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요셉의 신앙고백과 하나님의 섭리
2025-07-07 13:55:49
홍기칠
조회수   10
설교본문 창45:1-15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07-06

주일오후설교 250706 요셉의 신앙고백과 하나님의 섭리

본문: 45: 1-15

제목: 요셉의 신앙고백과 하나님의 섭리

 

I. 서론

지난 주일에 창44장에서 유다가 요셉에게 막내동생 베냐민을 보내 주면 자신이 대신 요셉의 종이 되겠다고 간청하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유다는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판 장본인이었습니다. 구덩이에 있는 요셉을 죽이지 말고 애굽상인에게 팔아버리자고 제안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유다가 이제는 자기 동생 베냐민을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칠테니 베냐민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진정으로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고 이제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요셉은 유다와 형들이 과거와 달리 이렇게 변한 것을 보고 그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드디어 자기가 요셉임을 밝히는 장면이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요셉의 신앙고백과 하나님의 섭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요셉의 신앙고백

요셉은 유다의 간청을 듣고 더는 버티지 못합니다. 유다가 베냐민을 인질로 잡는 것은 절대로 안됩니다. 차라리 저를 노예로 삼으십시오라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 결국 요셉은 연극을 포기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 앞에 무너지는 요셉을 봅니다. 유다가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희생의 다짐은 이렇게 놀라운 것입니다.

 

본문1-2절에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를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때에 함께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북받치는 감정을 더는 억제할 수 없어서 시종들에게 나가라 한 후에 형들 앞에서 방성대곡했습니다. 드디어 요셉은 자기 이름을 밝힙니다. 본문 3절에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라고 했습니다. 형들은 얼마나 놀랐던지 입이 얼어붙어 말 한마디 못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면서 형들이 애굽으로 가는 상인들에게 판 동생이 바로 자신이라고 거듭 말했습니다. 요셉이 말할수록 형들은 더욱 말문이 막혔습니다.

 

지금까지 요셉은 청지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중간에 통역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이 애굽말이 아니라 자기의 모국어로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시나이까?라고 말하니 형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지금까지 요셉은 당신들의 아버지라고 말해 왔는데 여기서는 내 아버지라고 말하니 형들은 너무나 놀라 말문이 막혔습니다.

 

3절에 놀랐다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 단어는 단순히 놀란 정도가 아니라 전쟁상황에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즉 형들에게 요셉의 말은 마치 선전포고와 같이 두렵게 들린 것입니다. 그들이 가까이 갔을 때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고 까지 했습니다. 멀리서는 잘 몰랐는데 가까이 가서 요셉의 얼굴을 보니 20여년 전에 자기들이 판 그 요셉이 틀림없었습니다. 더욱 까무라칠 정도로 놀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제 다 죽었구나라고 생각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라고 말하며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사실 요셉은 그 형들 때문에 지난 20여년간 얼마나 많은 고난과 고통을 겪었습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형들을 보고 울화가 당장에라도 감옥에 집어 넣어 동일한 고통을 맛보게 복수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형들을 용서 한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반복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의를 이루시고, 우리의 실수를 통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경륜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이것이 요셉의 말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2. 하나님의 섭리

이렇게 섭리의 신앙은 위대한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에게 악한 일이 일어나고 고난이 닥쳐와도 하나님이 하셨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는다면 타인에게 관대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요셉의 용서는 일방적입니다. 형들이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일방적인 사랑으로 그들을 감싸안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하는 믿음의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여기서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하나님은 좋은 일만 생기게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쁜 일도 우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일어나게 할 수 있고 혹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일에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여전히 보존하시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일이 우연이나 운명, 자연법칙에 의해 결정되거나 혹은 인간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성도들은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섭리의 교리를 잘못 사용되면 하나님의 사역을 모독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목회자나 이단교주가 하나님의 섭리라는 이름으로 자기 자신의 죄악을 정당화 하는 일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교리를 바로 이해하는 것과 바로 사용하는 것을 세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똑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요셉은 나를 이곳에 보내신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형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해봅시다. 말하자면 당신을 이곳에 보낸 것은 우리가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책임이 없고 우리를 처벌해서는 안됩니다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사탄도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셔서 구원의 길을 여셨으니 가롯유대를 비난할 수 없다는 얼토당토 않는 말을 합니다. 가롯유다는 자기의 죄로 죽었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악행을 이용해서도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그런데 5절에 요셉이 한 말에 중요한 메시지가 담겼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판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것을 이처럼 달리 해석한 것입니다. 형들이 나를 애굽에 팔아넘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일은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었으니 이 일로 근심하지말라고 형들을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세히 말했습니다. 6-8절을 보면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가장 비참하고 불행한 사건을 하나님이 계획하고 축복한 사건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것이 꿈을 가진 사람, 믿음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요셉의 해석은 좀 더 확실해졌습니다. 앞으로 5년 더 흉년이 지속될 것인데 하나님은 이 사실을 아시고 하나님은 형들의 손을 통해 나를 애굽으로 보내셨고 이곳의 최고 실력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아버지와 형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섭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믿음의 사람은 요셉처럼 저주를 복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건을 믿음의 눈으로 재해석하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지나보아야 알 수 있는데 그것도 믿음의 눈, 영적인 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노아의 방주 사건입니다. 노아는 산 위에다 방주를 지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방주는 그 길이가 축구장만 했고 돛이나 배의 방향을 잡는 키가 없었습니다. 방주는 바람으로만 움직인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누가 이런 것을 미리 알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요 하나님이 주신 비전입니다.

 

본문 9-11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형들에게 속히 아버지에게로 돌아가 모든 식구들과 소유를 이끌고 속히 애굽의 고센 땅으로 와서 머물도록 부탁을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는 요셉의 형들에게서 야곱으로 옮겨 갑니다. 하나님이 야곱과 한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이런 구원의 대 드라마를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찌기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들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살면서 큰 민족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언약하셨기 때문에 이제 그 일을 야곱 가족부터 애굽으로 이주하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환난 때이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들어 애굽의 권력자로 삼으셔서 아버지 야곱과 형들을 보호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는 병들고 사업에 실패하고 가족 간에 혹은 인간관계에서 여러 가지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현실 속에 나를 있게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얻어맞고, 깨지고 상처받고 어려운 일을 겪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뜨는 연약한 존재들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부조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지금의 나로 있게 하셨습니까? 때로는 병들게도 하시고 어려움과 고통을 겪게도 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지금은 모릅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믿음과 순종 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정말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갑니다.

 

 

우리의 고난에도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 억울한 일과 핍박을 많이 겪겠지만 그것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대 드라마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우리 가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배우자와 자녀와 부모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민족이 변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3. 섭리의 목적

요셉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구원록적 관점과 종말론적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의 결론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애굽으로 보낸 이유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것은 본문 5절에서 말한 것처럼 바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앞으로 5년이나 더 흉년이 지속되므로 요셉 가족들이 가나안 땅에 그대로 있었다면 기근으로 모두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라졌을 것입니다. 본문 7절에도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을 이처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수십년 동안 자기가 왜 애굽에 팔려와서 이런 저런 고난을 겪고 드디어 애굽총리가 되었는지 묵상한 후에 얻은 결론이 하나님의 크신 구원계획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자기를 애굽총리로 만드신 것은 요셉의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사실은 더 큰 비밀이 그 속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그들과 한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12명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부도덕하고 혈기 많고 불신앙적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 연단하여 믿음의 지파로 세워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신 것입니다. 단순히 요셉의 가족들을 기근에 살리기 위한 과정이 아닌 것입니다. 야곱의 후손을 통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오셔야 하기 때문에 요셉을 통해 야곱의 가족을 구원한 것입니다.

 

본문 9절 이후에 보면 요셉은 자신이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계획이 아주 구체적이라는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본문 9-11절을 보면 요셉은 형제들에게 속히 돌아가서 지체없이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온 식구들을 애굽으로 데려오도록 신신당부합니다. 흉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나안 땅에 있는 아버지와 그 자손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요셉은 하루 속히 아버지와 그 가족들이 애굽으로 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머물 땅도 고센 땅으로 구체적으로 지정했습니다. 고센에 오면 야곱과 그 자손들과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5년의 흉년동안 아버지를 잘 모시겠다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12절에 요셉이 모든 약속을 한 다음에 그것을 확증하기 위해 증인을 세웁니다. 형들과 자신의 아우 베냐민입니다. 요셉이 한 말을 이들이 다 들었습니다. 이것은 공적인 약속이 된 것입니다. 이 약속을 마치고 나서야 요셉은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울었고, 그 형들과도 입맞추고 안고 울었습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이 모든 일이 정리가 되어서야 형들이 요셉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모든 긴장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서로 나뉘었던 사이가 화해를 이룬 것입니다. 화해가 되자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형제간의 대화가 회복된 것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요셉의 신앙고백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서로 갈라져서 원수가 되었던 형제들이 어떻게 해서 다시 화해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요셉의 섭리의 신앙은 요셉으로 하여금 자신의 사명에 더욱 충실하도록 합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으로 섭리로 말미암아 성취되었고 그것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가 그 야곱의 후손을 통해 오시리라는 구원의 경륜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능력이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셨다고 확신했습니다. 그 총리의 자리보다 그 자리를 통하여 해야 할 일에 관심을 더 가졌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 속에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계획의 비밀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열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온 모든 고난에 오히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격, 기쁨, 성령충만이 우리에게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요셉과 같은 삶을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일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를 위하여 먼저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섬김을 통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우리의 섬김을 통하여 우리와 우리 자녀들과 세상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하나님의 인류구원계획을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주일오후설교 250706 요셉의 신앙고백과 하나님의 섭리

본문: 45: 1-15

제목: 요셉의 신앙고백과 하나님의 섭리

 

I. 서론

지난 주일에 창44장에서 유다가 요셉에게 막내동생 베냐민을 보내 주면 자신이 대신 요셉의 종이 되겠다고 간청하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유다는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판 장본인이었습니다. 구덩이에 있는 요셉을 죽이지 말고 애굽상인에게 팔아버리자고 제안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유다가 이제는 자기 동생 베냐민을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칠테니 베냐민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진정으로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고 이제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요셉은 유다와 형들이 과거와 달리 이렇게 변한 것을 보고 그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드디어 자기가 요셉임을 밝히는 장면이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요셉의 신앙고백과 하나님의 섭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요셉의 신앙고백

요셉은 유다의 간청을 듣고 더는 버티지 못합니다. 유다가 베냐민을 인질로 잡는 것은 절대로 안됩니다. 차라리 저를 노예로 삼으십시오라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 결국 요셉은 연극을 포기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 앞에 무너지는 요셉을 봅니다. 유다가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희생의 다짐은 이렇게 놀라운 것입니다.

 

본문1-2절에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를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때에 함께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북받치는 감정을 더는 억제할 수 없어서 시종들에게 나가라 한 후에 형들 앞에서 방성대곡했습니다. 드디어 요셉은 자기 이름을 밝힙니다. 본문 3절에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라고 했습니다. 형들은 얼마나 놀랐던지 입이 얼어붙어 말 한마디 못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면서 형들이 애굽으로 가는 상인들에게 판 동생이 바로 자신이라고 거듭 말했습니다. 요셉이 말할수록 형들은 더욱 말문이 막혔습니다.

 

지금까지 요셉은 청지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중간에 통역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이 애굽말이 아니라 자기의 모국어로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시나이까?라고 말하니 형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지금까지 요셉은 당신들의 아버지라고 말해 왔는데 여기서는 내 아버지라고 말하니 형들은 너무나 놀라 말문이 막혔습니다.

 

3절에 놀랐다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 단어는 단순히 놀란 정도가 아니라 전쟁상황에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즉 형들에게 요셉의 말은 마치 선전포고와 같이 두렵게 들린 것입니다. 그들이 가까이 갔을 때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고 까지 했습니다. 멀리서는 잘 몰랐는데 가까이 가서 요셉의 얼굴을 보니 20여년 전에 자기들이 판 그 요셉이 틀림없었습니다. 더욱 까무라칠 정도로 놀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제 다 죽었구나라고 생각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라고 말하며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사실 요셉은 그 형들 때문에 지난 20여년간 얼마나 많은 고난과 고통을 겪었습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형들을 보고 울화가 당장에라도 감옥에 집어 넣어 동일한 고통을 맛보게 복수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형들을 용서 한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반복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의를 이루시고, 우리의 실수를 통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경륜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이것이 요셉의 말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2. 하나님의 섭리

이렇게 섭리의 신앙은 위대한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에게 악한 일이 일어나고 고난이 닥쳐와도 하나님이 하셨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는다면 타인에게 관대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요셉의 용서는 일방적입니다. 형들이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일방적인 사랑으로 그들을 감싸안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하는 믿음의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여기서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하나님은 좋은 일만 생기게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쁜 일도 우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일어나게 할 수 있고 혹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일에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여전히 보존하시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일이 우연이나 운명, 자연법칙에 의해 결정되거나 혹은 인간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성도들은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섭리의 교리를 잘못 사용되면 하나님의 사역을 모독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목회자나 이단교주가 하나님의 섭리라는 이름으로 자기 자신의 죄악을 정당화 하는 일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교리를 바로 이해하는 것과 바로 사용하는 것을 세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똑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요셉은 나를 이곳에 보내신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형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해봅시다. 말하자면 당신을 이곳에 보낸 것은 우리가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책임이 없고 우리를 처벌해서는 안됩니다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사탄도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셔서 구원의 길을 여셨으니 가롯유대를 비난할 수 없다는 얼토당토 않는 말을 합니다. 가롯유다는 자기의 죄로 죽었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악행을 이용해서도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그런데 5절에 요셉이 한 말에 중요한 메시지가 담겼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판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것을 이처럼 달리 해석한 것입니다. 형들이 나를 애굽에 팔아넘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일은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었으니 이 일로 근심하지말라고 형들을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세히 말했습니다. 6-8절을 보면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가장 비참하고 불행한 사건을 하나님이 계획하고 축복한 사건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것이 꿈을 가진 사람, 믿음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요셉의 해석은 좀 더 확실해졌습니다. 앞으로 5년 더 흉년이 지속될 것인데 하나님은 이 사실을 아시고 하나님은 형들의 손을 통해 나를 애굽으로 보내셨고 이곳의 최고 실력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아버지와 형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섭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믿음의 사람은 요셉처럼 저주를 복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건을 믿음의 눈으로 재해석하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지나보아야 알 수 있는데 그것도 믿음의 눈, 영적인 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노아의 방주 사건입니다. 노아는 산 위에다 방주를 지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방주는 그 길이가 축구장만 했고 돛이나 배의 방향을 잡는 키가 없었습니다. 방주는 바람으로만 움직인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누가 이런 것을 미리 알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요 하나님이 주신 비전입니다.

 

본문 9-11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형들에게 속히 아버지에게로 돌아가 모든 식구들과 소유를 이끌고 속히 애굽의 고센 땅으로 와서 머물도록 부탁을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는 요셉의 형들에게서 야곱으로 옮겨 갑니다. 하나님이 야곱과 한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이런 구원의 대 드라마를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찌기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들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살면서 큰 민족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언약하셨기 때문에 이제 그 일을 야곱 가족부터 애굽으로 이주하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환난 때이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들어 애굽의 권력자로 삼으셔서 아버지 야곱과 형들을 보호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는 병들고 사업에 실패하고 가족 간에 혹은 인간관계에서 여러 가지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현실 속에 나를 있게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얻어맞고, 깨지고 상처받고 어려운 일을 겪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뜨는 연약한 존재들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부조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지금의 나로 있게 하셨습니까? 때로는 병들게도 하시고 어려움과 고통을 겪게도 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지금은 모릅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믿음과 순종 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정말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갑니다.

 

 

우리의 고난에도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 억울한 일과 핍박을 많이 겪겠지만 그것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대 드라마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우리 가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배우자와 자녀와 부모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민족이 변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3. 섭리의 목적

요셉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구원록적 관점과 종말론적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의 결론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애굽으로 보낸 이유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것은 본문 5절에서 말한 것처럼 바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앞으로 5년이나 더 흉년이 지속되므로 요셉 가족들이 가나안 땅에 그대로 있었다면 기근으로 모두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라졌을 것입니다. 본문 7절에도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을 이처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수십년 동안 자기가 왜 애굽에 팔려와서 이런 저런 고난을 겪고 드디어 애굽총리가 되었는지 묵상한 후에 얻은 결론이 하나님의 크신 구원계획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자기를 애굽총리로 만드신 것은 요셉의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사실은 더 큰 비밀이 그 속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그들과 한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12명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부도덕하고 혈기 많고 불신앙적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 연단하여 믿음의 지파로 세워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신 것입니다. 단순히 요셉의 가족들을 기근에 살리기 위한 과정이 아닌 것입니다. 야곱의 후손을 통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오셔야 하기 때문에 요셉을 통해 야곱의 가족을 구원한 것입니다.

 

본문 9절 이후에 보면 요셉은 자신이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계획이 아주 구체적이라는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본문 9-11절을 보면 요셉은 형제들에게 속히 돌아가서 지체없이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온 식구들을 애굽으로 데려오도록 신신당부합니다. 흉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나안 땅에 있는 아버지와 그 자손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요셉은 하루 속히 아버지와 그 가족들이 애굽으로 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머물 땅도 고센 땅으로 구체적으로 지정했습니다. 고센에 오면 야곱과 그 자손들과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5년의 흉년동안 아버지를 잘 모시겠다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12절에 요셉이 모든 약속을 한 다음에 그것을 확증하기 위해 증인을 세웁니다. 형들과 자신의 아우 베냐민입니다. 요셉이 한 말을 이들이 다 들었습니다. 이것은 공적인 약속이 된 것입니다. 이 약속을 마치고 나서야 요셉은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울었고, 그 형들과도 입맞추고 안고 울었습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이 모든 일이 정리가 되어서야 형들이 요셉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모든 긴장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서로 나뉘었던 사이가 화해를 이룬 것입니다. 화해가 되자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형제간의 대화가 회복된 것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요셉의 신앙고백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서로 갈라져서 원수가 되었던 형제들이 어떻게 해서 다시 화해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요셉의 섭리의 신앙은 요셉으로 하여금 자신의 사명에 더욱 충실하도록 합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으로 섭리로 말미암아 성취되었고 그것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가 그 야곱의 후손을 통해 오시리라는 구원의 경륜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능력이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셨다고 확신했습니다. 그 총리의 자리보다 그 자리를 통하여 해야 할 일에 관심을 더 가졌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 속에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계획의 비밀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열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온 모든 고난에 오히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격, 기쁨, 성령충만이 우리에게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요셉과 같은 삶을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일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를 위하여 먼저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섬김을 통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우리의 섬김을 통하여 우리와 우리 자녀들과 세상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하나님의 인류구원계획을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설교본문 설교일 설교자
62 요셉의 신앙고백과 하나님의 섭리 창45:1-15 2025-07-06 홍기칠 목사
61 목숨을 건 중보기도 창44:1-34 2025-06-29 홍기칠 목사
60 진퇴양난의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 창43:1-34 2025-06-22 홍기칠 목사
59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셉의 통치 창42: 18-38 2025-06-15 홍기칠 목사
58 숨겨둔 죄를 드러내시는 하나님 창42:1-17 2025-06-08 홍기칠 목사
57 요셉을 애굽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 창41:37-57 2025-06-01 홍기칠 목사
56 바로왕의 꿈을 해석한 요셉 창41:1-36 2025-05-25 홍기칠 목사
55 요셉의 꿈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뤙 창40:1-23 2025-05-18 홍기칠 목사
54 믿음으로 시험을 이긴 요셉 창39:7-23 2025-05-11 홍기칠 목사
53 복의 통로가 된 요셉 창39:1-6 2025-05-04 홍기칠 목사
52 다말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획 창38:1-30 2025-04-27 홍기칠 목사
51 요셉의 고난과 하나님의 섭리 창32: 12-36 2025-04-13 홍기칠 목사
50 요셉의 꿈 창37:1-11 2025-04-06 홍기칠 목사
49 에서의 후손 창36: 1-43 2025-03-30 홍기칠 목사
48 20250316 주일오후설교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창35: 1-29)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