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믿음으로 시험을 이긴 요셉
2025-05-26 12:06:36
홍기칠
조회수   13
설교본문 창39:7-23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05-11

주일오후설교 250511 믿음으로 시험을 이긴 요셉

본문: 39:7-23

제목: 믿음으로 시험을 이긴 요셉

 

I. 서론

요셉은 종으로 애굽에 팔렸으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그가 속한 친위대장 보디발의 소유가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요셉에게 큰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요셉은 이때 나이가 20대 청년으로 용모가 준수하니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의 유혹은 오늘날 우리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번만 눈감아 주면 많을 돈을 벌 수 있다고 이곳 저곳에서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실제로 직장 상사 중에 속물 인간들은 한번만 잠자리를 허락하면 승진을 시켜 주겠다고 유혹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직장 상사와 그 여직원 사이에 성추행 사건이 빈번히 일어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일들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늘 접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요셉에게 닥친 이런 큰 유혹과 시험을 그가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II. 본론

1. 요셉이 당한 시험

이해할 수 있고 예상이 가능한 고난은 견딜 만합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은 견뎌내기가 어렵습니다. 모함이나 오해를 받아 고난을 겪게 될 때 우리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요셉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고난을 당했습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의 노예로 팔려왔고, 오늘 본문에서도 보디발의 아내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다가 누명을 덮어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반드시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요셉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왔을 때 좌절하지 않고 그곳에서 충성스럽게 일하였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보디발의 모든 소유가 복을 받았습니다. 만약 그 뒤에 아무런 일이 없었다면 요셉은 그냥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총무로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보디발의 아내를 통하여 요셉을 훈련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요셉은 이제 20대 청년으로서 본문 6절에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라고 했습니다. 즉 요셉은 아주 건강하고 매력적이며 지성과 인성을 겸비한 준수한 청년으로 보디발의 가정총무의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매력적인 요셉을 보고 보디발의 아내는 눈짓을 하면서 동침을 청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선정적인 광고가 차고 넘칩니다. 그 묘한 눈짓은 지금 빨리 나에게 오지 않고 뭐하고 있나?”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광고를 보면 남자들은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이 시대의 가장 위험한 영적 바이러스는 성적 타락입니다. 혼외정사는 물론이고 우리를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성적 범죄는 포르노를 비롯한 음란 동영상이 가정 안방까지 침투하여 동성애를 비롯한 온갖 성폭력과 성추행이 횡횡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성적 유혹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그 여인이 먼저 요셉에게 접근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죄를 지을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죄가 먼저 우리를 집어삼키려고 우는 사자처럼 우리에게 달려드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 이 여인의 말을 잘 들으면 큰 혜택이 따라 오고 그의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유혹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여인의 요구를 거절하면 앞으로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힐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유혹이 있을 때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요셉은 그녀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심지어 그녀가 요셉에게 날마다 동침하기를 청하기 시작하자 아예 그녀와 함께 있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음행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이 음란한 세대 속에서 음행의 죄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피하는 것입니다. 고전 6:18절에 사도바울은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 신자들에게 엄격하게 명령합니다. 다른 죄도 마찬가지이지만 성범죄를 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을 그것을 피하는 것입니다. 성범죄를 범할 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의지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한 죄를 의도적으로 부추키는 사람들과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죄에 대해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 없다면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요셉이 이 음행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를 본문에서 세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주인을 배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 유혹 자체가 옳지않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유가 가장 중요합니다. 만일 그 유혹을 받아들인다면 보디발과 그의 아내에게 죄를 짓는 것을 넘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라는 믿음이 확실했기 때문에 불같은 시험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본문 8-9절에서 주인이 모든 소유를 다 나에게 맡겼는데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내가 어찌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있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요셉은 보디발이 자기에게 집안 모든 일을 맡긴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점은 오늘날 성범죄를 이해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간통죄는 더 이상 죄로 취급하지도 않습니다. 각자가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서로 합의하면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도들은 어떻게 음행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 앞에 내가 서 있다는 코람데오의 신앙, 그리고 말씀에 대한 순종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만이 이 음행을 피할 수 있습니다. 119:9절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유혹은 단 한번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매 순간 지속적으로 찾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매 순간 유혹을 거부하는 우리의 의지적 결단과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것입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세상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세상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험이 닥쳐왔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시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넘어설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요셉은 어떤 일을 만나든지 당당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지혜롭게 해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보디발 집의 가정총무가 되었고 이제는 종이 아니라 주인의 동역자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뜻밖에 이런 시험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2. 누명을 쓰고 감옥으로 감

이렇게 요셉이 분명히 거절하였음에도 보디발의 아내는 집요하게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자기 집안 사람들을 모두 나가게 하고집안에는 단지 자기와 요셉만 남게 하였습니다. 이제 아무도 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셉은 분명히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녀의 요청을 거절했는데 그 아내는 요셉이 주인에게 들키면 큰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요청을 거절했다고 자기 멋대로 생각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쉽게 짓는 이유 중 하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음행의 죄는 더욱 그렇습니다. 요셉이 코람데오의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면 건장한 청년인 요셉은 틀림없이 그 유혹에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여자의 요구를 단호히 뿌리치고 집을 뛰쳐 나왔는데 그 여자가 겉옷을 붙들고 늘어지는 바람에 겉옷을 벗어둔 채 도망쳐 나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더 이상 가질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는 그 요셉에 대한 욕망이 증오로 바뀌었습니다. 그녀는 모든 거짓을 동원하여 요셉에게 누명을 덮어씌웠습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요셉을 히브리 사람이라 부르며 주인이 데려온 그 종이 나와 동침하자고 했는데 내가 비명을 질렀더니 옷을 벗어두고 도망쳤다고 얼토당토 않는 누명을 뒤집어씌웠습니다. 아마도 그 집 하인들은 요셉이 오자 하나님께서 그 집에 복을 내리시고 주인의 총애를 받으니 은근히 그에 대해 시기 질투가 생겼을 터인데 자기들과 다른 히브리 이방인이라 더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그런 민족적 감정을 촉발시켜 자기의 거짓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요셉의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로 자기 남편에게 요셉이 다가오자 자기가 비명을 지른 것을 하인들이 들었고, 그 증거로 요셉의 옷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무리 요셉이 가정총무로 신분이 높아져도 오셉은 어디까지나 보디발의 종이었고 그 여자는 보디발의 아내였기 때문에 요셉은 아무런 변명을 할 수 없었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여인이 자신을 유혹할 때도 여인에게 함부로 하지 대하지 않았고,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주인에게 당신의 아내가 그랬습니다라고 변명하면서 그 여인을 곤경에 빠뜨리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자신의 억울함과 어려움을 호소하기 바쁩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신뢰하던 주위 사람들의 모함과 비난을 묵묵히 견뎌냈습니다. 하나님만은 그 진실을 아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 시련과 위로

결국 요셉이 받은 댓가는 오해가 풀린 것이 아니라 감옥이었습니다. 꿈의 댓가, 정직의 댓가, 하나님을 신뢰한 댓가가 감옥이었습니다. 우리가 펄펄 뛰고 괴로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계산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있을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모든 일이 잘되던가요? 언제나 형통하던가요? 그렇지 않는 것처럼 보이거나 내 공식에 맞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사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비밀, 계획, 섭리가 그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기다려야 합니다.

 

고전 13의 사랑의 정의 중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11:1절에 믿음의 정의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이고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기도 알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반드시 역사하실 것야, 분명히 하나님의 숨겨진 계획이 있을 거야라고 믿고 기다립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인내와 연단을 가져오고 결국 소망을 안겨 줍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좌절하게 되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면 즉각적으로 마음에 분노와 복수심이 생깁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이해할 수 없고, 그 비밀을 깨닫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를 만지시고 나를 변화시키신다고 믿어야합니다. 결국 기다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아기가 엄마 뱃속에 열 달을 채워야 세상으로 나올 수 있듯이 믿음은 인내와 연단과 소망을 낳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이룰 때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믿음의 수준에 이르기를 원하시지만 자격미달일 때 우리를 연단시켜 믿음을 성장시킵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애굽에 가서 요셉은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보디발의 모든 소유가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거룩과 경건함을 지키키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코람데오의 믿음은 그의 경건성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요셉은 죄를 짓지않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감옥으로 인도하고 말았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의 신실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아내의 말이 전부 진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물증을 가지고 이야기하니 그것을 전면 부인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를 죽이지 않고 감옥을 보낸 것입니다. 당시 법으로는 종이 주인의 아내를 음행했다면 사형인데 죽이지 않고 감옥에 보낸 것은 보디발이 여전히 요셉을 신뢰한 증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해도 어떤 경우에는 복을 주시지만 떠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을 주시기도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가장 잘 인식한 사람이 욥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내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가져가셨을 때 욥1:21절에서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오히려 찬송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만 의지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원망하는 것은 참 신앙인의 모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요셉의 두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나 보디발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복수심이나 한을 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요셉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는 현실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결국 성도들의 삶이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가 그렇지 않는가의 문제입니다. 환경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 환경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환경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환경이 우리의 행복을 좌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감옥에서도 간수장에게 신임을 얻어 감옥 안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하는 관리자가 된 것입니다. 간수장은 죄수들을 많이 다루어 보았기 때문에 며칠 지켜보면 사람의 됨됨이를 대강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제반 사무를 다 맡겼습니다. 물론 이것도 금방된 것이 아닙니다.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에 된 것입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아주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해보았기 때문에 나중에 애굽총리가 되어 전 애굽을 다스리는 일을 잘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이방나라인 애굽에서 히브리 종이었던 그를 그 나라의 국무총리에 오르도록 하는 놀라운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애굽으로 가자마자 총리가 되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공직에 나갈 나이가 30세였으므로 그 때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 역할에 맡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 요셉을 믿음으로 훈련시킨 것입니다.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항상 코람데오의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이 별로 인정하지 않는 그런 직장에 들어갔다 해도 그 직장에서 성실하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다면 사막과 같은 직장도 장미가 피는 장소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십니다. 고난이 깊어질 때 더욱 자기를 점검하며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고난의 과정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큰 은혜의 기회가 됩니다. 5:10-11절에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욥은 주께서 결말을 주실 때 까지 참았다고 했습니다. 105: 18-20절에 보면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 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역경의 때에 잘 준비되었기 때문에 사명을 주실 때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역경의 때에 끝까지 순종하는 자에게 환경을 초월한 하나님의 동행을 체험하게 되고, 계속적인 형통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온갖 유혹으로 성도를 넘어뜨리려는 집요한 사탄의 공격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어떤 변명이나 조치를 할 수 없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릴 때도 있습니다. 그 유혹을 피하고 물리치려고 하면 큰 댓가를 치러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에게 유일하게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각자 주어진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며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의 믿음을 지키며 말씀대로 순종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켜 순금같은 믿음을 소유하게 하시고,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며, 하나님이 예비한 때가 될 때 우리를 높이시고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최악의 상황에 있을 지라도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습니다. 역경을 통해 우리를 연단시키시고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을 주시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 영광스런 자리를 예비해 놓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 모두 코람데오의 믿음으로 우리 앞에 닥친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주일오후설교 250511 믿음으로 시험을 이긴 요셉

본문: 39:7-23

제목: 믿음으로 시험을 이긴 요셉

 

I. 서론

요셉은 종으로 애굽에 팔렸으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그가 속한 친위대장 보디발의 소유가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요셉에게 큰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요셉은 이때 나이가 20대 청년으로 용모가 준수하니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의 유혹은 오늘날 우리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번만 눈감아 주면 많을 돈을 벌 수 있다고 이곳 저곳에서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실제로 직장 상사 중에 속물 인간들은 한번만 잠자리를 허락하면 승진을 시켜 주겠다고 유혹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직장 상사와 그 여직원 사이에 성추행 사건이 빈번히 일어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일들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늘 접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요셉에게 닥친 이런 큰 유혹과 시험을 그가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II. 본론

1. 요셉이 당한 시험

이해할 수 있고 예상이 가능한 고난은 견딜 만합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은 견뎌내기가 어렵습니다. 모함이나 오해를 받아 고난을 겪게 될 때 우리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요셉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고난을 당했습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의 노예로 팔려왔고, 오늘 본문에서도 보디발의 아내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다가 누명을 덮어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반드시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요셉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왔을 때 좌절하지 않고 그곳에서 충성스럽게 일하였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보디발의 모든 소유가 복을 받았습니다. 만약 그 뒤에 아무런 일이 없었다면 요셉은 그냥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총무로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보디발의 아내를 통하여 요셉을 훈련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요셉은 이제 20대 청년으로서 본문 6절에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라고 했습니다. 즉 요셉은 아주 건강하고 매력적이며 지성과 인성을 겸비한 준수한 청년으로 보디발의 가정총무의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매력적인 요셉을 보고 보디발의 아내는 눈짓을 하면서 동침을 청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선정적인 광고가 차고 넘칩니다. 그 묘한 눈짓은 지금 빨리 나에게 오지 않고 뭐하고 있나?”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광고를 보면 남자들은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이 시대의 가장 위험한 영적 바이러스는 성적 타락입니다. 혼외정사는 물론이고 우리를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성적 범죄는 포르노를 비롯한 음란 동영상이 가정 안방까지 침투하여 동성애를 비롯한 온갖 성폭력과 성추행이 횡횡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성적 유혹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그 여인이 먼저 요셉에게 접근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죄를 지을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죄가 먼저 우리를 집어삼키려고 우는 사자처럼 우리에게 달려드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 이 여인의 말을 잘 들으면 큰 혜택이 따라 오고 그의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유혹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여인의 요구를 거절하면 앞으로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힐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유혹이 있을 때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요셉은 그녀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심지어 그녀가 요셉에게 날마다 동침하기를 청하기 시작하자 아예 그녀와 함께 있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음행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이 음란한 세대 속에서 음행의 죄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피하는 것입니다. 고전 6:18절에 사도바울은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 신자들에게 엄격하게 명령합니다. 다른 죄도 마찬가지이지만 성범죄를 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을 그것을 피하는 것입니다. 성범죄를 범할 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의지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한 죄를 의도적으로 부추키는 사람들과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죄에 대해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 없다면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요셉이 이 음행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를 본문에서 세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주인을 배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 유혹 자체가 옳지않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유가 가장 중요합니다. 만일 그 유혹을 받아들인다면 보디발과 그의 아내에게 죄를 짓는 것을 넘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라는 믿음이 확실했기 때문에 불같은 시험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본문 8-9절에서 주인이 모든 소유를 다 나에게 맡겼는데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내가 어찌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있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요셉은 보디발이 자기에게 집안 모든 일을 맡긴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점은 오늘날 성범죄를 이해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간통죄는 더 이상 죄로 취급하지도 않습니다. 각자가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서로 합의하면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도들은 어떻게 음행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 앞에 내가 서 있다는 코람데오의 신앙, 그리고 말씀에 대한 순종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만이 이 음행을 피할 수 있습니다. 119:9절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유혹은 단 한번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매 순간 지속적으로 찾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매 순간 유혹을 거부하는 우리의 의지적 결단과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것입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세상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세상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험이 닥쳐왔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시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넘어설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요셉은 어떤 일을 만나든지 당당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지혜롭게 해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보디발 집의 가정총무가 되었고 이제는 종이 아니라 주인의 동역자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뜻밖에 이런 시험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2. 누명을 쓰고 감옥으로 감

이렇게 요셉이 분명히 거절하였음에도 보디발의 아내는 집요하게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자기 집안 사람들을 모두 나가게 하고집안에는 단지 자기와 요셉만 남게 하였습니다. 이제 아무도 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셉은 분명히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녀의 요청을 거절했는데 그 아내는 요셉이 주인에게 들키면 큰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요청을 거절했다고 자기 멋대로 생각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쉽게 짓는 이유 중 하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음행의 죄는 더욱 그렇습니다. 요셉이 코람데오의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면 건장한 청년인 요셉은 틀림없이 그 유혹에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여자의 요구를 단호히 뿌리치고 집을 뛰쳐 나왔는데 그 여자가 겉옷을 붙들고 늘어지는 바람에 겉옷을 벗어둔 채 도망쳐 나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더 이상 가질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는 그 요셉에 대한 욕망이 증오로 바뀌었습니다. 그녀는 모든 거짓을 동원하여 요셉에게 누명을 덮어씌웠습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요셉을 히브리 사람이라 부르며 주인이 데려온 그 종이 나와 동침하자고 했는데 내가 비명을 질렀더니 옷을 벗어두고 도망쳤다고 얼토당토 않는 누명을 뒤집어씌웠습니다. 아마도 그 집 하인들은 요셉이 오자 하나님께서 그 집에 복을 내리시고 주인의 총애를 받으니 은근히 그에 대해 시기 질투가 생겼을 터인데 자기들과 다른 히브리 이방인이라 더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그런 민족적 감정을 촉발시켜 자기의 거짓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요셉의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로 자기 남편에게 요셉이 다가오자 자기가 비명을 지른 것을 하인들이 들었고, 그 증거로 요셉의 옷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무리 요셉이 가정총무로 신분이 높아져도 오셉은 어디까지나 보디발의 종이었고 그 여자는 보디발의 아내였기 때문에 요셉은 아무런 변명을 할 수 없었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여인이 자신을 유혹할 때도 여인에게 함부로 하지 대하지 않았고,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주인에게 당신의 아내가 그랬습니다라고 변명하면서 그 여인을 곤경에 빠뜨리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자신의 억울함과 어려움을 호소하기 바쁩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신뢰하던 주위 사람들의 모함과 비난을 묵묵히 견뎌냈습니다. 하나님만은 그 진실을 아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 시련과 위로

결국 요셉이 받은 댓가는 오해가 풀린 것이 아니라 감옥이었습니다. 꿈의 댓가, 정직의 댓가, 하나님을 신뢰한 댓가가 감옥이었습니다. 우리가 펄펄 뛰고 괴로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계산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있을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모든 일이 잘되던가요? 언제나 형통하던가요? 그렇지 않는 것처럼 보이거나 내 공식에 맞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사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비밀, 계획, 섭리가 그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기다려야 합니다.

 

고전 13의 사랑의 정의 중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11:1절에 믿음의 정의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이고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기도 알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반드시 역사하실 것야, 분명히 하나님의 숨겨진 계획이 있을 거야라고 믿고 기다립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인내와 연단을 가져오고 결국 소망을 안겨 줍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좌절하게 되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면 즉각적으로 마음에 분노와 복수심이 생깁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이해할 수 없고, 그 비밀을 깨닫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를 만지시고 나를 변화시키신다고 믿어야합니다. 결국 기다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아기가 엄마 뱃속에 열 달을 채워야 세상으로 나올 수 있듯이 믿음은 인내와 연단과 소망을 낳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이룰 때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믿음의 수준에 이르기를 원하시지만 자격미달일 때 우리를 연단시켜 믿음을 성장시킵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애굽에 가서 요셉은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보디발의 모든 소유가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거룩과 경건함을 지키키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코람데오의 믿음은 그의 경건성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요셉은 죄를 짓지않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감옥으로 인도하고 말았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의 신실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아내의 말이 전부 진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물증을 가지고 이야기하니 그것을 전면 부인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를 죽이지 않고 감옥을 보낸 것입니다. 당시 법으로는 종이 주인의 아내를 음행했다면 사형인데 죽이지 않고 감옥에 보낸 것은 보디발이 여전히 요셉을 신뢰한 증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해도 어떤 경우에는 복을 주시지만 떠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을 주시기도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가장 잘 인식한 사람이 욥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내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가져가셨을 때 욥1:21절에서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오히려 찬송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만 의지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원망하는 것은 참 신앙인의 모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요셉의 두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나 보디발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복수심이나 한을 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요셉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는 현실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결국 성도들의 삶이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가 그렇지 않는가의 문제입니다. 환경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 환경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환경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환경이 우리의 행복을 좌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감옥에서도 간수장에게 신임을 얻어 감옥 안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하는 관리자가 된 것입니다. 간수장은 죄수들을 많이 다루어 보았기 때문에 며칠 지켜보면 사람의 됨됨이를 대강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제반 사무를 다 맡겼습니다. 물론 이것도 금방된 것이 아닙니다.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에 된 것입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아주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해보았기 때문에 나중에 애굽총리가 되어 전 애굽을 다스리는 일을 잘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이방나라인 애굽에서 히브리 종이었던 그를 그 나라의 국무총리에 오르도록 하는 놀라운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애굽으로 가자마자 총리가 되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공직에 나갈 나이가 30세였으므로 그 때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 역할에 맡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 요셉을 믿음으로 훈련시킨 것입니다.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항상 코람데오의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이 별로 인정하지 않는 그런 직장에 들어갔다 해도 그 직장에서 성실하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다면 사막과 같은 직장도 장미가 피는 장소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십니다. 고난이 깊어질 때 더욱 자기를 점검하며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고난의 과정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큰 은혜의 기회가 됩니다. 5:10-11절에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욥은 주께서 결말을 주실 때 까지 참았다고 했습니다. 105: 18-20절에 보면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 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역경의 때에 잘 준비되었기 때문에 사명을 주실 때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역경의 때에 끝까지 순종하는 자에게 환경을 초월한 하나님의 동행을 체험하게 되고, 계속적인 형통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온갖 유혹으로 성도를 넘어뜨리려는 집요한 사탄의 공격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어떤 변명이나 조치를 할 수 없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릴 때도 있습니다. 그 유혹을 피하고 물리치려고 하면 큰 댓가를 치러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에게 유일하게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각자 주어진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며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의 믿음을 지키며 말씀대로 순종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켜 순금같은 믿음을 소유하게 하시고,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며, 하나님이 예비한 때가 될 때 우리를 높이시고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최악의 상황에 있을 지라도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습니다. 역경을 통해 우리를 연단시키시고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을 주시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 영광스런 자리를 예비해 놓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 모두 코람데오의 믿음으로 우리 앞에 닥친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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