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설교본문 | 창47: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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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홍기칠 목사 |
설교일 | 2025-07-27 |
주일오후설교 250727
본문: 창47: 1-31 고센 땅에서 번성한 이스라엘
제목: 고센 땅에서 번성한 이스라엘
I. 서론
우리는 창46장에서 야곱의 가족들 70명과 그 친족들 까지 포함한 75명이 가나안 땅 브엘세바에서 출발하여 애굽으로 이주해 가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이제 47장에서 야곱 가족은 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46장에서 야곱과 함께 동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약속대로 야곱가족은 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 가족과 친척 포함해서 75명이 고센 땅에 정착하여 당시 세계 최대 강국이었던 애굽의 절대황제 바로왕 통치하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은 막상 고센 땅에 오긴 했지만 처음에는 아마 막막한 기분이 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자기 식구 요셉이 그 나라 국무총리가 되어 있었지만 온 사방에는 애굽 백성들과 이방문화로 둘러 싸였습니다. 마치 저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의 난민 70여명이 미국에 가서 정착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본다면 그 어려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들이 과연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도 어떤 면에서는 야곱의 가족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웠지만 이 거대한 불신 세상 문화 속에서 과연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고 선한 복음의 영향력을 발휘하며 부흥해 나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 야곱 가족들이 이 외국 애굽 땅에서 어떻게 번성해 가는지 그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살펴보면서 우리 성도들과 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묵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II. 본론
1. 고센 땅에 정착한 야곱가족
피난민으로 살게 된 야곱 가족이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애굽의 변방인 시골 고센땅에 따로 정착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자기 가족들이 애굽으로 오면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고 계획한 것입니다. 이미 창45:10절에서 형들을 아버지께 보내면서 야곱 가족들이 고센 땅으로 오도록 구체적으로 부탁한 것입니다. 야곱도 아들 요셉의 부탁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수레를 갖추고 고센 땅으로 가서 아버지와 그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서로 껴안고 얼마동안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이제 죽어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큰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상봉의 기쁨이 진정된 다음에 요셉은 가족들이 고센 땅에 정착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웁니다.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고센 땅이 비옥한 농경지이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정주를 잘 허용하지 않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바로왕은 이들을 요셉과 함께 자기 왕궁 곁에 두어서 애굽 사람처럼 살아가도록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미 요셉은 애굽 여자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면 나중에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미리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애굽사람들과 구별되어 따로 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서로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것과 거주지를 달리 하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사람들은 목축을 천한 직업으로 알았기 때문에 야곱가족들을 그저 평범한 외국인으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요셉은 이것을 이용하여 바로왕을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야곱과 형제들이 바로왕을 만나기 전에 사전에 구체적인 지시를 했습니다. 실제로 야곱이나 그 형제들은 요셉이 사전에 이야기 한 대로 바로왕에게 정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이처럼 고센땅에 거주함으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잘 유지하도록 한 것은 요셉의 세밀한 계획때문이었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2. 바로왕을 축복한 야곱
모든 계획을 수립한 후에 요셉은 바로왕에게 야곱 가족이 고센 땅에 도착하여 거주하고 있음을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형들 중 5명을 택하여 바로왕에게 인사를 시켰습니다. 바로가 그들의 직업을 묻자 요셉이 시킨대로 목축업을 하던 사람들이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애굽으로 오게 되었고 고센 땅에 거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바로왕은 그들의 요구를 허락하고 그들 중에 능력있는 사람이 자신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왕의 가축을 키우는 곳이니 얼마나 좋은 목초지였겠습니까? 그들은 그곳에 살면서 왕의 가축을 관리하는 일도 맡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절차를 밟아 왕의 허가를 얻어 친족들을 이주시켰습니다. 본문 11절에서 요셉은 바로왕의 명령에 따라 형들에게 애굽의 좋은 땅 라암세스를 주어 기업을 삼게 했습니다. 고센이란 지명은 넓은 지역을 의미하고 라암세스는 그곳에 있는 도성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마6: 31-32절을 보면 “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6:33절에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면 의식주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즉 세계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전도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주 문제는 주님께서 반드시 풍성하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만나의 법칙’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 양식의 본질은 하늘에서 매일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의 법칙을 알게 되면 삶의 법칙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먹을 양식을 주심을 믿고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빌4: 19절에도 “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은 채우시되 풍성하게 채우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의 형들이 바로왕에게 고센 땅을 달라고 한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창46장에 나오는 대로 고센 땅은 목축하기에 가장 좋은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가족들은 선조때부터 목축을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둘째, 고센 땅은 애굽사람들이 살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사람들과 섞여 살지 않고 독립해서 살 수 있었습니다. 애굽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고, 모국어와 전통과 민족 동질성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셋째, 고센 땅은 애굽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가나안과 아주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가나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삽니다. 그러나 이곳은 우리가 살아갈 영원한 땅이 아니며 애굽과 같은 땅입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영원한 가나안 땅인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바로왕과 형들의 면담이 끝나고 요셉은 아버지 야곱으로 하여금 바로왕을 만나게 했습니다. 초라한 노인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야곱이 왕궁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도 바로왕을 축복했다고 본문 7절과 10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상황이라 대단한 용기기 필요했습니다. 그 당시 바로왕은 세계 최강국의 황제로서 거의 신적존재로 추앙되는 막강한 권력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왕은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존재이지 축복받을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외국에서 이주해 온 노인에 불과한 야곱이 바로왕에게 축복을 받아도 황송한 일일 텐데 거꾸로 그 왕을 위해 축복했다는 것은 자칫 바로왕의 위신을 깎아 내리는 불경한 태도일 수도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야곱은 바로를 만나기 전에 그 요셉의 형들이 바로왕에게 어떤 환대를 받았는지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감사한 마음으로 바로를 진심으로 축복했습니다. 바로왕은 야곱의 나이를 물었습니다. 본문 9절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나이다 내 나이가 얼마 되지 못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연수가 175세이고 아버지 이삭의 연수가 180세 였으니 자신은 그보다 연수가 적었으나 대단한 장수 집안에 속하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그네 삶이라는 것을 강조했는데 자기는 갈곳이 있는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로왕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그네라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됩니다. 이 말은 야곱의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드러낸 것입니다. 성도들도 이땅에서 야곱처럼 고난을 당하지만 그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체험하며 사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 당시 애굽에서는 나이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라는 애굽사람들이 얼마나 장수하기를 소망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최고의 기대수명이 110세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보다 20년 더 살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17년 더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고 야곱은 다시한번 바로에게 축복하면서 자신이 바로를 축복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곱의 감동적인 두가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바로 왕을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바로 왕 앞에 서게하자 야곱이 바로 왕에게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나올 때도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바로에게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자랑했습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복을 나눠주고 살리고 화해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야곱처럼 당당하게 하나님의 복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해주십시오. 학교나 직장에 출근하면 ‘이곳에 주님의 복이 임할 지어다“라고 축복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축복을 선언하고, 베풀고, 나누어주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야곱 자신의 삶을 두가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그는 자기 인생이 나그네 길이었고 험한 세월을 보냈다고 고백했습니다. 형 에서와의 갈등으로 어버지 집에서 도망쳐 나와 외삼촌 집에서 아내를 얻기 위해 20년 세월을 보내며 고생했고,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일찍 잃었고, 그와의 사이에서 난 요셉을 잃고 수십년을 지냈으며 그 막내 아들 베냐민도 잃을 뻔 했습니다. 그는 할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아버지 이삭처럼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험한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야곱은 간교하고 거짓된 성품 때문에 하나님의 연단을 받느라 스스로 험악한 세월을 환란 가운데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비옥한 땅을 허락받아 가족들과 함께, 특히 잃었던 요셉과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생애 마지막 17년을 가장 행복하고 풍성하게 살았습니다. 기근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살았습니다. 우리 역시 아무리 험한 세월을 보냈다 할지라도 인생의 노년은 야곱처럼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서도 야곱의 가정처럼 모든 것이 회복되고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본문 29-31절을 보면 야곱의 유언이 나옵니다. 그는 지금 애굽에서 편하게 지내지만 결코 자기를 애굽에 묻지 말라고 요셉에게 당부합니다. 자기가 죽으면 고향 가나안 땅에 아브라함과 이삭이 묻힌 조상의 묘지, 곧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굴 매장지에 묻어 달라고 요셉에게 맹세까지 시킵니다. 이처럼 야곱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계셨고, 그 약속을 기억했습니다. 야곱의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이고, 영원한 소망은 하늘본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이것이 비전입니다. 죽더라도 비전은 계속됩니다. 이 비전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집니다. 우리에게도 가족과 교회와 나라에 대한 비전이 있습니다. 그 비전은 나의 당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이러어지는 세계복음화의 비전이 곧 우리의 비전입니다.
3. 엄청난 복을 받은 바로왕
바로왕은 야곱의 축복기도를 받은 후에 엄청난 복을 받게 됩니다. 기근이 계속되자 요셉은 바로 왕궁에 있는 곡식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애굽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이 모두 바로왕에게로 들어갔습니니다. 그 다음해에 돈이 다 떨어지자 이번에는 짐승을 팔아서 곡식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애굽의 짐승들이 다 바로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목축을 싫어했기 때문에 야곱 가족들은 바로의 명령에 따라 그 모든 짐승들을 관리했을 것입니다. 이제 가축들도 다 팔아버리자 애굽백성들은 요셉에게 와서 스스로 토지와 몸을 팔겠다고 제안을 하면서 양식을 구해갔습니다. 요셉은 토지를 경작하여 세금으로 20%를 징수하고 나머지 곡식들은 그들이 먹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애굽의 토지법을 제정한 것입니다. 요즈음으로 치면 토지개혁법으로 앞으로 애굽을 통치하는데 대대로 변하지 않도록 정해놓은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백성들은 요셉에게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통치로 인해 바로왕은 이처럼 엄청난 부를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는 요셉의 지혜로운 통치로 기근 동안에 오히려 엄청난 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온 나라가 기근 상황에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 본문 27절을 보면 “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요셉이 세운 토지법인데 제사장의 토지는 그대로 남겨두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22절과 26절에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이미 애굽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즉 요셉은 애굽 제사장 가문을 이었을 것입니다. 제사장은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여기서 바로는 야곱을 제사장 가문으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야곱의 가족 전체가 제사장 가문으로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야곱의 축복과 요셉의 통치를 통해 바로왕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온 세상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인과 구별된 제사장 나라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벧전 2: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 가족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 어려운 기근의 시기 동안에, 아니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200만이나 되도록 430년 동안 엄청나게 번성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방나라 강대국 애굽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을 잃지않고 민족 혈통을 보존케 하여 장차 그 아브라함의 계보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구세주로 오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렸습니다.
야곱이 애굽에서 살았듯이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이 싫어하는 불신자들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사람들이 싫어할 수 밖에 없는 구별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성도들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들입니다. 모든 세상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구원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택하여 왕같은 제사장들로 삼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비추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고백했듯이 성도는 이땅에서 사는 삶은 나그네 삶이요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며 사는 삶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땅이 마치 모든 것인 것처럼 사는 세상사람들과는 달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영원한 우리의 본향 천국으로 갈 준비를 하며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효도와 형제 우애를 통해서 이 땅에서도 큰 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큰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정체성을 잃지 않고 야곱과 그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세상 사람들을 축복하며 대학복음화,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전도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끝>
주일오후설교 250727
본문: 창47: 1-31 고센 땅에서 번성한 이스라엘
제목: 고센 땅에서 번성한 이스라엘
I. 서론
우리는 창46장에서 야곱의 가족들 70명과 그 친족들 까지 포함한 75명이 가나안 땅 브엘세바에서 출발하여 애굽으로 이주해 가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이제 47장에서 야곱 가족은 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46장에서 야곱과 함께 동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약속대로 야곱가족은 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 가족과 친척 포함해서 75명이 고센 땅에 정착하여 당시 세계 최대 강국이었던 애굽의 절대황제 바로왕 통치하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은 막상 고센 땅에 오긴 했지만 처음에는 아마 막막한 기분이 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자기 식구 요셉이 그 나라 국무총리가 되어 있었지만 온 사방에는 애굽 백성들과 이방문화로 둘러 싸였습니다. 마치 저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의 난민 70여명이 미국에 가서 정착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본다면 그 어려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들이 과연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도 어떤 면에서는 야곱의 가족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웠지만 이 거대한 불신 세상 문화 속에서 과연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고 선한 복음의 영향력을 발휘하며 부흥해 나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 야곱 가족들이 이 외국 애굽 땅에서 어떻게 번성해 가는지 그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살펴보면서 우리 성도들과 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묵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II. 본론
1. 고센 땅에 정착한 야곱가족
피난민으로 살게 된 야곱 가족이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애굽의 변방인 시골 고센땅에 따로 정착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자기 가족들이 애굽으로 오면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고 계획한 것입니다. 이미 창45:10절에서 형들을 아버지께 보내면서 야곱 가족들이 고센 땅으로 오도록 구체적으로 부탁한 것입니다. 야곱도 아들 요셉의 부탁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수레를 갖추고 고센 땅으로 가서 아버지와 그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서로 껴안고 얼마동안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이제 죽어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큰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상봉의 기쁨이 진정된 다음에 요셉은 가족들이 고센 땅에 정착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웁니다.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고센 땅이 비옥한 농경지이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정주를 잘 허용하지 않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바로왕은 이들을 요셉과 함께 자기 왕궁 곁에 두어서 애굽 사람처럼 살아가도록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미 요셉은 애굽 여자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면 나중에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미리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애굽사람들과 구별되어 따로 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서로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것과 거주지를 달리 하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사람들은 목축을 천한 직업으로 알았기 때문에 야곱가족들을 그저 평범한 외국인으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요셉은 이것을 이용하여 바로왕을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야곱과 형제들이 바로왕을 만나기 전에 사전에 구체적인 지시를 했습니다. 실제로 야곱이나 그 형제들은 요셉이 사전에 이야기 한 대로 바로왕에게 정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이처럼 고센땅에 거주함으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잘 유지하도록 한 것은 요셉의 세밀한 계획때문이었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2. 바로왕을 축복한 야곱
모든 계획을 수립한 후에 요셉은 바로왕에게 야곱 가족이 고센 땅에 도착하여 거주하고 있음을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형들 중 5명을 택하여 바로왕에게 인사를 시켰습니다. 바로가 그들의 직업을 묻자 요셉이 시킨대로 목축업을 하던 사람들이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애굽으로 오게 되었고 고센 땅에 거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바로왕은 그들의 요구를 허락하고 그들 중에 능력있는 사람이 자신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왕의 가축을 키우는 곳이니 얼마나 좋은 목초지였겠습니까? 그들은 그곳에 살면서 왕의 가축을 관리하는 일도 맡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절차를 밟아 왕의 허가를 얻어 친족들을 이주시켰습니다. 본문 11절에서 요셉은 바로왕의 명령에 따라 형들에게 애굽의 좋은 땅 라암세스를 주어 기업을 삼게 했습니다. 고센이란 지명은 넓은 지역을 의미하고 라암세스는 그곳에 있는 도성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마6: 31-32절을 보면 “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6:33절에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면 의식주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즉 세계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전도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주 문제는 주님께서 반드시 풍성하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만나의 법칙’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 양식의 본질은 하늘에서 매일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의 법칙을 알게 되면 삶의 법칙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먹을 양식을 주심을 믿고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빌4: 19절에도 “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은 채우시되 풍성하게 채우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의 형들이 바로왕에게 고센 땅을 달라고 한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창46장에 나오는 대로 고센 땅은 목축하기에 가장 좋은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가족들은 선조때부터 목축을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둘째, 고센 땅은 애굽사람들이 살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사람들과 섞여 살지 않고 독립해서 살 수 있었습니다. 애굽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고, 모국어와 전통과 민족 동질성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셋째, 고센 땅은 애굽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가나안과 아주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가나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삽니다. 그러나 이곳은 우리가 살아갈 영원한 땅이 아니며 애굽과 같은 땅입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영원한 가나안 땅인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바로왕과 형들의 면담이 끝나고 요셉은 아버지 야곱으로 하여금 바로왕을 만나게 했습니다. 초라한 노인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야곱이 왕궁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도 바로왕을 축복했다고 본문 7절과 10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상황이라 대단한 용기기 필요했습니다. 그 당시 바로왕은 세계 최강국의 황제로서 거의 신적존재로 추앙되는 막강한 권력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왕은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존재이지 축복받을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외국에서 이주해 온 노인에 불과한 야곱이 바로왕에게 축복을 받아도 황송한 일일 텐데 거꾸로 그 왕을 위해 축복했다는 것은 자칫 바로왕의 위신을 깎아 내리는 불경한 태도일 수도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야곱은 바로를 만나기 전에 그 요셉의 형들이 바로왕에게 어떤 환대를 받았는지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감사한 마음으로 바로를 진심으로 축복했습니다. 바로왕은 야곱의 나이를 물었습니다. 본문 9절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나이다 내 나이가 얼마 되지 못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연수가 175세이고 아버지 이삭의 연수가 180세 였으니 자신은 그보다 연수가 적었으나 대단한 장수 집안에 속하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그네 삶이라는 것을 강조했는데 자기는 갈곳이 있는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로왕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그네라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됩니다. 이 말은 야곱의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드러낸 것입니다. 성도들도 이땅에서 야곱처럼 고난을 당하지만 그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체험하며 사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 당시 애굽에서는 나이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라는 애굽사람들이 얼마나 장수하기를 소망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최고의 기대수명이 110세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보다 20년 더 살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17년 더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고 야곱은 다시한번 바로에게 축복하면서 자신이 바로를 축복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곱의 감동적인 두가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바로 왕을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바로 왕 앞에 서게하자 야곱이 바로 왕에게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나올 때도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바로에게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자랑했습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복을 나눠주고 살리고 화해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야곱처럼 당당하게 하나님의 복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해주십시오. 학교나 직장에 출근하면 ‘이곳에 주님의 복이 임할 지어다“라고 축복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축복을 선언하고, 베풀고, 나누어주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야곱 자신의 삶을 두가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그는 자기 인생이 나그네 길이었고 험한 세월을 보냈다고 고백했습니다. 형 에서와의 갈등으로 어버지 집에서 도망쳐 나와 외삼촌 집에서 아내를 얻기 위해 20년 세월을 보내며 고생했고,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일찍 잃었고, 그와의 사이에서 난 요셉을 잃고 수십년을 지냈으며 그 막내 아들 베냐민도 잃을 뻔 했습니다. 그는 할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아버지 이삭처럼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험한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야곱은 간교하고 거짓된 성품 때문에 하나님의 연단을 받느라 스스로 험악한 세월을 환란 가운데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비옥한 땅을 허락받아 가족들과 함께, 특히 잃었던 요셉과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생애 마지막 17년을 가장 행복하고 풍성하게 살았습니다. 기근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살았습니다. 우리 역시 아무리 험한 세월을 보냈다 할지라도 인생의 노년은 야곱처럼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서도 야곱의 가정처럼 모든 것이 회복되고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본문 29-31절을 보면 야곱의 유언이 나옵니다. 그는 지금 애굽에서 편하게 지내지만 결코 자기를 애굽에 묻지 말라고 요셉에게 당부합니다. 자기가 죽으면 고향 가나안 땅에 아브라함과 이삭이 묻힌 조상의 묘지, 곧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굴 매장지에 묻어 달라고 요셉에게 맹세까지 시킵니다. 이처럼 야곱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계셨고, 그 약속을 기억했습니다. 야곱의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이고, 영원한 소망은 하늘본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이것이 비전입니다. 죽더라도 비전은 계속됩니다. 이 비전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집니다. 우리에게도 가족과 교회와 나라에 대한 비전이 있습니다. 그 비전은 나의 당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이러어지는 세계복음화의 비전이 곧 우리의 비전입니다.
3. 엄청난 복을 받은 바로왕
바로왕은 야곱의 축복기도를 받은 후에 엄청난 복을 받게 됩니다. 기근이 계속되자 요셉은 바로 왕궁에 있는 곡식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애굽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이 모두 바로왕에게로 들어갔습니니다. 그 다음해에 돈이 다 떨어지자 이번에는 짐승을 팔아서 곡식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애굽의 짐승들이 다 바로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목축을 싫어했기 때문에 야곱 가족들은 바로의 명령에 따라 그 모든 짐승들을 관리했을 것입니다. 이제 가축들도 다 팔아버리자 애굽백성들은 요셉에게 와서 스스로 토지와 몸을 팔겠다고 제안을 하면서 양식을 구해갔습니다. 요셉은 토지를 경작하여 세금으로 20%를 징수하고 나머지 곡식들은 그들이 먹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애굽의 토지법을 제정한 것입니다. 요즈음으로 치면 토지개혁법으로 앞으로 애굽을 통치하는데 대대로 변하지 않도록 정해놓은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백성들은 요셉에게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통치로 인해 바로왕은 이처럼 엄청난 부를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는 요셉의 지혜로운 통치로 기근 동안에 오히려 엄청난 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온 나라가 기근 상황에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 본문 27절을 보면 “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요셉이 세운 토지법인데 제사장의 토지는 그대로 남겨두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22절과 26절에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이미 애굽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즉 요셉은 애굽 제사장 가문을 이었을 것입니다. 제사장은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여기서 바로는 야곱을 제사장 가문으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야곱의 가족 전체가 제사장 가문으로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야곱의 축복과 요셉의 통치를 통해 바로왕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온 세상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인과 구별된 제사장 나라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벧전 2: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 가족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 어려운 기근의 시기 동안에, 아니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200만이나 되도록 430년 동안 엄청나게 번성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방나라 강대국 애굽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을 잃지않고 민족 혈통을 보존케 하여 장차 그 아브라함의 계보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구세주로 오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렸습니다.
야곱이 애굽에서 살았듯이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이 싫어하는 불신자들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사람들이 싫어할 수 밖에 없는 구별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성도들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들입니다. 모든 세상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구원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택하여 왕같은 제사장들로 삼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비추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고백했듯이 성도는 이땅에서 사는 삶은 나그네 삶이요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며 사는 삶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땅이 마치 모든 것인 것처럼 사는 세상사람들과는 달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영원한 우리의 본향 천국으로 갈 준비를 하며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효도와 형제 우애를 통해서 이 땅에서도 큰 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큰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정체성을 잃지 않고 야곱과 그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세상 사람들을 축복하며 대학복음화,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전도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끝>
주일오후설교 250727
본문: 창47: 1-31 고센 땅에서 번성한 이스라엘
제목: 고센 땅에서 번성한 이스라엘
I. 서론
우리는 창46장에서 야곱의 가족들 70명과 그 친족들 까지 포함한 75명이 가나안 땅 브엘세바에서 출발하여 애굽으로 이주해 가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이제 47장에서 야곱 가족은 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46장에서 야곱과 함께 동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약속대로 야곱가족은 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 가족과 친척 포함해서 75명이 고센 땅에 정착하여 당시 세계 최대 강국이었던 애굽의 절대황제 바로왕 통치하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은 막상 고센 땅에 오긴 했지만 처음에는 아마 막막한 기분이 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자기 식구 요셉이 그 나라 국무총리가 되어 있었지만 온 사방에는 애굽 백성들과 이방문화로 둘러 싸였습니다. 마치 저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의 난민 70여명이 미국에 가서 정착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본다면 그 어려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들이 과연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도 어떤 면에서는 야곱의 가족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웠지만 이 거대한 불신 세상 문화 속에서 과연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고 선한 복음의 영향력을 발휘하며 부흥해 나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 야곱 가족들이 이 외국 애굽 땅에서 어떻게 번성해 가는지 그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살펴보면서 우리 성도들과 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묵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II. 본론
1. 고센 땅에 정착한 야곱가족
피난민으로 살게 된 야곱 가족이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애굽의 변방인 시골 고센땅에 따로 정착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자기 가족들이 애굽으로 오면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고 계획한 것입니다. 이미 창45:10절에서 형들을 아버지께 보내면서 야곱 가족들이 고센 땅으로 오도록 구체적으로 부탁한 것입니다. 야곱도 아들 요셉의 부탁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수레를 갖추고 고센 땅으로 가서 아버지와 그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서로 껴안고 얼마동안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이제 죽어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큰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상봉의 기쁨이 진정된 다음에 요셉은 가족들이 고센 땅에 정착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웁니다.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고센 땅이 비옥한 농경지이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정주를 잘 허용하지 않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바로왕은 이들을 요셉과 함께 자기 왕궁 곁에 두어서 애굽 사람처럼 살아가도록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미 요셉은 애굽 여자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면 나중에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미리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애굽사람들과 구별되어 따로 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서로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것과 거주지를 달리 하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사람들은 목축을 천한 직업으로 알았기 때문에 야곱가족들을 그저 평범한 외국인으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요셉은 이것을 이용하여 바로왕을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야곱과 형제들이 바로왕을 만나기 전에 사전에 구체적인 지시를 했습니다. 실제로 야곱이나 그 형제들은 요셉이 사전에 이야기 한 대로 바로왕에게 정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이처럼 고센땅에 거주함으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잘 유지하도록 한 것은 요셉의 세밀한 계획때문이었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2. 바로왕을 축복한 야곱
모든 계획을 수립한 후에 요셉은 바로왕에게 야곱 가족이 고센 땅에 도착하여 거주하고 있음을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형들 중 5명을 택하여 바로왕에게 인사를 시켰습니다. 바로가 그들의 직업을 묻자 요셉이 시킨대로 목축업을 하던 사람들이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애굽으로 오게 되었고 고센 땅에 거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바로왕은 그들의 요구를 허락하고 그들 중에 능력있는 사람이 자신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왕의 가축을 키우는 곳이니 얼마나 좋은 목초지였겠습니까? 그들은 그곳에 살면서 왕의 가축을 관리하는 일도 맡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절차를 밟아 왕의 허가를 얻어 친족들을 이주시켰습니다. 본문 11절에서 요셉은 바로왕의 명령에 따라 형들에게 애굽의 좋은 땅 라암세스를 주어 기업을 삼게 했습니다. 고센이란 지명은 넓은 지역을 의미하고 라암세스는 그곳에 있는 도성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마6: 31-32절을 보면 “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6:33절에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면 의식주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즉 세계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전도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주 문제는 주님께서 반드시 풍성하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만나의 법칙’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 양식의 본질은 하늘에서 매일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의 법칙을 알게 되면 삶의 법칙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먹을 양식을 주심을 믿고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빌4: 19절에도 “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은 채우시되 풍성하게 채우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의 형들이 바로왕에게 고센 땅을 달라고 한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창46장에 나오는 대로 고센 땅은 목축하기에 가장 좋은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가족들은 선조때부터 목축을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둘째, 고센 땅은 애굽사람들이 살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사람들과 섞여 살지 않고 독립해서 살 수 있었습니다. 애굽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고, 모국어와 전통과 민족 동질성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셋째, 고센 땅은 애굽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가나안과 아주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가나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삽니다. 그러나 이곳은 우리가 살아갈 영원한 땅이 아니며 애굽과 같은 땅입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영원한 가나안 땅인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바로왕과 형들의 면담이 끝나고 요셉은 아버지 야곱으로 하여금 바로왕을 만나게 했습니다. 초라한 노인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야곱이 왕궁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도 바로왕을 축복했다고 본문 7절과 10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상황이라 대단한 용기기 필요했습니다. 그 당시 바로왕은 세계 최강국의 황제로서 거의 신적존재로 추앙되는 막강한 권력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왕은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존재이지 축복받을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외국에서 이주해 온 노인에 불과한 야곱이 바로왕에게 축복을 받아도 황송한 일일 텐데 거꾸로 그 왕을 위해 축복했다는 것은 자칫 바로왕의 위신을 깎아 내리는 불경한 태도일 수도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야곱은 바로를 만나기 전에 그 요셉의 형들이 바로왕에게 어떤 환대를 받았는지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감사한 마음으로 바로를 진심으로 축복했습니다. 바로왕은 야곱의 나이를 물었습니다. 본문 9절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나이다 내 나이가 얼마 되지 못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연수가 175세이고 아버지 이삭의 연수가 180세 였으니 자신은 그보다 연수가 적었으나 대단한 장수 집안에 속하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그네 삶이라는 것을 강조했는데 자기는 갈곳이 있는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로왕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그네라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됩니다. 이 말은 야곱의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드러낸 것입니다. 성도들도 이땅에서 야곱처럼 고난을 당하지만 그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체험하며 사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 당시 애굽에서는 나이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라는 애굽사람들이 얼마나 장수하기를 소망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최고의 기대수명이 110세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보다 20년 더 살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17년 더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고 야곱은 다시한번 바로에게 축복하면서 자신이 바로를 축복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곱의 감동적인 두가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바로 왕을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바로 왕 앞에 서게하자 야곱이 바로 왕에게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나올 때도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바로에게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자랑했습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복을 나눠주고 살리고 화해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야곱처럼 당당하게 하나님의 복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해주십시오. 학교나 직장에 출근하면 ‘이곳에 주님의 복이 임할 지어다“라고 축복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축복을 선언하고, 베풀고, 나누어주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야곱 자신의 삶을 두가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그는 자기 인생이 나그네 길이었고 험한 세월을 보냈다고 고백했습니다. 형 에서와의 갈등으로 어버지 집에서 도망쳐 나와 외삼촌 집에서 아내를 얻기 위해 20년 세월을 보내며 고생했고,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일찍 잃었고, 그와의 사이에서 난 요셉을 잃고 수십년을 지냈으며 그 막내 아들 베냐민도 잃을 뻔 했습니다. 그는 할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아버지 이삭처럼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험한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야곱은 간교하고 거짓된 성품 때문에 하나님의 연단을 받느라 스스로 험악한 세월을 환란 가운데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비옥한 땅을 허락받아 가족들과 함께, 특히 잃었던 요셉과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생애 마지막 17년을 가장 행복하고 풍성하게 살았습니다. 기근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살았습니다. 우리 역시 아무리 험한 세월을 보냈다 할지라도 인생의 노년은 야곱처럼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서도 야곱의 가정처럼 모든 것이 회복되고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본문 29-31절을 보면 야곱의 유언이 나옵니다. 그는 지금 애굽에서 편하게 지내지만 결코 자기를 애굽에 묻지 말라고 요셉에게 당부합니다. 자기가 죽으면 고향 가나안 땅에 아브라함과 이삭이 묻힌 조상의 묘지, 곧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굴 매장지에 묻어 달라고 요셉에게 맹세까지 시킵니다. 이처럼 야곱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계셨고, 그 약속을 기억했습니다. 야곱의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이고, 영원한 소망은 하늘본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이것이 비전입니다. 죽더라도 비전은 계속됩니다. 이 비전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집니다. 우리에게도 가족과 교회와 나라에 대한 비전이 있습니다. 그 비전은 나의 당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이러어지는 세계복음화의 비전이 곧 우리의 비전입니다.
3. 엄청난 복을 받은 바로왕
바로왕은 야곱의 축복기도를 받은 후에 엄청난 복을 받게 됩니다. 기근이 계속되자 요셉은 바로 왕궁에 있는 곡식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애굽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이 모두 바로왕에게로 들어갔습니니다. 그 다음해에 돈이 다 떨어지자 이번에는 짐승을 팔아서 곡식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애굽의 짐승들이 다 바로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목축을 싫어했기 때문에 야곱 가족들은 바로의 명령에 따라 그 모든 짐승들을 관리했을 것입니다. 이제 가축들도 다 팔아버리자 애굽백성들은 요셉에게 와서 스스로 토지와 몸을 팔겠다고 제안을 하면서 양식을 구해갔습니다. 요셉은 토지를 경작하여 세금으로 20%를 징수하고 나머지 곡식들은 그들이 먹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애굽의 토지법을 제정한 것입니다. 요즈음으로 치면 토지개혁법으로 앞으로 애굽을 통치하는데 대대로 변하지 않도록 정해놓은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백성들은 요셉에게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통치로 인해 바로왕은 이처럼 엄청난 부를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는 요셉의 지혜로운 통치로 기근 동안에 오히려 엄청난 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온 나라가 기근 상황에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 본문 27절을 보면 “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요셉이 세운 토지법인데 제사장의 토지는 그대로 남겨두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22절과 26절에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이미 애굽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즉 요셉은 애굽 제사장 가문을 이었을 것입니다. 제사장은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여기서 바로는 야곱을 제사장 가문으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야곱의 가족 전체가 제사장 가문으로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야곱의 축복과 요셉의 통치를 통해 바로왕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온 세상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인과 구별된 제사장 나라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벧전 2: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 가족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 어려운 기근의 시기 동안에, 아니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200만이나 되도록 430년 동안 엄청나게 번성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방나라 강대국 애굽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을 잃지않고 민족 혈통을 보존케 하여 장차 그 아브라함의 계보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구세주로 오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렸습니다.
야곱이 애굽에서 살았듯이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이 싫어하는 불신자들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사람들이 싫어할 수 밖에 없는 구별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성도들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들입니다. 모든 세상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구원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택하여 왕같은 제사장들로 삼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비추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고백했듯이 성도는 이땅에서 사는 삶은 나그네 삶이요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며 사는 삶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땅이 마치 모든 것인 것처럼 사는 세상사람들과는 달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영원한 우리의 본향 천국으로 갈 준비를 하며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효도와 형제 우애를 통해서 이 땅에서도 큰 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큰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정체성을 잃지 않고 야곱과 그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세상 사람들을 축복하며 대학복음화,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전도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끝>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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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 야곱과 요셉의 장례식 | 창50:1-26 | 2025-08-17 | 홍기칠 목사 |
67 |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 창49:1-33 | 2025-08-10 | 홍기칠 목사 |
66 | 요셉을 위한 야곱의 축복 | 창48:1-22 | 2025-08-03 | 홍기칠 목사 |
65 | 고센 땅에서 번성한 이스라엘 | 창47:1-31 | 2025-07-27 | 홍기칠 목사 |
64 | 내가 너와 함께 가겠노라 | 창46:1-34 | 2025-07-20 | 홍기칠 목사 |
63 | 언약대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 창45: 16-28 | 2025-07-13 | 홍기칠 목사 |
62 | 요셉의 신앙고백과 하나님의 섭리 | 창45:1-15 | 2025-07-06 | 홍기칠 목사 |
61 | 목숨을 건 중보기도 | 창44:1-34 | 2025-06-29 | 홍기칠 목사 |
60 | 진퇴양난의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 | 창43:1-34 | 2025-06-22 | 홍기칠 목사 |
59 |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셉의 통치 | 창42: 18-38 | 2025-06-15 | 홍기칠 목사 |
58 | 숨겨둔 죄를 드러내시는 하나님 | 창42:1-17 | 2025-06-08 | 홍기칠 목사 |
57 | 요셉을 애굽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 | 창41:37-57 | 2025-06-01 | 홍기칠 목사 |
56 | 바로왕의 꿈을 해석한 요셉 | 창41:1-36 | 2025-05-25 | 홍기칠 목사 |
55 | 요셉의 꿈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뤙 | 창40:1-23 | 2025-05-18 | 홍기칠 목사 |
54 | 믿음으로 시험을 이긴 요셉 | 창39:7-23 | 2025-05-11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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