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설교본문 | 창46: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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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홍기칠 목사 |
설교일 | 2025-07-20 |
주일오후 설교 250720 내가 너와 함께 가겠노라
본문: 창46: 1-34
제목: 내가 너와 함께 가겠노라
I.서론
야곱이 베냐민을 자기 아들들과 함께 애굽으로 보내고 나서 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자기가 가장 사랑하던 요셉은 짐승에게 희생당했다고 아들들이 한 말을 듣고 평생 가슴 아팠는데 이제 막내 베냐민마저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겠습니까? 그런데 드디어 그 형제들이 베냐민을 데리고 돌아왔고 잃었다고 생각했던 요셉도 살아 있고 더구나 그가 이방나라 강대국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얼마나 놀라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요셉이 보낸 여러 가지 물품과 양식과 수레들을 보며 그것이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야곱은 이제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하면서 죽기 전에 가서 요셉을 보리라고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제 요셉의 초청대로 야곱이 온 가족과 소유를 이끌고 애굽으로 이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본문을 통해 야곱과 동행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브엘세바에서 예배함
야곱은 무슨 생각으로 애굽이라는 이방나라에 이주할 생각을 했을까요? 단지 요셉을 보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몇 달만 보고 다시 돌아오면 될 것입니다. 요셉의 초청을 받았을 때 야곱은 애굽으로 이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오직 믿음으로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으로 출발했습니다. 본문 1절에 가다가 브엘세바라는 곳에 이르러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브엘세바는 가나안 땅의 가장 남쪽에 해당되는 지역입니다. 물론 브엘세바 남쪽에도 땅이 있었지만 거기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일 뿐입니다. 이 사막을 지나면 애굽으로 입국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을 떠나기 직전에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브엘세바는 지리적으로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성전이 건축된 예루살렘이 가장 중요한 성지이지만 족장시대에는 브엘세바가 가장 중요한 성지였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 앞에 단을 쌓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창21장을 보면 아비멜렉과 아브라함 사이에 우물로 인하여 분쟁이 있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맹세하고 평화조약을 선언한 곳입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브엘세바 곧 맹세의 우물이라 정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에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는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나무는 그 장소가 성지리는 것을 표시합니다.
브엘세바는 이삭에게도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창26장에 보면 이삭의 종들이 파놓은 우물을 아비멜렉의 종들이 빼앗자 계속 옮겨가며 우물을 팠는데 나중에 아비멜렉이 화친을 요청하여 화친을 맺고 브엘세바에서 이삭은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거기 장막을 친 다음에 이삭의 종들이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나무와 마찬가지로 우물도 성소라는 중요 표지입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환상중에 물이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와 큰 강을 이루고 마침내 바다로 흘러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도 생명 수 강이 흘러 넘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에게도 낯선 곳이 아닙니다. 창28장을 보면 그가 형 에서를 피해 가나안 땅을 떠나 외삼촌 라반이 사는 하란으로 갈 때 그 출발점이 브엘세바였습니다. 밤이 되어 자다가 꿈에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까지 닿은 사닥다리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광경을 보았고 하나님의 언약을 듣게 됩니다. 창28:15절에 보면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야곱은 그곳 이름을 원래 이름 루스에서 벧엘이라 정하고 서원하여 언약대로 다시돌아오면 그곳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고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본문 1절에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자기 조부 아브라함이 심은 에셀나무와 아버지 이삭이 판 우물도 보았을 것입니다. 야곱이 희생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제물을 태워 드리는 번제를 말합니다. 야곱은 애굽으로 가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을 하나님께 확인받고 싶어서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무슨 일을 결정할 때, 결정하고도 불안할 때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들릴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자주 저지르는 실수는 자기 열정으로 일하다 보면 일만 보이고 하나님은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자기 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 편이 되어야지 왜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야 합니까? 이처럼 우리는 자칫하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셔야 하고 내 비전을 이루어 주셔야 한다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보도록 멈춰 서게 하십니다. 어떤 때는 실패하게도 하시고 병들게도 하셔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십니다. 인공위성을 쏘고 나면 과학자들은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목표지점 갈 때 까지 계속 궤도 수정을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길도 하나님의 궤도수정을 받게 됩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가 있게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나를 궤도수정하는 시간입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에서 그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모든 사역의 힘은 예배에서 흘러나옵니다. 예배가 있으면 사역이 피곤하지 않고 힘이 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하심, 동행하심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제단을 쌓고 드디어 힘을 얻어 애굽으로 기꺼이 내려갔습니다.
2. 하나님의 언약
희생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단순히 예배를 드렸다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창35장 벧엘에서 나타나시고 난 후 사실 마지막 출현입니다. 본문 2절에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야곱아 야곱아’라고 두 번 연속해서 부르셨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때 야곱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6:8절을 보면 이사야가 예배 중에 하나님을 만났을 때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시자 이사야도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말씀증거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응답은 모세도,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시는 음성을 마음으로 듣게 되면 도망치지 말고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자 본문 3절에 “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언약하셨습니다. 그리고 4절에도 이어서 “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나는 하나님이라’라고 하셨는데 히브리어로 ‘하 엘’이라고 하는데 ‘하’는 정관사 the와 같고 ‘엘’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엘로힘(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이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하 엘’이라고 해서 ‘내가 바로 그 하나님’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란 뜻은 전능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야곱에게 나타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의 하나님이시니 살아계신 하나님이요, 언약의 하나님이요 전능한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일반종교에서 말하는 막연한 신이 아니라 살아계셔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전능하신 능력으로 구체적으로 그 언약을 성취시키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더 구체적으로 죄와 사망과 사탄에서 해방시키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복음의 언약이 나 뿐 아니라 나의 후손을 통해 전승되기를 원하십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을 떠나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가나안 땅을 자기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 가나안 땅을 모든 가족이 하나도 남지 않고 떠난다면 어떻게 그 땅을 다시 차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본문 3, 4절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야곱에게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룬 후에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돌아올 것이고, 너는 거기서 요셉이 임종을 지켜볼 것이라고 약속을 하심으로 그 야곱의 불안감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야곱과의 약속에 앞서서 창15: 13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식을 체결하면서 “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당시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이제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 언약을 야곱을 통해 드디어 실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기 전에 먼저 나타나셔서 언약을 재확인하시며 야곱을 안심시키고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확신 가운데 애굽으로 내려 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자상하시고 세밀하시고 구체적인 언약의 하나님이십니까? 야곱은 이 하나님의 언약에 큰 위로와 용기를 얻고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세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일시적인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계시던 하나님이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요, 네 조상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운 하나님이요, 너를 지은 바로 그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애굽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셨지만 이제는 애굽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함입니다.
셋째,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야곱 가족이 드디어 애굽으로 가게 되고 그후 430년 동안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장정 60만인데 그 가족들을 포함하면 약 200만명이 될 만큼 번성하게 되고 때가 되었을 때 모세를 통해 그 백성을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위대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이 하라고 분명히 말씀하신 일은 그 까닭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바울이 소아시아로 가려고 하다가 하나님께서 그 길을 막으시자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그것이 유럽 전도의 시작이 되었고 로마가 복음화 됨으로 세계복음화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두 예언이 나옵니다. 하나는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어 나오게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야곱이 거기서 죽게 될 것인데 요셉이 그 임종시에 눈을 감겨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가기 전에 이 말씀을 들은 야곱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야곱의 불안은 모두 사라지고 애굽에서 일어날 미래의 모든 일까지 먼저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안심이 되고 용기가 생겼겠습니까?
3. 야곱의 순종
본문 5-7절을 보면 드디어 야곱은 그 아들들이 요셉이 보낸 수레에 야곱과 처자들이 타고 가나안 땅에서 얻은 가축과 재물과 가족들 모두를 이끌고 드디어 애굽으로 내려 갔습니다. 야곱은 이때 나이가 130세가 된 노인이었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애굽으로 가는데 다 바친 것입니다. 잘못하면 애굽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흉년이 계속되었으므로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재산과 가족들을 몽땅 잃을 수 도 있고, 혹은 애굽에 내려가서 애굽사람들에게 다 빼앗길 수도 있는 엄청난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옛날의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그동안 이룬 재물과 가족들을 데리고 형 에서를 만나러 갈 때 불안하여 짐승들을 여러 떼로 나누고 가족들과 그가 사랑하는 순서대로 나누어 먼저 얍복강을 건너게 하고, 만약 위험이 닥치면 그 역순서대로 도망갈 계획까지 세운 참으로 인간적이고 주도면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8절부터 27절 까지는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열 두명의 아들들과 가족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열 두명 아들들과 가족들의 이름을 왜 이렇게 지루할 정도로 기록해두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한 무리로 보지 않으시고 각각의 이름을 소중하게 기억하시며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과 그 후손들의 이름까지 하나 하나 기록한 것은 야곱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며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보시고 기억하시며 그들과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록을 통해 증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은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들이 모두 70명이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70은 창세기에서 많고 충만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죽었을 때 애굽 사람들이 70일 동안 애곡했습니다. 그런데 행7:14절에 스데반이 설교할 때는 75명이라고 했는데 창세기에서는 그 아들들에 관한 것이고, 사도행전에서는 야곱과 그 친족 75명이라고 함으로써 직계가족이 아닌 다른 친척 몇 명이 따라갔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가나안 땅에 살았던 기간은 17년이고 야곱이 앞으로 애굽에서 살 기간도 17년으로 147세까지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애굽같은 이 세상에 보내셨고 여기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우리가 영원히 살 장소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갈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알게 되면 무엇이든지 감사하게 되고 기꺼이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그 과정이 비록 어렵고 힘든다고 해도 결말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그 기쁘신 뜻대로 택함을 받아 이 땅에 보냄을 받았고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달란트와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영원한 천국으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4. 요셉을 만나 고센 땅에 정착함
본문 28-34절 까지는 야곱 일행이 애굽의 고센 땅에 도착하여 요셉을 만나고 요셉에게 바로왕을 만나면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전해 듣게 되는 내용입니다. 본문 29, 30절에 보면 드디어 야곱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들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서로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야곱은 젊었을 때는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이제 나이가 130세가 된 힘없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넘치는 복과 은혜를 주시니 야곱은 요셉을 보고 난 후 지금 죽어도 족하다고 말할 정도로 감격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야곱에게 바로왕 앞에 나가게 되면 그들은 선조때부터 목축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라고 했습니다. 애굽에서는 목축업을 천한 직업으로 보기 때문에 목축하기 좋은 넓은 초지가 있는 고센 땅에 살도록 쾌히 승낙할 것이라 했습니다. 여기서도 요셉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만약 가나안 땅에서 큰 부족으로 야곱이 부족장이라고 바로왕에게 소개한다면 바로왕이 아마 높은 관직을 허락하고 바로 왕이 있는 왕궁 곁에 도시에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후손들이 애굽 문화와 풍습에 젖어 그 후손들이 그들과 통혼하여 혼혈이 되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대대로 목축을 하는 평민이라는 것을 바로왕이 알면 목축하기 좋은 시골 고센땅에 정착해 살도록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 백성과 구별되어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요셉은 자기 가족들이 목축업을 한다는 것이 천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애굽이라는 이방나라에서 이스라엘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되게 살면서 순수한 혈통을 이어가 번성케 되고 나중에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출애굽하게 될 것 까지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으로부터 자기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전해 들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록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해도 애굽에서 외국인들인 자기 가족들이 최소한 안전한 삶을 살아가도록 미리 조치를 하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였을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야곱에게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야곱의 후손들이 약 200만명이라는 큰 민족을 이루고 애굽제국의 통치아래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을 하는 그 백성들과도 하나님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일을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홍수 이후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하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번성케 하시고 그 후손으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셔서 아담 하와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인류를 다시 구원하시려는 구원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구원계획이 오늘 본문을 통해 야곱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함으로써 구체적으로 실행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야곱은 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야곱의 하나님이 되고 그로 큰 민족을 이루기 위해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시겠다고 언약을 하셨기 때문에 야곱은 그 언약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큰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아주 작은 교회이지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묵묵히 감당할 때 야곱의 후손들이 창대하게 되었듯이 시작은 미약하였느나 끝은 창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교회를 통해 예수 생명, 예수 능력이 증거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고 구원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실 것입니다. 특히 대구교대생들을 전도제자로 훈련시켜 초등현장을 복음화 하실 계획을 우리를 통해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갈 때 함께 동행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우리 성도들과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대학복음화,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주시고 성취하실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언약의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며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믿음으로 끝까지 전진하여 전도와 선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전도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주일오후 설교 250720 내가 너와 함께 가겠노라
본문: 창46: 1-34
제목: 내가 너와 함께 가겠노라
I.서론
야곱이 베냐민을 자기 아들들과 함께 애굽으로 보내고 나서 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자기가 가장 사랑하던 요셉은 짐승에게 희생당했다고 아들들이 한 말을 듣고 평생 가슴 아팠는데 이제 막내 베냐민마저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겠습니까? 그런데 드디어 그 형제들이 베냐민을 데리고 돌아왔고 잃었다고 생각했던 요셉도 살아 있고 더구나 그가 이방나라 강대국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얼마나 놀라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요셉이 보낸 여러 가지 물품과 양식과 수레들을 보며 그것이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야곱은 이제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하면서 죽기 전에 가서 요셉을 보리라고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제 요셉의 초청대로 야곱이 온 가족과 소유를 이끌고 애굽으로 이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본문을 통해 야곱과 동행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브엘세바에서 예배함
야곱은 무슨 생각으로 애굽이라는 이방나라에 이주할 생각을 했을까요? 단지 요셉을 보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몇 달만 보고 다시 돌아오면 될 것입니다. 요셉의 초청을 받았을 때 야곱은 애굽으로 이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오직 믿음으로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으로 출발했습니다. 본문 1절에 가다가 브엘세바라는 곳에 이르러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브엘세바는 가나안 땅의 가장 남쪽에 해당되는 지역입니다. 물론 브엘세바 남쪽에도 땅이 있었지만 거기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일 뿐입니다. 이 사막을 지나면 애굽으로 입국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을 떠나기 직전에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브엘세바는 지리적으로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성전이 건축된 예루살렘이 가장 중요한 성지이지만 족장시대에는 브엘세바가 가장 중요한 성지였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 앞에 단을 쌓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창21장을 보면 아비멜렉과 아브라함 사이에 우물로 인하여 분쟁이 있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맹세하고 평화조약을 선언한 곳입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브엘세바 곧 맹세의 우물이라 정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에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는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나무는 그 장소가 성지리는 것을 표시합니다.
브엘세바는 이삭에게도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창26장에 보면 이삭의 종들이 파놓은 우물을 아비멜렉의 종들이 빼앗자 계속 옮겨가며 우물을 팠는데 나중에 아비멜렉이 화친을 요청하여 화친을 맺고 브엘세바에서 이삭은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거기 장막을 친 다음에 이삭의 종들이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나무와 마찬가지로 우물도 성소라는 중요 표지입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환상중에 물이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와 큰 강을 이루고 마침내 바다로 흘러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도 생명 수 강이 흘러 넘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에게도 낯선 곳이 아닙니다. 창28장을 보면 그가 형 에서를 피해 가나안 땅을 떠나 외삼촌 라반이 사는 하란으로 갈 때 그 출발점이 브엘세바였습니다. 밤이 되어 자다가 꿈에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까지 닿은 사닥다리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광경을 보았고 하나님의 언약을 듣게 됩니다. 창28:15절에 보면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야곱은 그곳 이름을 원래 이름 루스에서 벧엘이라 정하고 서원하여 언약대로 다시돌아오면 그곳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고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본문 1절에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자기 조부 아브라함이 심은 에셀나무와 아버지 이삭이 판 우물도 보았을 것입니다. 야곱이 희생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제물을 태워 드리는 번제를 말합니다. 야곱은 애굽으로 가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을 하나님께 확인받고 싶어서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무슨 일을 결정할 때, 결정하고도 불안할 때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들릴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자주 저지르는 실수는 자기 열정으로 일하다 보면 일만 보이고 하나님은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자기 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 편이 되어야지 왜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야 합니까? 이처럼 우리는 자칫하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셔야 하고 내 비전을 이루어 주셔야 한다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보도록 멈춰 서게 하십니다. 어떤 때는 실패하게도 하시고 병들게도 하셔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십니다. 인공위성을 쏘고 나면 과학자들은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목표지점 갈 때 까지 계속 궤도 수정을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길도 하나님의 궤도수정을 받게 됩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가 있게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나를 궤도수정하는 시간입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에서 그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모든 사역의 힘은 예배에서 흘러나옵니다. 예배가 있으면 사역이 피곤하지 않고 힘이 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하심, 동행하심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제단을 쌓고 드디어 힘을 얻어 애굽으로 기꺼이 내려갔습니다.
2. 하나님의 언약
희생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단순히 예배를 드렸다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창35장 벧엘에서 나타나시고 난 후 사실 마지막 출현입니다. 본문 2절에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야곱아 야곱아’라고 두 번 연속해서 부르셨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때 야곱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6:8절을 보면 이사야가 예배 중에 하나님을 만났을 때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시자 이사야도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말씀증거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응답은 모세도,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시는 음성을 마음으로 듣게 되면 도망치지 말고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자 본문 3절에 “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언약하셨습니다. 그리고 4절에도 이어서 “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나는 하나님이라’라고 하셨는데 히브리어로 ‘하 엘’이라고 하는데 ‘하’는 정관사 the와 같고 ‘엘’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엘로힘(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이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하 엘’이라고 해서 ‘내가 바로 그 하나님’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란 뜻은 전능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야곱에게 나타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의 하나님이시니 살아계신 하나님이요, 언약의 하나님이요 전능한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일반종교에서 말하는 막연한 신이 아니라 살아계셔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전능하신 능력으로 구체적으로 그 언약을 성취시키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더 구체적으로 죄와 사망과 사탄에서 해방시키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복음의 언약이 나 뿐 아니라 나의 후손을 통해 전승되기를 원하십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을 떠나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가나안 땅을 자기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 가나안 땅을 모든 가족이 하나도 남지 않고 떠난다면 어떻게 그 땅을 다시 차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본문 3, 4절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야곱에게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룬 후에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돌아올 것이고, 너는 거기서 요셉이 임종을 지켜볼 것이라고 약속을 하심으로 그 야곱의 불안감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야곱과의 약속에 앞서서 창15: 13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식을 체결하면서 “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당시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이제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 언약을 야곱을 통해 드디어 실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기 전에 먼저 나타나셔서 언약을 재확인하시며 야곱을 안심시키고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확신 가운데 애굽으로 내려 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자상하시고 세밀하시고 구체적인 언약의 하나님이십니까? 야곱은 이 하나님의 언약에 큰 위로와 용기를 얻고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세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일시적인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계시던 하나님이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요, 네 조상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운 하나님이요, 너를 지은 바로 그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애굽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셨지만 이제는 애굽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함입니다.
셋째,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야곱 가족이 드디어 애굽으로 가게 되고 그후 430년 동안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장정 60만인데 그 가족들을 포함하면 약 200만명이 될 만큼 번성하게 되고 때가 되었을 때 모세를 통해 그 백성을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위대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이 하라고 분명히 말씀하신 일은 그 까닭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바울이 소아시아로 가려고 하다가 하나님께서 그 길을 막으시자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그것이 유럽 전도의 시작이 되었고 로마가 복음화 됨으로 세계복음화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두 예언이 나옵니다. 하나는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어 나오게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야곱이 거기서 죽게 될 것인데 요셉이 그 임종시에 눈을 감겨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가기 전에 이 말씀을 들은 야곱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야곱의 불안은 모두 사라지고 애굽에서 일어날 미래의 모든 일까지 먼저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안심이 되고 용기가 생겼겠습니까?
3. 야곱의 순종
본문 5-7절을 보면 드디어 야곱은 그 아들들이 요셉이 보낸 수레에 야곱과 처자들이 타고 가나안 땅에서 얻은 가축과 재물과 가족들 모두를 이끌고 드디어 애굽으로 내려 갔습니다. 야곱은 이때 나이가 130세가 된 노인이었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애굽으로 가는데 다 바친 것입니다. 잘못하면 애굽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흉년이 계속되었으므로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재산과 가족들을 몽땅 잃을 수 도 있고, 혹은 애굽에 내려가서 애굽사람들에게 다 빼앗길 수도 있는 엄청난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옛날의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그동안 이룬 재물과 가족들을 데리고 형 에서를 만나러 갈 때 불안하여 짐승들을 여러 떼로 나누고 가족들과 그가 사랑하는 순서대로 나누어 먼저 얍복강을 건너게 하고, 만약 위험이 닥치면 그 역순서대로 도망갈 계획까지 세운 참으로 인간적이고 주도면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8절부터 27절 까지는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열 두명의 아들들과 가족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열 두명 아들들과 가족들의 이름을 왜 이렇게 지루할 정도로 기록해두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한 무리로 보지 않으시고 각각의 이름을 소중하게 기억하시며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과 그 후손들의 이름까지 하나 하나 기록한 것은 야곱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며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보시고 기억하시며 그들과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록을 통해 증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은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들이 모두 70명이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70은 창세기에서 많고 충만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죽었을 때 애굽 사람들이 70일 동안 애곡했습니다. 그런데 행7:14절에 스데반이 설교할 때는 75명이라고 했는데 창세기에서는 그 아들들에 관한 것이고, 사도행전에서는 야곱과 그 친족 75명이라고 함으로써 직계가족이 아닌 다른 친척 몇 명이 따라갔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가나안 땅에 살았던 기간은 17년이고 야곱이 앞으로 애굽에서 살 기간도 17년으로 147세까지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애굽같은 이 세상에 보내셨고 여기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우리가 영원히 살 장소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갈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알게 되면 무엇이든지 감사하게 되고 기꺼이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그 과정이 비록 어렵고 힘든다고 해도 결말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그 기쁘신 뜻대로 택함을 받아 이 땅에 보냄을 받았고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달란트와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영원한 천국으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4. 요셉을 만나 고센 땅에 정착함
본문 28-34절 까지는 야곱 일행이 애굽의 고센 땅에 도착하여 요셉을 만나고 요셉에게 바로왕을 만나면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전해 듣게 되는 내용입니다. 본문 29, 30절에 보면 드디어 야곱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들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서로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야곱은 젊었을 때는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이제 나이가 130세가 된 힘없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넘치는 복과 은혜를 주시니 야곱은 요셉을 보고 난 후 지금 죽어도 족하다고 말할 정도로 감격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야곱에게 바로왕 앞에 나가게 되면 그들은 선조때부터 목축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라고 했습니다. 애굽에서는 목축업을 천한 직업으로 보기 때문에 목축하기 좋은 넓은 초지가 있는 고센 땅에 살도록 쾌히 승낙할 것이라 했습니다. 여기서도 요셉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만약 가나안 땅에서 큰 부족으로 야곱이 부족장이라고 바로왕에게 소개한다면 바로왕이 아마 높은 관직을 허락하고 바로 왕이 있는 왕궁 곁에 도시에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후손들이 애굽 문화와 풍습에 젖어 그 후손들이 그들과 통혼하여 혼혈이 되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대대로 목축을 하는 평민이라는 것을 바로왕이 알면 목축하기 좋은 시골 고센땅에 정착해 살도록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 백성과 구별되어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요셉은 자기 가족들이 목축업을 한다는 것이 천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애굽이라는 이방나라에서 이스라엘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되게 살면서 순수한 혈통을 이어가 번성케 되고 나중에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출애굽하게 될 것 까지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으로부터 자기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전해 들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록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해도 애굽에서 외국인들인 자기 가족들이 최소한 안전한 삶을 살아가도록 미리 조치를 하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였을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야곱에게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야곱의 후손들이 약 200만명이라는 큰 민족을 이루고 애굽제국의 통치아래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을 하는 그 백성들과도 하나님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일을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홍수 이후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하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번성케 하시고 그 후손으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셔서 아담 하와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인류를 다시 구원하시려는 구원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구원계획이 오늘 본문을 통해 야곱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함으로써 구체적으로 실행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야곱은 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야곱의 하나님이 되고 그로 큰 민족을 이루기 위해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시겠다고 언약을 하셨기 때문에 야곱은 그 언약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큰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아주 작은 교회이지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묵묵히 감당할 때 야곱의 후손들이 창대하게 되었듯이 시작은 미약하였느나 끝은 창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교회를 통해 예수 생명, 예수 능력이 증거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고 구원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실 것입니다. 특히 대구교대생들을 전도제자로 훈련시켜 초등현장을 복음화 하실 계획을 우리를 통해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갈 때 함께 동행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우리 성도들과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대학복음화,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주시고 성취하실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언약의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며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믿음으로 끝까지 전진하여 전도와 선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전도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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