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복음의 유일성
2025-06-12 13:18:21
홍기칠
조회수   37
설교본문 갈1:6-10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06-11

수요설교 250611 복음의 유일성

본문: 1: 6-10

제목: 복음의 유일성

 

I. 서론

지난 주에 갈 1:1-5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은 사람들에게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이 전한 순수한 복음을 받았으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들어와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말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자 급하게 바른 복음을 다시 증거하고자 갈라디아 서신을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주셨으니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있기를 축복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세세토록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다른 복음을 따라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는 충격적인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II. 본론

1. 갈라디아 교인들의 배신

본문 6절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상하게 여긴다라는 말은 단순히 놀란 정도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정확히 전했는데도 왜 그 복음을 팽개치고 다른 복음을 따라가느냐, 그럴 수 있느냐?”라고 강하게 책망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처음에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이 크게 기뻐하고 감격하며 환영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안과 질환으로 힘들어 했는데 갈4:15절에 보면 그들의 눈이라도 빼어 바울에게 주고 싶어했을 정도로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과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하나님께서 분명한 구원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들을 부르셨는데 이 은혜의 복음을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고 있다고 하니 바울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여기서 속히 떠났다는 말은 충성대상을 바꾼다는 말로 군인이 근무지를 이탈하거나 탈영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즉 갈라디아 교인들이 군인이 군대를 이탈하여 탈영한 자와 같이 은혜의 나라를 배반하고 율법의 멍에를 지는 율법의 나라로 간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이 이상한 이유로 본문 6절에 두 가지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첫째, 다른 복음을 따라가는 것은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라고 했는데 그들은 단순한 교리나 사상만 버린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비인격적인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매우 인격적인 것이며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셨다는 좋은 소식인데 그들이 다른 복음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다른 복음을 따라가는 것은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5:4절에 율법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1절에도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라고 했습니다. 안디옥에서 돌아온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버리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그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싸고 자신이 복음을 전한 일이 헛수고가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얼마나 허탈하고 화가 나서 몸부림치고 있었겠습니까?

 

2. 다른 복음

그렇다면 갈라디아 성도들을 넘어뜨린 다른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거짓 유대선생들이 나타나 다른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예수 믿고 난 후에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들에게 복음을 배웠는데, 원래 사도들에게 배운대로 갈라디아 교인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이방인이었던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을 빼고, 은혜와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가르친 이 구원은 초보단계에 불과하고 이것과 더불어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온전한 복음이 된다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짓선생들의 교훈이 왜 잘못되었습니까?

첫째로, 이방인도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아야 구원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유대인이 되고 난 다음에 믿어야 구원얻을 수 있다는 논리가 되는 것입니다. 서구 기독교가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칠 때 실패한 것 중의 하나가 자신들에게 익숙한 고유문화까지 복음인 것처럼 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자신과 똑같은 존재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부부 사이에도 같이 살면서 서로 자신의 생각과 똑같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부라도 각각 다른 존재이고 살아온 환경과 문화 때문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억지로 자기 생각대로 맞추라고 우기면 문제가 생깁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까지 전하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상대화하고 모든 종교가 동일하게 구원에 이르는 유효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오늘날의 종교다원주의 주장도 이런 측면에서 수용할 수 없습니다. 이방인이라도 복음으로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처럼 된 후에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은 다른 복음인 것입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 내 방식대로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그들의 부름대로 다양성을 살리는 모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진리를 변질시켜서는 안됩니다. 거짓 선생들은 이방인들을 유대전통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 다음에 복음을 믿어야 된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결국 유대인들의 예루살렘교회는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선교의 영광을 안디옥교회로 넘겨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둘째, 거짓선생들은 복음에 율법준수를 더 추가했습니다. 구약성경은 우리에게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등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들도 하나같이 불완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들을 통해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런데 거짓선생들은 믿음의 조상들도 지키지 못한 율법을 지켜야 구원이 온전해진다고 하니 성도들을 멸망의 길로 내모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짓 유대주의자들이 십자가를 배척하고 행위로 구원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이 불충분한 것처럼 왜곡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은 외국에서 들어온 이질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불교나 힌두교나 이슬람교의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부의 왜곡이었습니다. 자칭 그리스도인 형제들이라고 하는 유대인 거짓 선생에 의해 복음을 왜곡시킨 것입니다. 오늘날의 이단도 모두 복음을 빙자하여 복음을 왜곡시켜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이 율법의 요구를 다 성취하셨다고 했습니다. 또한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형벌과 진노를 십자가에서 주님의 몸으로 친히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다 지켜서 구원받을 수 없는 우리를 위해 스스로 완전한 의가 되셔서 우리를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율법을 지키도록 요구하는 것은 주님이 완성해 놓으신 율법을 깨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선을 행하라는 요구는 예수님의 선행의 완전한 공로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회사를 보면, 거듭 다른 복음이 나타났습니다. 초대교회 뿐 아니라 다른 시대에도 수없이 나타났습니다. 왜 다른 복음이 교회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나면서부터 행위 구원론자이며 율법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자기중심성과 종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기중심성이 죄를 만들고 이 죄가 왜곡된 종교성과 만날 때 다른 복음이 나오게 됩니다. 자신의 종교성을 적절히 만족시키고 자기중심성을 충족시켜주는 본성들이 결합될 때 다른 복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치 성경의 포도원의 품꾼 비유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은혜로 구원하셨다고 할 때는 기쁘지만, 나보다 훨씬 못한 형편에 있는 사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할 때는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말로 표현은 못하지만 마음 속으로 저 사람과 내가 똑 같아? 나를 똑같이 취급하는 거야?”라고 마음 속에 불평이 생깁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죄성입니다. 우리는 자기중심성에 익숙해져서 다른 사람과 나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의 공로를 첨가해서 나를 다른 사람과 구별하고 나를 더 높은 자리에 앉히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기중심성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당연히 집사, 권사, 장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직분은 다 귀중합니다. 그러나 만약 남들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인정받기 위해 직분을 받으려고 한다면 이는 자기중심성을 충족시켜 신앙은 껍데기만 남게 되고 결국 주님 앞에서 책망받게 될 뿐입니다. 이런 자기중심성에서 나와야 다른 복음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 직분은 다른 사람을 섬기고 유익하게 하는 봉사와 헌신의 직분일 뿐입니다.

 

3. 참 복음

사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거짓 선생인 유대주의자들이 바울의 사도권과 바울이 전한 복음의 진정성과 신뢰성을 공격하기 위해 다른 복음을 제시하여 마치 경쟁적인 두 복음이 존재하는 것처럼 갈라디아 교인들을 혼란에 빠뜨린 것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 예수님이 오신 이후 2천년 동안 교회가 전파해 온 복음,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통해 만나는 복음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참복음은 모든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복음이란 별칭도 사실은 복음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복음이며 그분이 우리에게 전한 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종노릇하며 죄 가운데서 살다가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아 마땅한 우리를 살리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떠났던 우리가 다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시고, 모든 죄를 사하시고 사탄의 권세를 꺾으심으로 지옥형벌에서 벗어나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즉 예수가 그리스도 되신 것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이 참된 복음입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그대로 믿습니까?

4. 다른 복음에 대한 단호한 저주의 선언

본문 7절에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8절에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라고 단호하게 경고했습니다. 여기서 천사가 와서 복음 전할지라도라고 하는 말은 그런 일은 없겠지만 설혹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라고 강조하는 말입니다. 또는 천사처럼 사람보기에 말이나 행동이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와서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는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단들은 천사처럼 복음을 왜곡해 그럴듯하게 말함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기도 합니다.

9절에도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두 번이나 단호하고 분명하게 다른 복음은 없고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왜 이렇게 강하게 경고했을까요?

여기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후1:9절에서 바울은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음을 거절하면, 그것은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게 됩니다. 그 극심한 형벌의 고통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하지 않습니까? 이 구절에서 말하는 저주가 거짓 선생들뿐 아니라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도 임한다고 말한 이유는 바울이 고전16:22에서 같은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복음을 거절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거절하는 것이고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지옥형벌의 저주 아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영생을 거부하는 매스컴의 쾌락의 홍수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저주를 보여줄 때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으로 천둥소리를 듣거나, 지진을 느끼것 같은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그냥 하품하면서 본문 8,9절의 저주를 아무렇지 않게 대충 읽고 넘겨서는 절대 안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그 저주가 반드시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 믿지 않을 때 저주가 임한다는 선포를 하는 것에 대해 다른 종교인들이나 심지어 교인들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세계교회협의회인 WCC는 보편적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합니다. 즉 어떤 종교이든지 궁극적으로 선행과 인간사랑을 장려하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는 길은 달라도 모두 구원이라는 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우리 모두 다른 길로 천국에 가고 있으나 목적지는 같다고 주장합니다. 이 만인구원설은 대중적이고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형태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만인구원설이 없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면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성경적 가르침은 없습니다.

 

이러한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사는 성도일수록 영혼을 살리는 길은 하나밖에 없음을 깨닫고 절대 다른 복음이 있다는 말에 현혹되거나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14:6절에 분명히 주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고 선포했습니다. 베드로도 행4:12절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 댓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5. 생명을 살리는 복음증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

본문 10절에 바울사도는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증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사람입니다.본문 8-9절의 영원한 형벌을 받는 저주의 선포를 좋아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높이고 그 분의 구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거짓 복음에 반대합니다. 그것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기꺼이 불쾌한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그들의 구원을 이루고 덕을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수단이 될 때에만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진리 때문에 다른 사람과 갈등이 일어나고 아프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편에 서서 사람을 잠시 기쁘게 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고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 되신다는 복음의 유일성을 선포했습니다.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믿고 영접할 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 복음 외에 다른 것을 전하는 것은 저주를 받게 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어느 길이든 그 종교의 교리를 따라 선행을 행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하거나 복음을 왜곡하는 이단들이 있는데 이것은 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이므로 이를 수용하면 구원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저주를 받는다고 단호히 말합니다.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 때,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들이 오직 복음증거라는 하나로 통일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알 때 우리는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때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도 기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한 분만을 바라보고 증거하는 삶에서 오는 깊은 기쁨은 그 모든 것을 감수할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따르는 것이 최선의 삶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만 주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가 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힘을 잃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을 좋게 하려고 복음을 변질시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충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핍박받는 것이 두려워 분명한 복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감추는 경우가 없습니까? 오직 예수, 오직 그리스도의 진리와 생명의 길을 떠나 다른 복음으로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바울사도처럼 복음의 유일성을 다급히 외치는 열정이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 모두 바울처럼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모든 문제의 해결자,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담대히 선포하는 복음의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보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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