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이란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갈릴리 바닷가로 찾아오신 주님

부활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제자들은 갈릴리로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나타나신 것은 처음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이 있었던 곳이었고, 갈릴리는 제자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삶의 현장 속으로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 오신 것입니다.

 

7명의 제자들은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보고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부활도 보았고, 세상에 보내는 사명을 받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사명을 받기 전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일상생활을 살아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언제 오신다고 분명한 날짜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을 기다라다 보니 어느날 베드로가 나는 오늘 밤 고기잡으러 가겠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따라가겠다고 호응하며 그렇게 나머지 동료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갈릴리는 그들의 생활의 터전입니다. 왜 베드로가 고기잡으러 가자고 했을까요? 아마도 베드로와 그 제자들이 갈릴리로 와서 여러 날 지내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는지도 모릅니다. 조그만 고향 땅에 와서 빈둥거리며 논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주님이 오실 때 까지 고기를 잡아서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맨 먼저 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것이 예수 제자들이었습니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는 각자 생활의 터전에서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가장이라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열심히 일하며 신앙생활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탄 것입니다. 3년 만에 다시 배를 몰아 고기잡는 일을 하다보니 아마도 처음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고기잡던 방식대로 밤중에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따라 이상하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다 당겼다를 반복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아침이면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항구로 돌아가리라고 기대했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새벽녘에 지친 채로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본문 5절에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자들은 지친 음성으로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본문 6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다고 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아 항구로 들어오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요한이 저기 주님이 서 계신다라고 놀라서 외치니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른 후 급히 바다로 뛰어내렸고 다른 제자들은 물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육지로 올라왔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예배시간에만 계신다고 믿으면 우리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이 나타나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고기잡는 동안 밤새도록 해변에서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밤새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고기 잡다가 허탕만 치고 있는 곳에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잠잠히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가슴 뭉클한 장면입니까?

 

또 날이 새어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신 것을 보았다 해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내지 않으면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들과 함께 약 십리길을 동행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들은 낯선 사람이 옆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들과 함께 길을 가기 원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약성경 이야기를 듣고 그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이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부활 하신 주님의 모습은 주께서 눈을 열어주는 자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빈 그물을 채우는 비결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순종하였더니 작은 그물에서 큰 고기 153마리가 잡혔습니다. 그 푸덕거리는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상상만 해도 얼마나 신이 납니까?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밤새도록 빈 그물을 가지고 고생한 것은 나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생각하니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빈 그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홍해가 가로막는 위기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걸어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목이 타는 갈증을 겪었기에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먹을 것이 없어 베고픔을 느꼈기에 떡다섯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먹고도 남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12년 혈루병으로 고생했기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지 마자 낫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그물이 비어 있습니까?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까? 이럴 때 우리 인생의 바닷가에 서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 이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물이 비어 있는 사람이 더 빨리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을 들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빈 그릇을 채우는 비결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고기를 잘 잡는 자기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을 우습게 보고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빈 그물 인생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나도 그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부활의 주님을 속히 만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하늘의 부활을 빈 그물 가득 채우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3.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발견하자 급히 육지로 나왔습니다. 와서 보니 숯불이 피워져있고 그 위에는 떡과 생선이 구수한 냄새를 피우며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도에게 잡은 고기를 좀 더 가져 오게 하시고 고기를 더 많이 숯불에 얹어서 구우셨습니다. 준비가 다 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숯불 위에 있는 떡을 제자들에게 일일이 가져다 주셨습니다. 맛있게 익은 생선도 나눠주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어린 자식을 앉혀놓고 뭐든 더 먹이고 싶어하는 마치 어머니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 지치고, 배고프고, 한기를 느끼는 제자들에게 이만큼 반가운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 해가 두둥실 떠오르는 바닷가에서 따뜻하게 데운 떡과 생선으로 배를 채우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굳어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고, 긴장했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온유하신 부활의 주님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 시간을 보내는 제자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광야에서 주려 있던 사람들을 먹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 한 끼 밥상을 차려주시는 분입니다. 이 밥상은 따뜻한 밥상입니다. 이 아침 밥상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마련한 것을 먹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부활하신 주님의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부활하기 이전에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신 주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셨다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여 영화로운 몸을 입으신 주님께서 고기와 떡을 구워서 주시는 모습은 의외의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부활의 주님이 바로 이렇게 한없이 따뜻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먹여주실 때 배불리 먹여주시는 분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미리 준비해 놓으셨고, 뚜 기적적으로 잡은 물고기를 153마리나 되게 하셨는데 그 양은 7명의 제자들과 예수님이 먹고도 남은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0:10절 말씀처럼 양으로 생명을 얻데 하실 뿐 아니라 삶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얻는 복은 언제나 넘치는 복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가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넘치게 채워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4: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배고픔과 고단함을 아십니다. 실패로 마음이 가라앉은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11:28절 말씀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따끈한 떡과 생선을 가지고 우리를 먹이시고 쉬게 해 주십니다. 고후9:8절에도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상황을 바꾸어 본다면, 만약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아 녹초가 되어 물에서 올라오는데 자 전부 이리 모여라 나하고 기도하자, 너희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못잡은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회개할 것을 회개해야되라고 하셨다면 그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혹은 예수님이 대제사장 뜰에서 심문받을 때 세 번이나 자기를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베드로, 너 이리 좀 와, 너 양심이 있냐, 없냐?라고 얼마든지 나무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가슴에 묻어두고 부지런히 떡을 떼어 제자들을 먹이시고 생선도 구워서 먹이셨습니다. 추위에 떠는 지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사람에게 영은 육보다 중요합니다. 영적 문제가 육신적 문제를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 문제를 다루기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느끼는 요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배가 고픕니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병으로 고통을 받습니까? 그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일을 다루면 다룰수록 좀 더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굶주린 자에게 장황한 설교는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을 두고 성경공부를 한다면 그 또한 감동적이지 못합니다. 부활의 주님의 오늘 이 본문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포근하다, 훈훈하다, 정말 인간적이다라는 이런 느낌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어야 그 마음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부활의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이해하시기 위해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빈 그물을 가지고 땀을 흘릴 때든지,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올 때든지 주님은 항상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너무나 좋으신 인간적인 주님을 모시고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했습니까? 혼자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치거나 병들어 아픕니까? 혼자 흐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사명을 주시는 주님

12절에 보면 식사에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그분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이신 것을 금방 알아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로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영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한끼 밥을 먹어보지 않고는 결코 우리는 영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밥을 먹인 다음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15절에 보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전이나 이후나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한끼 밥을 먹여주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13: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그 상황은 말 그대로 먹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의 절박한 상황인 질병, 경제문제, 정신적 문제에 대해 간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고기잡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실패하고 있을 주님은 그 시간에 우리가 꼭 필요한 놀라운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다윗은 바로 하나님이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신에게 밥상을 차려주셨다고 말합니다. 23: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게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늘 동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란 시가 있습니다. 그 시 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쌍은 내것, 또 한쌍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멈춘 그곳에서

내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인생길에는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펐던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나 보세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그때

거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을 저를 떠나 계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셨고 너를 조금도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었느니라

그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참으로 좋으시고 인간적이며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십니다. 당신이 너무 지쳐 걸어가지 못할 때는 등에 업고 걸으시는 주님, 그분이 바로 여러분이 믿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일곱명의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새벽녘에 뭍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큰 고기 153마리나 잡아 그물이 찢어질 것 같이 가득 잡았습니다.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구워 아침 식사를 미리 준비하여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전이나 이후에 언제나 그들에게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갈릴리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풍성히 채워주시는 주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어 본 체험이 있어야 그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빈 그물일 때 가득 채움을 받은 기쁨은 더 큽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더라도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때 그때 필요를 풍성하게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날마다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며 주님 주시는 사명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수요설교 250521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본문: 21:1-14

제목: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I. 서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만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공식적으로 만나신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를 개인적으로 만났으며, 그 다음 열 제자들과 만나시고 나중에 도마가 돌아오자 열한 제자와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로 본문에서 일곱 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고향 갈릴리로 돌와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과 그 제자들 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이란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갈릴리 바닷가로 찾아오신 주님

부활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제자들은 갈릴리로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나타나신 것은 처음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이 있었던 곳이었고, 갈릴리는 제자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삶의 현장 속으로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 오신 것입니다.

 

7명의 제자들은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보고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부활도 보았고, 세상에 보내는 사명을 받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사명을 받기 전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일상생활을 살아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언제 오신다고 분명한 날짜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을 기다라다 보니 어느날 베드로가 나는 오늘 밤 고기잡으러 가겠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따라가겠다고 호응하며 그렇게 나머지 동료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갈릴리는 그들의 생활의 터전입니다. 왜 베드로가 고기잡으러 가자고 했을까요? 아마도 베드로와 그 제자들이 갈릴리로 와서 여러 날 지내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는지도 모릅니다. 조그만 고향 땅에 와서 빈둥거리며 논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주님이 오실 때 까지 고기를 잡아서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맨 먼저 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것이 예수 제자들이었습니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는 각자 생활의 터전에서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가장이라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열심히 일하며 신앙생활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탄 것입니다. 3년 만에 다시 배를 몰아 고기잡는 일을 하다보니 아마도 처음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고기잡던 방식대로 밤중에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따라 이상하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다 당겼다를 반복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아침이면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항구로 돌아가리라고 기대했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새벽녘에 지친 채로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본문 5절에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자들은 지친 음성으로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본문 6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다고 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아 항구로 들어오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요한이 저기 주님이 서 계신다라고 놀라서 외치니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른 후 급히 바다로 뛰어내렸고 다른 제자들은 물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육지로 올라왔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예배시간에만 계신다고 믿으면 우리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이 나타나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고기잡는 동안 밤새도록 해변에서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밤새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고기 잡다가 허탕만 치고 있는 곳에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잠잠히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가슴 뭉클한 장면입니까?

 

또 날이 새어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신 것을 보았다 해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내지 않으면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들과 함께 약 십리길을 동행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들은 낯선 사람이 옆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들과 함께 길을 가기 원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약성경 이야기를 듣고 그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이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부활 하신 주님의 모습은 주께서 눈을 열어주는 자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빈 그물을 채우는 비결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순종하였더니 작은 그물에서 큰 고기 153마리가 잡혔습니다. 그 푸덕거리는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상상만 해도 얼마나 신이 납니까?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밤새도록 빈 그물을 가지고 고생한 것은 나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생각하니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빈 그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홍해가 가로막는 위기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걸어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목이 타는 갈증을 겪었기에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먹을 것이 없어 베고픔을 느꼈기에 떡다섯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먹고도 남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12년 혈루병으로 고생했기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지 마자 낫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그물이 비어 있습니까?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까? 이럴 때 우리 인생의 바닷가에 서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 이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물이 비어 있는 사람이 더 빨리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을 들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빈 그릇을 채우는 비결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고기를 잘 잡는 자기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을 우습게 보고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빈 그물 인생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나도 그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부활의 주님을 속히 만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하늘의 부활을 빈 그물 가득 채우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3.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발견하자 급히 육지로 나왔습니다. 와서 보니 숯불이 피워져있고 그 위에는 떡과 생선이 구수한 냄새를 피우며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도에게 잡은 고기를 좀 더 가져 오게 하시고 고기를 더 많이 숯불에 얹어서 구우셨습니다. 준비가 다 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숯불 위에 있는 떡을 제자들에게 일일이 가져다 주셨습니다. 맛있게 익은 생선도 나눠주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어린 자식을 앉혀놓고 뭐든 더 먹이고 싶어하는 마치 어머니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 지치고, 배고프고, 한기를 느끼는 제자들에게 이만큼 반가운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 해가 두둥실 떠오르는 바닷가에서 따뜻하게 데운 떡과 생선으로 배를 채우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굳어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고, 긴장했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온유하신 부활의 주님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 시간을 보내는 제자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광야에서 주려 있던 사람들을 먹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 한 끼 밥상을 차려주시는 분입니다. 이 밥상은 따뜻한 밥상입니다. 이 아침 밥상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마련한 것을 먹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부활하신 주님의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부활하기 이전에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신 주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셨다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여 영화로운 몸을 입으신 주님께서 고기와 떡을 구워서 주시는 모습은 의외의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부활의 주님이 바로 이렇게 한없이 따뜻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먹여주실 때 배불리 먹여주시는 분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미리 준비해 놓으셨고, 뚜 기적적으로 잡은 물고기를 153마리나 되게 하셨는데 그 양은 7명의 제자들과 예수님이 먹고도 남은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0:10절 말씀처럼 양으로 생명을 얻데 하실 뿐 아니라 삶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얻는 복은 언제나 넘치는 복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가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넘치게 채워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4: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배고픔과 고단함을 아십니다. 실패로 마음이 가라앉은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11:28절 말씀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따끈한 떡과 생선을 가지고 우리를 먹이시고 쉬게 해 주십니다. 고후9:8절에도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상황을 바꾸어 본다면, 만약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아 녹초가 되어 물에서 올라오는데 자 전부 이리 모여라 나하고 기도하자, 너희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못잡은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회개할 것을 회개해야되라고 하셨다면 그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혹은 예수님이 대제사장 뜰에서 심문받을 때 세 번이나 자기를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베드로, 너 이리 좀 와, 너 양심이 있냐, 없냐?라고 얼마든지 나무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가슴에 묻어두고 부지런히 떡을 떼어 제자들을 먹이시고 생선도 구워서 먹이셨습니다. 추위에 떠는 지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사람에게 영은 육보다 중요합니다. 영적 문제가 육신적 문제를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 문제를 다루기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느끼는 요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배가 고픕니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병으로 고통을 받습니까? 그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일을 다루면 다룰수록 좀 더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굶주린 자에게 장황한 설교는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을 두고 성경공부를 한다면 그 또한 감동적이지 못합니다. 부활의 주님의 오늘 이 본문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포근하다, 훈훈하다, 정말 인간적이다라는 이런 느낌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어야 그 마음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부활의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이해하시기 위해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빈 그물을 가지고 땀을 흘릴 때든지,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올 때든지 주님은 항상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너무나 좋으신 인간적인 주님을 모시고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했습니까? 혼자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치거나 병들어 아픕니까? 혼자 흐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사명을 주시는 주님

12절에 보면 식사에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그분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이신 것을 금방 알아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로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영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한끼 밥을 먹어보지 않고는 결코 우리는 영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밥을 먹인 다음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15절에 보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전이나 이후나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한끼 밥을 먹여주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13: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그 상황은 말 그대로 먹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의 절박한 상황인 질병, 경제문제, 정신적 문제에 대해 간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고기잡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실패하고 있을 주님은 그 시간에 우리가 꼭 필요한 놀라운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다윗은 바로 하나님이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신에게 밥상을 차려주셨다고 말합니다. 23: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게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늘 동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란 시가 있습니다. 그 시 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쌍은 내것, 또 한쌍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멈춘 그곳에서

내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인생길에는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펐던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나 보세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그때

거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을 저를 떠나 계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셨고 너를 조금도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었느니라

그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참으로 좋으시고 인간적이며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십니다. 당신이 너무 지쳐 걸어가지 못할 때는 등에 업고 걸으시는 주님, 그분이 바로 여러분이 믿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일곱명의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새벽녘에 뭍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큰 고기 153마리나 잡아 그물이 찢어질 것 같이 가득 잡았습니다.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구워 아침 식사를 미리 준비하여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전이나 이후에 언제나 그들에게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갈릴리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풍성히 채워주시는 주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어 본 체험이 있어야 그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빈 그물일 때 가득 채움을 받은 기쁨은 더 큽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더라도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때 그때 필요를 풍성하게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날마다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며 주님 주시는 사명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수요설교 250521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본문: 21:1-14

제목: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I. 서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만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공식적으로 만나신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를 개인적으로 만났으며, 그 다음 열 제자들과 만나시고 나중에 도마가 돌아오자 열한 제자와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로 본문에서 일곱 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고향 갈릴리로 돌와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과 그 제자들 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이란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갈릴리 바닷가로 찾아오신 주님

부활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제자들은 갈릴리로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나타나신 것은 처음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이 있었던 곳이었고, 갈릴리는 제자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삶의 현장 속으로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 오신 것입니다.

 

7명의 제자들은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보고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부활도 보았고, 세상에 보내는 사명을 받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사명을 받기 전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일상생활을 살아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언제 오신다고 분명한 날짜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을 기다라다 보니 어느날 베드로가 나는 오늘 밤 고기잡으러 가겠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따라가겠다고 호응하며 그렇게 나머지 동료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갈릴리는 그들의 생활의 터전입니다. 왜 베드로가 고기잡으러 가자고 했을까요? 아마도 베드로와 그 제자들이 갈릴리로 와서 여러 날 지내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는지도 모릅니다. 조그만 고향 땅에 와서 빈둥거리며 논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주님이 오실 때 까지 고기를 잡아서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맨 먼저 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것이 예수 제자들이었습니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는 각자 생활의 터전에서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가장이라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열심히 일하며 신앙생활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탄 것입니다. 3년 만에 다시 배를 몰아 고기잡는 일을 하다보니 아마도 처음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고기잡던 방식대로 밤중에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따라 이상하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다 당겼다를 반복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아침이면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항구로 돌아가리라고 기대했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새벽녘에 지친 채로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본문 5절에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자들은 지친 음성으로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본문 6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다고 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아 항구로 들어오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요한이 저기 주님이 서 계신다라고 놀라서 외치니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른 후 급히 바다로 뛰어내렸고 다른 제자들은 물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육지로 올라왔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예배시간에만 계신다고 믿으면 우리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이 나타나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고기잡는 동안 밤새도록 해변에서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밤새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고기 잡다가 허탕만 치고 있는 곳에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잠잠히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가슴 뭉클한 장면입니까?

 

또 날이 새어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신 것을 보았다 해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내지 않으면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들과 함께 약 십리길을 동행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들은 낯선 사람이 옆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들과 함께 길을 가기 원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약성경 이야기를 듣고 그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이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부활 하신 주님의 모습은 주께서 눈을 열어주는 자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빈 그물을 채우는 비결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순종하였더니 작은 그물에서 큰 고기 153마리가 잡혔습니다. 그 푸덕거리는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상상만 해도 얼마나 신이 납니까?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밤새도록 빈 그물을 가지고 고생한 것은 나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생각하니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빈 그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홍해가 가로막는 위기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걸어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목이 타는 갈증을 겪었기에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먹을 것이 없어 베고픔을 느꼈기에 떡다섯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먹고도 남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12년 혈루병으로 고생했기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지 마자 낫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그물이 비어 있습니까?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까? 이럴 때 우리 인생의 바닷가에 서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 이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물이 비어 있는 사람이 더 빨리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을 들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빈 그릇을 채우는 비결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고기를 잘 잡는 자기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을 우습게 보고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빈 그물 인생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나도 그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부활의 주님을 속히 만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하늘의 부활을 빈 그물 가득 채우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3.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발견하자 급히 육지로 나왔습니다. 와서 보니 숯불이 피워져있고 그 위에는 떡과 생선이 구수한 냄새를 피우며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도에게 잡은 고기를 좀 더 가져 오게 하시고 고기를 더 많이 숯불에 얹어서 구우셨습니다. 준비가 다 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숯불 위에 있는 떡을 제자들에게 일일이 가져다 주셨습니다. 맛있게 익은 생선도 나눠주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어린 자식을 앉혀놓고 뭐든 더 먹이고 싶어하는 마치 어머니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 지치고, 배고프고, 한기를 느끼는 제자들에게 이만큼 반가운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 해가 두둥실 떠오르는 바닷가에서 따뜻하게 데운 떡과 생선으로 배를 채우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굳어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고, 긴장했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온유하신 부활의 주님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 시간을 보내는 제자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광야에서 주려 있던 사람들을 먹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 한 끼 밥상을 차려주시는 분입니다. 이 밥상은 따뜻한 밥상입니다. 이 아침 밥상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마련한 것을 먹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부활하신 주님의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부활하기 이전에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신 주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셨다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여 영화로운 몸을 입으신 주님께서 고기와 떡을 구워서 주시는 모습은 의외의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부활의 주님이 바로 이렇게 한없이 따뜻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먹여주실 때 배불리 먹여주시는 분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미리 준비해 놓으셨고, 뚜 기적적으로 잡은 물고기를 153마리나 되게 하셨는데 그 양은 7명의 제자들과 예수님이 먹고도 남은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0:10절 말씀처럼 양으로 생명을 얻데 하실 뿐 아니라 삶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얻는 복은 언제나 넘치는 복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가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넘치게 채워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4: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배고픔과 고단함을 아십니다. 실패로 마음이 가라앉은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11:28절 말씀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따끈한 떡과 생선을 가지고 우리를 먹이시고 쉬게 해 주십니다. 고후9:8절에도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상황을 바꾸어 본다면, 만약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아 녹초가 되어 물에서 올라오는데 자 전부 이리 모여라 나하고 기도하자, 너희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못잡은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회개할 것을 회개해야되라고 하셨다면 그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혹은 예수님이 대제사장 뜰에서 심문받을 때 세 번이나 자기를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베드로, 너 이리 좀 와, 너 양심이 있냐, 없냐?라고 얼마든지 나무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가슴에 묻어두고 부지런히 떡을 떼어 제자들을 먹이시고 생선도 구워서 먹이셨습니다. 추위에 떠는 지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사람에게 영은 육보다 중요합니다. 영적 문제가 육신적 문제를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 문제를 다루기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느끼는 요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배가 고픕니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병으로 고통을 받습니까? 그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일을 다루면 다룰수록 좀 더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굶주린 자에게 장황한 설교는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을 두고 성경공부를 한다면 그 또한 감동적이지 못합니다. 부활의 주님의 오늘 이 본문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포근하다, 훈훈하다, 정말 인간적이다라는 이런 느낌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어야 그 마음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부활의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이해하시기 위해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빈 그물을 가지고 땀을 흘릴 때든지,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올 때든지 주님은 항상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너무나 좋으신 인간적인 주님을 모시고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했습니까? 혼자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치거나 병들어 아픕니까? 혼자 흐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사명을 주시는 주님

12절에 보면 식사에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그분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이신 것을 금방 알아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로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영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한끼 밥을 먹어보지 않고는 결코 우리는 영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밥을 먹인 다음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15절에 보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전이나 이후나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한끼 밥을 먹여주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13: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그 상황은 말 그대로 먹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의 절박한 상황인 질병, 경제문제, 정신적 문제에 대해 간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고기잡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실패하고 있을 주님은 그 시간에 우리가 꼭 필요한 놀라운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다윗은 바로 하나님이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신에게 밥상을 차려주셨다고 말합니다. 23: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게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늘 동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란 시가 있습니다. 그 시 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쌍은 내것, 또 한쌍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멈춘 그곳에서

내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인생길에는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펐던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나 보세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그때

거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을 저를 떠나 계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셨고 너를 조금도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었느니라

그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참으로 좋으시고 인간적이며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십니다. 당신이 너무 지쳐 걸어가지 못할 때는 등에 업고 걸으시는 주님, 그분이 바로 여러분이 믿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일곱명의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새벽녘에 뭍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큰 고기 153마리나 잡아 그물이 찢어질 것 같이 가득 잡았습니다.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구워 아침 식사를 미리 준비하여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전이나 이후에 언제나 그들에게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갈릴리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풍성히 채워주시는 주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어 본 체험이 있어야 그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빈 그물일 때 가득 채움을 받은 기쁨은 더 큽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더라도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때 그때 필요를 풍성하게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날마다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며 주님 주시는 사명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수요설교 250521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본문: 21:1-14

제목: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I. 서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만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공식적으로 만나신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를 개인적으로 만났으며, 그 다음 열 제자들과 만나시고 나중에 도마가 돌아오자 열한 제자와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로 본문에서 일곱 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고향 갈릴리로 돌와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과 그 제자들 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이란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갈릴리 바닷가로 찾아오신 주님

부활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제자들은 갈릴리로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나타나신 것은 처음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이 있었던 곳이었고, 갈릴리는 제자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삶의 현장 속으로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 오신 것입니다.

 

7명의 제자들은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보고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부활도 보았고, 세상에 보내는 사명을 받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사명을 받기 전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일상생활을 살아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언제 오신다고 분명한 날짜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을 기다라다 보니 어느날 베드로가 나는 오늘 밤 고기잡으러 가겠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따라가겠다고 호응하며 그렇게 나머지 동료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갈릴리는 그들의 생활의 터전입니다. 왜 베드로가 고기잡으러 가자고 했을까요? 아마도 베드로와 그 제자들이 갈릴리로 와서 여러 날 지내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는지도 모릅니다. 조그만 고향 땅에 와서 빈둥거리며 논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주님이 오실 때 까지 고기를 잡아서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맨 먼저 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것이 예수 제자들이었습니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는 각자 생활의 터전에서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가장이라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열심히 일하며 신앙생활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탄 것입니다. 3년 만에 다시 배를 몰아 고기잡는 일을 하다보니 아마도 처음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고기잡던 방식대로 밤중에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따라 이상하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다 당겼다를 반복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아침이면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항구로 돌아가리라고 기대했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새벽녘에 지친 채로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본문 5절에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자들은 지친 음성으로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본문 6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다고 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아 항구로 들어오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요한이 저기 주님이 서 계신다라고 놀라서 외치니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른 후 급히 바다로 뛰어내렸고 다른 제자들은 물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육지로 올라왔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예배시간에만 계신다고 믿으면 우리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이 나타나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고기잡는 동안 밤새도록 해변에서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밤새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고기 잡다가 허탕만 치고 있는 곳에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잠잠히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가슴 뭉클한 장면입니까?

 

또 날이 새어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신 것을 보았다 해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내지 않으면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들과 함께 약 십리길을 동행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들은 낯선 사람이 옆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들과 함께 길을 가기 원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약성경 이야기를 듣고 그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이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부활 하신 주님의 모습은 주께서 눈을 열어주는 자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빈 그물을 채우는 비결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순종하였더니 작은 그물에서 큰 고기 153마리가 잡혔습니다. 그 푸덕거리는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상상만 해도 얼마나 신이 납니까?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밤새도록 빈 그물을 가지고 고생한 것은 나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생각하니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빈 그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홍해가 가로막는 위기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걸어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목이 타는 갈증을 겪었기에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먹을 것이 없어 베고픔을 느꼈기에 떡다섯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먹고도 남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12년 혈루병으로 고생했기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지 마자 낫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그물이 비어 있습니까?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까? 이럴 때 우리 인생의 바닷가에 서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 이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물이 비어 있는 사람이 더 빨리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을 들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빈 그릇을 채우는 비결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고기를 잘 잡는 자기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을 우습게 보고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빈 그물 인생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나도 그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부활의 주님을 속히 만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하늘의 부활을 빈 그물 가득 채우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3.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발견하자 급히 육지로 나왔습니다. 와서 보니 숯불이 피워져있고 그 위에는 떡과 생선이 구수한 냄새를 피우며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도에게 잡은 고기를 좀 더 가져 오게 하시고 고기를 더 많이 숯불에 얹어서 구우셨습니다. 준비가 다 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숯불 위에 있는 떡을 제자들에게 일일이 가져다 주셨습니다. 맛있게 익은 생선도 나눠주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어린 자식을 앉혀놓고 뭐든 더 먹이고 싶어하는 마치 어머니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 지치고, 배고프고, 한기를 느끼는 제자들에게 이만큼 반가운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 해가 두둥실 떠오르는 바닷가에서 따뜻하게 데운 떡과 생선으로 배를 채우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굳어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고, 긴장했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온유하신 부활의 주님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 시간을 보내는 제자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광야에서 주려 있던 사람들을 먹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 한 끼 밥상을 차려주시는 분입니다. 이 밥상은 따뜻한 밥상입니다. 이 아침 밥상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마련한 것을 먹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부활하신 주님의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부활하기 이전에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신 주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셨다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여 영화로운 몸을 입으신 주님께서 고기와 떡을 구워서 주시는 모습은 의외의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부활의 주님이 바로 이렇게 한없이 따뜻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먹여주실 때 배불리 먹여주시는 분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미리 준비해 놓으셨고, 뚜 기적적으로 잡은 물고기를 153마리나 되게 하셨는데 그 양은 7명의 제자들과 예수님이 먹고도 남은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0:10절 말씀처럼 양으로 생명을 얻데 하실 뿐 아니라 삶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얻는 복은 언제나 넘치는 복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가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넘치게 채워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4: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배고픔과 고단함을 아십니다. 실패로 마음이 가라앉은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11:28절 말씀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따끈한 떡과 생선을 가지고 우리를 먹이시고 쉬게 해 주십니다. 고후9:8절에도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상황을 바꾸어 본다면, 만약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아 녹초가 되어 물에서 올라오는데 자 전부 이리 모여라 나하고 기도하자, 너희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못잡은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회개할 것을 회개해야되라고 하셨다면 그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혹은 예수님이 대제사장 뜰에서 심문받을 때 세 번이나 자기를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베드로, 너 이리 좀 와, 너 양심이 있냐, 없냐?라고 얼마든지 나무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가슴에 묻어두고 부지런히 떡을 떼어 제자들을 먹이시고 생선도 구워서 먹이셨습니다. 추위에 떠는 지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사람에게 영은 육보다 중요합니다. 영적 문제가 육신적 문제를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 문제를 다루기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느끼는 요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배가 고픕니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병으로 고통을 받습니까? 그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일을 다루면 다룰수록 좀 더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굶주린 자에게 장황한 설교는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을 두고 성경공부를 한다면 그 또한 감동적이지 못합니다. 부활의 주님의 오늘 이 본문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포근하다, 훈훈하다, 정말 인간적이다라는 이런 느낌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어야 그 마음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부활의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이해하시기 위해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빈 그물을 가지고 땀을 흘릴 때든지,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올 때든지 주님은 항상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너무나 좋으신 인간적인 주님을 모시고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했습니까? 혼자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치거나 병들어 아픕니까? 혼자 흐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사명을 주시는 주님

12절에 보면 식사에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그분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이신 것을 금방 알아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로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영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한끼 밥을 먹어보지 않고는 결코 우리는 영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밥을 먹인 다음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15절에 보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전이나 이후나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한끼 밥을 먹여주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13: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그 상황은 말 그대로 먹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의 절박한 상황인 질병, 경제문제, 정신적 문제에 대해 간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고기잡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실패하고 있을 주님은 그 시간에 우리가 꼭 필요한 놀라운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다윗은 바로 하나님이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신에게 밥상을 차려주셨다고 말합니다. 23: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게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늘 동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란 시가 있습니다. 그 시 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쌍은 내것, 또 한쌍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멈춘 그곳에서

내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인생길에는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펐던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나 보세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그때

거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을 저를 떠나 계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셨고 너를 조금도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었느니라

그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참으로 좋으시고 인간적이며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십니다. 당신이 너무 지쳐 걸어가지 못할 때는 등에 업고 걸으시는 주님, 그분이 바로 여러분이 믿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일곱명의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새벽녘에 뭍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큰 고기 153마리나 잡아 그물이 찢어질 것 같이 가득 잡았습니다.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구워 아침 식사를 미리 준비하여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전이나 이후에 언제나 그들에게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갈릴리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풍성히 채워주시는 주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어 본 체험이 있어야 그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빈 그물일 때 가득 채움을 받은 기쁨은 더 큽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더라도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때 그때 필요를 풍성하게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날마다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며 주님 주시는 사명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수요설교 250521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본문: 21:1-14

제목: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I. 서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만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공식적으로 만나신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를 개인적으로 만났으며, 그 다음 열 제자들과 만나시고 나중에 도마가 돌아오자 열한 제자와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로 본문에서 일곱 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고향 갈릴리로 돌와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과 그 제자들 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이란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갈릴리 바닷가로 찾아오신 주님

부활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제자들은 갈릴리로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나타나신 것은 처음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이 있었던 곳이었고, 갈릴리는 제자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삶의 현장 속으로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 오신 것입니다.

 

7명의 제자들은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보고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부활도 보았고, 세상에 보내는 사명을 받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사명을 받기 전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일상생활을 살아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언제 오신다고 분명한 날짜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을 기다라다 보니 어느날 베드로가 나는 오늘 밤 고기잡으러 가겠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따라가겠다고 호응하며 그렇게 나머지 동료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갈릴리는 그들의 생활의 터전입니다. 왜 베드로가 고기잡으러 가자고 했을까요? 아마도 베드로와 그 제자들이 갈릴리로 와서 여러 날 지내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는지도 모릅니다. 조그만 고향 땅에 와서 빈둥거리며 논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주님이 오실 때 까지 고기를 잡아서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맨 먼저 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것이 예수 제자들이었습니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는 각자 생활의 터전에서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가장이라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열심히 일하며 신앙생활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탄 것입니다. 3년 만에 다시 배를 몰아 고기잡는 일을 하다보니 아마도 처음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고기잡던 방식대로 밤중에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따라 이상하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다 당겼다를 반복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아침이면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항구로 돌아가리라고 기대했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새벽녘에 지친 채로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본문 5절에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자들은 지친 음성으로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본문 6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다고 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아 항구로 들어오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요한이 저기 주님이 서 계신다라고 놀라서 외치니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른 후 급히 바다로 뛰어내렸고 다른 제자들은 물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육지로 올라왔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예배시간에만 계신다고 믿으면 우리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이 나타나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고기잡는 동안 밤새도록 해변에서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밤새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고기 잡다가 허탕만 치고 있는 곳에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잠잠히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가슴 뭉클한 장면입니까?

 

또 날이 새어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신 것을 보았다 해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내지 않으면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들과 함께 약 십리길을 동행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들은 낯선 사람이 옆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들과 함께 길을 가기 원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약성경 이야기를 듣고 그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이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부활 하신 주님의 모습은 주께서 눈을 열어주는 자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빈 그물을 채우는 비결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순종하였더니 작은 그물에서 큰 고기 153마리가 잡혔습니다. 그 푸덕거리는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상상만 해도 얼마나 신이 납니까?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밤새도록 빈 그물을 가지고 고생한 것은 나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생각하니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빈 그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홍해가 가로막는 위기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걸어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목이 타는 갈증을 겪었기에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먹을 것이 없어 베고픔을 느꼈기에 떡다섯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먹고도 남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12년 혈루병으로 고생했기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지 마자 낫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그물이 비어 있습니까?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까? 이럴 때 우리 인생의 바닷가에 서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 이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물이 비어 있는 사람이 더 빨리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을 들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빈 그릇을 채우는 비결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고기를 잘 잡는 자기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을 우습게 보고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빈 그물 인생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나도 그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부활의 주님을 속히 만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하늘의 부활을 빈 그물 가득 채우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3.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발견하자 급히 육지로 나왔습니다. 와서 보니 숯불이 피워져있고 그 위에는 떡과 생선이 구수한 냄새를 피우며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도에게 잡은 고기를 좀 더 가져 오게 하시고 고기를 더 많이 숯불에 얹어서 구우셨습니다. 준비가 다 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숯불 위에 있는 떡을 제자들에게 일일이 가져다 주셨습니다. 맛있게 익은 생선도 나눠주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어린 자식을 앉혀놓고 뭐든 더 먹이고 싶어하는 마치 어머니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 지치고, 배고프고, 한기를 느끼는 제자들에게 이만큼 반가운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 해가 두둥실 떠오르는 바닷가에서 따뜻하게 데운 떡과 생선으로 배를 채우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굳어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고, 긴장했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온유하신 부활의 주님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 시간을 보내는 제자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광야에서 주려 있던 사람들을 먹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 한 끼 밥상을 차려주시는 분입니다. 이 밥상은 따뜻한 밥상입니다. 이 아침 밥상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마련한 것을 먹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부활하신 주님의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부활하기 이전에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신 주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셨다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여 영화로운 몸을 입으신 주님께서 고기와 떡을 구워서 주시는 모습은 의외의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부활의 주님이 바로 이렇게 한없이 따뜻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먹여주실 때 배불리 먹여주시는 분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미리 준비해 놓으셨고, 뚜 기적적으로 잡은 물고기를 153마리나 되게 하셨는데 그 양은 7명의 제자들과 예수님이 먹고도 남은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0:10절 말씀처럼 양으로 생명을 얻데 하실 뿐 아니라 삶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얻는 복은 언제나 넘치는 복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가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넘치게 채워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4: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배고픔과 고단함을 아십니다. 실패로 마음이 가라앉은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11:28절 말씀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따끈한 떡과 생선을 가지고 우리를 먹이시고 쉬게 해 주십니다. 고후9:8절에도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상황을 바꾸어 본다면, 만약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아 녹초가 되어 물에서 올라오는데 자 전부 이리 모여라 나하고 기도하자, 너희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못잡은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회개할 것을 회개해야되라고 하셨다면 그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혹은 예수님이 대제사장 뜰에서 심문받을 때 세 번이나 자기를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베드로, 너 이리 좀 와, 너 양심이 있냐, 없냐?라고 얼마든지 나무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가슴에 묻어두고 부지런히 떡을 떼어 제자들을 먹이시고 생선도 구워서 먹이셨습니다. 추위에 떠는 지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사람에게 영은 육보다 중요합니다. 영적 문제가 육신적 문제를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 문제를 다루기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느끼는 요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배가 고픕니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병으로 고통을 받습니까? 그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일을 다루면 다룰수록 좀 더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굶주린 자에게 장황한 설교는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을 두고 성경공부를 한다면 그 또한 감동적이지 못합니다. 부활의 주님의 오늘 이 본문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포근하다, 훈훈하다, 정말 인간적이다라는 이런 느낌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어야 그 마음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부활의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이해하시기 위해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빈 그물을 가지고 땀을 흘릴 때든지,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올 때든지 주님은 항상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너무나 좋으신 인간적인 주님을 모시고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했습니까? 혼자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치거나 병들어 아픕니까? 혼자 흐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사명을 주시는 주님

12절에 보면 식사에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그분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이신 것을 금방 알아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로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영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한끼 밥을 먹어보지 않고는 결코 우리는 영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밥을 먹인 다음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15절에 보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전이나 이후나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한끼 밥을 먹여주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13: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그 상황은 말 그대로 먹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의 절박한 상황인 질병, 경제문제, 정신적 문제에 대해 간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고기잡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실패하고 있을 주님은 그 시간에 우리가 꼭 필요한 놀라운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다윗은 바로 하나님이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신에게 밥상을 차려주셨다고 말합니다. 23: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게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늘 동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란 시가 있습니다. 그 시 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쌍은 내것, 또 한쌍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멈춘 그곳에서

내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인생길에는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펐던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나 보세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그때

거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을 저를 떠나 계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셨고 너를 조금도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었느니라

그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참으로 좋으시고 인간적이며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십니다. 당신이 너무 지쳐 걸어가지 못할 때는 등에 업고 걸으시는 주님, 그분이 바로 여러분이 믿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일곱명의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새벽녘에 뭍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큰 고기 153마리나 잡아 그물이 찢어질 것 같이 가득 잡았습니다.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구워 아침 식사를 미리 준비하여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전이나 이후에 언제나 그들에게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갈릴리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풍성히 채워주시는 주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어 본 체험이 있어야 그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빈 그물일 때 가득 채움을 받은 기쁨은 더 큽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더라도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때 그때 필요를 풍성하게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날마다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며 주님 주시는 사명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수요설교 250521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본문: 21:1-14

제목: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I. 서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만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공식적으로 만나신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를 개인적으로 만났으며, 그 다음 열 제자들과 만나시고 나중에 도마가 돌아오자 열한 제자와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로 본문에서 일곱 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고향 갈릴리로 돌와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과 그 제자들 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이란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갈릴리 바닷가로 찾아오신 주님

부활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제자들은 갈릴리로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나타나신 것은 처음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이 있었던 곳이었고, 갈릴리는 제자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삶의 현장 속으로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 오신 것입니다.

 

7명의 제자들은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보고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부활도 보았고, 세상에 보내는 사명을 받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사명을 받기 전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일상생활을 살아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언제 오신다고 분명한 날짜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을 기다라다 보니 어느날 베드로가 나는 오늘 밤 고기잡으러 가겠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따라가겠다고 호응하며 그렇게 나머지 동료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갈릴리는 그들의 생활의 터전입니다. 왜 베드로가 고기잡으러 가자고 했을까요? 아마도 베드로와 그 제자들이 갈릴리로 와서 여러 날 지내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는지도 모릅니다. 조그만 고향 땅에 와서 빈둥거리며 논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주님이 오실 때 까지 고기를 잡아서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맨 먼저 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것이 예수 제자들이었습니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는 각자 생활의 터전에서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가장이라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열심히 일하며 신앙생활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탄 것입니다. 3년 만에 다시 배를 몰아 고기잡는 일을 하다보니 아마도 처음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고기잡던 방식대로 밤중에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따라 이상하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다 당겼다를 반복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아침이면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항구로 돌아가리라고 기대했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새벽녘에 지친 채로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본문 5절에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자들은 지친 음성으로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본문 6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다고 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아 항구로 들어오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요한이 저기 주님이 서 계신다라고 놀라서 외치니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른 후 급히 바다로 뛰어내렸고 다른 제자들은 물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육지로 올라왔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예배시간에만 계신다고 믿으면 우리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이 나타나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고기잡는 동안 밤새도록 해변에서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밤새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고기 잡다가 허탕만 치고 있는 곳에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잠잠히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가슴 뭉클한 장면입니까?

 

또 날이 새어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신 것을 보았다 해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내지 않으면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들과 함께 약 십리길을 동행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들은 낯선 사람이 옆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들과 함께 길을 가기 원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약성경 이야기를 듣고 그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이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부활 하신 주님의 모습은 주께서 눈을 열어주는 자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빈 그물을 채우는 비결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순종하였더니 작은 그물에서 큰 고기 153마리가 잡혔습니다. 그 푸덕거리는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상상만 해도 얼마나 신이 납니까?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밤새도록 빈 그물을 가지고 고생한 것은 나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생각하니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빈 그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홍해가 가로막는 위기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걸어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목이 타는 갈증을 겪었기에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먹을 것이 없어 베고픔을 느꼈기에 떡다섯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먹고도 남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12년 혈루병으로 고생했기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지 마자 낫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그물이 비어 있습니까?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까? 이럴 때 우리 인생의 바닷가에 서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 이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물이 비어 있는 사람이 더 빨리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을 들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빈 그릇을 채우는 비결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고기를 잘 잡는 자기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을 우습게 보고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빈 그물 인생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나도 그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부활의 주님을 속히 만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하늘의 부활을 빈 그물 가득 채우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3.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발견하자 급히 육지로 나왔습니다. 와서 보니 숯불이 피워져있고 그 위에는 떡과 생선이 구수한 냄새를 피우며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도에게 잡은 고기를 좀 더 가져 오게 하시고 고기를 더 많이 숯불에 얹어서 구우셨습니다. 준비가 다 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숯불 위에 있는 떡을 제자들에게 일일이 가져다 주셨습니다. 맛있게 익은 생선도 나눠주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어린 자식을 앉혀놓고 뭐든 더 먹이고 싶어하는 마치 어머니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 지치고, 배고프고, 한기를 느끼는 제자들에게 이만큼 반가운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 해가 두둥실 떠오르는 바닷가에서 따뜻하게 데운 떡과 생선으로 배를 채우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굳어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고, 긴장했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온유하신 부활의 주님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 시간을 보내는 제자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광야에서 주려 있던 사람들을 먹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 한 끼 밥상을 차려주시는 분입니다. 이 밥상은 따뜻한 밥상입니다. 이 아침 밥상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마련한 것을 먹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부활하신 주님의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부활하기 이전에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신 주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셨다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여 영화로운 몸을 입으신 주님께서 고기와 떡을 구워서 주시는 모습은 의외의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부활의 주님이 바로 이렇게 한없이 따뜻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먹여주실 때 배불리 먹여주시는 분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미리 준비해 놓으셨고, 뚜 기적적으로 잡은 물고기를 153마리나 되게 하셨는데 그 양은 7명의 제자들과 예수님이 먹고도 남은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0:10절 말씀처럼 양으로 생명을 얻데 하실 뿐 아니라 삶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얻는 복은 언제나 넘치는 복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가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넘치게 채워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4: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배고픔과 고단함을 아십니다. 실패로 마음이 가라앉은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11:28절 말씀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따끈한 떡과 생선을 가지고 우리를 먹이시고 쉬게 해 주십니다. 고후9:8절에도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상황을 바꾸어 본다면, 만약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아 녹초가 되어 물에서 올라오는데 자 전부 이리 모여라 나하고 기도하자, 너희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못잡은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회개할 것을 회개해야되라고 하셨다면 그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혹은 예수님이 대제사장 뜰에서 심문받을 때 세 번이나 자기를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베드로, 너 이리 좀 와, 너 양심이 있냐, 없냐?라고 얼마든지 나무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가슴에 묻어두고 부지런히 떡을 떼어 제자들을 먹이시고 생선도 구워서 먹이셨습니다. 추위에 떠는 지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사람에게 영은 육보다 중요합니다. 영적 문제가 육신적 문제를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 문제를 다루기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느끼는 요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배가 고픕니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병으로 고통을 받습니까? 그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일을 다루면 다룰수록 좀 더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굶주린 자에게 장황한 설교는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을 두고 성경공부를 한다면 그 또한 감동적이지 못합니다. 부활의 주님의 오늘 이 본문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포근하다, 훈훈하다, 정말 인간적이다라는 이런 느낌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어야 그 마음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부활의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이해하시기 위해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빈 그물을 가지고 땀을 흘릴 때든지,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올 때든지 주님은 항상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너무나 좋으신 인간적인 주님을 모시고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했습니까? 혼자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치거나 병들어 아픕니까? 혼자 흐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사명을 주시는 주님

12절에 보면 식사에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그분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이신 것을 금방 알아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로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영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한끼 밥을 먹어보지 않고는 결코 우리는 영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밥을 먹인 다음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15절에 보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전이나 이후나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한끼 밥을 먹여주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13: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그 상황은 말 그대로 먹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의 절박한 상황인 질병, 경제문제, 정신적 문제에 대해 간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고기잡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실패하고 있을 주님은 그 시간에 우리가 꼭 필요한 놀라운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다윗은 바로 하나님이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신에게 밥상을 차려주셨다고 말합니다. 23: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게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늘 동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란 시가 있습니다. 그 시 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쌍은 내것, 또 한쌍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멈춘 그곳에서

내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인생길에는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펐던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나 보세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그때

거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을 저를 떠나 계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셨고 너를 조금도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었느니라

그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참으로 좋으시고 인간적이며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십니다. 당신이 너무 지쳐 걸어가지 못할 때는 등에 업고 걸으시는 주님, 그분이 바로 여러분이 믿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일곱명의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새벽녘에 뭍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큰 고기 153마리나 잡아 그물이 찢어질 것 같이 가득 잡았습니다.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구워 아침 식사를 미리 준비하여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전이나 이후에 언제나 그들에게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갈릴리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풍성히 채워주시는 주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어 본 체험이 있어야 그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빈 그물일 때 가득 채움을 받은 기쁨은 더 큽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더라도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때 그때 필요를 풍성하게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날마다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며 주님 주시는 사명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수요설교 250521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본문: 21:1-14

제목: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I. 서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만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공식적으로 만나신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를 개인적으로 만났으며, 그 다음 열 제자들과 만나시고 나중에 도마가 돌아오자 열한 제자와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로 본문에서 일곱 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고향 갈릴리로 돌와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과 그 제자들 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이란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갈릴리 바닷가로 찾아오신 주님

부활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제자들은 갈릴리로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나타나신 것은 처음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이 있었던 곳이었고, 갈릴리는 제자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삶의 현장 속으로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 오신 것입니다.

 

7명의 제자들은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보고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부활도 보았고, 세상에 보내는 사명을 받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사명을 받기 전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일상생활을 살아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언제 오신다고 분명한 날짜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을 기다라다 보니 어느날 베드로가 나는 오늘 밤 고기잡으러 가겠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따라가겠다고 호응하며 그렇게 나머지 동료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갈릴리는 그들의 생활의 터전입니다. 왜 베드로가 고기잡으러 가자고 했을까요? 아마도 베드로와 그 제자들이 갈릴리로 와서 여러 날 지내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는지도 모릅니다. 조그만 고향 땅에 와서 빈둥거리며 논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주님이 오실 때 까지 고기를 잡아서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맨 먼저 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것이 예수 제자들이었습니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는 각자 생활의 터전에서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가장이라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열심히 일하며 신앙생활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탄 것입니다. 3년 만에 다시 배를 몰아 고기잡는 일을 하다보니 아마도 처음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고기잡던 방식대로 밤중에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따라 이상하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다 당겼다를 반복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아침이면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항구로 돌아가리라고 기대했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새벽녘에 지친 채로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본문 5절에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자들은 지친 음성으로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본문 6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다고 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아 항구로 들어오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요한이 저기 주님이 서 계신다라고 놀라서 외치니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른 후 급히 바다로 뛰어내렸고 다른 제자들은 물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육지로 올라왔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예배시간에만 계신다고 믿으면 우리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이 나타나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고기잡는 동안 밤새도록 해변에서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밤새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고기 잡다가 허탕만 치고 있는 곳에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잠잠히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가슴 뭉클한 장면입니까?

 

또 날이 새어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신 것을 보았다 해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내지 않으면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들과 함께 약 십리길을 동행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들은 낯선 사람이 옆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들과 함께 길을 가기 원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약성경 이야기를 듣고 그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이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부활 하신 주님의 모습은 주께서 눈을 열어주는 자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빈 그물을 채우는 비결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순종하였더니 작은 그물에서 큰 고기 153마리가 잡혔습니다. 그 푸덕거리는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상상만 해도 얼마나 신이 납니까?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밤새도록 빈 그물을 가지고 고생한 것은 나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생각하니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빈 그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홍해가 가로막는 위기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걸어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목이 타는 갈증을 겪었기에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먹을 것이 없어 베고픔을 느꼈기에 떡다섯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먹고도 남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12년 혈루병으로 고생했기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지 마자 낫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그물이 비어 있습니까?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까? 이럴 때 우리 인생의 바닷가에 서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 이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물이 비어 있는 사람이 더 빨리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을 들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빈 그릇을 채우는 비결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고기를 잘 잡는 자기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을 우습게 보고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빈 그물 인생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나도 그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부활의 주님을 속히 만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하늘의 부활을 빈 그물 가득 채우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3.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발견하자 급히 육지로 나왔습니다. 와서 보니 숯불이 피워져있고 그 위에는 떡과 생선이 구수한 냄새를 피우며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도에게 잡은 고기를 좀 더 가져 오게 하시고 고기를 더 많이 숯불에 얹어서 구우셨습니다. 준비가 다 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숯불 위에 있는 떡을 제자들에게 일일이 가져다 주셨습니다. 맛있게 익은 생선도 나눠주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어린 자식을 앉혀놓고 뭐든 더 먹이고 싶어하는 마치 어머니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 지치고, 배고프고, 한기를 느끼는 제자들에게 이만큼 반가운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 해가 두둥실 떠오르는 바닷가에서 따뜻하게 데운 떡과 생선으로 배를 채우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굳어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고, 긴장했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온유하신 부활의 주님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 시간을 보내는 제자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광야에서 주려 있던 사람들을 먹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 한 끼 밥상을 차려주시는 분입니다. 이 밥상은 따뜻한 밥상입니다. 이 아침 밥상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마련한 것을 먹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부활하신 주님의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부활하기 이전에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신 주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셨다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여 영화로운 몸을 입으신 주님께서 고기와 떡을 구워서 주시는 모습은 의외의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부활의 주님이 바로 이렇게 한없이 따뜻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먹여주실 때 배불리 먹여주시는 분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미리 준비해 놓으셨고, 뚜 기적적으로 잡은 물고기를 153마리나 되게 하셨는데 그 양은 7명의 제자들과 예수님이 먹고도 남은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0:10절 말씀처럼 양으로 생명을 얻데 하실 뿐 아니라 삶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얻는 복은 언제나 넘치는 복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가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넘치게 채워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4: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배고픔과 고단함을 아십니다. 실패로 마음이 가라앉은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11:28절 말씀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따끈한 떡과 생선을 가지고 우리를 먹이시고 쉬게 해 주십니다. 고후9:8절에도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상황을 바꾸어 본다면, 만약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아 녹초가 되어 물에서 올라오는데 자 전부 이리 모여라 나하고 기도하자, 너희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못잡은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회개할 것을 회개해야되라고 하셨다면 그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혹은 예수님이 대제사장 뜰에서 심문받을 때 세 번이나 자기를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베드로, 너 이리 좀 와, 너 양심이 있냐, 없냐?라고 얼마든지 나무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가슴에 묻어두고 부지런히 떡을 떼어 제자들을 먹이시고 생선도 구워서 먹이셨습니다. 추위에 떠는 지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사람에게 영은 육보다 중요합니다. 영적 문제가 육신적 문제를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 문제를 다루기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느끼는 요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배가 고픕니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병으로 고통을 받습니까? 그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일을 다루면 다룰수록 좀 더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굶주린 자에게 장황한 설교는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을 두고 성경공부를 한다면 그 또한 감동적이지 못합니다. 부활의 주님의 오늘 이 본문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포근하다, 훈훈하다, 정말 인간적이다라는 이런 느낌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어야 그 마음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부활의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이해하시기 위해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빈 그물을 가지고 땀을 흘릴 때든지,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올 때든지 주님은 항상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너무나 좋으신 인간적인 주님을 모시고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했습니까? 혼자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치거나 병들어 아픕니까? 혼자 흐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사명을 주시는 주님

12절에 보면 식사에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그분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이신 것을 금방 알아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로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영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한끼 밥을 먹어보지 않고는 결코 우리는 영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밥을 먹인 다음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15절에 보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전이나 이후나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한끼 밥을 먹여주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13: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그 상황은 말 그대로 먹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의 절박한 상황인 질병, 경제문제, 정신적 문제에 대해 간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고기잡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실패하고 있을 주님은 그 시간에 우리가 꼭 필요한 놀라운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다윗은 바로 하나님이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신에게 밥상을 차려주셨다고 말합니다. 23: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게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늘 동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란 시가 있습니다. 그 시 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쌍은 내것, 또 한쌍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멈춘 그곳에서

내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인생길에는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펐던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나 보세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그때

거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을 저를 떠나 계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셨고 너를 조금도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었느니라

그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참으로 좋으시고 인간적이며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십니다. 당신이 너무 지쳐 걸어가지 못할 때는 등에 업고 걸으시는 주님, 그분이 바로 여러분이 믿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일곱명의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새벽녘에 뭍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큰 고기 153마리나 잡아 그물이 찢어질 것 같이 가득 잡았습니다.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구워 아침 식사를 미리 준비하여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전이나 이후에 언제나 그들에게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갈릴리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풍성히 채워주시는 주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을 먹어 본 체험이 있어야 그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빈 그물일 때 가득 채움을 받은 기쁨은 더 큽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더라도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때 그때 필요를 풍성하게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날마다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며 주님 주시는 사명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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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믿음으로 의롭게 됨 갈2:11-16 2025-07-02 홍기칠 목사
62 하나님의 계시로 받은 사도직과 복음 갈1:11-24 2025-06-18 홍기칠 목사
61 복음의 유일성 갈1:6-10 2025-06-11 홍기칠 목사
60 그리스도의 복음 갈1:1-5 2025-06-04 홍기칠 목사
59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21:15-25 2025-05-28 홍기칠 목사
58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요21:1-14 2025-05-21 홍기칠 목사
57 부활의 주님을 만나십시오 요20:19-31 2025-05-14 홍기칠 목사
56 숨은 제자 요19:31-42 2025-05-07 홍기칠 목사
55 다 이루었다 요19:17-30 2025-04-30 홍기칠 목사
54 빌라도 재판과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요18:28-19:16 2025-04-23 홍기칠 목사
53 베드로의 배반 요18:12-27 2025-04-16 홍기칠 목사
52 예수님의 고별설교 요17:6-26 2025-04-09 홍기칠 목사
51 하나님께 영광 요17:1-5 2025-03-26 홍기칠 목사
50 20250319 수요설교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16-33)
49 20250312 수요설교 (성령께서 하시는 일/요1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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