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바로왕 앞에선 모세와 아론
2025-10-05 19:34:11
홍기칠
조회수   11
설교본문 출5:1-6:1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10-05

주일오후설교 251005 바로왕 앞에 선 모세와 아론

본문: 5: 1-6:1

제목: 바로왕 앞에 선 모세와 아론

 

I. 서론

지난 주 출4장에서 모세는 아론을 만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전하고, 그들이 이스라엘 각 지파를 대표하는 장로들을 만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보여주신 두가지 기적을 행하여 그 말이 진실임을 증거하자 장로들이 그 말을 믿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께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드디어 모세와 아론이 바로왕 앞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II. 본론

1. 바로왕 앞에 선 모세와 아론

4장에서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인 장로들을 만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계획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 장로들은 하나님께서 드디어 그들의 고난을 살펴셨다는 말을 듣고 모세와 아론의 말을 수용하고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여기까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5:1절에 보면 모세와 아론이 바로왕에게 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2절에서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고 반대했습니다.

이것이 은혜로운 하나님의 제안에 대한 바로의 대답이었습니다. 순종해야 할 여호와의 명령을 거절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주님의 종들을 통하여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는 많은 사람들의 대답이 바로왕과 같습니다. 바로왕은 비록 애굽에 속하지 않는 이교도의 요청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신을 섬기도록 허락해주는 것이 합당하나 그 온당한 요구에 대해 바로왕은 비웃음고 거절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모세의 요구를 거절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유일한 사명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바로왕은 백성은 내 것이니 내가 그들을 가도록 하지 않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은 내 것이니 너는 그들을 가도록 가게 하라, 그들은 나를 섬기도록 창조되었고 택함을 입었노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러한 갈등이 이스라엘 한 종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인가 아니면 제사장인가? 그들은 짐을 지고 있는 왜굽의 짐승인가 아니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사람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있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요구를 애굽 바로왕에게 한 것입니다. 본문 1절은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순종할 기회를 준 것이요 은혜로 그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노로 그들을 심판하기 전에 먼저 자비를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항상 그러했습니다. 노아때 홍수를 내리기 전에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노아를 설교자로 보내셨고, 이스라엘을 포로로 추방하기 전에 선지자들을 통해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AD 70년에 로마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멸망시키기 전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사도들을 보내셔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권고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은혜와 오래 참으심으로 다가올 진노를 피하기 위해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전도자들을 통해 계속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구원의 날이 급속히 가까이 다가와서 주께서 하나님 우편 자리에서 일어나시면 자비의 문은 닫히고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의 폭풍이 몰아치게 됩니다.

 

모세와 아론은 당장 어려움에 봉착하고 맙니다. 그래서 3절에서 다시 한번 바로왕에게 간청합니다.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 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 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본문 3절에서 한가지 실수를 합니다. 바로왕이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겠다고 하니 만약 우리를 보내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자신들에게 전염병이나 칼로 치실까 두렵다고 하면서 은근히 바로왕을 위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왕이 하나님의 백성을 놓아주지 않으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을 말씀하셨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런 재앙을 내린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해서 순종해서는 안됩니다.

 

이 말을 들은 바로왕은 4-9절의 말씀처럼 반응했습니다. , 모세가 그렇게 요구한 것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역을 쉬게 하려는 의도라고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게을러서 도망가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 제사드리러 간다는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감독들과 기록원들에 명령하기를 이제 부터는 벽돌을 만들 때 사용하는 짚을 주지 말고 그들이 직접 구해와서 벽돌을 만들되 이전과 동일한 숫자대로 하도록 노역을 더 무겁게 하여 모세와 아론의 거짓말에 속지 않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 모세와 아론의 말에 따르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은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을 시간가 돈을 허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예수 믿는 것이 시간과 물질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백성이 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다가 죽음과 동시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끝이 납니다. 그러나 주님과 이웃을 위해 사는 성도의 삶은 하늘나라에 반드시 상급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이 바로왕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로 사흘길 쯤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도록 허락해 달라고 부탁 한 것이 오히려 자기들에게 더 무거운 노역을 하게 만든 원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15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이 바로왕에게 가서 항의를 합니다. 그러나 바로왕은 그동안 짚을 제공해주던 것을 주지 않고 각각 벽돌 만드는데 들어갈 짚을 스스로 구하여 원래 숫자대로 만들라는 명령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바로왕 앞에서 나오면서 모세와 아론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본문 21절에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비난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모세와 아론도 하나님께 하소연합니다. 본문 22-23절에서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 모세의 실패와 고난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의 실패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바로왕궁에서 40세 때 자기 민족을 구하려다가 첫 번째 실패를 경험한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 자신은 마침내 승리의 편에 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왕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시겠다는 예고를 주의 깊게 듣지 않았습니다. 귀 기울여 듣지 못한 모세는 정확하게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잘못된 대표단을 데리고 갔습니다. 즉 이스라엘 장로들도 함께 데리고 가야했는데 아론만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3:18절에서 사용한 히브리 사람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공인된 이름이었지만 모세는 본문 1절에서 이스라엘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임하셨다고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모세는 바로가 받아들일 만한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잘못된 요청을 한 것입니다. 모세는 여호와가 그의 입에 넣어준 말씀처럼 사흘간 떠나 있게 해달라는 무리하지 않은 요청을 하는 대신에 자기 민족의 완전한 해방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염병과 학살로 위협하며 여호와가 말씀하지 않으신 내용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바로가 이해할 만한 용어를 사용하여 정중한 용어로 무리없이 협조적으로 요청하는 방식을 취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권위주의적 접근방식을 택하여 이해하기 힘든 충격적인 말로 바로의 마음을 멀어지게 하고 절대적인 요구를 한 것입니다. 작은 일에서든 큰 일에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붙잡지 않고 그 내용을 감하거나 덧붙일 때 우리는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세는 본문 3절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전염병과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한다는 말을 덧붙임으로서 바로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도록 말한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에게 임무를 맡기고 지시하며 통제하는 여호와의 말씀 없이 일에 뛰어든 40세 때 처음으로 실패했으며,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지만 정확히 순종하지 않았을 때 두 번째 바로왕의 거절이라는 실패를 한 것입니다. 그의 독단적인 접근방식은 더 혹독한 환경을 불러왔고 바로왕의 마음은 더욱 강팍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더 가혹한 새 노동 법규에 꼼짝 못하게 되었고 모세는 큰 충격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다시 자기 실패 때문에 도망가지 않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2-23절은 바로 이것을 보여줍니다. 어려움이 닥치고 일이 기대한 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어찌하여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당신은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당신은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말하며 책임을 여호와께 돌립니다. 그런데 모세는 처음 실패했을 때는 미디안으로 도망쳤지만 이번에는 왜 그렇게 하셨는지 원망하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여호와께로 돌아와 묻게 됩니다. 그만큼 영적으로 성숙해 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바로왕에게 한 말은 실제로 틀린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정확하게 순종하지 않은 그에게 잘못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가 정말로 필요할 때 그곳에 없거나 돕지 않는 신처럼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인간의 악한 계획이 참혹한 결과를 내도록 허용하시고 죄 많은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잘못된 일과 고통을 외면하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나 원망 때문에 원래의 구원계획을 변경하지 않으며 시간이 갈수록 그분의 절대목적을 더 구체적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하소연 하는 모세에게 해결책을 보여주십니다. 6:1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모세에게 힘을 내라든지 정신차리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자신에 대한 계시를 반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붙들린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세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계획은 인간의 실패나 실수에 영향을 받지 않으시고 변함없이 실행됩니다. 6:1절의 이제라는 말은 출애굽 사건 전체의 전환점이 됩니다. 우리 시선을 주님께 돌리는 순간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여호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중에 변화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애굽왕에게 찾아가서 신앙의 자유, 경배의 자유를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가는데는 신앙개혁이 급선무입니다. 신앙개혁이란 하나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비교적 평안한 생활을 할때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든 노역으로 고통을 당하자 하나님께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었는데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와 아론을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애굽의 우상을 섬기지 말고 광야의 3일 길을 가서 거기서 하나님께 제사 지내는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랫동안 애굽생활을 하면서 세속화 되어 있는 그들의 신앙을 다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는데 오히려 고난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오는 고난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연단 곧 신앙훈련을 하기 위해 주시는 과정입니다. 그 고난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이 완성되는 만큼만 계속됩니다. 더 큰 은혜를 받기위한 준비과정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하러 가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신앙개혁을 한 후에 전도하러 가야 그 증거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도하러 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신앙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나갈 때 예수 믿는다는 것을 숨기지 말고 처음부터 당당히 드러내는 것이 사탄에게 휘둘리지 않는 비결입니다. 직장생활 하면서 예수 믿는 것을 숨기고 불신자와 같이 생활하다가 어려움이 닥칠 때에야 예수 믿는다는 것을 밝히게 되면 불신자들에게 오히려 비난을 받습니다. 우리 성도는 처음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깃발을 분명히 해야 사탄의 공격에 속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애굽은 세상이고 물질을 신으로 섬기는 곳입니다. 성도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희생제사를 드리는 예배생활을 잘 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세상에서 일한 결과와 열매가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맺히게 하십니다. 주일날 공부하고 일하면 더 많은 성과가 날 것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법칙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주일 중에 주일 하루를 하나님께 바치면 오히려 시간을 더 절약하여 바로 쓰기 때문에 기쁨을 누리고 하루를 쉬기 때문에 더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주일날 가게 문을 닫고 주일 예배에 집중했더니 수입은 하루분 만큼 감소하는 것 같아도 병원비 등 필요없는 지출이 덜 나가거나 평일 영업이 더 잘 되어서 순수익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는 실제적인 간증을 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실 동안에는 우리 마음이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단과 훈련을 왜 주시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더 감사하게 하시고 믿음을 성장시키려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킴으로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할 줄도 알고 받은 것을 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들려고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벧전 1:6-7절에서 여러 가지 시험 때문에 우리가 근심하게 되었지만 그 시험은 모두 우리의 믿음이 순전한 것으로 입증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시험과정을 도가니에서 금을 정련하는 과정에 비교합니다. 욥은 23:10절에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고백한대로 그 극심한 시험을 통과하여 더 큰 믿음의 사람이 되고 육신적으로도 두배나 축복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과 삶에 찾아올 때에는 시험과 시련도 같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험과 시련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며 그리스도를 닮는 경기장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주일 예배때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월요일부터 주중에는 하나님은 전혀 전능하시지 않다고 암시하는 경험들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시험은 역경과 환경의 어려움 같은 외적 시련뿐 아니라 우리를 따라 다니는 죄와 유혹, 영적 삶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전쟁과 같은 개인적 실재에서도 적용됩니다. 출애굽할 때 어린양의 피 아래 몸을 숨긴 이스라엘 백성은 순례의 여정에서 광야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은 그들의 순종을 시험하고 충성심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입증하기 위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프로그램 안에 있었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모세가 바로왕 앞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사흘길을 갈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했지만 거절 당했습니다.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심한 강제노역을 명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더 심한 고통을 당하자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고 원망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바로왕에게 전하면서 그대로 전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덧붙여 자기들을 보내지 않으면 하나님깨서 전염병과 칼로 자기 백성을 치실까 두렵다고 말함으로써 바로왕을 은근히 협박한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구원계획을 계획대로 진행하셨습니다.

우리는 모세와 아론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에도 고난이 따라올 때 그 고난이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고 훈련시켜 그 믿음이 순금같이 나오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세상에서 생활하면서도 예수 믿는 깃발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바로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지내려 할때에 더 심한 강제노역을 시켰듯이 믿는 성도를 넘어지게 하거나 사람들이 예수 믿지 못하도록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모두 신앙생활하면서 고난이 있다해도 끝까지 말씀대로 순종하며 성령충만하여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축복합니다. < >

주일오후설교 251005 바로왕 앞에 선 모세와 아론

본문: 5: 1-6:1

제목: 바로왕 앞에 선 모세와 아론

 

I. 서론

지난 주 출4장에서 모세는 아론을 만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전하고, 그들이 이스라엘 각 지파를 대표하는 장로들을 만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보여주신 두가지 기적을 행하여 그 말이 진실임을 증거하자 장로들이 그 말을 믿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께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드디어 모세와 아론이 바로왕 앞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II. 본론

1. 바로왕 앞에 선 모세와 아론

4장에서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인 장로들을 만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계획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 장로들은 하나님께서 드디어 그들의 고난을 살펴셨다는 말을 듣고 모세와 아론의 말을 수용하고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여기까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5:1절에 보면 모세와 아론이 바로왕에게 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2절에서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고 반대했습니다.

이것이 은혜로운 하나님의 제안에 대한 바로의 대답이었습니다. 순종해야 할 여호와의 명령을 거절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주님의 종들을 통하여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는 많은 사람들의 대답이 바로왕과 같습니다. 바로왕은 비록 애굽에 속하지 않는 이교도의 요청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신을 섬기도록 허락해주는 것이 합당하나 그 온당한 요구에 대해 바로왕은 비웃음고 거절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모세의 요구를 거절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유일한 사명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바로왕은 백성은 내 것이니 내가 그들을 가도록 하지 않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은 내 것이니 너는 그들을 가도록 가게 하라, 그들은 나를 섬기도록 창조되었고 택함을 입었노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러한 갈등이 이스라엘 한 종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인가 아니면 제사장인가? 그들은 짐을 지고 있는 왜굽의 짐승인가 아니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사람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있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요구를 애굽 바로왕에게 한 것입니다. 본문 1절은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순종할 기회를 준 것이요 은혜로 그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노로 그들을 심판하기 전에 먼저 자비를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항상 그러했습니다. 노아때 홍수를 내리기 전에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노아를 설교자로 보내셨고, 이스라엘을 포로로 추방하기 전에 선지자들을 통해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AD 70년에 로마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멸망시키기 전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사도들을 보내셔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권고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은혜와 오래 참으심으로 다가올 진노를 피하기 위해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전도자들을 통해 계속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구원의 날이 급속히 가까이 다가와서 주께서 하나님 우편 자리에서 일어나시면 자비의 문은 닫히고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의 폭풍이 몰아치게 됩니다.

 

모세와 아론은 당장 어려움에 봉착하고 맙니다. 그래서 3절에서 다시 한번 바로왕에게 간청합니다.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 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 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본문 3절에서 한가지 실수를 합니다. 바로왕이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겠다고 하니 만약 우리를 보내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자신들에게 전염병이나 칼로 치실까 두렵다고 하면서 은근히 바로왕을 위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왕이 하나님의 백성을 놓아주지 않으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을 말씀하셨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런 재앙을 내린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해서 순종해서는 안됩니다.

 

이 말을 들은 바로왕은 4-9절의 말씀처럼 반응했습니다. , 모세가 그렇게 요구한 것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역을 쉬게 하려는 의도라고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게을러서 도망가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 제사드리러 간다는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감독들과 기록원들에 명령하기를 이제 부터는 벽돌을 만들 때 사용하는 짚을 주지 말고 그들이 직접 구해와서 벽돌을 만들되 이전과 동일한 숫자대로 하도록 노역을 더 무겁게 하여 모세와 아론의 거짓말에 속지 않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 모세와 아론의 말에 따르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은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을 시간가 돈을 허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예수 믿는 것이 시간과 물질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백성이 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다가 죽음과 동시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끝이 납니다. 그러나 주님과 이웃을 위해 사는 성도의 삶은 하늘나라에 반드시 상급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이 바로왕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로 사흘길 쯤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도록 허락해 달라고 부탁 한 것이 오히려 자기들에게 더 무거운 노역을 하게 만든 원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15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이 바로왕에게 가서 항의를 합니다. 그러나 바로왕은 그동안 짚을 제공해주던 것을 주지 않고 각각 벽돌 만드는데 들어갈 짚을 스스로 구하여 원래 숫자대로 만들라는 명령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바로왕 앞에서 나오면서 모세와 아론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본문 21절에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비난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모세와 아론도 하나님께 하소연합니다. 본문 22-23절에서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 모세의 실패와 고난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의 실패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바로왕궁에서 40세 때 자기 민족을 구하려다가 첫 번째 실패를 경험한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 자신은 마침내 승리의 편에 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왕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시겠다는 예고를 주의 깊게 듣지 않았습니다. 귀 기울여 듣지 못한 모세는 정확하게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잘못된 대표단을 데리고 갔습니다. 즉 이스라엘 장로들도 함께 데리고 가야했는데 아론만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3:18절에서 사용한 히브리 사람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공인된 이름이었지만 모세는 본문 1절에서 이스라엘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임하셨다고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모세는 바로가 받아들일 만한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잘못된 요청을 한 것입니다. 모세는 여호와가 그의 입에 넣어준 말씀처럼 사흘간 떠나 있게 해달라는 무리하지 않은 요청을 하는 대신에 자기 민족의 완전한 해방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염병과 학살로 위협하며 여호와가 말씀하지 않으신 내용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바로가 이해할 만한 용어를 사용하여 정중한 용어로 무리없이 협조적으로 요청하는 방식을 취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권위주의적 접근방식을 택하여 이해하기 힘든 충격적인 말로 바로의 마음을 멀어지게 하고 절대적인 요구를 한 것입니다. 작은 일에서든 큰 일에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붙잡지 않고 그 내용을 감하거나 덧붙일 때 우리는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세는 본문 3절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전염병과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한다는 말을 덧붙임으로서 바로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도록 말한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에게 임무를 맡기고 지시하며 통제하는 여호와의 말씀 없이 일에 뛰어든 40세 때 처음으로 실패했으며,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지만 정확히 순종하지 않았을 때 두 번째 바로왕의 거절이라는 실패를 한 것입니다. 그의 독단적인 접근방식은 더 혹독한 환경을 불러왔고 바로왕의 마음은 더욱 강팍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더 가혹한 새 노동 법규에 꼼짝 못하게 되었고 모세는 큰 충격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다시 자기 실패 때문에 도망가지 않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2-23절은 바로 이것을 보여줍니다. 어려움이 닥치고 일이 기대한 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어찌하여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당신은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당신은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말하며 책임을 여호와께 돌립니다. 그런데 모세는 처음 실패했을 때는 미디안으로 도망쳤지만 이번에는 왜 그렇게 하셨는지 원망하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여호와께로 돌아와 묻게 됩니다. 그만큼 영적으로 성숙해 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바로왕에게 한 말은 실제로 틀린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정확하게 순종하지 않은 그에게 잘못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가 정말로 필요할 때 그곳에 없거나 돕지 않는 신처럼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인간의 악한 계획이 참혹한 결과를 내도록 허용하시고 죄 많은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잘못된 일과 고통을 외면하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나 원망 때문에 원래의 구원계획을 변경하지 않으며 시간이 갈수록 그분의 절대목적을 더 구체적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하소연 하는 모세에게 해결책을 보여주십니다. 6:1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모세에게 힘을 내라든지 정신차리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자신에 대한 계시를 반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붙들린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세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계획은 인간의 실패나 실수에 영향을 받지 않으시고 변함없이 실행됩니다. 6:1절의 이제라는 말은 출애굽 사건 전체의 전환점이 됩니다. 우리 시선을 주님께 돌리는 순간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여호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중에 변화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애굽왕에게 찾아가서 신앙의 자유, 경배의 자유를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가는데는 신앙개혁이 급선무입니다. 신앙개혁이란 하나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비교적 평안한 생활을 할때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든 노역으로 고통을 당하자 하나님께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었는데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와 아론을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애굽의 우상을 섬기지 말고 광야의 3일 길을 가서 거기서 하나님께 제사 지내는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랫동안 애굽생활을 하면서 세속화 되어 있는 그들의 신앙을 다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는데 오히려 고난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오는 고난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연단 곧 신앙훈련을 하기 위해 주시는 과정입니다. 그 고난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이 완성되는 만큼만 계속됩니다. 더 큰 은혜를 받기위한 준비과정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하러 가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신앙개혁을 한 후에 전도하러 가야 그 증거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도하러 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신앙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나갈 때 예수 믿는다는 것을 숨기지 말고 처음부터 당당히 드러내는 것이 사탄에게 휘둘리지 않는 비결입니다. 직장생활 하면서 예수 믿는 것을 숨기고 불신자와 같이 생활하다가 어려움이 닥칠 때에야 예수 믿는다는 것을 밝히게 되면 불신자들에게 오히려 비난을 받습니다. 우리 성도는 처음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깃발을 분명히 해야 사탄의 공격에 속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애굽은 세상이고 물질을 신으로 섬기는 곳입니다. 성도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희생제사를 드리는 예배생활을 잘 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세상에서 일한 결과와 열매가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맺히게 하십니다. 주일날 공부하고 일하면 더 많은 성과가 날 것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법칙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주일 중에 주일 하루를 하나님께 바치면 오히려 시간을 더 절약하여 바로 쓰기 때문에 기쁨을 누리고 하루를 쉬기 때문에 더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주일날 가게 문을 닫고 주일 예배에 집중했더니 수입은 하루분 만큼 감소하는 것 같아도 병원비 등 필요없는 지출이 덜 나가거나 평일 영업이 더 잘 되어서 순수익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는 실제적인 간증을 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실 동안에는 우리 마음이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단과 훈련을 왜 주시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더 감사하게 하시고 믿음을 성장시키려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킴으로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할 줄도 알고 받은 것을 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들려고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벧전 1:6-7절에서 여러 가지 시험 때문에 우리가 근심하게 되었지만 그 시험은 모두 우리의 믿음이 순전한 것으로 입증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시험과정을 도가니에서 금을 정련하는 과정에 비교합니다. 욥은 23:10절에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고백한대로 그 극심한 시험을 통과하여 더 큰 믿음의 사람이 되고 육신적으로도 두배나 축복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과 삶에 찾아올 때에는 시험과 시련도 같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험과 시련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며 그리스도를 닮는 경기장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주일 예배때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월요일부터 주중에는 하나님은 전혀 전능하시지 않다고 암시하는 경험들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시험은 역경과 환경의 어려움 같은 외적 시련뿐 아니라 우리를 따라 다니는 죄와 유혹, 영적 삶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전쟁과 같은 개인적 실재에서도 적용됩니다. 출애굽할 때 어린양의 피 아래 몸을 숨긴 이스라엘 백성은 순례의 여정에서 광야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은 그들의 순종을 시험하고 충성심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입증하기 위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프로그램 안에 있었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모세가 바로왕 앞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사흘길을 갈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했지만 거절 당했습니다.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심한 강제노역을 명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더 심한 고통을 당하자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고 원망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바로왕에게 전하면서 그대로 전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덧붙여 자기들을 보내지 않으면 하나님깨서 전염병과 칼로 자기 백성을 치실까 두렵다고 말함으로써 바로왕을 은근히 협박한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구원계획을 계획대로 진행하셨습니다.

우리는 모세와 아론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에도 고난이 따라올 때 그 고난이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고 훈련시켜 그 믿음이 순금같이 나오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세상에서 생활하면서도 예수 믿는 깃발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바로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지내려 할때에 더 심한 강제노역을 시켰듯이 믿는 성도를 넘어지게 하거나 사람들이 예수 믿지 못하도록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모두 신앙생활하면서 고난이 있다해도 끝까지 말씀대로 순종하며 성령충만하여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축복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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