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설교본문 | 요19:31-42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설교일 | 2025-05-07 |
수요설교 250507 숨은 제자
본문: 요19:31-42
제목: 숨은 제자
I. 서론
예수님께서 가상 칠언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장례를 하는 과정입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요즘 국회의원과 같은 70인 공회원이었기 때문에 자기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믿다가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예수님이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확신하게 되어 그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 둘은 숨은 제자였는데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자기 신분을 당당히 드러내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예수님의 장례는 제자들이 주선해서 치러야 마땅하지만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십자가 밑에 사도요한과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이모와 막달라 마리아만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의 장례과정에서 이 숨은 제자들의 역할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 거짓된 위선
본문 31절을 보면 “ 이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토요일이 안식일이기 때문에 금요일은 안식일을 준비하는 예비일입니다. 지난 주일 말씀드린대로 유대인들은 해질 때부터 다음 날 해질때까지를 하루로 계산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때가 금요일 오후 3시였으니까 해가 지는 7시 경이 되면 토요일 안식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안식일이 큰 날이라는 의미는 유월절은 무교절을 포함하여 7일간 지속되는데 유월절 첫날과 마지막 날은 성회로 구별되는데 그 중에도 시작하는 첫날을 큰 날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두는 ㄱ럿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신21:22,23절을 보면 나무에 달린 자 마다 저주를 받은자라 했고 수10:27절에도 나무에 달려있는 자를 밤새도록 놓아두면 땅이 더러워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밤새워 십자가에 사람을 달아놓지 않습니다. 흉악범을 십자가에 매달아 놓으면 길게는 일주일 까지 숨이 붙어 있다고 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히면 피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이 아니고 서서히 한 방울씩 떨어지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당하며 여러 날 동안 지옥의 저주를 맛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종교관습에 따라 그 시체를 해가 지기 전에 빨리 치워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만약 그때까지 죽지 않았으면 그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달라고 한 것입니다. 왜 다리를 꺾어 달라고 했을까요?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는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키면서 가슴을 펴고 호흡을 합니다. 그러면 못 박힌 발의 통증 때문에 이내 다시 몸이 체중 때문에 밑으로 축 처집니다. 다시말해서 순전히 다리 힘으로 호흡하면서 생명을 연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리를 부러뜨리면 죄수는 더 이상 호흡을 할 수 없어 곧 죽고 맙니다. 로마식대로 하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은 장사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위에 그대로 내버려두어서 부패하게 하든지, 십자가에서 끌어내린 뒤 땅바닥에 던져놓으면 새나 짐승들이 뜯어 먹게 합니다. 절대 장사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대 지도자들은 다리를 꺾어서라도 안식일이 되기 전에 빨리 죽여 장사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6시간 만에 돌아가셨는데 그 전에 많이 금식하셨고 많은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돌아가신 것입니다. 32절에 보면 로마군병들이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두 강도는 그 다리를 꺾어 시체를 처리 했습니다.
2. 구약 예언의 성취
유대인들의 요청을 받고 빌라도는 군인들을 보내 죄수들의 다리를 꺾게 했습니다. 그들이 와서 보니 예수님 좌우편 강도들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리를 꺾었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군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아주 엉뚱한 두 가지 행동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죽었다고 해도 다리를 꺾으라는 명령을 받은 이상 예수님의 다리를 꺾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이런 행동들은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군인들이 즉흥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런 생각없이 한 행동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취되게 하는 기막힌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33절에 보니“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다리를 꺾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36절을 보면 “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강도들의 다리뼈는 꺾었는데 예수님의 다리뼈는 꺾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시34:20절에 “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라고 예언했습니다. 또한 출12:46에 “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라고 했습니다. 유월절 밤에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되 그 고기를 집 밖으로 내지말고 뼈도 꺾지말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민9:12절에도 유월절에 어린양을 잡아 자기 대신 피를 흘리게 하고 그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절대로 뼈를 꺽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즉 유월절 어린 양은 뼈를 꺾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5:7절에는 구약의 유월절 어린 양은 바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 어린 양이었습니다.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박혔으나 그의 뼈는 꺾이지 않아야만 구약성경에 예언한 그대로 죽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전혀 모르는 군인들에 의해 구약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본문 37절에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고 한 예언은 슥12:10절에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라고 예언한 것이 성취된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메시아를 찌른 자들이 그를 볼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예수님을 찌른 로마군인들, 유대인,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예언대로 로마군인들이 예수님이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전혀 모르는 군인들의 생각없는 행동으로 하나하나 성취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처럼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모두 구약예언이 성취된 증거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 하나도 우연히 된 것이 없고 전부가 예언의 성취라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예수님이 부활해서 성령을 주시기 전까지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으나 성령을 받은 후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성경말씀이 내 삶가운데 실현되려면 깨닫게 해주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씀이 우리 삶에 적용되려면 성경을 묵상하고 암송해야 합니다. 요한이 가장 많이 인용한 성경은 구약의 시편입니다. 16번의 인용 중 10번이 바로 시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다윗 왕의 계보에서 나온 메시아임을 증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암송하고 있는 구약이 시편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3. 확실히 죽으셨다는 증언
34절에 보면 “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고 했습니다. 한 군병이 예수님이 진짜 죽었는지 다시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는데 피와 물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기절한 상태에 있는 사람도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면 꿈틀거리지만 예수님은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이미 숨을 거두신 것입니다. 그런데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니 피와 물이 나왔다고 했는데 학자들에 의하면 심장을 찌르면 피와 물이 동시에 나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로마군병이 옆구리를 창으로 찌를 때 심장이 파열되어 피와 물이 나온 것입니다.
피는 속죄를 가리키는 것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죄를 속죄하시는 수단이 됩니다. 한편 물은 더러운 것을 씻는 성결의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흘리신 피와 물은 우리를 용서하시는 피와 우리를 씻는 물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죽음이 갖는 의미입니다. 슥13:1절에 “ 그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외 더러움을 씻는 샘이 어디서 열렸습니까? 예수님이 골고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날 열렸습니다. 그 샘에서 나오는 피와 물이 모든 인류의 죄를 씻고 더러움을 씻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피와 물을 쏟으셨음을 본문 35절에서 증언합니다.
35절에 보면 “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중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를 본 자란 이 요한복음을 쓴 사도요한입니다. 그가 예수님 십자가 밑에 가장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로마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를 때 피와 물이 나온 것을 직접 보았다고 증언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완전히 죽었는데 심장이 파열할 만큼 고통스럽게 죽었다는 것을 본대로 증언한 것입니다.
이러한 증언에는 더 중요한 배후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의 무리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실제 몸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 가상의 육체를 자기고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가상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이 어떻게 죽을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런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더러 있었기 때문에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특별히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몸을 가졌으며 우리와 똑같이 피와 물을 쏟으면서 확실히 죽었음을 증언해야 했습니다. 사도요한은 ‘증언한다’는 말을 요한복음에서 47번이나 사용합니다. 여기에는 사실 그대로 내가 본대로 전하니 이 예수님의 죽음을 너희들이 그대로 믿으면 구원받고 믿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4. 숨은 제자를 통한 하나님의 섭리
본문 38절 이하에 예수님의 장례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장례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두 사람이 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입니다. 모두 당시 유대사회에서 대단히 지위가 높은 지도자급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이고 니고데모도 산헤드린 공회 71명 중에 속하는 귀족들이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국회의원과 같습니다. 이들은 평소에는 자기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는 제자였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을 십자가 형에 처하려는 유대 지도자들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거기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38절에 “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독 허락하는 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장례는 굴을 파서 그 굴에다 시체를 안장하는 경우도 있고 자연동굴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이 마땅치 않을 때는 벽돌을 쌓아서 묘실을 만드는데 그 때 상당한 돈이 듭니다. 그래서 묘실을 만들어 놓으면 그곳에 가족 전체을 위한 가족묘가 되는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면 그 뼈를 추려서 항아리에 담아 둡니다. 온 가족이 공동묘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고 요한마저 가난한 사람이어서 장례치를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부자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숨은 제자로 빌라도 총독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말입니다. 빌라도는 그가 유대인의 고위직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대로 허락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로마입장에서는 정치범이기 때문에 시체를 달라하면 반역죄로 처벌 될 수도 있는 위험한 부탁인 것입니다. 그는 만일의 경우 예수님과 같이 죽어도 좋고, 자기의 직위를 버릴 각오를 하고 부탁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저 입으로 예수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 때문에 필요하다면 우리의 지위나 물질적 손해도 기꺼이 감수하는 실천적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이러한 행동도 사53:9절에 “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라는 예언이 성취되는 사건이었습니다.
본문 39절에 “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고 했습니다. 요3장에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밤에 찾아와서 중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간 사람입니다. 그는 그날 밤 예수님에게서 무언가 큰 감동을 받고 돌아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나중에 가끔씩 이름이 등장하면서 예수님 편을 듭니다. 금방 드러나지는 않지만 서서히 그의 영혼이 중생받은 자로 나아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하는 많은 향품을 가져왔습니다. 몰약과 침향 섞는 것은 고급 향이면서 방부제역할을 하는 것인데 100리트라를 가지고 왔습니다. 요즈음으로 환산하면 약 32kg 이나 되는 많은 양을 가져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어른 몸무게의 절반에 가까운 엄청난 양의 향로를 가지고 온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체는 이 방부제를 온몸에 집어 넣었기 때문에 방부처리가 되어 썪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세마포로 싸서 예수님의 시체를 아리마대 요셉 소유의 돌무덤에 안치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비참했는데 장례는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때문에 아주 정성껏 치를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예수님을 쌌던 수건은 머리 편에 세마포는 발편에 가지런히 개켜 있었습니다. 이처럼 숨은 제자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의 헌신적인 봉사로 예수님의 시체는 썩지 않고 부활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숨어서 주를 따르던 사람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40-42절을 보면 예수님이 시체를 유대인의 장례법에 따라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싸서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를 위해 미리 마련해 두었던 새 무덤에 장례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침 그 무덤이 가까이 있어서 안식일 직전 예비일에 장례를 치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니고데모가 그 많은 양의 향료를 짧은 시간 안에 준비했던 것도 기적이고, 요셉이 한번도 사람을 묻지 않은 새 무덤을 십자가가 있던 골고다 가까이에 가지고 있었던 것도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도록 세밀하게 섭리하셨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업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결국 장사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죽으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죄인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자신이 대신 받으면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희생제물로 자기를 바치면서 죽으셨고, 세상의 모든 죄값을 치르면서 죽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하신 일을 보다 잘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꾸준히 읽고 암송해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 삶의 원리가 되려면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우리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주님이 지시라고 하면 어떤 십자가라도 지고 주님을 따르며 헌신해야 합니다.
숨은 제자 아리마애 요셉과 니고데모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예수님의 장례를 존귀하게 정성껏 치렀습니다. 이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올바른 신앙고백을 하며 주님을 위해서라면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는 자세로 주님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주님의 십자가 은총에 대한 놀라운 그 사랑에 감격하여 우리 삶을 바쳐서 주님을 증거하고 나타내는 복음의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수요설교 250507 숨은 제자
본문: 요19:31-42
제목: 숨은 제자
I. 서론
예수님께서 가상 칠언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장례를 하는 과정입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요즘 국회의원과 같은 70인 공회원이었기 때문에 자기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믿다가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예수님이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확신하게 되어 그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 둘은 숨은 제자였는데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자기 신분을 당당히 드러내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예수님의 장례는 제자들이 주선해서 치러야 마땅하지만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십자가 밑에 사도요한과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이모와 막달라 마리아만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의 장례과정에서 이 숨은 제자들의 역할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 거짓된 위선
본문 31절을 보면 “ 이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토요일이 안식일이기 때문에 금요일은 안식일을 준비하는 예비일입니다. 지난 주일 말씀드린대로 유대인들은 해질 때부터 다음 날 해질때까지를 하루로 계산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때가 금요일 오후 3시였으니까 해가 지는 7시 경이 되면 토요일 안식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안식일이 큰 날이라는 의미는 유월절은 무교절을 포함하여 7일간 지속되는데 유월절 첫날과 마지막 날은 성회로 구별되는데 그 중에도 시작하는 첫날을 큰 날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두는 ㄱ럿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신21:22,23절을 보면 나무에 달린 자 마다 저주를 받은자라 했고 수10:27절에도 나무에 달려있는 자를 밤새도록 놓아두면 땅이 더러워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밤새워 십자가에 사람을 달아놓지 않습니다. 흉악범을 십자가에 매달아 놓으면 길게는 일주일 까지 숨이 붙어 있다고 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히면 피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이 아니고 서서히 한 방울씩 떨어지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당하며 여러 날 동안 지옥의 저주를 맛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종교관습에 따라 그 시체를 해가 지기 전에 빨리 치워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만약 그때까지 죽지 않았으면 그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달라고 한 것입니다. 왜 다리를 꺾어 달라고 했을까요?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는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키면서 가슴을 펴고 호흡을 합니다. 그러면 못 박힌 발의 통증 때문에 이내 다시 몸이 체중 때문에 밑으로 축 처집니다. 다시말해서 순전히 다리 힘으로 호흡하면서 생명을 연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리를 부러뜨리면 죄수는 더 이상 호흡을 할 수 없어 곧 죽고 맙니다. 로마식대로 하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은 장사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위에 그대로 내버려두어서 부패하게 하든지, 십자가에서 끌어내린 뒤 땅바닥에 던져놓으면 새나 짐승들이 뜯어 먹게 합니다. 절대 장사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대 지도자들은 다리를 꺾어서라도 안식일이 되기 전에 빨리 죽여 장사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6시간 만에 돌아가셨는데 그 전에 많이 금식하셨고 많은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돌아가신 것입니다. 32절에 보면 로마군병들이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두 강도는 그 다리를 꺾어 시체를 처리 했습니다.
2. 구약 예언의 성취
유대인들의 요청을 받고 빌라도는 군인들을 보내 죄수들의 다리를 꺾게 했습니다. 그들이 와서 보니 예수님 좌우편 강도들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리를 꺾었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군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아주 엉뚱한 두 가지 행동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죽었다고 해도 다리를 꺾으라는 명령을 받은 이상 예수님의 다리를 꺾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이런 행동들은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군인들이 즉흥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런 생각없이 한 행동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취되게 하는 기막힌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33절에 보니“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다리를 꺾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36절을 보면 “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강도들의 다리뼈는 꺾었는데 예수님의 다리뼈는 꺾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시34:20절에 “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라고 예언했습니다. 또한 출12:46에 “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라고 했습니다. 유월절 밤에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되 그 고기를 집 밖으로 내지말고 뼈도 꺾지말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민9:12절에도 유월절에 어린양을 잡아 자기 대신 피를 흘리게 하고 그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절대로 뼈를 꺽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즉 유월절 어린 양은 뼈를 꺾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5:7절에는 구약의 유월절 어린 양은 바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 어린 양이었습니다.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박혔으나 그의 뼈는 꺾이지 않아야만 구약성경에 예언한 그대로 죽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전혀 모르는 군인들에 의해 구약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본문 37절에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고 한 예언은 슥12:10절에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라고 예언한 것이 성취된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메시아를 찌른 자들이 그를 볼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예수님을 찌른 로마군인들, 유대인,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예언대로 로마군인들이 예수님이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전혀 모르는 군인들의 생각없는 행동으로 하나하나 성취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처럼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모두 구약예언이 성취된 증거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 하나도 우연히 된 것이 없고 전부가 예언의 성취라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예수님이 부활해서 성령을 주시기 전까지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으나 성령을 받은 후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성경말씀이 내 삶가운데 실현되려면 깨닫게 해주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씀이 우리 삶에 적용되려면 성경을 묵상하고 암송해야 합니다. 요한이 가장 많이 인용한 성경은 구약의 시편입니다. 16번의 인용 중 10번이 바로 시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다윗 왕의 계보에서 나온 메시아임을 증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암송하고 있는 구약이 시편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3. 확실히 죽으셨다는 증언
34절에 보면 “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고 했습니다. 한 군병이 예수님이 진짜 죽었는지 다시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는데 피와 물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기절한 상태에 있는 사람도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면 꿈틀거리지만 예수님은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이미 숨을 거두신 것입니다. 그런데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니 피와 물이 나왔다고 했는데 학자들에 의하면 심장을 찌르면 피와 물이 동시에 나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로마군병이 옆구리를 창으로 찌를 때 심장이 파열되어 피와 물이 나온 것입니다.
피는 속죄를 가리키는 것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죄를 속죄하시는 수단이 됩니다. 한편 물은 더러운 것을 씻는 성결의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흘리신 피와 물은 우리를 용서하시는 피와 우리를 씻는 물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죽음이 갖는 의미입니다. 슥13:1절에 “ 그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외 더러움을 씻는 샘이 어디서 열렸습니까? 예수님이 골고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날 열렸습니다. 그 샘에서 나오는 피와 물이 모든 인류의 죄를 씻고 더러움을 씻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피와 물을 쏟으셨음을 본문 35절에서 증언합니다.
35절에 보면 “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중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를 본 자란 이 요한복음을 쓴 사도요한입니다. 그가 예수님 십자가 밑에 가장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로마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를 때 피와 물이 나온 것을 직접 보았다고 증언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완전히 죽었는데 심장이 파열할 만큼 고통스럽게 죽었다는 것을 본대로 증언한 것입니다.
이러한 증언에는 더 중요한 배후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의 무리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실제 몸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 가상의 육체를 자기고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가상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이 어떻게 죽을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런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더러 있었기 때문에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특별히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몸을 가졌으며 우리와 똑같이 피와 물을 쏟으면서 확실히 죽었음을 증언해야 했습니다. 사도요한은 ‘증언한다’는 말을 요한복음에서 47번이나 사용합니다. 여기에는 사실 그대로 내가 본대로 전하니 이 예수님의 죽음을 너희들이 그대로 믿으면 구원받고 믿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4. 숨은 제자를 통한 하나님의 섭리
본문 38절 이하에 예수님의 장례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장례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두 사람이 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입니다. 모두 당시 유대사회에서 대단히 지위가 높은 지도자급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이고 니고데모도 산헤드린 공회 71명 중에 속하는 귀족들이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국회의원과 같습니다. 이들은 평소에는 자기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는 제자였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을 십자가 형에 처하려는 유대 지도자들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거기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38절에 “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독 허락하는 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장례는 굴을 파서 그 굴에다 시체를 안장하는 경우도 있고 자연동굴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이 마땅치 않을 때는 벽돌을 쌓아서 묘실을 만드는데 그 때 상당한 돈이 듭니다. 그래서 묘실을 만들어 놓으면 그곳에 가족 전체을 위한 가족묘가 되는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면 그 뼈를 추려서 항아리에 담아 둡니다. 온 가족이 공동묘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고 요한마저 가난한 사람이어서 장례치를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부자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숨은 제자로 빌라도 총독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말입니다. 빌라도는 그가 유대인의 고위직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대로 허락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로마입장에서는 정치범이기 때문에 시체를 달라하면 반역죄로 처벌 될 수도 있는 위험한 부탁인 것입니다. 그는 만일의 경우 예수님과 같이 죽어도 좋고, 자기의 직위를 버릴 각오를 하고 부탁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저 입으로 예수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 때문에 필요하다면 우리의 지위나 물질적 손해도 기꺼이 감수하는 실천적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이러한 행동도 사53:9절에 “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라는 예언이 성취되는 사건이었습니다.
본문 39절에 “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고 했습니다. 요3장에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밤에 찾아와서 중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간 사람입니다. 그는 그날 밤 예수님에게서 무언가 큰 감동을 받고 돌아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나중에 가끔씩 이름이 등장하면서 예수님 편을 듭니다. 금방 드러나지는 않지만 서서히 그의 영혼이 중생받은 자로 나아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하는 많은 향품을 가져왔습니다. 몰약과 침향 섞는 것은 고급 향이면서 방부제역할을 하는 것인데 100리트라를 가지고 왔습니다. 요즈음으로 환산하면 약 32kg 이나 되는 많은 양을 가져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어른 몸무게의 절반에 가까운 엄청난 양의 향로를 가지고 온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체는 이 방부제를 온몸에 집어 넣었기 때문에 방부처리가 되어 썪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세마포로 싸서 예수님의 시체를 아리마대 요셉 소유의 돌무덤에 안치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비참했는데 장례는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때문에 아주 정성껏 치를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예수님을 쌌던 수건은 머리 편에 세마포는 발편에 가지런히 개켜 있었습니다. 이처럼 숨은 제자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의 헌신적인 봉사로 예수님의 시체는 썩지 않고 부활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숨어서 주를 따르던 사람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40-42절을 보면 예수님이 시체를 유대인의 장례법에 따라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싸서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를 위해 미리 마련해 두었던 새 무덤에 장례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침 그 무덤이 가까이 있어서 안식일 직전 예비일에 장례를 치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니고데모가 그 많은 양의 향료를 짧은 시간 안에 준비했던 것도 기적이고, 요셉이 한번도 사람을 묻지 않은 새 무덤을 십자가가 있던 골고다 가까이에 가지고 있었던 것도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도록 세밀하게 섭리하셨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업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결국 장사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죽으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죄인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자신이 대신 받으면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희생제물로 자기를 바치면서 죽으셨고, 세상의 모든 죄값을 치르면서 죽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하신 일을 보다 잘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꾸준히 읽고 암송해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 삶의 원리가 되려면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우리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주님이 지시라고 하면 어떤 십자가라도 지고 주님을 따르며 헌신해야 합니다.
숨은 제자 아리마애 요셉과 니고데모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예수님의 장례를 존귀하게 정성껏 치렀습니다. 이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올바른 신앙고백을 하며 주님을 위해서라면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는 자세로 주님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주님의 십자가 은총에 대한 놀라운 그 사랑에 감격하여 우리 삶을 바쳐서 주님을 증거하고 나타내는 복음의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
63 | 믿음으로 의롭게 됨 | 갈2:11-16 | 2025-07-02 | 홍기칠 목사 |
62 | 하나님의 계시로 받은 사도직과 복음 | 갈1:11-24 | 2025-06-18 | 홍기칠 목사 |
61 | 복음의 유일성 | 갈1:6-10 | 2025-06-11 | 홍기칠 목사 |
60 | 그리스도의 복음 | 갈1:1-5 | 2025-06-04 | 홍기칠 목사 |
59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요21:15-25 | 2025-05-28 | 홍기칠 목사 |
58 | 필요를 채워주시는 부활의 주님 | 요21:1-14 | 2025-05-21 | 홍기칠 목사 |
57 | 부활의 주님을 만나십시오 | 요20:19-31 | 2025-05-14 | 홍기칠 목사 |
56 | 숨은 제자 | 요19:31-42 | 2025-05-07 | 홍기칠 목사 |
55 | 다 이루었다 | 요19:17-30 | 2025-04-30 | 홍기칠 목사 |
54 | 빌라도 재판과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 요18:28-19:16 | 2025-04-23 | 홍기칠 목사 |
53 | 베드로의 배반 | 요18:12-27 | 2025-04-16 | 홍기칠 목사 |
52 | 예수님의 고별설교 | 요17:6-26 | 2025-04-09 | 홍기칠 목사 |
51 | 하나님께 영광 | 요17:1-5 | 2025-03-26 | 홍기칠 목사 |
50 | 20250319 수요설교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16-33) | |||
49 | 20250312 수요설교 (성령께서 하시는 일/요16:1-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