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이스라엘의 구원
2025-05-06 20:40:34
홍기칠
조회수   32
설교본문 롬11:1-6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04-27

주일오전설교 250427 이스라엘의 구원

본문:11:1-16

제목: 이스라엘의 구원

 

I. 서론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롬9:3절에서 나는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하면서 자기 백성들이 모두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으로 그리스도에게 끊어졌으나 남은 자는 구원하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이스라엘이 완전히 버림받았는지와 아직도 이스라엘을 향한 회복의 약속이 유효한가와 불신앙의 동족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이스라엘이 구원받는다는 근거

바울은 하나님께서 택한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근거를 세가지로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정통 유대인인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본문 1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 자신이 유대인 중에도 정통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인이란 보통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말인데 그 중에서 자신은 아브라함의 씨, 즉 철두철미하게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오는 정통 이스라엘 계보라는 말이고,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 중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 때 북쪽 이스라엘로 열 지파가 배반해 가버리고 남쪽 유다에 남은 지파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인데 유다 지파는 원래 왕족이니 그대로 남았지만, 베냐민 지파는 그렇지 않음에도 배반하지 않고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바울 자신은 순수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유대인 중의 유대인인데 예수 믿는 성도들을 가장 많이 핍박하던 자였던 자기를 하나님이 구원하신 것을 보면 아직 믿지 않고 거역하는 이스라엘도 하나님께서 버릴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에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과 계획으로 미리 아시고 택하신 백성이기 때문에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미리 아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예정하심이 변할 수 없는 것처럼 그가 예지하시는 민족은 결코 버림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삼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배신했다고 해서 그들을 버리신다면 우리 인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버리시기는 켜녕 오히려 하나님의 방법으로 바로 세우고 반드시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역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약 엘리야 시대에 있었던 일을 들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국가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버림받는 것처럼 보이는 암흑기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시대가 아합왕 시대입니다. 아합왕의 유혹을 받아 백성들은 99% 이상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는 타락한 시대였는데 그때 활동하던 엘리야가 보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자기 한사람 뿐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완전히 절망적인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본문 2절에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을 벌주라고 고발했다고 했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라고 고발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낸 많은 선지자들을 죽였고, 하나님의 제단을 헐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겼으며, 홀로 남았다고 생각하는 엘리야마저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가서 바알이 참 신인지 하나님이 참 신인지 한번 대결해보기 위해 제단을 만들어 놓고 자기 신에게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그 제단 위의 제물을 다 태우는 신이 참신이라고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으로 모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신에게 열정적으로 기도했으나 기적을 일어나지 않았지만, 엘리야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그 제물을 다 태우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악한 선지자 850명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들을 죽인 것은 하나님의 공의였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아합왕과 왕후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라고 병사들에게 명령했는데 이때 엘리야가 남쪽 광야로 도망가면서 얼마나 힘들었던지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차라리 자기 혼자 남은 생명을 거두어달라고 기도하며 자살하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본문 4절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대답하시기를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7천명을 남겨 두었다고 했습니다. 엘리야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이 7천명이 어떻게 남게 되었습니까? 다름아니라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그런즉 이와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 이스라엘 동족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남은 자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서도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은 어떤 선한 행위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은 것을 말합니다. 이 은혜가 떠나지 않는 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소망이 있다는 것을 바울은 확신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결코 버릴 수 없는 증거는 정통 유대인이면서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던 바울 자신이 구원받은 것이 그 증거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니님이 택한 선민이요, 엘리야 시대에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절하지 않는 7천명을 남겨 둔 것이 그 증거라는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와 마찬가지로 지금 바울시대에도 유대인은 불신앙으로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반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 중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가진 남은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은 자라고 하는 것은 구약시대부터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꺼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불신앙시대에 하나님의 남은 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공로나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와 택하심에 의해서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아무리 우상숭배하는 우리 동족이 있다해도 그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받을 사람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동족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떠난 것 같지만,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을 따라 남은 자, , 믿기로 작정된 자, 예비된 자 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두워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남겨 놓으신 7천명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우리 민족, 특히 우리 북한 동포에 대해서도 같은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저 북한 정권도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날이 옵니다. 그때가 되면 남은 자 7천명이 할렐루야 찬송하면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리라 믿습니다. 지금도 저 북한 김정은 독재정권하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기도하고 있는 숨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소식을 가끔 언론을 통해 듣습니다.

 

2.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남은 자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본문 7절에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구하는 것은 구원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남은 자란 앞에서 말한 하나님께 택함 받은 남은 자가 아니라 그 반대로 택함을 받지 못한 남은 자를 말합니다. 여기서 우둔해지는 것은 양심이 마비되어 무감각하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시지 않으면 인간 양심은 마비된 채로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쓰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죄의 포로가 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 우둔함은 본문 8절과 같은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본문 8절을 보면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영적, 윤리적으로 완고해진 것을 구약 신29:4, 29:9, 6:9,10절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지 않은 인간 영혼은 영적, 윤리적인 호소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무감각한 상태가 되고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어두운 상태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들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교회뿐 아니라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 얼마든지 널려 있지만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은 국민의 25%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마음을 우둔하게 만드시면 결과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바울은 본문 9,10절에 시편69:22,23절을 인용하여 다윗의 입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시편의 저주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았습니다. 특히 다윗의 마지막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이스라엘 백성이 거부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본문 9,10절에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저주입니까?

 

흔히 들짐승들을 올무로 잡을 때 그 앞에 먹이를 놓아두고 그것을 먹으러 올 때 그 올무에 빠지도록 장치를 해 놓아 짐승을 잡습니다. 안타깝게도 어떤 자들에게는 그들의 밥상은 올무와 덫이 됩니다. 밥상이란 세상 사람들이 밤낮없이 추구하는 육신적 관심사를 말합니다. 그들이 먹고 마시는 데만 빠져서 즐기는 생활은 결국 죽음의 길로 이끄는 덫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쾌락을 누릴 수 있는 부요한 환경이 결국은 멸망을 자초하는 불행의 덫이 되고 올무가 된다는 말입니다. 사업에 성공하고 교회에 나와 예배는 드리지만 그 머릿 속에는 빨리 놀러가야겠다는 생각이나 맛집 생각으로 가득하다면 그들의 밥상이 올무요 덫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 10절에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라는 말은 무서운 공포에 질려 엎드리거나 덫 속에 치여서 머리를 들 수 없는 모양을 떠올리게 됩니다.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자신의 행위로 의롭다하심을 얻으려고 엄청난 수고와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물질, 명예, 권력 등 하나님보다 더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모두 우상숭배라고 표현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등이 굽을 만큼 무거운 수고와 죄짐에 눌려있는 것입니다. 최후 심판날에는 그러한 자신의 죄악에 책임을 져야하며 이에 합당한 징계와 징벌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4:38-39절에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것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삶의 전부인 양 사는 자세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아니한 사람들의 생활이요 우둔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땅만 보고 살았던 사람인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의 등을 펴주셨습니까? 땅만 보던 그 시선을 어떻게 위를 향하게 해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은총으로 내 눈이 새로워졌고, 내 귀기 열렸고 내 밥상의 의미가 달라졌고, 내 가정과 일터, 내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밤낮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도 늘 아쉬운 마음 뿐입니다. 이 은혜를 깨달은 바울은 그 은혜를 혼자 누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동족 이스라엘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3. 이스라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본문 11,12절에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가 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패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버림으로 그 말씀의 은총이 이방인에게로 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에서 제외했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이방인을 구원하시고, 이방인의 구원이 곧 이스라엘로 하여금 질투를 일으켜 그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패역하여 모든 이방사람들이 구원의 풍성한 은총을 누렸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때 그 구원의 역사는 얼마나 크고 충만하겠습니까? 이스라엘이 믿음을 회복하여 이스라엘 전체의 구원받을 수가 차게 된다면 그때 모든 인류가 받게 될 축복은 실로 엄청나게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구원에 대해 절대 희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문 13,14에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 직분을 영광스럽게 최선을 다하면서 이스라엘 가운데 얼마를 구원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이방인의 사도로서 열심히 전도한 것은 동족에 대한 사랑의 결과이며 이스라엘 민족을 시기 나게 하여 분발시킴으로서 그들을 구원에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에도 바울의 위대한 동족구원에 대한 열망과 사랑이 나타납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와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차고 나면 뒤이어 영광스런 무언가가 따라 옵니다. 그것을 15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 완료되고 이스라엘의 우둔함이 제거되면, 영적으로 죽은 자와 같던 이스라엘 민족이 회개하여 다시 하나님에 의해 살리심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날 재림하게 될 때 죽은 자는 살아나며, 우리는 영원한 기쁨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16절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이 택한 백성이므로 넘어지고 버림 받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며 결국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두가지 예를 들어 증거했습니다. 15:20절을 비유로 들어 처음 익은 곡식 떡 가루 반죽 가운데 먼저 한덩이를 떼내어 구워서 거제로 드리는데 그것이 거룩하게 되었으니 나머지 떡덩이도 모두 거룩해진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보면 뿌리가 맨 처음 나온 후에 가지가 나오니 뿌리가 그 나무형태에 결정적 영향력이 있습니다. 여기서 첫 떡덩이와 뿌리는 이스라엘의 족장들, 또는 개인적으로는 아브라함을 표상하며 그 나머지 덩어리와 가지들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이 거룩하게 성별되었으니 이스라엘 전체도 성별된 백성이 틀림없으며 따라서 이스라엘이 예수를 배척한 넘어짐도 일시적이며 결국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확신하는 바로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스라엘과 이방인 간의 막힌 담을 헐어 화목하게 하여 마침내는 죽은 자의 몸의 부활을 통해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멸망시키고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십니다.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철회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실패하고 넘어진 것 같아도 언젠가는 그 언약대로 회복되어 구원을 받아 몸의 부활을 포함하 종말론적 복의 충만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확신하였기에 이방인을 위한 사도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겼고,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동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큰 근심과 심적 고통을 가지고 힘 썼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본문을 통해 몇가지 교훈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첫째, 우리가 이방인 임에도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알고 감사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존재였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았으니 늘 감사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마음이 완악해진 불신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받도록 기도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우둔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영적으로 마비되어 자기 행위로 구원받으려 했지만 결국 돌이켜 구원받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가장 완악하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불신자라도 구원하실 수 있음을 확신하고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구원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고, 구원받도록 예비된 남은 자들 찾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숭배하던 아합왕 때에도 거기에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을 남겨두셨습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자신이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자들을 남겨 두셨음을 확신하고 믿기로 작정된 자, 예비된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엘리야가 볼 때는 자기 외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거나 영적 교만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나의 하나님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 되심을 인식하면서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저 사람도 사랑하시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부지런히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이 시대의 7천명이 어디 있는지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복음의 증인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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