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2025-08-10 20:53:53
홍기칠
조회수   19
설교본문 창49:1-33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08-10

주일오후설교 250810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본문: 49:1-33

제목: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I. 서론

지난 주 창48장에서 야곱은 요셉을 축복하고 그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요셉 대신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 들어가도록 축복했습니다. 결국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 한번째였지만 장자로서 두배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열두 아들을 다 불러 모으고 그 아들 각각에 대해 마지막 유언을 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그들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예언하는 유언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유언하는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유언하는 야곱

야곱의 생애는 그가 바로 왕 앞에서 고백한 것 처럼 험악한 나그네 인생이었습니다. 야곱은 산전수전을 다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야곱이 헛된 세월만 보낸 것 같고, 늙고 병들고 초라한 노인으로 인생을 마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슬픈 인생, 허무한 인생을 기쁜 인생, 축복의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꿈에 그리던 요셉을 그의 나이 130세에 만나게 하시고, 애굽 고센 땅으로 이주하여 147세까지 17년간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을 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자신에게 약속하신 언약대로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 죽음을 앞두고 그 자녀들에게도 그 하나님의 복이 전수되도록 유언과 축복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유언은 남은 유족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습니까? 특별히 자녀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오늘 야곱은 자녀들에게 유언하면서 좋은 말도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어떤 자녀에게는 그들이 했던 악행도 지적합니다. 우리 정서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냥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런 야곱의 지위를 알아야 야곱의 유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죽기 직전에도 선지자로서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본문 1절에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2절에서도 모여서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으라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1,2절에서 야곱은 자기 소개를 간단히 했습니다. 그는 원래 이름이 야곱으로 간사한 자, 약탈자라는 뜻이었는데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즉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요 언약의 계승자인 이스라엘의 마지막 유언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12명이 다 모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 가족이 아버지의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들 각자는 앞으로 이스라엘 국가의 12지파를 대표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열두 아들이 다 모였다는 것은 온 이스라엘이 다같이 모인 공적인 모임으로 보아야 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모인 모임은 우리는 교회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용어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부르심 때문에 교회는 신적 특성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자를 통하여 이 부르심을 행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특히 출애굽기로 넘어가면 하나님은 항상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소집하였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그 성도들은 그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본문 2절에 야곱은 두 번이나 들으라는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말씀을 듣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으시는 이유는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고, 성도가 모이는 이유는 그 뜻을 듣기 위함입니다.

 

야곱은 자녀들이 다 모인 후에 말씀사역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음과 복은 전승됩니다. 성경에서 저주는 3-4대까지 이르지만 축복은 수천대까지 이른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언약과 믿음이 야곱에게 전승되고 이제 드디어 열두 아들들에게 전승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복이 자녀들에게 전승되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세대 차이 문화 차이로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가 단절되고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가정에 많은 갈등과 불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세대와 문화간 거리가 없는 민족이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가정교육을 통해 율법을 가르치고 전수함으로 세상이 변해도 그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율법교육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 간에 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가정의 공통분모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말씀과 믿음을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년이 된 자녀라도 믿음과 말씀으로 늘 권면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공통분모를 만들어야 갈등이 해결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유언도 반드시 야곱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해야 합니다.

 

 

2. 믿음의 분량대로 하는 축복의 법칙

오늘 본문 28절에 이와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축복하되 각 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유언을 할 때는 그 자녀가 잘되도록 축복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야곱의 축복은 자녀들이 무조건 잘 되라는 축복을 한 것이 아니라 아들들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녀들의 믿음의 분량대로 각각 다르게 축복하되 의외로 적지 않은 책망과 경고가 이 유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야곱의 유언이 기본적으로 설교 사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도 말씀사역에 온 힘을 다 쏟았던 것입니다. 그는 147세의 나이로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있는 힘을 다하여 자녀들을 축복하면서 한편으로는 책망하여 그들로 하여금 언약백성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였습니다. 교회 강단의 설교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포함하여 경고와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도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을 그릇의 크기대로 주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여 큰 축복을 받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각 지파 별 축복과 예언의 내용

오늘 본문 3절에서 27절 까지 열두지파를 대표하는 자녀들의 출생 순서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따라 축복의 예언을 합니다.

 

3,4절은 루우벤에 대한 예언입니다. 야곱의 장자이지만 야곱의 첩인 빌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아버지의 침상을 더렵힌 것을 지적했습니다. 침상은 부부에게 가장 거룩한 장소이고 둘만이 기쁨을 서로 나누는 곳입니다. 더구나 창47:31, 48:2절을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루우벤은 본문 4절처럼 물이 끓는 것 같은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계모 빌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루우벤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장자 루우벤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박탈되었습니다.

 

5-7절은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들은 둘 다 분노를 다스릴 수 없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분노, 혈기, 노여움이었습니다.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고, 혹독한 노여움을 발하였습니다. 34장에서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서 그 곳 지도자 하몰의 아들에게서 강간을 당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화가나서 거짓 약조를 맺고 그들이 할례를 받고 고통 중에 있을 때 모두 진멸했고 심지어 가축의 힘줄까지 끊었습니다. 그들은 분노에 쌓여 자신들이 당한 것 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상대방에게 보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이스라엘 중에 흩으셨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나중에 기업의 땅을 분배받을 때 유다지파에게 속해 버립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8-12절은 유다에 대한 예언입니다. 유다에게 주어진 축복은 유다지파에서 왕이 나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지파의 후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유다 역시 이런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38장을 보면 자기 며느리 다말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아이를 낳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아버지와 온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애굽에서 감금된 베냐민을 풀어주도록 자기 목숨을 담보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지도자의 자질 중 하나는 책임성과 헌신인데 야곱은 유다의 이런 모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데 합당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을 잡는다는 말은 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자새끼처럼 그를 당할자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지파가 유다지파에게 절하게 된다고 했으니 지도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지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 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실로라는 뜻은 그 아이라는 히브리어인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유다지파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그에게 누구나 굴복하여 주라고 시인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11, 12절은 유다지파가 물질적 풍요와 평화를 누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다윗과 솔로몬 때에 물질적 풍요와 평화가 넘쳤습니다. 이것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은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언약이기도 합니다.

 

13절은 스불론에 대한 예언입니다. 스블론 지파는 이 말씀대로 갈릴리 해변으로부터 지중해 해변까지 거하는 해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구에서 어부생활을 하고 무역을 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14-15절은 잇사갈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사람들은 육체가 건장하여 농사 짓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잘 순종하며 따르게 될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16-18절은 단에 대한 예언입니다. 실제로 단 지파에서 삼손이 태어났습니다. 삼손은 사사인데 바로 심판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 지파를 길의 뱀과 독사로 비유했습니다. 7:5절에 보면 각 지파를 소개하면서 단 지파가 빠져있습니다. 그레서 어떤 신학자들은 단 지파 중에서 적그리스도 세력이 나오지 않겠는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야곱이 이 예언을 하면서 마음이 아팠던지 18절에 야곱의 소망을 기록했습니다. 단 지파가 남을 넘어뜨리고 무는 일이 있을텐데 야곱은 오직 주의 구원만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를 건질 수도 있고, 멸망시킬 수도 있으니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19절은 갓에 대한 예언입니다. 갓 지파는 많은 전쟁을 겪고 많은 장군들이 그 지파에서 나오겠다는 예언입니다. 대상12:8-15절까지를 보면 다윗 때에 갓 지파에서 용사들이 많이 나와 다윗을 크게 도운 내용이 나옵니다.

 

20절은 아셀에 대한 예언입니다. 아셀지파는 갈릴리 지방의 옥토를 많이 가진 지파가 되어 왕의 식물을 공급하는데 앞장 서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21절은 납달리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납달리 사람들은 예술적 방면에 뛰어날 뿐 아니라 언변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말로 지도하는 일을 잘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훌륭한 제자들이 이 납달리 지파 사람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찬양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22- 26절은 요셉에 대한 예언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는 샘 곁의 나무처럼 가지가 담을 넘을 정도로 번성할 것입니다. 그의 활은 적들보다 강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이 그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샘 곁에 심겨진 나무처럼 무성하게 자라 그 가지가 담을 넘듯이 자기 지경만 풍성한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지파는 나중에 북이스라엘의 열지파를 대표하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장자 삼아 하나님께서 원천의 복을 주시므로 나누는자가 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23절에 활을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한다고 했는데 요셉은 형들에게 박해받고 보디발의 집에서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가기까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4절에 요셉의 활이 도리어 강건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난다고 했는데 이스라엘의 목자란 지도자를 말합니다. 요셉이 지도자가 되었고 북쪽 열 지파를 지도하는 대표 지파가 되었습니다. 25절에는 농사가 잘 되려면 물이 풍부해야 합니다. 우선 위로 하늘의 복은 비가 잘 오고 이슬이 잘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일년에 두 번 비가 오는데 그 비가 절기에 따라 잘 내려야 풍년이 듭니다. 그리고 아래로 깊은 샘의 복이란 우물을 팔 때 물이 잘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비나 이슬도 잘 내려야 하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샘물이 잘 나와야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풍년이 되어도 그 곡식을 먹을 수 있는 식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태의 복이란 후손들이 잘 태어나고 젖도 잘나게 해서 인구가 불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하늘의 복과 땅의 복과 자녀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26절에도 야곱의 기도가 요셉에게 그대로 임한다는 것을 그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고하여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도록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렇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기도한대로 믿고 순종할 때 그대로 되었습니다. 순종하고 걸어가면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이루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7절은 베냐민에 대한 예언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매우 호전적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싸움을 정말 잘 합니다. 이런 기도를 해주는 이유는 너는 성질이 나쁘니까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르게 서야 된다는 경고를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야곱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될 열두 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감없이 전달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자녀들에게 야곱처럼 하나님의 뜻을 잘 전달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복을 빈 다음에 29-32절에는 야곱이 자녀들에게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자기 첫 아내 레아가 장사된 곳에 자기 시신을 묻어달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브엘세바에서 야곱이 제단을 쌓을 때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야곱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죽어서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3절에 야곱이 이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에게는 삶과 죽음은 동일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그네와 같이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 감당하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 그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갈 뿐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문을 여는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2:20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또한 14:8절에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음 앞에 서야 합니다. 그 전에 이 땅에서의 삶을 잘 정리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곱처럼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자녀들에게 그 믿음의 분량대로 축복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음을 준비하는 성도는 죽음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영원한 나라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사랑 때문입니다. 바울은 롬9:13에서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을 들어 그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설명했습니다. 복을 위해 투쟁했던 야곱은 이제 인생의 마지막에 열두지파를 대표하는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사역했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 뜻대로 가감없이 축복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릇이 준비된 자에게는 그릇대로 축복해주시도록 기도했고, 그릇이 준비 되지 않는 자에게는 그릇을 준비하도록 경고하고 훈계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야곱의 마지막 모습에서 그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12:1절은 성도들의 삶을 경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경주하는 자는 반드시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 목표는 당연히 십자가를 참으시고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굳게 믿고 주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자녀들에게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야곱이 생애 마지막까지 그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듯이 우리 자녀들을 위해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임하도록, 샘가에 심은 나무처럼 가지가 담장을 넘어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주일오후설교 250810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본문: 49:1-33

제목: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I. 서론

지난 주 창48장에서 야곱은 요셉을 축복하고 그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요셉 대신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 들어가도록 축복했습니다. 결국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 한번째였지만 장자로서 두배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열두 아들을 다 불러 모으고 그 아들 각각에 대해 마지막 유언을 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그들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예언하는 유언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유언하는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유언하는 야곱

야곱의 생애는 그가 바로 왕 앞에서 고백한 것 처럼 험악한 나그네 인생이었습니다. 야곱은 산전수전을 다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야곱이 헛된 세월만 보낸 것 같고, 늙고 병들고 초라한 노인으로 인생을 마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슬픈 인생, 허무한 인생을 기쁜 인생, 축복의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꿈에 그리던 요셉을 그의 나이 130세에 만나게 하시고, 애굽 고센 땅으로 이주하여 147세까지 17년간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을 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자신에게 약속하신 언약대로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 죽음을 앞두고 그 자녀들에게도 그 하나님의 복이 전수되도록 유언과 축복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유언은 남은 유족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습니까? 특별히 자녀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오늘 야곱은 자녀들에게 유언하면서 좋은 말도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어떤 자녀에게는 그들이 했던 악행도 지적합니다. 우리 정서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냥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런 야곱의 지위를 알아야 야곱의 유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죽기 직전에도 선지자로서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본문 1절에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2절에서도 모여서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으라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1,2절에서 야곱은 자기 소개를 간단히 했습니다. 그는 원래 이름이 야곱으로 간사한 자, 약탈자라는 뜻이었는데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즉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요 언약의 계승자인 이스라엘의 마지막 유언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12명이 다 모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 가족이 아버지의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들 각자는 앞으로 이스라엘 국가의 12지파를 대표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열두 아들이 다 모였다는 것은 온 이스라엘이 다같이 모인 공적인 모임으로 보아야 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모인 모임은 우리는 교회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용어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부르심 때문에 교회는 신적 특성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자를 통하여 이 부르심을 행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특히 출애굽기로 넘어가면 하나님은 항상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소집하였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그 성도들은 그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본문 2절에 야곱은 두 번이나 들으라는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말씀을 듣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으시는 이유는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고, 성도가 모이는 이유는 그 뜻을 듣기 위함입니다.

 

야곱은 자녀들이 다 모인 후에 말씀사역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음과 복은 전승됩니다. 성경에서 저주는 3-4대까지 이르지만 축복은 수천대까지 이른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언약과 믿음이 야곱에게 전승되고 이제 드디어 열두 아들들에게 전승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복이 자녀들에게 전승되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세대 차이 문화 차이로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가 단절되고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가정에 많은 갈등과 불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세대와 문화간 거리가 없는 민족이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가정교육을 통해 율법을 가르치고 전수함으로 세상이 변해도 그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율법교육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 간에 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가정의 공통분모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말씀과 믿음을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년이 된 자녀라도 믿음과 말씀으로 늘 권면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공통분모를 만들어야 갈등이 해결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유언도 반드시 야곱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해야 합니다.

 

 

2. 믿음의 분량대로 하는 축복의 법칙

오늘 본문 28절에 이와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축복하되 각 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유언을 할 때는 그 자녀가 잘되도록 축복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야곱의 축복은 자녀들이 무조건 잘 되라는 축복을 한 것이 아니라 아들들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녀들의 믿음의 분량대로 각각 다르게 축복하되 의외로 적지 않은 책망과 경고가 이 유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야곱의 유언이 기본적으로 설교 사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도 말씀사역에 온 힘을 다 쏟았던 것입니다. 그는 147세의 나이로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있는 힘을 다하여 자녀들을 축복하면서 한편으로는 책망하여 그들로 하여금 언약백성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였습니다. 교회 강단의 설교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포함하여 경고와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도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을 그릇의 크기대로 주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여 큰 축복을 받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각 지파 별 축복과 예언의 내용

오늘 본문 3절에서 27절 까지 열두지파를 대표하는 자녀들의 출생 순서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따라 축복의 예언을 합니다.

 

3,4절은 루우벤에 대한 예언입니다. 야곱의 장자이지만 야곱의 첩인 빌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아버지의 침상을 더렵힌 것을 지적했습니다. 침상은 부부에게 가장 거룩한 장소이고 둘만이 기쁨을 서로 나누는 곳입니다. 더구나 창47:31, 48:2절을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루우벤은 본문 4절처럼 물이 끓는 것 같은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계모 빌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루우벤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장자 루우벤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박탈되었습니다.

 

5-7절은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들은 둘 다 분노를 다스릴 수 없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분노, 혈기, 노여움이었습니다.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고, 혹독한 노여움을 발하였습니다. 34장에서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서 그 곳 지도자 하몰의 아들에게서 강간을 당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화가나서 거짓 약조를 맺고 그들이 할례를 받고 고통 중에 있을 때 모두 진멸했고 심지어 가축의 힘줄까지 끊었습니다. 그들은 분노에 쌓여 자신들이 당한 것 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상대방에게 보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이스라엘 중에 흩으셨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나중에 기업의 땅을 분배받을 때 유다지파에게 속해 버립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8-12절은 유다에 대한 예언입니다. 유다에게 주어진 축복은 유다지파에서 왕이 나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지파의 후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유다 역시 이런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38장을 보면 자기 며느리 다말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아이를 낳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아버지와 온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애굽에서 감금된 베냐민을 풀어주도록 자기 목숨을 담보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지도자의 자질 중 하나는 책임성과 헌신인데 야곱은 유다의 이런 모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데 합당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을 잡는다는 말은 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자새끼처럼 그를 당할자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지파가 유다지파에게 절하게 된다고 했으니 지도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지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 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실로라는 뜻은 그 아이라는 히브리어인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유다지파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그에게 누구나 굴복하여 주라고 시인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11, 12절은 유다지파가 물질적 풍요와 평화를 누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다윗과 솔로몬 때에 물질적 풍요와 평화가 넘쳤습니다. 이것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은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언약이기도 합니다.

 

13절은 스불론에 대한 예언입니다. 스블론 지파는 이 말씀대로 갈릴리 해변으로부터 지중해 해변까지 거하는 해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구에서 어부생활을 하고 무역을 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14-15절은 잇사갈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사람들은 육체가 건장하여 농사 짓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잘 순종하며 따르게 될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16-18절은 단에 대한 예언입니다. 실제로 단 지파에서 삼손이 태어났습니다. 삼손은 사사인데 바로 심판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 지파를 길의 뱀과 독사로 비유했습니다. 7:5절에 보면 각 지파를 소개하면서 단 지파가 빠져있습니다. 그레서 어떤 신학자들은 단 지파 중에서 적그리스도 세력이 나오지 않겠는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야곱이 이 예언을 하면서 마음이 아팠던지 18절에 야곱의 소망을 기록했습니다. 단 지파가 남을 넘어뜨리고 무는 일이 있을텐데 야곱은 오직 주의 구원만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를 건질 수도 있고, 멸망시킬 수도 있으니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19절은 갓에 대한 예언입니다. 갓 지파는 많은 전쟁을 겪고 많은 장군들이 그 지파에서 나오겠다는 예언입니다. 대상12:8-15절까지를 보면 다윗 때에 갓 지파에서 용사들이 많이 나와 다윗을 크게 도운 내용이 나옵니다.

 

20절은 아셀에 대한 예언입니다. 아셀지파는 갈릴리 지방의 옥토를 많이 가진 지파가 되어 왕의 식물을 공급하는데 앞장 서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21절은 납달리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납달리 사람들은 예술적 방면에 뛰어날 뿐 아니라 언변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말로 지도하는 일을 잘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훌륭한 제자들이 이 납달리 지파 사람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찬양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22- 26절은 요셉에 대한 예언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는 샘 곁의 나무처럼 가지가 담을 넘을 정도로 번성할 것입니다. 그의 활은 적들보다 강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이 그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샘 곁에 심겨진 나무처럼 무성하게 자라 그 가지가 담을 넘듯이 자기 지경만 풍성한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지파는 나중에 북이스라엘의 열지파를 대표하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장자 삼아 하나님께서 원천의 복을 주시므로 나누는자가 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23절에 활을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한다고 했는데 요셉은 형들에게 박해받고 보디발의 집에서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가기까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4절에 요셉의 활이 도리어 강건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난다고 했는데 이스라엘의 목자란 지도자를 말합니다. 요셉이 지도자가 되었고 북쪽 열 지파를 지도하는 대표 지파가 되었습니다. 25절에는 농사가 잘 되려면 물이 풍부해야 합니다. 우선 위로 하늘의 복은 비가 잘 오고 이슬이 잘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일년에 두 번 비가 오는데 그 비가 절기에 따라 잘 내려야 풍년이 듭니다. 그리고 아래로 깊은 샘의 복이란 우물을 팔 때 물이 잘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비나 이슬도 잘 내려야 하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샘물이 잘 나와야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풍년이 되어도 그 곡식을 먹을 수 있는 식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태의 복이란 후손들이 잘 태어나고 젖도 잘나게 해서 인구가 불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하늘의 복과 땅의 복과 자녀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26절에도 야곱의 기도가 요셉에게 그대로 임한다는 것을 그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고하여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도록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렇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기도한대로 믿고 순종할 때 그대로 되었습니다. 순종하고 걸어가면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이루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7절은 베냐민에 대한 예언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매우 호전적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싸움을 정말 잘 합니다. 이런 기도를 해주는 이유는 너는 성질이 나쁘니까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르게 서야 된다는 경고를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야곱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될 열두 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감없이 전달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자녀들에게 야곱처럼 하나님의 뜻을 잘 전달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복을 빈 다음에 29-32절에는 야곱이 자녀들에게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자기 첫 아내 레아가 장사된 곳에 자기 시신을 묻어달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브엘세바에서 야곱이 제단을 쌓을 때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야곱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죽어서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3절에 야곱이 이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에게는 삶과 죽음은 동일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그네와 같이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 감당하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 그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갈 뿐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문을 여는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2:20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또한 14:8절에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음 앞에 서야 합니다. 그 전에 이 땅에서의 삶을 잘 정리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곱처럼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자녀들에게 그 믿음의 분량대로 축복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음을 준비하는 성도는 죽음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영원한 나라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사랑 때문입니다. 바울은 롬9:13에서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을 들어 그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설명했습니다. 복을 위해 투쟁했던 야곱은 이제 인생의 마지막에 열두지파를 대표하는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사역했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 뜻대로 가감없이 축복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릇이 준비된 자에게는 그릇대로 축복해주시도록 기도했고, 그릇이 준비 되지 않는 자에게는 그릇을 준비하도록 경고하고 훈계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야곱의 마지막 모습에서 그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12:1절은 성도들의 삶을 경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경주하는 자는 반드시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 목표는 당연히 십자가를 참으시고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굳게 믿고 주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자녀들에게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야곱이 생애 마지막까지 그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듯이 우리 자녀들을 위해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임하도록, 샘가에 심은 나무처럼 가지가 담장을 넘어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주일오후설교 250810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본문: 49:1-33

제목: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I. 서론

지난 주 창48장에서 야곱은 요셉을 축복하고 그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요셉 대신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 들어가도록 축복했습니다. 결국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 한번째였지만 장자로서 두배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열두 아들을 다 불러 모으고 그 아들 각각에 대해 마지막 유언을 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그들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예언하는 유언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유언하는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유언하는 야곱

야곱의 생애는 그가 바로 왕 앞에서 고백한 것 처럼 험악한 나그네 인생이었습니다. 야곱은 산전수전을 다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야곱이 헛된 세월만 보낸 것 같고, 늙고 병들고 초라한 노인으로 인생을 마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슬픈 인생, 허무한 인생을 기쁜 인생, 축복의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꿈에 그리던 요셉을 그의 나이 130세에 만나게 하시고, 애굽 고센 땅으로 이주하여 147세까지 17년간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을 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자신에게 약속하신 언약대로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 죽음을 앞두고 그 자녀들에게도 그 하나님의 복이 전수되도록 유언과 축복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유언은 남은 유족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습니까? 특별히 자녀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오늘 야곱은 자녀들에게 유언하면서 좋은 말도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어떤 자녀에게는 그들이 했던 악행도 지적합니다. 우리 정서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냥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런 야곱의 지위를 알아야 야곱의 유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죽기 직전에도 선지자로서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본문 1절에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2절에서도 모여서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으라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1,2절에서 야곱은 자기 소개를 간단히 했습니다. 그는 원래 이름이 야곱으로 간사한 자, 약탈자라는 뜻이었는데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즉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요 언약의 계승자인 이스라엘의 마지막 유언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12명이 다 모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 가족이 아버지의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들 각자는 앞으로 이스라엘 국가의 12지파를 대표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열두 아들이 다 모였다는 것은 온 이스라엘이 다같이 모인 공적인 모임으로 보아야 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모인 모임은 우리는 교회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용어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부르심 때문에 교회는 신적 특성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자를 통하여 이 부르심을 행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특히 출애굽기로 넘어가면 하나님은 항상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소집하였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그 성도들은 그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본문 2절에 야곱은 두 번이나 들으라는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말씀을 듣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으시는 이유는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고, 성도가 모이는 이유는 그 뜻을 듣기 위함입니다.

 

야곱은 자녀들이 다 모인 후에 말씀사역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음과 복은 전승됩니다. 성경에서 저주는 3-4대까지 이르지만 축복은 수천대까지 이른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언약과 믿음이 야곱에게 전승되고 이제 드디어 열두 아들들에게 전승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복이 자녀들에게 전승되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세대 차이 문화 차이로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가 단절되고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가정에 많은 갈등과 불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세대와 문화간 거리가 없는 민족이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가정교육을 통해 율법을 가르치고 전수함으로 세상이 변해도 그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율법교육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 간에 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가정의 공통분모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말씀과 믿음을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년이 된 자녀라도 믿음과 말씀으로 늘 권면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공통분모를 만들어야 갈등이 해결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유언도 반드시 야곱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해야 합니다.

 

 

2. 믿음의 분량대로 하는 축복의 법칙

오늘 본문 28절에 이와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축복하되 각 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유언을 할 때는 그 자녀가 잘되도록 축복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야곱의 축복은 자녀들이 무조건 잘 되라는 축복을 한 것이 아니라 아들들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녀들의 믿음의 분량대로 각각 다르게 축복하되 의외로 적지 않은 책망과 경고가 이 유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야곱의 유언이 기본적으로 설교 사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도 말씀사역에 온 힘을 다 쏟았던 것입니다. 그는 147세의 나이로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있는 힘을 다하여 자녀들을 축복하면서 한편으로는 책망하여 그들로 하여금 언약백성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였습니다. 교회 강단의 설교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포함하여 경고와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도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을 그릇의 크기대로 주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여 큰 축복을 받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각 지파 별 축복과 예언의 내용

오늘 본문 3절에서 27절 까지 열두지파를 대표하는 자녀들의 출생 순서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따라 축복의 예언을 합니다.

 

3,4절은 루우벤에 대한 예언입니다. 야곱의 장자이지만 야곱의 첩인 빌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아버지의 침상을 더렵힌 것을 지적했습니다. 침상은 부부에게 가장 거룩한 장소이고 둘만이 기쁨을 서로 나누는 곳입니다. 더구나 창47:31, 48:2절을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루우벤은 본문 4절처럼 물이 끓는 것 같은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계모 빌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루우벤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장자 루우벤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박탈되었습니다.

 

5-7절은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들은 둘 다 분노를 다스릴 수 없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분노, 혈기, 노여움이었습니다.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고, 혹독한 노여움을 발하였습니다. 34장에서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서 그 곳 지도자 하몰의 아들에게서 강간을 당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화가나서 거짓 약조를 맺고 그들이 할례를 받고 고통 중에 있을 때 모두 진멸했고 심지어 가축의 힘줄까지 끊었습니다. 그들은 분노에 쌓여 자신들이 당한 것 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상대방에게 보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이스라엘 중에 흩으셨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나중에 기업의 땅을 분배받을 때 유다지파에게 속해 버립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8-12절은 유다에 대한 예언입니다. 유다에게 주어진 축복은 유다지파에서 왕이 나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지파의 후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유다 역시 이런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38장을 보면 자기 며느리 다말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아이를 낳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아버지와 온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애굽에서 감금된 베냐민을 풀어주도록 자기 목숨을 담보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지도자의 자질 중 하나는 책임성과 헌신인데 야곱은 유다의 이런 모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데 합당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을 잡는다는 말은 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자새끼처럼 그를 당할자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지파가 유다지파에게 절하게 된다고 했으니 지도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지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 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실로라는 뜻은 그 아이라는 히브리어인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유다지파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그에게 누구나 굴복하여 주라고 시인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11, 12절은 유다지파가 물질적 풍요와 평화를 누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다윗과 솔로몬 때에 물질적 풍요와 평화가 넘쳤습니다. 이것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은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언약이기도 합니다.

 

13절은 스불론에 대한 예언입니다. 스블론 지파는 이 말씀대로 갈릴리 해변으로부터 지중해 해변까지 거하는 해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구에서 어부생활을 하고 무역을 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14-15절은 잇사갈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사람들은 육체가 건장하여 농사 짓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잘 순종하며 따르게 될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16-18절은 단에 대한 예언입니다. 실제로 단 지파에서 삼손이 태어났습니다. 삼손은 사사인데 바로 심판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 지파를 길의 뱀과 독사로 비유했습니다. 7:5절에 보면 각 지파를 소개하면서 단 지파가 빠져있습니다. 그레서 어떤 신학자들은 단 지파 중에서 적그리스도 세력이 나오지 않겠는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야곱이 이 예언을 하면서 마음이 아팠던지 18절에 야곱의 소망을 기록했습니다. 단 지파가 남을 넘어뜨리고 무는 일이 있을텐데 야곱은 오직 주의 구원만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를 건질 수도 있고, 멸망시킬 수도 있으니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19절은 갓에 대한 예언입니다. 갓 지파는 많은 전쟁을 겪고 많은 장군들이 그 지파에서 나오겠다는 예언입니다. 대상12:8-15절까지를 보면 다윗 때에 갓 지파에서 용사들이 많이 나와 다윗을 크게 도운 내용이 나옵니다.

 

20절은 아셀에 대한 예언입니다. 아셀지파는 갈릴리 지방의 옥토를 많이 가진 지파가 되어 왕의 식물을 공급하는데 앞장 서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21절은 납달리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납달리 사람들은 예술적 방면에 뛰어날 뿐 아니라 언변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말로 지도하는 일을 잘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훌륭한 제자들이 이 납달리 지파 사람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찬양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22- 26절은 요셉에 대한 예언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는 샘 곁의 나무처럼 가지가 담을 넘을 정도로 번성할 것입니다. 그의 활은 적들보다 강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이 그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샘 곁에 심겨진 나무처럼 무성하게 자라 그 가지가 담을 넘듯이 자기 지경만 풍성한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지파는 나중에 북이스라엘의 열지파를 대표하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장자 삼아 하나님께서 원천의 복을 주시므로 나누는자가 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23절에 활을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한다고 했는데 요셉은 형들에게 박해받고 보디발의 집에서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가기까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4절에 요셉의 활이 도리어 강건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난다고 했는데 이스라엘의 목자란 지도자를 말합니다. 요셉이 지도자가 되었고 북쪽 열 지파를 지도하는 대표 지파가 되었습니다. 25절에는 농사가 잘 되려면 물이 풍부해야 합니다. 우선 위로 하늘의 복은 비가 잘 오고 이슬이 잘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일년에 두 번 비가 오는데 그 비가 절기에 따라 잘 내려야 풍년이 듭니다. 그리고 아래로 깊은 샘의 복이란 우물을 팔 때 물이 잘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비나 이슬도 잘 내려야 하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샘물이 잘 나와야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풍년이 되어도 그 곡식을 먹을 수 있는 식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태의 복이란 후손들이 잘 태어나고 젖도 잘나게 해서 인구가 불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하늘의 복과 땅의 복과 자녀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26절에도 야곱의 기도가 요셉에게 그대로 임한다는 것을 그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고하여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도록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렇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기도한대로 믿고 순종할 때 그대로 되었습니다. 순종하고 걸어가면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이루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7절은 베냐민에 대한 예언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매우 호전적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싸움을 정말 잘 합니다. 이런 기도를 해주는 이유는 너는 성질이 나쁘니까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르게 서야 된다는 경고를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야곱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될 열두 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감없이 전달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자녀들에게 야곱처럼 하나님의 뜻을 잘 전달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복을 빈 다음에 29-32절에는 야곱이 자녀들에게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자기 첫 아내 레아가 장사된 곳에 자기 시신을 묻어달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브엘세바에서 야곱이 제단을 쌓을 때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야곱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죽어서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3절에 야곱이 이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에게는 삶과 죽음은 동일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그네와 같이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 감당하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 그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갈 뿐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문을 여는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2:20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또한 14:8절에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음 앞에 서야 합니다. 그 전에 이 땅에서의 삶을 잘 정리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곱처럼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자녀들에게 그 믿음의 분량대로 축복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음을 준비하는 성도는 죽음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영원한 나라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사랑 때문입니다. 바울은 롬9:13에서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을 들어 그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설명했습니다. 복을 위해 투쟁했던 야곱은 이제 인생의 마지막에 열두지파를 대표하는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사역했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 뜻대로 가감없이 축복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릇이 준비된 자에게는 그릇대로 축복해주시도록 기도했고, 그릇이 준비 되지 않는 자에게는 그릇을 준비하도록 경고하고 훈계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야곱의 마지막 모습에서 그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12:1절은 성도들의 삶을 경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경주하는 자는 반드시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 목표는 당연히 십자가를 참으시고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굳게 믿고 주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자녀들에게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야곱이 생애 마지막까지 그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듯이 우리 자녀들을 위해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임하도록, 샘가에 심은 나무처럼 가지가 담장을 넘어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주일오후설교 250810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본문: 49:1-33

제목: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I. 서론

지난 주 창48장에서 야곱은 요셉을 축복하고 그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요셉 대신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 들어가도록 축복했습니다. 결국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 한번째였지만 장자로서 두배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열두 아들을 다 불러 모으고 그 아들 각각에 대해 마지막 유언을 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그들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예언하는 유언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유언하는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유언하는 야곱

야곱의 생애는 그가 바로 왕 앞에서 고백한 것 처럼 험악한 나그네 인생이었습니다. 야곱은 산전수전을 다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야곱이 헛된 세월만 보낸 것 같고, 늙고 병들고 초라한 노인으로 인생을 마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슬픈 인생, 허무한 인생을 기쁜 인생, 축복의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꿈에 그리던 요셉을 그의 나이 130세에 만나게 하시고, 애굽 고센 땅으로 이주하여 147세까지 17년간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을 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자신에게 약속하신 언약대로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 죽음을 앞두고 그 자녀들에게도 그 하나님의 복이 전수되도록 유언과 축복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유언은 남은 유족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습니까? 특별히 자녀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오늘 야곱은 자녀들에게 유언하면서 좋은 말도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어떤 자녀에게는 그들이 했던 악행도 지적합니다. 우리 정서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냥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런 야곱의 지위를 알아야 야곱의 유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죽기 직전에도 선지자로서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본문 1절에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2절에서도 모여서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으라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1,2절에서 야곱은 자기 소개를 간단히 했습니다. 그는 원래 이름이 야곱으로 간사한 자, 약탈자라는 뜻이었는데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즉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요 언약의 계승자인 이스라엘의 마지막 유언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12명이 다 모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 가족이 아버지의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들 각자는 앞으로 이스라엘 국가의 12지파를 대표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열두 아들이 다 모였다는 것은 온 이스라엘이 다같이 모인 공적인 모임으로 보아야 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모인 모임은 우리는 교회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용어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부르심 때문에 교회는 신적 특성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자를 통하여 이 부르심을 행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특히 출애굽기로 넘어가면 하나님은 항상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소집하였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그 성도들은 그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본문 2절에 야곱은 두 번이나 들으라는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말씀을 듣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으시는 이유는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고, 성도가 모이는 이유는 그 뜻을 듣기 위함입니다.

 

야곱은 자녀들이 다 모인 후에 말씀사역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음과 복은 전승됩니다. 성경에서 저주는 3-4대까지 이르지만 축복은 수천대까지 이른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언약과 믿음이 야곱에게 전승되고 이제 드디어 열두 아들들에게 전승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복이 자녀들에게 전승되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세대 차이 문화 차이로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가 단절되고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가정에 많은 갈등과 불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세대와 문화간 거리가 없는 민족이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가정교육을 통해 율법을 가르치고 전수함으로 세상이 변해도 그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율법교육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 간에 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가정의 공통분모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말씀과 믿음을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년이 된 자녀라도 믿음과 말씀으로 늘 권면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공통분모를 만들어야 갈등이 해결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유언도 반드시 야곱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해야 합니다.

 

 

2. 믿음의 분량대로 하는 축복의 법칙

오늘 본문 28절에 이와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축복하되 각 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유언을 할 때는 그 자녀가 잘되도록 축복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야곱의 축복은 자녀들이 무조건 잘 되라는 축복을 한 것이 아니라 아들들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녀들의 믿음의 분량대로 각각 다르게 축복하되 의외로 적지 않은 책망과 경고가 이 유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야곱의 유언이 기본적으로 설교 사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도 말씀사역에 온 힘을 다 쏟았던 것입니다. 그는 147세의 나이로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있는 힘을 다하여 자녀들을 축복하면서 한편으로는 책망하여 그들로 하여금 언약백성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였습니다. 교회 강단의 설교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포함하여 경고와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도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을 그릇의 크기대로 주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여 큰 축복을 받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각 지파 별 축복과 예언의 내용

오늘 본문 3절에서 27절 까지 열두지파를 대표하는 자녀들의 출생 순서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따라 축복의 예언을 합니다.

 

3,4절은 루우벤에 대한 예언입니다. 야곱의 장자이지만 야곱의 첩인 빌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아버지의 침상을 더렵힌 것을 지적했습니다. 침상은 부부에게 가장 거룩한 장소이고 둘만이 기쁨을 서로 나누는 곳입니다. 더구나 창47:31, 48:2절을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루우벤은 본문 4절처럼 물이 끓는 것 같은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계모 빌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루우벤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장자 루우벤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박탈되었습니다.

 

5-7절은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들은 둘 다 분노를 다스릴 수 없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분노, 혈기, 노여움이었습니다.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고, 혹독한 노여움을 발하였습니다. 34장에서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서 그 곳 지도자 하몰의 아들에게서 강간을 당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화가나서 거짓 약조를 맺고 그들이 할례를 받고 고통 중에 있을 때 모두 진멸했고 심지어 가축의 힘줄까지 끊었습니다. 그들은 분노에 쌓여 자신들이 당한 것 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상대방에게 보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이스라엘 중에 흩으셨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나중에 기업의 땅을 분배받을 때 유다지파에게 속해 버립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8-12절은 유다에 대한 예언입니다. 유다에게 주어진 축복은 유다지파에서 왕이 나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지파의 후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유다 역시 이런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38장을 보면 자기 며느리 다말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아이를 낳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아버지와 온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애굽에서 감금된 베냐민을 풀어주도록 자기 목숨을 담보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지도자의 자질 중 하나는 책임성과 헌신인데 야곱은 유다의 이런 모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데 합당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을 잡는다는 말은 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자새끼처럼 그를 당할자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지파가 유다지파에게 절하게 된다고 했으니 지도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지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 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실로라는 뜻은 그 아이라는 히브리어인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유다지파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그에게 누구나 굴복하여 주라고 시인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11, 12절은 유다지파가 물질적 풍요와 평화를 누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다윗과 솔로몬 때에 물질적 풍요와 평화가 넘쳤습니다. 이것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은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언약이기도 합니다.

 

13절은 스불론에 대한 예언입니다. 스블론 지파는 이 말씀대로 갈릴리 해변으로부터 지중해 해변까지 거하는 해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구에서 어부생활을 하고 무역을 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14-15절은 잇사갈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사람들은 육체가 건장하여 농사 짓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잘 순종하며 따르게 될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16-18절은 단에 대한 예언입니다. 실제로 단 지파에서 삼손이 태어났습니다. 삼손은 사사인데 바로 심판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 지파를 길의 뱀과 독사로 비유했습니다. 7:5절에 보면 각 지파를 소개하면서 단 지파가 빠져있습니다. 그레서 어떤 신학자들은 단 지파 중에서 적그리스도 세력이 나오지 않겠는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야곱이 이 예언을 하면서 마음이 아팠던지 18절에 야곱의 소망을 기록했습니다. 단 지파가 남을 넘어뜨리고 무는 일이 있을텐데 야곱은 오직 주의 구원만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를 건질 수도 있고, 멸망시킬 수도 있으니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19절은 갓에 대한 예언입니다. 갓 지파는 많은 전쟁을 겪고 많은 장군들이 그 지파에서 나오겠다는 예언입니다. 대상12:8-15절까지를 보면 다윗 때에 갓 지파에서 용사들이 많이 나와 다윗을 크게 도운 내용이 나옵니다.

 

20절은 아셀에 대한 예언입니다. 아셀지파는 갈릴리 지방의 옥토를 많이 가진 지파가 되어 왕의 식물을 공급하는데 앞장 서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21절은 납달리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납달리 사람들은 예술적 방면에 뛰어날 뿐 아니라 언변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말로 지도하는 일을 잘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훌륭한 제자들이 이 납달리 지파 사람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찬양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22- 26절은 요셉에 대한 예언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는 샘 곁의 나무처럼 가지가 담을 넘을 정도로 번성할 것입니다. 그의 활은 적들보다 강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이 그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샘 곁에 심겨진 나무처럼 무성하게 자라 그 가지가 담을 넘듯이 자기 지경만 풍성한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지파는 나중에 북이스라엘의 열지파를 대표하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장자 삼아 하나님께서 원천의 복을 주시므로 나누는자가 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23절에 활을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한다고 했는데 요셉은 형들에게 박해받고 보디발의 집에서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가기까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4절에 요셉의 활이 도리어 강건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난다고 했는데 이스라엘의 목자란 지도자를 말합니다. 요셉이 지도자가 되었고 북쪽 열 지파를 지도하는 대표 지파가 되었습니다. 25절에는 농사가 잘 되려면 물이 풍부해야 합니다. 우선 위로 하늘의 복은 비가 잘 오고 이슬이 잘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일년에 두 번 비가 오는데 그 비가 절기에 따라 잘 내려야 풍년이 듭니다. 그리고 아래로 깊은 샘의 복이란 우물을 팔 때 물이 잘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비나 이슬도 잘 내려야 하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샘물이 잘 나와야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풍년이 되어도 그 곡식을 먹을 수 있는 식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태의 복이란 후손들이 잘 태어나고 젖도 잘나게 해서 인구가 불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하늘의 복과 땅의 복과 자녀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26절에도 야곱의 기도가 요셉에게 그대로 임한다는 것을 그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고하여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도록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렇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기도한대로 믿고 순종할 때 그대로 되었습니다. 순종하고 걸어가면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이루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7절은 베냐민에 대한 예언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매우 호전적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싸움을 정말 잘 합니다. 이런 기도를 해주는 이유는 너는 성질이 나쁘니까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르게 서야 된다는 경고를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야곱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될 열두 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감없이 전달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자녀들에게 야곱처럼 하나님의 뜻을 잘 전달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복을 빈 다음에 29-32절에는 야곱이 자녀들에게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자기 첫 아내 레아가 장사된 곳에 자기 시신을 묻어달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브엘세바에서 야곱이 제단을 쌓을 때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야곱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죽어서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3절에 야곱이 이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에게는 삶과 죽음은 동일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그네와 같이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 감당하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 그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갈 뿐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문을 여는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2:20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또한 14:8절에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음 앞에 서야 합니다. 그 전에 이 땅에서의 삶을 잘 정리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곱처럼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자녀들에게 그 믿음의 분량대로 축복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음을 준비하는 성도는 죽음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영원한 나라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사랑 때문입니다. 바울은 롬9:13에서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을 들어 그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설명했습니다. 복을 위해 투쟁했던 야곱은 이제 인생의 마지막에 열두지파를 대표하는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사역했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 뜻대로 가감없이 축복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릇이 준비된 자에게는 그릇대로 축복해주시도록 기도했고, 그릇이 준비 되지 않는 자에게는 그릇을 준비하도록 경고하고 훈계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야곱의 마지막 모습에서 그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12:1절은 성도들의 삶을 경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경주하는 자는 반드시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 목표는 당연히 십자가를 참으시고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굳게 믿고 주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자녀들에게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야곱이 생애 마지막까지 그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듯이 우리 자녀들을 위해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임하도록, 샘가에 심은 나무처럼 가지가 담장을 넘어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주일오후설교 250810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본문: 49:1-33

제목: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I. 서론

지난 주 창48장에서 야곱은 요셉을 축복하고 그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요셉 대신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 들어가도록 축복했습니다. 결국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 한번째였지만 장자로서 두배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열두 아들을 다 불러 모으고 그 아들 각각에 대해 마지막 유언을 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그들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예언하는 유언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유언하는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유언하는 야곱

야곱의 생애는 그가 바로 왕 앞에서 고백한 것 처럼 험악한 나그네 인생이었습니다. 야곱은 산전수전을 다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야곱이 헛된 세월만 보낸 것 같고, 늙고 병들고 초라한 노인으로 인생을 마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슬픈 인생, 허무한 인생을 기쁜 인생, 축복의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꿈에 그리던 요셉을 그의 나이 130세에 만나게 하시고, 애굽 고센 땅으로 이주하여 147세까지 17년간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을 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자신에게 약속하신 언약대로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 죽음을 앞두고 그 자녀들에게도 그 하나님의 복이 전수되도록 유언과 축복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유언은 남은 유족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습니까? 특별히 자녀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오늘 야곱은 자녀들에게 유언하면서 좋은 말도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어떤 자녀에게는 그들이 했던 악행도 지적합니다. 우리 정서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냥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런 야곱의 지위를 알아야 야곱의 유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죽기 직전에도 선지자로서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본문 1절에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2절에서도 모여서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으라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1,2절에서 야곱은 자기 소개를 간단히 했습니다. 그는 원래 이름이 야곱으로 간사한 자, 약탈자라는 뜻이었는데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즉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요 언약의 계승자인 이스라엘의 마지막 유언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12명이 다 모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 가족이 아버지의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들 각자는 앞으로 이스라엘 국가의 12지파를 대표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열두 아들이 다 모였다는 것은 온 이스라엘이 다같이 모인 공적인 모임으로 보아야 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모인 모임은 우리는 교회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용어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부르심 때문에 교회는 신적 특성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자를 통하여 이 부르심을 행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특히 출애굽기로 넘어가면 하나님은 항상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소집하였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그 성도들은 그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본문 2절에 야곱은 두 번이나 들으라는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말씀을 듣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으시는 이유는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고, 성도가 모이는 이유는 그 뜻을 듣기 위함입니다.

 

야곱은 자녀들이 다 모인 후에 말씀사역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음과 복은 전승됩니다. 성경에서 저주는 3-4대까지 이르지만 축복은 수천대까지 이른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언약과 믿음이 야곱에게 전승되고 이제 드디어 열두 아들들에게 전승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복이 자녀들에게 전승되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세대 차이 문화 차이로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가 단절되고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가정에 많은 갈등과 불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세대와 문화간 거리가 없는 민족이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가정교육을 통해 율법을 가르치고 전수함으로 세상이 변해도 그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율법교육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 간에 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가정의 공통분모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말씀과 믿음을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년이 된 자녀라도 믿음과 말씀으로 늘 권면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공통분모를 만들어야 갈등이 해결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유언도 반드시 야곱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해야 합니다.

 

 

2. 믿음의 분량대로 하는 축복의 법칙

오늘 본문 28절에 이와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축복하되 각 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유언을 할 때는 그 자녀가 잘되도록 축복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야곱의 축복은 자녀들이 무조건 잘 되라는 축복을 한 것이 아니라 아들들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녀들의 믿음의 분량대로 각각 다르게 축복하되 의외로 적지 않은 책망과 경고가 이 유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야곱의 유언이 기본적으로 설교 사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도 말씀사역에 온 힘을 다 쏟았던 것입니다. 그는 147세의 나이로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있는 힘을 다하여 자녀들을 축복하면서 한편으로는 책망하여 그들로 하여금 언약백성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였습니다. 교회 강단의 설교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포함하여 경고와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도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을 그릇의 크기대로 주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여 큰 축복을 받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각 지파 별 축복과 예언의 내용

오늘 본문 3절에서 27절 까지 열두지파를 대표하는 자녀들의 출생 순서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따라 축복의 예언을 합니다.

 

3,4절은 루우벤에 대한 예언입니다. 야곱의 장자이지만 야곱의 첩인 빌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아버지의 침상을 더렵힌 것을 지적했습니다. 침상은 부부에게 가장 거룩한 장소이고 둘만이 기쁨을 서로 나누는 곳입니다. 더구나 창47:31, 48:2절을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루우벤은 본문 4절처럼 물이 끓는 것 같은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계모 빌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루우벤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장자 루우벤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박탈되었습니다.

 

5-7절은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들은 둘 다 분노를 다스릴 수 없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분노, 혈기, 노여움이었습니다.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고, 혹독한 노여움을 발하였습니다. 34장에서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서 그 곳 지도자 하몰의 아들에게서 강간을 당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화가나서 거짓 약조를 맺고 그들이 할례를 받고 고통 중에 있을 때 모두 진멸했고 심지어 가축의 힘줄까지 끊었습니다. 그들은 분노에 쌓여 자신들이 당한 것 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상대방에게 보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이스라엘 중에 흩으셨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나중에 기업의 땅을 분배받을 때 유다지파에게 속해 버립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8-12절은 유다에 대한 예언입니다. 유다에게 주어진 축복은 유다지파에서 왕이 나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지파의 후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유다 역시 이런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38장을 보면 자기 며느리 다말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아이를 낳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아버지와 온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애굽에서 감금된 베냐민을 풀어주도록 자기 목숨을 담보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지도자의 자질 중 하나는 책임성과 헌신인데 야곱은 유다의 이런 모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데 합당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을 잡는다는 말은 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자새끼처럼 그를 당할자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지파가 유다지파에게 절하게 된다고 했으니 지도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지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 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실로라는 뜻은 그 아이라는 히브리어인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유다지파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그에게 누구나 굴복하여 주라고 시인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11, 12절은 유다지파가 물질적 풍요와 평화를 누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다윗과 솔로몬 때에 물질적 풍요와 평화가 넘쳤습니다. 이것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은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언약이기도 합니다.

 

13절은 스불론에 대한 예언입니다. 스블론 지파는 이 말씀대로 갈릴리 해변으로부터 지중해 해변까지 거하는 해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구에서 어부생활을 하고 무역을 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14-15절은 잇사갈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사람들은 육체가 건장하여 농사 짓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잘 순종하며 따르게 될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16-18절은 단에 대한 예언입니다. 실제로 단 지파에서 삼손이 태어났습니다. 삼손은 사사인데 바로 심판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 지파를 길의 뱀과 독사로 비유했습니다. 7:5절에 보면 각 지파를 소개하면서 단 지파가 빠져있습니다. 그레서 어떤 신학자들은 단 지파 중에서 적그리스도 세력이 나오지 않겠는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야곱이 이 예언을 하면서 마음이 아팠던지 18절에 야곱의 소망을 기록했습니다. 단 지파가 남을 넘어뜨리고 무는 일이 있을텐데 야곱은 오직 주의 구원만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를 건질 수도 있고, 멸망시킬 수도 있으니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19절은 갓에 대한 예언입니다. 갓 지파는 많은 전쟁을 겪고 많은 장군들이 그 지파에서 나오겠다는 예언입니다. 대상12:8-15절까지를 보면 다윗 때에 갓 지파에서 용사들이 많이 나와 다윗을 크게 도운 내용이 나옵니다.

 

20절은 아셀에 대한 예언입니다. 아셀지파는 갈릴리 지방의 옥토를 많이 가진 지파가 되어 왕의 식물을 공급하는데 앞장 서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21절은 납달리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납달리 사람들은 예술적 방면에 뛰어날 뿐 아니라 언변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말로 지도하는 일을 잘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훌륭한 제자들이 이 납달리 지파 사람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찬양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22- 26절은 요셉에 대한 예언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는 샘 곁의 나무처럼 가지가 담을 넘을 정도로 번성할 것입니다. 그의 활은 적들보다 강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이 그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샘 곁에 심겨진 나무처럼 무성하게 자라 그 가지가 담을 넘듯이 자기 지경만 풍성한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지파는 나중에 북이스라엘의 열지파를 대표하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장자 삼아 하나님께서 원천의 복을 주시므로 나누는자가 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23절에 활을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한다고 했는데 요셉은 형들에게 박해받고 보디발의 집에서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가기까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4절에 요셉의 활이 도리어 강건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난다고 했는데 이스라엘의 목자란 지도자를 말합니다. 요셉이 지도자가 되었고 북쪽 열 지파를 지도하는 대표 지파가 되었습니다. 25절에는 농사가 잘 되려면 물이 풍부해야 합니다. 우선 위로 하늘의 복은 비가 잘 오고 이슬이 잘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일년에 두 번 비가 오는데 그 비가 절기에 따라 잘 내려야 풍년이 듭니다. 그리고 아래로 깊은 샘의 복이란 우물을 팔 때 물이 잘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비나 이슬도 잘 내려야 하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샘물이 잘 나와야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풍년이 되어도 그 곡식을 먹을 수 있는 식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태의 복이란 후손들이 잘 태어나고 젖도 잘나게 해서 인구가 불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하늘의 복과 땅의 복과 자녀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26절에도 야곱의 기도가 요셉에게 그대로 임한다는 것을 그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고하여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도록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렇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기도한대로 믿고 순종할 때 그대로 되었습니다. 순종하고 걸어가면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이루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7절은 베냐민에 대한 예언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매우 호전적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싸움을 정말 잘 합니다. 이런 기도를 해주는 이유는 너는 성질이 나쁘니까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르게 서야 된다는 경고를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야곱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될 열두 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감없이 전달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자녀들에게 야곱처럼 하나님의 뜻을 잘 전달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복을 빈 다음에 29-32절에는 야곱이 자녀들에게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자기 첫 아내 레아가 장사된 곳에 자기 시신을 묻어달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브엘세바에서 야곱이 제단을 쌓을 때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야곱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죽어서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3절에 야곱이 이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에게는 삶과 죽음은 동일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그네와 같이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 감당하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 그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갈 뿐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문을 여는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2:20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또한 14:8절에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음 앞에 서야 합니다. 그 전에 이 땅에서의 삶을 잘 정리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곱처럼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자녀들에게 그 믿음의 분량대로 축복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음을 준비하는 성도는 죽음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영원한 나라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사랑 때문입니다. 바울은 롬9:13에서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을 들어 그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설명했습니다. 복을 위해 투쟁했던 야곱은 이제 인생의 마지막에 열두지파를 대표하는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사역했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 뜻대로 가감없이 축복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릇이 준비된 자에게는 그릇대로 축복해주시도록 기도했고, 그릇이 준비 되지 않는 자에게는 그릇을 준비하도록 경고하고 훈계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야곱의 마지막 모습에서 그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12:1절은 성도들의 삶을 경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경주하는 자는 반드시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 목표는 당연히 십자가를 참으시고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굳게 믿고 주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자녀들에게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야곱이 생애 마지막까지 그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듯이 우리 자녀들을 위해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임하도록, 샘가에 심은 나무처럼 가지가 담장을 넘어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주일오후설교 250810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본문: 49:1-33

제목: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I. 서론

지난 주 창48장에서 야곱은 요셉을 축복하고 그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요셉 대신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 들어가도록 축복했습니다. 결국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 한번째였지만 장자로서 두배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열두 아들을 다 불러 모으고 그 아들 각각에 대해 마지막 유언을 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그들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예언하는 유언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유언하는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유언하는 야곱

야곱의 생애는 그가 바로 왕 앞에서 고백한 것 처럼 험악한 나그네 인생이었습니다. 야곱은 산전수전을 다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야곱이 헛된 세월만 보낸 것 같고, 늙고 병들고 초라한 노인으로 인생을 마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슬픈 인생, 허무한 인생을 기쁜 인생, 축복의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꿈에 그리던 요셉을 그의 나이 130세에 만나게 하시고, 애굽 고센 땅으로 이주하여 147세까지 17년간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을 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자신에게 약속하신 언약대로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 죽음을 앞두고 그 자녀들에게도 그 하나님의 복이 전수되도록 유언과 축복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유언은 남은 유족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습니까? 특별히 자녀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오늘 야곱은 자녀들에게 유언하면서 좋은 말도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어떤 자녀에게는 그들이 했던 악행도 지적합니다. 우리 정서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냥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런 야곱의 지위를 알아야 야곱의 유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죽기 직전에도 선지자로서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본문 1절에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2절에서도 모여서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으라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1,2절에서 야곱은 자기 소개를 간단히 했습니다. 그는 원래 이름이 야곱으로 간사한 자, 약탈자라는 뜻이었는데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즉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요 언약의 계승자인 이스라엘의 마지막 유언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12명이 다 모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 가족이 아버지의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들 각자는 앞으로 이스라엘 국가의 12지파를 대표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열두 아들이 다 모였다는 것은 온 이스라엘이 다같이 모인 공적인 모임으로 보아야 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모인 모임은 우리는 교회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용어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부르심 때문에 교회는 신적 특성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자를 통하여 이 부르심을 행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특히 출애굽기로 넘어가면 하나님은 항상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소집하였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그 성도들은 그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본문 2절에 야곱은 두 번이나 들으라는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말씀을 듣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으시는 이유는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고, 성도가 모이는 이유는 그 뜻을 듣기 위함입니다.

 

야곱은 자녀들이 다 모인 후에 말씀사역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음과 복은 전승됩니다. 성경에서 저주는 3-4대까지 이르지만 축복은 수천대까지 이른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언약과 믿음이 야곱에게 전승되고 이제 드디어 열두 아들들에게 전승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복이 자녀들에게 전승되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세대 차이 문화 차이로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가 단절되고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가정에 많은 갈등과 불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세대와 문화간 거리가 없는 민족이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가정교육을 통해 율법을 가르치고 전수함으로 세상이 변해도 그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율법교육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 간에 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가정의 공통분모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말씀과 믿음을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년이 된 자녀라도 믿음과 말씀으로 늘 권면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공통분모를 만들어야 갈등이 해결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유언도 반드시 야곱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해야 합니다.

 

 

2. 믿음의 분량대로 하는 축복의 법칙

오늘 본문 28절에 이와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축복하되 각 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유언을 할 때는 그 자녀가 잘되도록 축복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야곱의 축복은 자녀들이 무조건 잘 되라는 축복을 한 것이 아니라 아들들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녀들의 믿음의 분량대로 각각 다르게 축복하되 의외로 적지 않은 책망과 경고가 이 유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야곱의 유언이 기본적으로 설교 사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도 말씀사역에 온 힘을 다 쏟았던 것입니다. 그는 147세의 나이로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있는 힘을 다하여 자녀들을 축복하면서 한편으로는 책망하여 그들로 하여금 언약백성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였습니다. 교회 강단의 설교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포함하여 경고와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도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을 그릇의 크기대로 주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여 큰 축복을 받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각 지파 별 축복과 예언의 내용

오늘 본문 3절에서 27절 까지 열두지파를 대표하는 자녀들의 출생 순서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따라 축복의 예언을 합니다.

 

3,4절은 루우벤에 대한 예언입니다. 야곱의 장자이지만 야곱의 첩인 빌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아버지의 침상을 더렵힌 것을 지적했습니다. 침상은 부부에게 가장 거룩한 장소이고 둘만이 기쁨을 서로 나누는 곳입니다. 더구나 창47:31, 48:2절을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루우벤은 본문 4절처럼 물이 끓는 것 같은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계모 빌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루우벤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장자 루우벤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박탈되었습니다.

 

5-7절은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들은 둘 다 분노를 다스릴 수 없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분노, 혈기, 노여움이었습니다.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고, 혹독한 노여움을 발하였습니다. 34장에서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서 그 곳 지도자 하몰의 아들에게서 강간을 당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화가나서 거짓 약조를 맺고 그들이 할례를 받고 고통 중에 있을 때 모두 진멸했고 심지어 가축의 힘줄까지 끊었습니다. 그들은 분노에 쌓여 자신들이 당한 것 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상대방에게 보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이스라엘 중에 흩으셨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나중에 기업의 땅을 분배받을 때 유다지파에게 속해 버립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8-12절은 유다에 대한 예언입니다. 유다에게 주어진 축복은 유다지파에서 왕이 나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지파의 후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유다 역시 이런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38장을 보면 자기 며느리 다말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아이를 낳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아버지와 온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애굽에서 감금된 베냐민을 풀어주도록 자기 목숨을 담보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지도자의 자질 중 하나는 책임성과 헌신인데 야곱은 유다의 이런 모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데 합당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을 잡는다는 말은 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자새끼처럼 그를 당할자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지파가 유다지파에게 절하게 된다고 했으니 지도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지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 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실로라는 뜻은 그 아이라는 히브리어인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유다지파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그에게 누구나 굴복하여 주라고 시인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11, 12절은 유다지파가 물질적 풍요와 평화를 누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다윗과 솔로몬 때에 물질적 풍요와 평화가 넘쳤습니다. 이것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은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언약이기도 합니다.

 

13절은 스불론에 대한 예언입니다. 스블론 지파는 이 말씀대로 갈릴리 해변으로부터 지중해 해변까지 거하는 해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구에서 어부생활을 하고 무역을 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14-15절은 잇사갈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사람들은 육체가 건장하여 농사 짓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잘 순종하며 따르게 될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16-18절은 단에 대한 예언입니다. 실제로 단 지파에서 삼손이 태어났습니다. 삼손은 사사인데 바로 심판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 지파를 길의 뱀과 독사로 비유했습니다. 7:5절에 보면 각 지파를 소개하면서 단 지파가 빠져있습니다. 그레서 어떤 신학자들은 단 지파 중에서 적그리스도 세력이 나오지 않겠는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야곱이 이 예언을 하면서 마음이 아팠던지 18절에 야곱의 소망을 기록했습니다. 단 지파가 남을 넘어뜨리고 무는 일이 있을텐데 야곱은 오직 주의 구원만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를 건질 수도 있고, 멸망시킬 수도 있으니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19절은 갓에 대한 예언입니다. 갓 지파는 많은 전쟁을 겪고 많은 장군들이 그 지파에서 나오겠다는 예언입니다. 대상12:8-15절까지를 보면 다윗 때에 갓 지파에서 용사들이 많이 나와 다윗을 크게 도운 내용이 나옵니다.

 

20절은 아셀에 대한 예언입니다. 아셀지파는 갈릴리 지방의 옥토를 많이 가진 지파가 되어 왕의 식물을 공급하는데 앞장 서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21절은 납달리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납달리 사람들은 예술적 방면에 뛰어날 뿐 아니라 언변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말로 지도하는 일을 잘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훌륭한 제자들이 이 납달리 지파 사람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찬양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22- 26절은 요셉에 대한 예언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는 샘 곁의 나무처럼 가지가 담을 넘을 정도로 번성할 것입니다. 그의 활은 적들보다 강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이 그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샘 곁에 심겨진 나무처럼 무성하게 자라 그 가지가 담을 넘듯이 자기 지경만 풍성한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지파는 나중에 북이스라엘의 열지파를 대표하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장자 삼아 하나님께서 원천의 복을 주시므로 나누는자가 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23절에 활을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한다고 했는데 요셉은 형들에게 박해받고 보디발의 집에서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가기까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4절에 요셉의 활이 도리어 강건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난다고 했는데 이스라엘의 목자란 지도자를 말합니다. 요셉이 지도자가 되었고 북쪽 열 지파를 지도하는 대표 지파가 되었습니다. 25절에는 농사가 잘 되려면 물이 풍부해야 합니다. 우선 위로 하늘의 복은 비가 잘 오고 이슬이 잘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일년에 두 번 비가 오는데 그 비가 절기에 따라 잘 내려야 풍년이 듭니다. 그리고 아래로 깊은 샘의 복이란 우물을 팔 때 물이 잘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비나 이슬도 잘 내려야 하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샘물이 잘 나와야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풍년이 되어도 그 곡식을 먹을 수 있는 식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태의 복이란 후손들이 잘 태어나고 젖도 잘나게 해서 인구가 불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하늘의 복과 땅의 복과 자녀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26절에도 야곱의 기도가 요셉에게 그대로 임한다는 것을 그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고하여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도록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렇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기도한대로 믿고 순종할 때 그대로 되었습니다. 순종하고 걸어가면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이루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7절은 베냐민에 대한 예언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매우 호전적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싸움을 정말 잘 합니다. 이런 기도를 해주는 이유는 너는 성질이 나쁘니까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르게 서야 된다는 경고를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야곱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될 열두 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감없이 전달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자녀들에게 야곱처럼 하나님의 뜻을 잘 전달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복을 빈 다음에 29-32절에는 야곱이 자녀들에게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자기 첫 아내 레아가 장사된 곳에 자기 시신을 묻어달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브엘세바에서 야곱이 제단을 쌓을 때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야곱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죽어서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3절에 야곱이 이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에게는 삶과 죽음은 동일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그네와 같이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 감당하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 그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갈 뿐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문을 여는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2:20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또한 14:8절에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음 앞에 서야 합니다. 그 전에 이 땅에서의 삶을 잘 정리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곱처럼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자녀들에게 그 믿음의 분량대로 축복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음을 준비하는 성도는 죽음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영원한 나라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사랑 때문입니다. 바울은 롬9:13에서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을 들어 그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설명했습니다. 복을 위해 투쟁했던 야곱은 이제 인생의 마지막에 열두지파를 대표하는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사역했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 뜻대로 가감없이 축복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릇이 준비된 자에게는 그릇대로 축복해주시도록 기도했고, 그릇이 준비 되지 않는 자에게는 그릇을 준비하도록 경고하고 훈계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야곱의 마지막 모습에서 그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12:1절은 성도들의 삶을 경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경주하는 자는 반드시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 목표는 당연히 십자가를 참으시고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굳게 믿고 주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자녀들에게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야곱이 생애 마지막까지 그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듯이 우리 자녀들을 위해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임하도록, 샘가에 심은 나무처럼 가지가 담장을 넘어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주일오후설교 250810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본문: 49:1-33

제목: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I. 서론

지난 주 창48장에서 야곱은 요셉을 축복하고 그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요셉 대신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 들어가도록 축복했습니다. 결국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 한번째였지만 장자로서 두배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열두 아들을 다 불러 모으고 그 아들 각각에 대해 마지막 유언을 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그들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예언하는 유언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유언하는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유언하는 야곱

야곱의 생애는 그가 바로 왕 앞에서 고백한 것 처럼 험악한 나그네 인생이었습니다. 야곱은 산전수전을 다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야곱이 헛된 세월만 보낸 것 같고, 늙고 병들고 초라한 노인으로 인생을 마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슬픈 인생, 허무한 인생을 기쁜 인생, 축복의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꿈에 그리던 요셉을 그의 나이 130세에 만나게 하시고, 애굽 고센 땅으로 이주하여 147세까지 17년간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을 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자신에게 약속하신 언약대로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 죽음을 앞두고 그 자녀들에게도 그 하나님의 복이 전수되도록 유언과 축복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유언은 남은 유족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습니까? 특별히 자녀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오늘 야곱은 자녀들에게 유언하면서 좋은 말도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어떤 자녀에게는 그들이 했던 악행도 지적합니다. 우리 정서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냥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런 야곱의 지위를 알아야 야곱의 유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죽기 직전에도 선지자로서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본문 1절에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2절에서도 모여서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으라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1,2절에서 야곱은 자기 소개를 간단히 했습니다. 그는 원래 이름이 야곱으로 간사한 자, 약탈자라는 뜻이었는데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즉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요 언약의 계승자인 이스라엘의 마지막 유언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12명이 다 모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 가족이 아버지의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들 각자는 앞으로 이스라엘 국가의 12지파를 대표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열두 아들이 다 모였다는 것은 온 이스라엘이 다같이 모인 공적인 모임으로 보아야 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모인 모임은 우리는 교회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용어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부르심 때문에 교회는 신적 특성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자를 통하여 이 부르심을 행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특히 출애굽기로 넘어가면 하나님은 항상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소집하였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그 성도들은 그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본문 2절에 야곱은 두 번이나 들으라는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말씀을 듣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으시는 이유는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고, 성도가 모이는 이유는 그 뜻을 듣기 위함입니다.

 

야곱은 자녀들이 다 모인 후에 말씀사역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음과 복은 전승됩니다. 성경에서 저주는 3-4대까지 이르지만 축복은 수천대까지 이른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언약과 믿음이 야곱에게 전승되고 이제 드디어 열두 아들들에게 전승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복이 자녀들에게 전승되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세대 차이 문화 차이로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가 단절되고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가정에 많은 갈등과 불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세대와 문화간 거리가 없는 민족이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가정교육을 통해 율법을 가르치고 전수함으로 세상이 변해도 그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율법교육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 간에 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가정의 공통분모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말씀과 믿음을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년이 된 자녀라도 믿음과 말씀으로 늘 권면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공통분모를 만들어야 갈등이 해결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유언도 반드시 야곱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해야 합니다.

 

 

2. 믿음의 분량대로 하는 축복의 법칙

오늘 본문 28절에 이와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축복하되 각 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유언을 할 때는 그 자녀가 잘되도록 축복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야곱의 축복은 자녀들이 무조건 잘 되라는 축복을 한 것이 아니라 아들들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녀들의 믿음의 분량대로 각각 다르게 축복하되 의외로 적지 않은 책망과 경고가 이 유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야곱의 유언이 기본적으로 설교 사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도 말씀사역에 온 힘을 다 쏟았던 것입니다. 그는 147세의 나이로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있는 힘을 다하여 자녀들을 축복하면서 한편으로는 책망하여 그들로 하여금 언약백성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였습니다. 교회 강단의 설교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포함하여 경고와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도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을 그릇의 크기대로 주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여 큰 축복을 받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각 지파 별 축복과 예언의 내용

오늘 본문 3절에서 27절 까지 열두지파를 대표하는 자녀들의 출생 순서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따라 축복의 예언을 합니다.

 

3,4절은 루우벤에 대한 예언입니다. 야곱의 장자이지만 야곱의 첩인 빌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아버지의 침상을 더렵힌 것을 지적했습니다. 침상은 부부에게 가장 거룩한 장소이고 둘만이 기쁨을 서로 나누는 곳입니다. 더구나 창47:31, 48:2절을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루우벤은 본문 4절처럼 물이 끓는 것 같은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계모 빌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루우벤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장자 루우벤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박탈되었습니다.

 

5-7절은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들은 둘 다 분노를 다스릴 수 없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분노, 혈기, 노여움이었습니다.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고, 혹독한 노여움을 발하였습니다. 34장에서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서 그 곳 지도자 하몰의 아들에게서 강간을 당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화가나서 거짓 약조를 맺고 그들이 할례를 받고 고통 중에 있을 때 모두 진멸했고 심지어 가축의 힘줄까지 끊었습니다. 그들은 분노에 쌓여 자신들이 당한 것 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상대방에게 보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이스라엘 중에 흩으셨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나중에 기업의 땅을 분배받을 때 유다지파에게 속해 버립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8-12절은 유다에 대한 예언입니다. 유다에게 주어진 축복은 유다지파에서 왕이 나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지파의 후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유다 역시 이런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38장을 보면 자기 며느리 다말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아이를 낳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아버지와 온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애굽에서 감금된 베냐민을 풀어주도록 자기 목숨을 담보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지도자의 자질 중 하나는 책임성과 헌신인데 야곱은 유다의 이런 모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데 합당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을 잡는다는 말은 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자새끼처럼 그를 당할자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지파가 유다지파에게 절하게 된다고 했으니 지도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지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 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실로라는 뜻은 그 아이라는 히브리어인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유다지파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그에게 누구나 굴복하여 주라고 시인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11, 12절은 유다지파가 물질적 풍요와 평화를 누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다윗과 솔로몬 때에 물질적 풍요와 평화가 넘쳤습니다. 이것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은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언약이기도 합니다.

 

13절은 스불론에 대한 예언입니다. 스블론 지파는 이 말씀대로 갈릴리 해변으로부터 지중해 해변까지 거하는 해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구에서 어부생활을 하고 무역을 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14-15절은 잇사갈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사람들은 육체가 건장하여 농사 짓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잘 순종하며 따르게 될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16-18절은 단에 대한 예언입니다. 실제로 단 지파에서 삼손이 태어났습니다. 삼손은 사사인데 바로 심판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 지파를 길의 뱀과 독사로 비유했습니다. 7:5절에 보면 각 지파를 소개하면서 단 지파가 빠져있습니다. 그레서 어떤 신학자들은 단 지파 중에서 적그리스도 세력이 나오지 않겠는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야곱이 이 예언을 하면서 마음이 아팠던지 18절에 야곱의 소망을 기록했습니다. 단 지파가 남을 넘어뜨리고 무는 일이 있을텐데 야곱은 오직 주의 구원만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를 건질 수도 있고, 멸망시킬 수도 있으니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19절은 갓에 대한 예언입니다. 갓 지파는 많은 전쟁을 겪고 많은 장군들이 그 지파에서 나오겠다는 예언입니다. 대상12:8-15절까지를 보면 다윗 때에 갓 지파에서 용사들이 많이 나와 다윗을 크게 도운 내용이 나옵니다.

 

20절은 아셀에 대한 예언입니다. 아셀지파는 갈릴리 지방의 옥토를 많이 가진 지파가 되어 왕의 식물을 공급하는데 앞장 서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21절은 납달리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납달리 사람들은 예술적 방면에 뛰어날 뿐 아니라 언변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말로 지도하는 일을 잘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훌륭한 제자들이 이 납달리 지파 사람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찬양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22- 26절은 요셉에 대한 예언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는 샘 곁의 나무처럼 가지가 담을 넘을 정도로 번성할 것입니다. 그의 활은 적들보다 강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이 그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샘 곁에 심겨진 나무처럼 무성하게 자라 그 가지가 담을 넘듯이 자기 지경만 풍성한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지파는 나중에 북이스라엘의 열지파를 대표하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장자 삼아 하나님께서 원천의 복을 주시므로 나누는자가 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23절에 활을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한다고 했는데 요셉은 형들에게 박해받고 보디발의 집에서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가기까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4절에 요셉의 활이 도리어 강건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난다고 했는데 이스라엘의 목자란 지도자를 말합니다. 요셉이 지도자가 되었고 북쪽 열 지파를 지도하는 대표 지파가 되었습니다. 25절에는 농사가 잘 되려면 물이 풍부해야 합니다. 우선 위로 하늘의 복은 비가 잘 오고 이슬이 잘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일년에 두 번 비가 오는데 그 비가 절기에 따라 잘 내려야 풍년이 듭니다. 그리고 아래로 깊은 샘의 복이란 우물을 팔 때 물이 잘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비나 이슬도 잘 내려야 하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샘물이 잘 나와야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풍년이 되어도 그 곡식을 먹을 수 있는 식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태의 복이란 후손들이 잘 태어나고 젖도 잘나게 해서 인구가 불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하늘의 복과 땅의 복과 자녀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26절에도 야곱의 기도가 요셉에게 그대로 임한다는 것을 그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고하여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도록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렇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기도한대로 믿고 순종할 때 그대로 되었습니다. 순종하고 걸어가면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이루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7절은 베냐민에 대한 예언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매우 호전적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싸움을 정말 잘 합니다. 이런 기도를 해주는 이유는 너는 성질이 나쁘니까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르게 서야 된다는 경고를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야곱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될 열두 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감없이 전달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자녀들에게 야곱처럼 하나님의 뜻을 잘 전달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복을 빈 다음에 29-32절에는 야곱이 자녀들에게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자기 첫 아내 레아가 장사된 곳에 자기 시신을 묻어달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브엘세바에서 야곱이 제단을 쌓을 때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야곱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죽어서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3절에 야곱이 이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에게는 삶과 죽음은 동일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그네와 같이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 감당하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 그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갈 뿐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문을 여는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2:20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또한 14:8절에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음 앞에 서야 합니다. 그 전에 이 땅에서의 삶을 잘 정리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곱처럼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자녀들에게 그 믿음의 분량대로 축복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음을 준비하는 성도는 죽음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영원한 나라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사랑 때문입니다. 바울은 롬9:13에서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을 들어 그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설명했습니다. 복을 위해 투쟁했던 야곱은 이제 인생의 마지막에 열두지파를 대표하는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사역했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 뜻대로 가감없이 축복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릇이 준비된 자에게는 그릇대로 축복해주시도록 기도했고, 그릇이 준비 되지 않는 자에게는 그릇을 준비하도록 경고하고 훈계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야곱의 마지막 모습에서 그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12:1절은 성도들의 삶을 경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경주하는 자는 반드시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 목표는 당연히 십자가를 참으시고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굳게 믿고 주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자녀들에게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야곱이 생애 마지막까지 그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듯이 우리 자녀들을 위해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임하도록, 샘가에 심은 나무처럼 가지가 담장을 넘어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주일오후설교 250810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본문: 49:1-33

제목: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I. 서론

지난 주 창48장에서 야곱은 요셉을 축복하고 그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요셉 대신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 들어가도록 축복했습니다. 결국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 한번째였지만 장자로서 두배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열두 아들을 다 불러 모으고 그 아들 각각에 대해 마지막 유언을 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그들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예언하는 유언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유언하는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유언하는 야곱

야곱의 생애는 그가 바로 왕 앞에서 고백한 것 처럼 험악한 나그네 인생이었습니다. 야곱은 산전수전을 다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야곱이 헛된 세월만 보낸 것 같고, 늙고 병들고 초라한 노인으로 인생을 마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슬픈 인생, 허무한 인생을 기쁜 인생, 축복의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꿈에 그리던 요셉을 그의 나이 130세에 만나게 하시고, 애굽 고센 땅으로 이주하여 147세까지 17년간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을 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자신에게 약속하신 언약대로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 죽음을 앞두고 그 자녀들에게도 그 하나님의 복이 전수되도록 유언과 축복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유언은 남은 유족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습니까? 특별히 자녀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오늘 야곱은 자녀들에게 유언하면서 좋은 말도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어떤 자녀에게는 그들이 했던 악행도 지적합니다. 우리 정서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냥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런 야곱의 지위를 알아야 야곱의 유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죽기 직전에도 선지자로서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본문 1절에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2절에서도 모여서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으라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1,2절에서 야곱은 자기 소개를 간단히 했습니다. 그는 원래 이름이 야곱으로 간사한 자, 약탈자라는 뜻이었는데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즉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요 언약의 계승자인 이스라엘의 마지막 유언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12명이 다 모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 가족이 아버지의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들 각자는 앞으로 이스라엘 국가의 12지파를 대표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열두 아들이 다 모였다는 것은 온 이스라엘이 다같이 모인 공적인 모임으로 보아야 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모인 모임은 우리는 교회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용어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부르심 때문에 교회는 신적 특성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자를 통하여 이 부르심을 행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특히 출애굽기로 넘어가면 하나님은 항상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소집하였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그 성도들은 그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본문 2절에 야곱은 두 번이나 들으라는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말씀을 듣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으시는 이유는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고, 성도가 모이는 이유는 그 뜻을 듣기 위함입니다.

 

야곱은 자녀들이 다 모인 후에 말씀사역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음과 복은 전승됩니다. 성경에서 저주는 3-4대까지 이르지만 축복은 수천대까지 이른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언약과 믿음이 야곱에게 전승되고 이제 드디어 열두 아들들에게 전승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복이 자녀들에게 전승되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세대 차이 문화 차이로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가 단절되고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가정에 많은 갈등과 불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세대와 문화간 거리가 없는 민족이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가정교육을 통해 율법을 가르치고 전수함으로 세상이 변해도 그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율법교육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 간에 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가정의 공통분모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말씀과 믿음을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년이 된 자녀라도 믿음과 말씀으로 늘 권면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공통분모를 만들어야 갈등이 해결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유언도 반드시 야곱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해야 합니다.

 

 

2. 믿음의 분량대로 하는 축복의 법칙

오늘 본문 28절에 이와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축복하되 각 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유언을 할 때는 그 자녀가 잘되도록 축복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야곱의 축복은 자녀들이 무조건 잘 되라는 축복을 한 것이 아니라 아들들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녀들의 믿음의 분량대로 각각 다르게 축복하되 의외로 적지 않은 책망과 경고가 이 유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야곱의 유언이 기본적으로 설교 사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도 말씀사역에 온 힘을 다 쏟았던 것입니다. 그는 147세의 나이로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있는 힘을 다하여 자녀들을 축복하면서 한편으로는 책망하여 그들로 하여금 언약백성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였습니다. 교회 강단의 설교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포함하여 경고와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도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을 그릇의 크기대로 주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여 큰 축복을 받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각 지파 별 축복과 예언의 내용

오늘 본문 3절에서 27절 까지 열두지파를 대표하는 자녀들의 출생 순서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따라 축복의 예언을 합니다.

 

3,4절은 루우벤에 대한 예언입니다. 야곱의 장자이지만 야곱의 첩인 빌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아버지의 침상을 더렵힌 것을 지적했습니다. 침상은 부부에게 가장 거룩한 장소이고 둘만이 기쁨을 서로 나누는 곳입니다. 더구나 창47:31, 48:2절을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루우벤은 본문 4절처럼 물이 끓는 것 같은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계모 빌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루우벤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장자 루우벤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박탈되었습니다.

 

5-7절은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들은 둘 다 분노를 다스릴 수 없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분노, 혈기, 노여움이었습니다.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고, 혹독한 노여움을 발하였습니다. 34장에서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서 그 곳 지도자 하몰의 아들에게서 강간을 당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화가나서 거짓 약조를 맺고 그들이 할례를 받고 고통 중에 있을 때 모두 진멸했고 심지어 가축의 힘줄까지 끊었습니다. 그들은 분노에 쌓여 자신들이 당한 것 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상대방에게 보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이스라엘 중에 흩으셨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나중에 기업의 땅을 분배받을 때 유다지파에게 속해 버립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8-12절은 유다에 대한 예언입니다. 유다에게 주어진 축복은 유다지파에서 왕이 나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지파의 후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유다 역시 이런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38장을 보면 자기 며느리 다말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아이를 낳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아버지와 온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애굽에서 감금된 베냐민을 풀어주도록 자기 목숨을 담보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지도자의 자질 중 하나는 책임성과 헌신인데 야곱은 유다의 이런 모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데 합당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을 잡는다는 말은 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자새끼처럼 그를 당할자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지파가 유다지파에게 절하게 된다고 했으니 지도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지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 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실로라는 뜻은 그 아이라는 히브리어인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유다지파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그에게 누구나 굴복하여 주라고 시인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11, 12절은 유다지파가 물질적 풍요와 평화를 누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다윗과 솔로몬 때에 물질적 풍요와 평화가 넘쳤습니다. 이것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은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언약이기도 합니다.

 

13절은 스불론에 대한 예언입니다. 스블론 지파는 이 말씀대로 갈릴리 해변으로부터 지중해 해변까지 거하는 해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구에서 어부생활을 하고 무역을 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14-15절은 잇사갈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사람들은 육체가 건장하여 농사 짓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잘 순종하며 따르게 될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16-18절은 단에 대한 예언입니다. 실제로 단 지파에서 삼손이 태어났습니다. 삼손은 사사인데 바로 심판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 지파를 길의 뱀과 독사로 비유했습니다. 7:5절에 보면 각 지파를 소개하면서 단 지파가 빠져있습니다. 그레서 어떤 신학자들은 단 지파 중에서 적그리스도 세력이 나오지 않겠는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야곱이 이 예언을 하면서 마음이 아팠던지 18절에 야곱의 소망을 기록했습니다. 단 지파가 남을 넘어뜨리고 무는 일이 있을텐데 야곱은 오직 주의 구원만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를 건질 수도 있고, 멸망시킬 수도 있으니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19절은 갓에 대한 예언입니다. 갓 지파는 많은 전쟁을 겪고 많은 장군들이 그 지파에서 나오겠다는 예언입니다. 대상12:8-15절까지를 보면 다윗 때에 갓 지파에서 용사들이 많이 나와 다윗을 크게 도운 내용이 나옵니다.

 

20절은 아셀에 대한 예언입니다. 아셀지파는 갈릴리 지방의 옥토를 많이 가진 지파가 되어 왕의 식물을 공급하는데 앞장 서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21절은 납달리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납달리 사람들은 예술적 방면에 뛰어날 뿐 아니라 언변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말로 지도하는 일을 잘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훌륭한 제자들이 이 납달리 지파 사람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찬양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22- 26절은 요셉에 대한 예언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는 샘 곁의 나무처럼 가지가 담을 넘을 정도로 번성할 것입니다. 그의 활은 적들보다 강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이 그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샘 곁에 심겨진 나무처럼 무성하게 자라 그 가지가 담을 넘듯이 자기 지경만 풍성한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지파는 나중에 북이스라엘의 열지파를 대표하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장자 삼아 하나님께서 원천의 복을 주시므로 나누는자가 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23절에 활을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한다고 했는데 요셉은 형들에게 박해받고 보디발의 집에서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가기까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4절에 요셉의 활이 도리어 강건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난다고 했는데 이스라엘의 목자란 지도자를 말합니다. 요셉이 지도자가 되었고 북쪽 열 지파를 지도하는 대표 지파가 되었습니다. 25절에는 농사가 잘 되려면 물이 풍부해야 합니다. 우선 위로 하늘의 복은 비가 잘 오고 이슬이 잘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일년에 두 번 비가 오는데 그 비가 절기에 따라 잘 내려야 풍년이 듭니다. 그리고 아래로 깊은 샘의 복이란 우물을 팔 때 물이 잘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비나 이슬도 잘 내려야 하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샘물이 잘 나와야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풍년이 되어도 그 곡식을 먹을 수 있는 식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태의 복이란 후손들이 잘 태어나고 젖도 잘나게 해서 인구가 불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하늘의 복과 땅의 복과 자녀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26절에도 야곱의 기도가 요셉에게 그대로 임한다는 것을 그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고하여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도록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렇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기도한대로 믿고 순종할 때 그대로 되었습니다. 순종하고 걸어가면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이루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7절은 베냐민에 대한 예언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매우 호전적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싸움을 정말 잘 합니다. 이런 기도를 해주는 이유는 너는 성질이 나쁘니까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르게 서야 된다는 경고를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야곱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될 열두 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감없이 전달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자녀들에게 야곱처럼 하나님의 뜻을 잘 전달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복을 빈 다음에 29-32절에는 야곱이 자녀들에게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자기 첫 아내 레아가 장사된 곳에 자기 시신을 묻어달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브엘세바에서 야곱이 제단을 쌓을 때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야곱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죽어서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3절에 야곱이 이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에게는 삶과 죽음은 동일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그네와 같이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 감당하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 그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갈 뿐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문을 여는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2:20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또한 14:8절에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음 앞에 서야 합니다. 그 전에 이 땅에서의 삶을 잘 정리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곱처럼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자녀들에게 그 믿음의 분량대로 축복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음을 준비하는 성도는 죽음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영원한 나라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사랑 때문입니다. 바울은 롬9:13에서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을 들어 그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설명했습니다. 복을 위해 투쟁했던 야곱은 이제 인생의 마지막에 열두지파를 대표하는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사역했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 뜻대로 가감없이 축복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릇이 준비된 자에게는 그릇대로 축복해주시도록 기도했고, 그릇이 준비 되지 않는 자에게는 그릇을 준비하도록 경고하고 훈계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야곱의 마지막 모습에서 그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12:1절은 성도들의 삶을 경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경주하는 자는 반드시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 목표는 당연히 십자가를 참으시고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굳게 믿고 주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자녀들에게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야곱이 생애 마지막까지 그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듯이 우리 자녀들을 위해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임하도록, 샘가에 심은 나무처럼 가지가 담장을 넘어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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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요셉을 위한 야곱의 축복 창48:1-22 2025-08-03 홍기칠 목사
65 고센 땅에서 번성한 이스라엘 창47:1-31 2025-07-27 홍기칠 목사
64 내가 너와 함께 가겠노라 창46:1-34 2025-07-20 홍기칠 목사
63 언약대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창45: 16-28 2025-07-13 홍기칠 목사
62 요셉의 신앙고백과 하나님의 섭리 창45:1-15 2025-07-06 홍기칠 목사
61 목숨을 건 중보기도 창44:1-34 2025-06-29 홍기칠 목사
60 진퇴양난의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 창43:1-34 2025-06-22 홍기칠 목사
59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셉의 통치 창42: 18-38 2025-06-15 홍기칠 목사
58 숨겨둔 죄를 드러내시는 하나님 창42:1-17 2025-06-08 홍기칠 목사
57 요셉을 애굽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 창41:37-57 2025-06-01 홍기칠 목사
56 바로왕의 꿈을 해석한 요셉 창41:1-36 2025-05-25 홍기칠 목사
55 요셉의 꿈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뤙 창40:1-23 2025-05-18 홍기칠 목사
54 믿음으로 시험을 이긴 요셉 창39:7-23 2025-05-11 홍기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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