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설교본문 | 창50: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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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홍기칠 목사 |
설교일 | 2025-08-17 |
주일오후설교 250817 야곱과 요셉의 장례식
본문: 창50: 1-26
제목: 야곱과 요셉의 장례식
I. 서론
창세기 마지막 50장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야곱의 장례, 중간은 형제들에 대한 요셉의 위로, 후반부는 요셉의 죽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50장에서 야곱의 장례식와 요셉의 장례식을 동시에 보게 됩니다. 야곱의 장례식은 가나안 땅에서 있었고, 요셉의 장례식은 애굽에서 있었습니다. 이 두 장례식 중에 야곱의 장례식은 자세히 기록되었고, 요셉의 장례식은 간단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만큼 야곱의 장례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가 야곱의 장례로만 끝났다면 창세기는 슬픈 이야기로만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유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소망과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장례식과 그 사이 요셉과 그 형들 간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모습을 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창세기 마지막 장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II. 본론
1. 야곱의 성대한 장례식
야곱이 죽은 후 요셉은 수종드는 의사에게 향재료를 아버지 몸에 넣도록 지시했습니다. 무려 40일이나 걸리는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이 작업은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국장에 해당하는 장례식에서 행하는 작업인 것입니다. 애굽이나 가나안은 더운 지방이므로 방부제로 시신을 처리하지 않으면 쉽게 부패합니다. 그래서 애굽에는 일찍부터 방부제를 사용하여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요셉 가족들과 애굽사람들이 무려 70일 동안이나 애곡했습니다. 요셉이 야곱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가나안 땅으로 갈 때 바로의 모든 신하와 왕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형제들이 함께 올라갔는데 병거와 기병들이 호위 했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 막벨라 장지까지는 왕복 960km나 되고 그 당시에는 대부분 걸어가게 되니 아마 한달 정도 걸린 장대한 장례행렬이 전개된 것입니다. 왕의 장례식에 버금가는 국장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스라엘이 이방나라에서 존귀하게 여김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야곱은 애굽에 있는 수많은 부족 중에 한 부족의 추장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성대한 예우를 받은 것은 요셉 때문입니다. 애굽사람들은 요셉의 슬픔을 자신들의 슬픔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만약 요셉이 없었다면 그들의 가족은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유언에 따라 바로왕에게 야곱을 가나안땅에 장사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바로왕은 혼쾌히 수락했을 뿐 아니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호위병으로 병거와 기병까지 붙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왕이 요셉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었는지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애굽을 떠난 후에 아닷 타작마당에 도착하였고 거기서 다시 한번 크게 통곡했습니다. 특히 요셉이 7일 동안 애곡했는데 그 모습을 본 가나안 사람들은 애굽사람들의 큰 애통이라 하여 그곳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불렀습니다. 요셉 혼자 그렇게 울었다면 그런 지명이 생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과 함께한 애굽사람들 전체가 애곡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한 곳의 지명이 바뀔 정도로 야곱의 장례행령이 대단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요셉은 야곱의 유언에 따라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사서 소유 매장지가 된 막벨라굴에 야곱을 가족 묘지에 장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에 묻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킨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몸을 하나님 말씀 위에 두었습니다. 자신은 죽었지만 자기 몸은 하나님이 주신 땅, 자기 조상들이 묻힌 땅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위에 자기 인생의 결론을 놓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옵니다.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야곱처럼 화려한 장례식이 아니어도 그의 장례식은 천국 환송식이 됩니다. 우리의 장례식이 천국환송식이 되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말씀의 약속을 다 성취하고 맞이하는 죽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웰다잉은 남은 삶을 주님 뜻대로 살며 사명을 잘 감당하는 웰빙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 14절을 보면 요셉은 아버지를 장사지낸 후에 애굽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바로왕과 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요셉은 자신의 평상생활로 돌아와 자기가 맡은 책임을 끝까지 감당했습니다. 우리도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에는 즉시 평상생활로 돌아와야 합니다. 상실로 인한 애도의 기간이 필요하지만 그 애도기간이 너무 길면 문제가 됩니다.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 보내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주님 주신 남은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 또한 주변에 슬픔을 당한 유족이 있다면 마음을 담아 위로하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2. 형제들의 두려움
야곱의 죽음은 애굽 사람들에게는 슬픔이었지만 요셉의 형제들에게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한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요셉 밑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야곱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요셉이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보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짓으로 요셉의 마음을 사려고 했습니다. 일단 요셉을 떠보기 위해서 사람을 보내어 아버지가 돌아기시기 전에 자신들에게 요셉에게 전하라고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라고 유언했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야곱은 죽을 때 요셉에게 다 말했습니다. 요셉에게 그런 말을 직접 하지 않았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말을 들었을 때 아직도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형제들을 생각하니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이 울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더 두려워서 직접 요셉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요셉 앞에 엎드리며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라고 자신들을 종으로 삼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요셉은 형들에게 그 유명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본문 19-21절에 “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까/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였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히 말로 위로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다시 안심시키며 그 자녀들까지 잘 돌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형제들이 두려워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들이 요셉에게 행한 범죄 때문입니다. 그 죄가 완전히 용서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죄사함의 확신이 없으면 인간은 항상 불안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제들의 죄를 진정으로 용서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들의 죄는 빈다고 해결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을 용서한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요셉은 그렇게 한 이유가 만민이 생명을 구원하기 위함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형들의 핍박에도 원망이 없고 마음에 상처가 없었습니다. 본문 20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형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시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는 분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롬8:28절에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어떤 어려움을 당한자 할지라도 이 말씀을 굳게 잡고 믿음으로 인내하시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을 이루시는 결말을 주실 줄 믿습니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용서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사실을 정말로 믿는다면 성도는 자신이 당한 큰 악에 대해서 용서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 내가 당하는 고난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만민의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하여 내가 형제들로부터 고난을 받아야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요셉은 만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진다면 자신은 고난을 당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이 믿음이 자신의 형제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게 만든 것입니다.
요셉의 말에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책임을 약화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요셉은 그 형제들 뿐 아니라 그 후대까지 양육하고 보살피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요셉의 용서가 진심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도 상대방을 용서할 때 말로만 아니고 그 용서가 진심임을 믿을 수 있도록 선한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태도나 반응과 상관없이 사랑하시기로 결심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죄인일 때도 나를 사랑하셨고, 내가 불순종할 때도 이미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으시고 신실하시며 끝까지 기다리시는 사랑입니다. 사람들이 그 사랑을 이해할 때까지 눈물을 흘리시며 십자가를 지며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도 조건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 넘치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을 구덩이에 집어넣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 우리의 재산과 명예를 파괴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요셉처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인내하며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용서는 내힘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과거가 다 용서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과거가 자신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십시오. 과거가 우리의 미래를 만들지 못합니다. 과거와 결별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를 만드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셨다는 사실 앞에서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요14:1절에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녀요, 축복받은 자녀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넘어선 사람들입니다. 이제 이 말씀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고전 15:55절 “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있느냐 사망아 네게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 라고 선포하십시오.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정죄하는 사탄, 마귀에게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불안, 염려, , 죄책감을 가져다 주는 사탄아 물러갈지어다” 라고 담대하게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시41:9-10절에 “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노라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우리는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요셉의 형들처럼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용서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시고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할렐루야!
3. 요셉의 유언
창세기 마지막은 요셉의 유언으로 마칩니다. 두려워하는 형제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한 요셉은 죽을 때에도 자기 형제들과 후손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습니다. 요셉도 아버지 야곱처럼 죽으면서 유언을 남깁니다. 이제 요셉이 죽으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들은 심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요셉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애굽왕이 되자 이스라엘은 혹독한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앞으로 이스라엘 자손은 400년 동안 요셉 없이 애굽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창세기는 태초에서 시작하여 애굽에서 마치고 있습니다. 애굽은 절대권력자 바로가 다스리는 곳입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이렇게 유언합니다. 본문24-25절에 “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리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야곱과 마찬가지로 요셉도 하나님의 언약을 확실히 붙들었습니다. 하지만 야곱과 달리 요셉은 애굽에서 장사되었습니다. 나중에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갈때를 대비해서 아마 무덤에 묻지 않고 입관하여 안치한 것 같습니다. 그는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과 함께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없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앞으로 요셉이 남긴 유언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그 유언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야말로 그들에게 유일한 소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반드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요셉은 출애굽할 때에 자기 뼈를 함께 옮기도록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하도록 했습니다.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애굽 땅에서 소망를 가기고 살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백십세에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의 몸에 방부제 향료를 넣고 애굽땅에서 그를 관에 넣었습니다. 모세가 출애굽할 때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왔으며, 수24:32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요셉의 유골을 그 아버지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 백 크시타(금 백개)를 주고 산 세겜 땅에 장사했습니다. 그가 죽은 지 360여년이 지나 그 자손들에 의해 가나안 세겜 땅에 안치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15:13절에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해 주신 말씀대로 애굽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430년간 종살이하게 되는 역사를 요셉을 통해 실현하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하고가 하시는 일을 위해 묵묵히 순종했을 뿐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온 천하에 알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요셉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믿는 요셉을 통해 하나님은 야곱과 그 가족 뿐 아니라 애굽과 그 주변 나라들의 백성들을 기근에서 구해주셨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아버지 야곱과 같이 요셉도 죽을 때 자신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히11:22절에 “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요셉의 유언은 단지 개인의 희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말씀의 선포였습니다. 그 약속의 실현은 300여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출애굽할 때 모세는 요셉의 해골을 가지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유언이 300년 넘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역사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 마지막 사건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박해와 핍박을 받고 결국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기꺼이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300년 후에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때가 차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 안에 거하기 하시고 날마다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동행하십니다.
요셉의 약속과 같이 예수님도 반드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는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으로 시작하고, 창세기 마지막은 쫓겨난 백성들이 다시 본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약속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형제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이땅에서 주님 주신 세계복음화의 사명 감당하다가 영원한 하늘나라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주일오후설교 250817 야곱과 요셉의 장례식
본문: 창50: 1-26
제목: 야곱과 요셉의 장례식
I. 서론
창세기 마지막 50장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야곱의 장례, 중간은 형제들에 대한 요셉의 위로, 후반부는 요셉의 죽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50장에서 야곱의 장례식와 요셉의 장례식을 동시에 보게 됩니다. 야곱의 장례식은 가나안 땅에서 있었고, 요셉의 장례식은 애굽에서 있었습니다. 이 두 장례식 중에 야곱의 장례식은 자세히 기록되었고, 요셉의 장례식은 간단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만큼 야곱의 장례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가 야곱의 장례로만 끝났다면 창세기는 슬픈 이야기로만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유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소망과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장례식과 그 사이 요셉과 그 형들 간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모습을 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창세기 마지막 장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II. 본론
1. 야곱의 성대한 장례식
야곱이 죽은 후 요셉은 수종드는 의사에게 향재료를 아버지 몸에 넣도록 지시했습니다. 무려 40일이나 걸리는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이 작업은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국장에 해당하는 장례식에서 행하는 작업인 것입니다. 애굽이나 가나안은 더운 지방이므로 방부제로 시신을 처리하지 않으면 쉽게 부패합니다. 그래서 애굽에는 일찍부터 방부제를 사용하여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요셉 가족들과 애굽사람들이 무려 70일 동안이나 애곡했습니다. 요셉이 야곱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가나안 땅으로 갈 때 바로의 모든 신하와 왕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형제들이 함께 올라갔는데 병거와 기병들이 호위 했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 막벨라 장지까지는 왕복 960km나 되고 그 당시에는 대부분 걸어가게 되니 아마 한달 정도 걸린 장대한 장례행렬이 전개된 것입니다. 왕의 장례식에 버금가는 국장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스라엘이 이방나라에서 존귀하게 여김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야곱은 애굽에 있는 수많은 부족 중에 한 부족의 추장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성대한 예우를 받은 것은 요셉 때문입니다. 애굽사람들은 요셉의 슬픔을 자신들의 슬픔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만약 요셉이 없었다면 그들의 가족은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유언에 따라 바로왕에게 야곱을 가나안땅에 장사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바로왕은 혼쾌히 수락했을 뿐 아니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호위병으로 병거와 기병까지 붙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왕이 요셉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었는지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애굽을 떠난 후에 아닷 타작마당에 도착하였고 거기서 다시 한번 크게 통곡했습니다. 특히 요셉이 7일 동안 애곡했는데 그 모습을 본 가나안 사람들은 애굽사람들의 큰 애통이라 하여 그곳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불렀습니다. 요셉 혼자 그렇게 울었다면 그런 지명이 생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과 함께한 애굽사람들 전체가 애곡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한 곳의 지명이 바뀔 정도로 야곱의 장례행령이 대단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요셉은 야곱의 유언에 따라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사서 소유 매장지가 된 막벨라굴에 야곱을 가족 묘지에 장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에 묻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킨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몸을 하나님 말씀 위에 두었습니다. 자신은 죽었지만 자기 몸은 하나님이 주신 땅, 자기 조상들이 묻힌 땅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위에 자기 인생의 결론을 놓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옵니다.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야곱처럼 화려한 장례식이 아니어도 그의 장례식은 천국 환송식이 됩니다. 우리의 장례식이 천국환송식이 되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말씀의 약속을 다 성취하고 맞이하는 죽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웰다잉은 남은 삶을 주님 뜻대로 살며 사명을 잘 감당하는 웰빙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 14절을 보면 요셉은 아버지를 장사지낸 후에 애굽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바로왕과 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요셉은 자신의 평상생활로 돌아와 자기가 맡은 책임을 끝까지 감당했습니다. 우리도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에는 즉시 평상생활로 돌아와야 합니다. 상실로 인한 애도의 기간이 필요하지만 그 애도기간이 너무 길면 문제가 됩니다.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 보내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주님 주신 남은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 또한 주변에 슬픔을 당한 유족이 있다면 마음을 담아 위로하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2. 형제들의 두려움
야곱의 죽음은 애굽 사람들에게는 슬픔이었지만 요셉의 형제들에게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한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요셉 밑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야곱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요셉이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보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짓으로 요셉의 마음을 사려고 했습니다. 일단 요셉을 떠보기 위해서 사람을 보내어 아버지가 돌아기시기 전에 자신들에게 요셉에게 전하라고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라고 유언했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야곱은 죽을 때 요셉에게 다 말했습니다. 요셉에게 그런 말을 직접 하지 않았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말을 들었을 때 아직도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형제들을 생각하니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이 울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더 두려워서 직접 요셉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요셉 앞에 엎드리며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라고 자신들을 종으로 삼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요셉은 형들에게 그 유명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본문 19-21절에 “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까/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였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히 말로 위로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다시 안심시키며 그 자녀들까지 잘 돌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형제들이 두려워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들이 요셉에게 행한 범죄 때문입니다. 그 죄가 완전히 용서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죄사함의 확신이 없으면 인간은 항상 불안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제들의 죄를 진정으로 용서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들의 죄는 빈다고 해결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을 용서한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요셉은 그렇게 한 이유가 만민이 생명을 구원하기 위함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형들의 핍박에도 원망이 없고 마음에 상처가 없었습니다. 본문 20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형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시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는 분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롬8:28절에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어떤 어려움을 당한자 할지라도 이 말씀을 굳게 잡고 믿음으로 인내하시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을 이루시는 결말을 주실 줄 믿습니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용서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사실을 정말로 믿는다면 성도는 자신이 당한 큰 악에 대해서 용서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 내가 당하는 고난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만민의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하여 내가 형제들로부터 고난을 받아야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요셉은 만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진다면 자신은 고난을 당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이 믿음이 자신의 형제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게 만든 것입니다.
요셉의 말에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책임을 약화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요셉은 그 형제들 뿐 아니라 그 후대까지 양육하고 보살피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요셉의 용서가 진심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도 상대방을 용서할 때 말로만 아니고 그 용서가 진심임을 믿을 수 있도록 선한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태도나 반응과 상관없이 사랑하시기로 결심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죄인일 때도 나를 사랑하셨고, 내가 불순종할 때도 이미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으시고 신실하시며 끝까지 기다리시는 사랑입니다. 사람들이 그 사랑을 이해할 때까지 눈물을 흘리시며 십자가를 지며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도 조건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 넘치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을 구덩이에 집어넣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 우리의 재산과 명예를 파괴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요셉처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인내하며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용서는 내힘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과거가 다 용서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과거가 자신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십시오. 과거가 우리의 미래를 만들지 못합니다. 과거와 결별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를 만드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셨다는 사실 앞에서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요14:1절에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녀요, 축복받은 자녀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넘어선 사람들입니다. 이제 이 말씀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고전 15:55절 “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있느냐 사망아 네게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 라고 선포하십시오.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정죄하는 사탄, 마귀에게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불안, 염려, , 죄책감을 가져다 주는 사탄아 물러갈지어다” 라고 담대하게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시41:9-10절에 “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노라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우리는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요셉의 형들처럼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용서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시고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할렐루야!
3. 요셉의 유언
창세기 마지막은 요셉의 유언으로 마칩니다. 두려워하는 형제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한 요셉은 죽을 때에도 자기 형제들과 후손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습니다. 요셉도 아버지 야곱처럼 죽으면서 유언을 남깁니다. 이제 요셉이 죽으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들은 심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요셉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애굽왕이 되자 이스라엘은 혹독한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앞으로 이스라엘 자손은 400년 동안 요셉 없이 애굽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창세기는 태초에서 시작하여 애굽에서 마치고 있습니다. 애굽은 절대권력자 바로가 다스리는 곳입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이렇게 유언합니다. 본문24-25절에 “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리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야곱과 마찬가지로 요셉도 하나님의 언약을 확실히 붙들었습니다. 하지만 야곱과 달리 요셉은 애굽에서 장사되었습니다. 나중에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갈때를 대비해서 아마 무덤에 묻지 않고 입관하여 안치한 것 같습니다. 그는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과 함께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없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앞으로 요셉이 남긴 유언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그 유언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야말로 그들에게 유일한 소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반드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요셉은 출애굽할 때에 자기 뼈를 함께 옮기도록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하도록 했습니다.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애굽 땅에서 소망를 가기고 살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백십세에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의 몸에 방부제 향료를 넣고 애굽땅에서 그를 관에 넣었습니다. 모세가 출애굽할 때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왔으며, 수24:32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요셉의 유골을 그 아버지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 백 크시타(금 백개)를 주고 산 세겜 땅에 장사했습니다. 그가 죽은 지 360여년이 지나 그 자손들에 의해 가나안 세겜 땅에 안치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15:13절에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해 주신 말씀대로 애굽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430년간 종살이하게 되는 역사를 요셉을 통해 실현하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하고가 하시는 일을 위해 묵묵히 순종했을 뿐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온 천하에 알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요셉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믿는 요셉을 통해 하나님은 야곱과 그 가족 뿐 아니라 애굽과 그 주변 나라들의 백성들을 기근에서 구해주셨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아버지 야곱과 같이 요셉도 죽을 때 자신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히11:22절에 “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요셉의 유언은 단지 개인의 희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말씀의 선포였습니다. 그 약속의 실현은 300여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출애굽할 때 모세는 요셉의 해골을 가지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유언이 300년 넘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역사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 마지막 사건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박해와 핍박을 받고 결국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기꺼이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300년 후에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때가 차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 안에 거하기 하시고 날마다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동행하십니다.
요셉의 약속과 같이 예수님도 반드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는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으로 시작하고, 창세기 마지막은 쫓겨난 백성들이 다시 본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약속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형제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이땅에서 주님 주신 세계복음화의 사명 감당하다가 영원한 하늘나라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주일오후설교 250817 야곱과 요셉의 장례식
본문: 창50: 1-26
제목: 야곱과 요셉의 장례식
I. 서론
창세기 마지막 50장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야곱의 장례, 중간은 형제들에 대한 요셉의 위로, 후반부는 요셉의 죽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50장에서 야곱의 장례식와 요셉의 장례식을 동시에 보게 됩니다. 야곱의 장례식은 가나안 땅에서 있었고, 요셉의 장례식은 애굽에서 있었습니다. 이 두 장례식 중에 야곱의 장례식은 자세히 기록되었고, 요셉의 장례식은 간단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만큼 야곱의 장례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가 야곱의 장례로만 끝났다면 창세기는 슬픈 이야기로만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유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소망과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장례식과 그 사이 요셉과 그 형들 간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모습을 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창세기 마지막 장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II. 본론
1. 야곱의 성대한 장례식
야곱이 죽은 후 요셉은 수종드는 의사에게 향재료를 아버지 몸에 넣도록 지시했습니다. 무려 40일이나 걸리는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이 작업은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국장에 해당하는 장례식에서 행하는 작업인 것입니다. 애굽이나 가나안은 더운 지방이므로 방부제로 시신을 처리하지 않으면 쉽게 부패합니다. 그래서 애굽에는 일찍부터 방부제를 사용하여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요셉 가족들과 애굽사람들이 무려 70일 동안이나 애곡했습니다. 요셉이 야곱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가나안 땅으로 갈 때 바로의 모든 신하와 왕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형제들이 함께 올라갔는데 병거와 기병들이 호위 했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 막벨라 장지까지는 왕복 960km나 되고 그 당시에는 대부분 걸어가게 되니 아마 한달 정도 걸린 장대한 장례행렬이 전개된 것입니다. 왕의 장례식에 버금가는 국장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스라엘이 이방나라에서 존귀하게 여김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야곱은 애굽에 있는 수많은 부족 중에 한 부족의 추장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성대한 예우를 받은 것은 요셉 때문입니다. 애굽사람들은 요셉의 슬픔을 자신들의 슬픔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만약 요셉이 없었다면 그들의 가족은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유언에 따라 바로왕에게 야곱을 가나안땅에 장사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바로왕은 혼쾌히 수락했을 뿐 아니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호위병으로 병거와 기병까지 붙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왕이 요셉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었는지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애굽을 떠난 후에 아닷 타작마당에 도착하였고 거기서 다시 한번 크게 통곡했습니다. 특히 요셉이 7일 동안 애곡했는데 그 모습을 본 가나안 사람들은 애굽사람들의 큰 애통이라 하여 그곳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불렀습니다. 요셉 혼자 그렇게 울었다면 그런 지명이 생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과 함께한 애굽사람들 전체가 애곡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한 곳의 지명이 바뀔 정도로 야곱의 장례행령이 대단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요셉은 야곱의 유언에 따라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사서 소유 매장지가 된 막벨라굴에 야곱을 가족 묘지에 장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에 묻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킨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몸을 하나님 말씀 위에 두었습니다. 자신은 죽었지만 자기 몸은 하나님이 주신 땅, 자기 조상들이 묻힌 땅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위에 자기 인생의 결론을 놓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옵니다.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야곱처럼 화려한 장례식이 아니어도 그의 장례식은 천국 환송식이 됩니다. 우리의 장례식이 천국환송식이 되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말씀의 약속을 다 성취하고 맞이하는 죽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웰다잉은 남은 삶을 주님 뜻대로 살며 사명을 잘 감당하는 웰빙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 14절을 보면 요셉은 아버지를 장사지낸 후에 애굽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바로왕과 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요셉은 자신의 평상생활로 돌아와 자기가 맡은 책임을 끝까지 감당했습니다. 우리도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에는 즉시 평상생활로 돌아와야 합니다. 상실로 인한 애도의 기간이 필요하지만 그 애도기간이 너무 길면 문제가 됩니다.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 보내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주님 주신 남은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 또한 주변에 슬픔을 당한 유족이 있다면 마음을 담아 위로하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2. 형제들의 두려움
야곱의 죽음은 애굽 사람들에게는 슬픔이었지만 요셉의 형제들에게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한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요셉 밑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야곱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요셉이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보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짓으로 요셉의 마음을 사려고 했습니다. 일단 요셉을 떠보기 위해서 사람을 보내어 아버지가 돌아기시기 전에 자신들에게 요셉에게 전하라고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라고 유언했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야곱은 죽을 때 요셉에게 다 말했습니다. 요셉에게 그런 말을 직접 하지 않았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말을 들었을 때 아직도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형제들을 생각하니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이 울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더 두려워서 직접 요셉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요셉 앞에 엎드리며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라고 자신들을 종으로 삼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요셉은 형들에게 그 유명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본문 19-21절에 “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까/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였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히 말로 위로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다시 안심시키며 그 자녀들까지 잘 돌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형제들이 두려워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들이 요셉에게 행한 범죄 때문입니다. 그 죄가 완전히 용서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죄사함의 확신이 없으면 인간은 항상 불안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제들의 죄를 진정으로 용서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들의 죄는 빈다고 해결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을 용서한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요셉은 그렇게 한 이유가 만민이 생명을 구원하기 위함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형들의 핍박에도 원망이 없고 마음에 상처가 없었습니다. 본문 20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형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시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는 분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롬8:28절에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어떤 어려움을 당한자 할지라도 이 말씀을 굳게 잡고 믿음으로 인내하시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을 이루시는 결말을 주실 줄 믿습니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용서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사실을 정말로 믿는다면 성도는 자신이 당한 큰 악에 대해서 용서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 내가 당하는 고난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만민의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하여 내가 형제들로부터 고난을 받아야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요셉은 만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진다면 자신은 고난을 당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이 믿음이 자신의 형제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게 만든 것입니다.
요셉의 말에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책임을 약화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요셉은 그 형제들 뿐 아니라 그 후대까지 양육하고 보살피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요셉의 용서가 진심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도 상대방을 용서할 때 말로만 아니고 그 용서가 진심임을 믿을 수 있도록 선한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태도나 반응과 상관없이 사랑하시기로 결심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죄인일 때도 나를 사랑하셨고, 내가 불순종할 때도 이미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으시고 신실하시며 끝까지 기다리시는 사랑입니다. 사람들이 그 사랑을 이해할 때까지 눈물을 흘리시며 십자가를 지며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도 조건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 넘치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을 구덩이에 집어넣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 우리의 재산과 명예를 파괴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요셉처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인내하며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용서는 내힘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과거가 다 용서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과거가 자신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십시오. 과거가 우리의 미래를 만들지 못합니다. 과거와 결별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를 만드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셨다는 사실 앞에서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요14:1절에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녀요, 축복받은 자녀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넘어선 사람들입니다. 이제 이 말씀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고전 15:55절 “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있느냐 사망아 네게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 라고 선포하십시오.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정죄하는 사탄, 마귀에게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불안, 염려, , 죄책감을 가져다 주는 사탄아 물러갈지어다” 라고 담대하게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시41:9-10절에 “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노라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우리는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요셉의 형들처럼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용서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시고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할렐루야!
3. 요셉의 유언
창세기 마지막은 요셉의 유언으로 마칩니다. 두려워하는 형제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한 요셉은 죽을 때에도 자기 형제들과 후손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습니다. 요셉도 아버지 야곱처럼 죽으면서 유언을 남깁니다. 이제 요셉이 죽으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들은 심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요셉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애굽왕이 되자 이스라엘은 혹독한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앞으로 이스라엘 자손은 400년 동안 요셉 없이 애굽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창세기는 태초에서 시작하여 애굽에서 마치고 있습니다. 애굽은 절대권력자 바로가 다스리는 곳입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이렇게 유언합니다. 본문24-25절에 “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리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야곱과 마찬가지로 요셉도 하나님의 언약을 확실히 붙들었습니다. 하지만 야곱과 달리 요셉은 애굽에서 장사되었습니다. 나중에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갈때를 대비해서 아마 무덤에 묻지 않고 입관하여 안치한 것 같습니다. 그는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과 함께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없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앞으로 요셉이 남긴 유언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그 유언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야말로 그들에게 유일한 소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반드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요셉은 출애굽할 때에 자기 뼈를 함께 옮기도록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하도록 했습니다.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애굽 땅에서 소망를 가기고 살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백십세에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의 몸에 방부제 향료를 넣고 애굽땅에서 그를 관에 넣었습니다. 모세가 출애굽할 때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왔으며, 수24:32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요셉의 유골을 그 아버지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 백 크시타(금 백개)를 주고 산 세겜 땅에 장사했습니다. 그가 죽은 지 360여년이 지나 그 자손들에 의해 가나안 세겜 땅에 안치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15:13절에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해 주신 말씀대로 애굽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430년간 종살이하게 되는 역사를 요셉을 통해 실현하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하고가 하시는 일을 위해 묵묵히 순종했을 뿐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온 천하에 알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요셉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믿는 요셉을 통해 하나님은 야곱과 그 가족 뿐 아니라 애굽과 그 주변 나라들의 백성들을 기근에서 구해주셨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아버지 야곱과 같이 요셉도 죽을 때 자신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히11:22절에 “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요셉의 유언은 단지 개인의 희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말씀의 선포였습니다. 그 약속의 실현은 300여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출애굽할 때 모세는 요셉의 해골을 가지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유언이 300년 넘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역사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 마지막 사건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박해와 핍박을 받고 결국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기꺼이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300년 후에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때가 차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 안에 거하기 하시고 날마다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동행하십니다.
요셉의 약속과 같이 예수님도 반드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는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으로 시작하고, 창세기 마지막은 쫓겨난 백성들이 다시 본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약속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형제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이땅에서 주님 주신 세계복음화의 사명 감당하다가 영원한 하늘나라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주일오후설교 250817 야곱과 요셉의 장례식
본문: 창50: 1-26
제목: 야곱과 요셉의 장례식
I. 서론
창세기 마지막 50장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야곱의 장례, 중간은 형제들에 대한 요셉의 위로, 후반부는 요셉의 죽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50장에서 야곱의 장례식와 요셉의 장례식을 동시에 보게 됩니다. 야곱의 장례식은 가나안 땅에서 있었고, 요셉의 장례식은 애굽에서 있었습니다. 이 두 장례식 중에 야곱의 장례식은 자세히 기록되었고, 요셉의 장례식은 간단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만큼 야곱의 장례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가 야곱의 장례로만 끝났다면 창세기는 슬픈 이야기로만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유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소망과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장례식과 그 사이 요셉과 그 형들 간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모습을 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창세기 마지막 장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II. 본론
1. 야곱의 성대한 장례식
야곱이 죽은 후 요셉은 수종드는 의사에게 향재료를 아버지 몸에 넣도록 지시했습니다. 무려 40일이나 걸리는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이 작업은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국장에 해당하는 장례식에서 행하는 작업인 것입니다. 애굽이나 가나안은 더운 지방이므로 방부제로 시신을 처리하지 않으면 쉽게 부패합니다. 그래서 애굽에는 일찍부터 방부제를 사용하여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요셉 가족들과 애굽사람들이 무려 70일 동안이나 애곡했습니다. 요셉이 야곱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가나안 땅으로 갈 때 바로의 모든 신하와 왕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형제들이 함께 올라갔는데 병거와 기병들이 호위 했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 막벨라 장지까지는 왕복 960km나 되고 그 당시에는 대부분 걸어가게 되니 아마 한달 정도 걸린 장대한 장례행렬이 전개된 것입니다. 왕의 장례식에 버금가는 국장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스라엘이 이방나라에서 존귀하게 여김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야곱은 애굽에 있는 수많은 부족 중에 한 부족의 추장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성대한 예우를 받은 것은 요셉 때문입니다. 애굽사람들은 요셉의 슬픔을 자신들의 슬픔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만약 요셉이 없었다면 그들의 가족은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유언에 따라 바로왕에게 야곱을 가나안땅에 장사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바로왕은 혼쾌히 수락했을 뿐 아니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호위병으로 병거와 기병까지 붙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왕이 요셉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었는지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애굽을 떠난 후에 아닷 타작마당에 도착하였고 거기서 다시 한번 크게 통곡했습니다. 특히 요셉이 7일 동안 애곡했는데 그 모습을 본 가나안 사람들은 애굽사람들의 큰 애통이라 하여 그곳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불렀습니다. 요셉 혼자 그렇게 울었다면 그런 지명이 생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과 함께한 애굽사람들 전체가 애곡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한 곳의 지명이 바뀔 정도로 야곱의 장례행령이 대단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요셉은 야곱의 유언에 따라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사서 소유 매장지가 된 막벨라굴에 야곱을 가족 묘지에 장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에 묻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킨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몸을 하나님 말씀 위에 두었습니다. 자신은 죽었지만 자기 몸은 하나님이 주신 땅, 자기 조상들이 묻힌 땅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위에 자기 인생의 결론을 놓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옵니다.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야곱처럼 화려한 장례식이 아니어도 그의 장례식은 천국 환송식이 됩니다. 우리의 장례식이 천국환송식이 되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말씀의 약속을 다 성취하고 맞이하는 죽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웰다잉은 남은 삶을 주님 뜻대로 살며 사명을 잘 감당하는 웰빙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 14절을 보면 요셉은 아버지를 장사지낸 후에 애굽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바로왕과 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요셉은 자신의 평상생활로 돌아와 자기가 맡은 책임을 끝까지 감당했습니다. 우리도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에는 즉시 평상생활로 돌아와야 합니다. 상실로 인한 애도의 기간이 필요하지만 그 애도기간이 너무 길면 문제가 됩니다.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 보내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주님 주신 남은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 또한 주변에 슬픔을 당한 유족이 있다면 마음을 담아 위로하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2. 형제들의 두려움
야곱의 죽음은 애굽 사람들에게는 슬픔이었지만 요셉의 형제들에게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한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요셉 밑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야곱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요셉이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보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짓으로 요셉의 마음을 사려고 했습니다. 일단 요셉을 떠보기 위해서 사람을 보내어 아버지가 돌아기시기 전에 자신들에게 요셉에게 전하라고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라고 유언했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야곱은 죽을 때 요셉에게 다 말했습니다. 요셉에게 그런 말을 직접 하지 않았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말을 들었을 때 아직도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형제들을 생각하니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이 울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더 두려워서 직접 요셉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요셉 앞에 엎드리며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라고 자신들을 종으로 삼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요셉은 형들에게 그 유명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본문 19-21절에 “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까/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였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히 말로 위로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다시 안심시키며 그 자녀들까지 잘 돌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형제들이 두려워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들이 요셉에게 행한 범죄 때문입니다. 그 죄가 완전히 용서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죄사함의 확신이 없으면 인간은 항상 불안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제들의 죄를 진정으로 용서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들의 죄는 빈다고 해결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을 용서한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요셉은 그렇게 한 이유가 만민이 생명을 구원하기 위함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형들의 핍박에도 원망이 없고 마음에 상처가 없었습니다. 본문 20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형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시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는 분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롬8:28절에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어떤 어려움을 당한자 할지라도 이 말씀을 굳게 잡고 믿음으로 인내하시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을 이루시는 결말을 주실 줄 믿습니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용서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사실을 정말로 믿는다면 성도는 자신이 당한 큰 악에 대해서 용서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 내가 당하는 고난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만민의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하여 내가 형제들로부터 고난을 받아야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요셉은 만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진다면 자신은 고난을 당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이 믿음이 자신의 형제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게 만든 것입니다.
요셉의 말에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책임을 약화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요셉은 그 형제들 뿐 아니라 그 후대까지 양육하고 보살피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요셉의 용서가 진심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도 상대방을 용서할 때 말로만 아니고 그 용서가 진심임을 믿을 수 있도록 선한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태도나 반응과 상관없이 사랑하시기로 결심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죄인일 때도 나를 사랑하셨고, 내가 불순종할 때도 이미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으시고 신실하시며 끝까지 기다리시는 사랑입니다. 사람들이 그 사랑을 이해할 때까지 눈물을 흘리시며 십자가를 지며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도 조건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 넘치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을 구덩이에 집어넣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 우리의 재산과 명예를 파괴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요셉처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인내하며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용서는 내힘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과거가 다 용서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과거가 자신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십시오. 과거가 우리의 미래를 만들지 못합니다. 과거와 결별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를 만드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셨다는 사실 앞에서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요14:1절에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녀요, 축복받은 자녀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넘어선 사람들입니다. 이제 이 말씀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고전 15:55절 “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있느냐 사망아 네게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 라고 선포하십시오.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정죄하는 사탄, 마귀에게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불안, 염려, , 죄책감을 가져다 주는 사탄아 물러갈지어다” 라고 담대하게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시41:9-10절에 “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노라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우리는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요셉의 형들처럼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용서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시고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할렐루야!
3. 요셉의 유언
창세기 마지막은 요셉의 유언으로 마칩니다. 두려워하는 형제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한 요셉은 죽을 때에도 자기 형제들과 후손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습니다. 요셉도 아버지 야곱처럼 죽으면서 유언을 남깁니다. 이제 요셉이 죽으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들은 심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요셉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애굽왕이 되자 이스라엘은 혹독한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앞으로 이스라엘 자손은 400년 동안 요셉 없이 애굽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창세기는 태초에서 시작하여 애굽에서 마치고 있습니다. 애굽은 절대권력자 바로가 다스리는 곳입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이렇게 유언합니다. 본문24-25절에 “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리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야곱과 마찬가지로 요셉도 하나님의 언약을 확실히 붙들었습니다. 하지만 야곱과 달리 요셉은 애굽에서 장사되었습니다. 나중에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갈때를 대비해서 아마 무덤에 묻지 않고 입관하여 안치한 것 같습니다. 그는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과 함께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없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앞으로 요셉이 남긴 유언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그 유언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야말로 그들에게 유일한 소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반드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요셉은 출애굽할 때에 자기 뼈를 함께 옮기도록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하도록 했습니다.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애굽 땅에서 소망를 가기고 살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백십세에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의 몸에 방부제 향료를 넣고 애굽땅에서 그를 관에 넣었습니다. 모세가 출애굽할 때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왔으며, 수24:32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요셉의 유골을 그 아버지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 백 크시타(금 백개)를 주고 산 세겜 땅에 장사했습니다. 그가 죽은 지 360여년이 지나 그 자손들에 의해 가나안 세겜 땅에 안치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15:13절에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해 주신 말씀대로 애굽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430년간 종살이하게 되는 역사를 요셉을 통해 실현하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하고가 하시는 일을 위해 묵묵히 순종했을 뿐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온 천하에 알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요셉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믿는 요셉을 통해 하나님은 야곱과 그 가족 뿐 아니라 애굽과 그 주변 나라들의 백성들을 기근에서 구해주셨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아버지 야곱과 같이 요셉도 죽을 때 자신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히11:22절에 “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요셉의 유언은 단지 개인의 희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말씀의 선포였습니다. 그 약속의 실현은 300여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출애굽할 때 모세는 요셉의 해골을 가지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유언이 300년 넘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역사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 마지막 사건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박해와 핍박을 받고 결국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기꺼이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300년 후에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때가 차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 안에 거하기 하시고 날마다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동행하십니다.
요셉의 약속과 같이 예수님도 반드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는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으로 시작하고, 창세기 마지막은 쫓겨난 백성들이 다시 본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약속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형제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이땅에서 주님 주신 세계복음화의 사명 감당하다가 영원한 하늘나라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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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 야곱과 요셉의 장례식 | 창50:1-26 | 2025-08-17 | 홍기칠 목사 |
67 |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 창49:1-33 | 2025-08-10 | 홍기칠 목사 |
66 | 요셉을 위한 야곱의 축복 | 창48:1-22 | 2025-08-03 | 홍기칠 목사 |
65 | 고센 땅에서 번성한 이스라엘 | 창47:1-31 | 2025-07-27 | 홍기칠 목사 |
64 | 내가 너와 함께 가겠노라 | 창46:1-34 | 2025-07-20 | 홍기칠 목사 |
63 | 언약대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 창45: 16-28 | 2025-07-13 | 홍기칠 목사 |
62 | 요셉의 신앙고백과 하나님의 섭리 | 창45:1-15 | 2025-07-06 | 홍기칠 목사 |
61 | 목숨을 건 중보기도 | 창44:1-34 | 2025-06-29 | 홍기칠 목사 |
60 | 진퇴양난의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 | 창43:1-34 | 2025-06-22 | 홍기칠 목사 |
59 |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셉의 통치 | 창42: 18-38 | 2025-06-15 | 홍기칠 목사 |
58 | 숨겨둔 죄를 드러내시는 하나님 | 창42:1-17 | 2025-06-08 | 홍기칠 목사 |
57 | 요셉을 애굽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 | 창41:37-57 | 2025-06-01 | 홍기칠 목사 |
56 | 바로왕의 꿈을 해석한 요셉 | 창41:1-36 | 2025-05-25 | 홍기칠 목사 |
55 | 요셉의 꿈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뤙 | 창40:1-23 | 2025-05-18 | 홍기칠 목사 |
54 | 믿음으로 시험을 이긴 요셉 | 창39:7-23 | 2025-05-11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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