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이방인의 구원
2025-05-06 20:42:17
홍기칠
조회수   50
설교본문 롬11:17-24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05-04

주일오전설교250504 이방인의 구원

본문: 11:17-24

제목: 이방인의 구원

 

I. 서론

지난 주일에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왕시대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숭배하던 선지자 850명을 죽이자 아합왕이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군사를 보냈는데 엘리야가 남쪽 광야로 도망가다가 지쳐서 로뎀나무에 머무르며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자기 혼자만 남았으니 차라리 자기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애절하게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남은 자가 7천명이나 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있다는 사실을 들어 그는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버리지 않았다고 확신하며 자기가 이방인의 사도로 최선을 다해 전도하는 이유도 동족 이스라엘이 이방인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보고 시기하여 그들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니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부함으로 이방인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한 사실을 강조하면서도 구원 받은 이방인들인 우리 성도들이어떤 자세로 신앙생활 해야할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본론

  • 뿌리인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주었으나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였지만, 이스라엘 사람인 사도들의 입을 통해서 이방사람인 우리들에게 그 복음이 전해졌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믿음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이 없는 믿음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비록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역하긴 했지만,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에게 빚을 진 셈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두가지 비유를 가지고 이스라엘의 독보적인 위치를 설명합니다.

 

첫째, 16절 이하에서 나오는 떡의 비유입니다.

15:19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일 먼저 익은 곡식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일종의 감사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처음 익은 열매로 제사를 드리고 나면 그 뒤로는 음식을 만들 때 마다 그 곡식을 하나님께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첫 번째 떡이 거룩해졌기 때문에 그 다음 만들어 먹는 모든 떡이 자동적으로 거룩해진 것입니다. 세계 모든 민족 앞에서 이스라엘은 마치 처음 익은 곡식으로 만들어 하나님께 드려진 떡과 같습니다. 그들이 이미 거룩해졌으니 그들을 통해 예수님을 믿은 우리 또한 거룩해 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모두를 거룩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으니 모든 민족 중에서 이스라엘의 위치가 얼마나 독보적입니까?

 

두번째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감람나무 비유입니다.

참감람나무는 이스라엘을, 돌감람나무는 우리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참감람나무인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그 가지를 쳐버립니다. 그 대신 돌감람나무 가지인 이방인을 그 자리에 접붙이셨습니다. 돌감람나무 입장에서는 굉장히 고마운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까 그 자리에 이방인인 우리가 그 자리에 접붙임을 받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에게 고마운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2. 감람나무 비유

감람나무 비유를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7절에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 즉이라고 했습니다.

감람나무란 올리브 나무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과실수는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올리브나무와 같은 것인데 거기서 포도, 무화과, 올리브 열매를 수확하게 됩니다. 그 올리브 열매와 기름은 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등을 밝히는데 쓰였기에 감람나무가 빛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돌감람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땅 속의 양분은 다 빨아먹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니 전혀 쓸모가 없고 참 감람나무가 자라는데 방해만 됩니다.

 

그래서 돌감람나무는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 접붙이기를 합니다. 감람나무의 접붙임은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릅니다. 감나무, 배나무, 밤나무의 경우는 돌감나무, 돌배나무, 돌밤나무에 품종이 좋은 가지들을 거기에 접붙여 그 좋은 가지들이 그대로 성장하여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감람나무의 경우는 이와 반대로 참감람나무에 돌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여 활발하게 진액을 가지에 공급케 함으로써 돌감람나무 가지가 참감람나무 가지로 변화를 받아 좋은 올리브 열매를 맺게 됩니다.

 

참감람나무로 비유되는 이스라엘 조상들에게서 난 참감람나무 가지들인 혈통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임을 받고, 대신 돌감람나무 가지들인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접붙임을 받고 의의 열매를 맺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이스라엘로 변화되어 믿음의 조상들에게 속하게 된 이방인이 본래의 참감람나무 가지들에 대해 스스로 자랑하거나 교만을 부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본문 18절처럼 이방인들이 새 이스라엘로 변화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18절에 그 가지들은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지들은 꺾여진 참감람나무 가지들입니다.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 가지가 꺾여진 그 자리에 접붙임을 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꺾여진 참감람나무 가지를 보고 너 참 형편없구나, 어쩌다 그런 신세가 되었니?라고 우쭐 될 수 있습니까? 내가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을 때 내가 그 나무를 내가 붙들고 있다고 해서 그 나무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참감람나무가 접붙여진 나를 보호하고 성장시켜 열매를 맺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본문 19절에서도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농부가 그 가지를 꺾은 것은 나를 접붙이기 위함이며, 그 가지가 꺾이지 않았다면 나는 양분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참감람나무가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빚진 믿음의 뿌리를 잊지 않습니다. 만약에 자기가 가지이면서 뿌리를 무시하고 스스로 잘난 체 하면 그 사람은 가지에서 잘릴 가능성이 많다고 사도바울을 경고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남이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고전15:10절에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둘째, 본문 20,21절처럼 하나님께서 본래 선택 받은 혈통상의 이스라엘이 불신앙으로 심판 받아 버림을 당한데 비하여, 이방인은 믿음으로 새 이스라엘이 되었으니, 자기 행위를 교만하게 자랑하다가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신분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20,21절에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 하셨은 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방인으로써 예수님을 믿게 된 우리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멸시하거나 스스로 교만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바울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높은 마음이란 교만을 말합니다. 구원받은 것에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되, 절대로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 앞에 겸손하려면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겸손의 시작입니다. 고후7:1절에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으로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거룩한 삶을 살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소극적 조건이라면 더 나아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더 적극적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사랑을 깨달을 때 그 은혜 감사하여 자발적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본문 22절처럼 하나님의 언약적 인자하심에 거하면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지만, 그 인자하심을 거역하면 하나님께서 준엄하게 잘라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22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엄하게 다루시는 것과 불쌍히 여기시는 은혜를 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엄하게 다루셨습니까? 넘어지는 자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을 엄하게 다루셨습니다. 여기서 넘어진다는 말은 예수님을 거부하여 구원에서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믿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엄하게 다루셨지만 그 대신 접붙임을 받은 가지인 우리 이방인들은 인자로 다루셨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다루듯이 우리를 다루셨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인자하심 덕분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어떻게 교만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구원을 위해 눈에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수고해 준 많은 분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바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인자하심과 엄위하심을 함께 볼 수 있는 사람만이 겸손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겸손히 주님을 따라가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위하심을 함께 바라보며 겸손한 자리를 지켜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넷째, 본문 23,24절처럼 혈통상의 이스라엘이 믿음을 회복하여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접붙이는 능력을 사용하여 다시 참감람나무에 본래의 원가지들을 기쁘시게 접붙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본문 24절처럼 하나님은 혈통상의 이스라엘을 기꺼이 받아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을 회복시켜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돌감람나무 가지인 이방인도 참감람나무에 접붙여 새 감람나무가 되게 하신 하나님은 원 참감람나무 가지의 경우 훨씬 더 기쁘게 원상으로 접붙임을 받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3-24절에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이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란 꺾여진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믿지 않았던 탓으로 꺾여진 가지들이 믿게 되면 그 가지들도 접붙임을 받게 될 것인데, 하나님께서 나 같은 돌감람나무도 접붙이셨으니 그들은 다시 접붙이실 능력이 왜 없겠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본래 붙어 있던 가지들이 제 나무에 다시 접붙임을 받는 것이 얼마나 더 쉬운 일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핍박하는 이들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수용하고 그들을 위한 주님의 도구가 되어 행하는 모습이 내 삶에서 드러날 수 있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참된 겸손의 증거인 것입니다.

 

요컨대, 혈통상의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몸의 부활에 참여하여 종말론적 구원의 복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요 구원계획이기 때문에 이방인 성도는 혈통 상의 이스라엘에 대하여 교만한 마음을 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을 열망하시는 것과, 그 애타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간절하게 그 마음을 전하는 바울의 심정을 이방인 성도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3. 감람나무 비유의 교훈

위에서 살펴본 감람나무 비유를 통해서 얻은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접붙임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접붙임하거나 접붙임 받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접붙임 받으며 사느냐의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인생의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부모 자식간에 바른 접붙임이 이루어져야 하고, 형제간에, 이웃간에, 그리고 목회자와 성도간에도 바른 접붙임이 이루어질 때 그 관계는 발전할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유명 영화감독이 확보한 어느 창녀의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어릴적 시골에서 유복한 집 딸로 태어났는데 여고시절 친구가 그날 밤 유흥업소에 유명가수가 온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호기심에서 따라갔는데 마침 그곳에서 학생들이 혹시 유흥업소에 오지 않았는지 지도차 나온 자기 학교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들켜 버렸습니다. 이틑날 교무실로 오라고 했기 때문에 겁이나서 그날 밤 집에 들어가지 않고 서울거리를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누군가를 만나 결국 창녀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한편 어느 목사님은 어릴 때 친구가 여름성경학교에 가자고 해서 갔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후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친구와의 접붙임을 받는가에 따라 그 인생 여정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 사례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접붙임이 바르게 되어야 모든 관계의 접붙임이 바르게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는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의 꺾어짐이 없었다면 우리 이방인은 절대 구원을 얻지 못했습니다. 나를 둘러싼 부모, 형제, 스승, 친구 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 그들의 희생과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환경도 우리를 위해 희생해 준 것입니다. 모든 이들과 환경의 희생 위에 우리가 참 생명을 얻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절대로 교만한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서 내가 믿게 되었고, 누군가 나의 신앙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주었기 때문에 이만큼 영적으로 자랄 수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셋째, 다른 사람들의 희생 위에 내가 존재했으므로 나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구원받아 여기까지 왔는데 과연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까? 나무는 남에게 주기 위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에게 도움 주는 열매는 하나도 맺지 않고 오히려 남에게 방해만 되는 존재는 아니었습니까? 우리 자신이 좋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접붙임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역시 선한 믿음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댓가를 요구하지 않는 희생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댓가를 요구하는 희생은 이기심입니다. 예수님께서 12:24절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희생을 말합니다. 내가 겸손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위해 희생할 때 위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열매가 삶 속에 맺히게 되고, 그 열매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겸손함을 잃지 않고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희생하기를 거부함으로 한 알 그대로 있을 것인가 아니면 희생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희생하기를 거부할 때 그 한 알은 언제나 돌감람나무로 존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넷째,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먼저 예수님을 믿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기하게 해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요 섭리라는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아니지만 오늘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믿는 성도들이 질투의 대상이 될 만한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안 믿는 주변 사람들을 매료시킬 만한 것이 있습니까? 당신이 믿는 예수를 나도 믿어보자라고 하면서 찾아올 만큼 그들에게 본이 될 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그들보다 좋아 보이는 것, 행복해 보이는 것, 무언가 앞서가는 것들이 있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성도들의 가정에서 부부와 자녀들의 사는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여서 질투가 날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다면 그 모습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동족구원을 위한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 동족이 구원받기를 자기가 예수님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할 만큼 동족 구원에 대한 열망이 매우 컸습니다. 바울은 언젠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고 돌아오는 날, 눈 앞에 전 세계가 복을 받는 영광스런 장면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믿지 않는 자기 동족이 예수 믿고 구원받기 원하는 뜨거운 열망과 비전을 품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동족을 향해서 어떤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언젠가는 남북이 평화통일, 복음 통일이 되어 대한민국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 전세계를 복음화하는 일에 앞장서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비전을 품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저 북한 땅 김정은 정권에 압제를 당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이 어서 속히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돌감람나무로 이방인이었던 우리들이 참 감람나무인 이스라엘에 접붙임 받아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뿌리인 이스라엘을 무시하거나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현재의 이스라엘 민족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들을 배척하지 않고 함께 구원받을 대상으로 여겨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오늘이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임을 깨닫고 나도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선한 영향력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고 더 나아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예수 믿는 가정의 본을 보여주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동족, 특히 북한 동포들의 구원에 대한 비전을 품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사랑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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