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다말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획
2025-05-06 20:47:50
홍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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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창38:1-30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04-27

주일오후설교 250427 다말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획

본문: 38: 1-30

제목: 다말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획

 

I. 서론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의 내용은 요셉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37장은 요셉이 형들로 인해 애굽으로 팔려가는 이야기이고 39장은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이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 집의 노예로 가서 겪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38장은 그런 맥락과 상관없이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짐으로 쌍둥이를 낳게 되는 이야기가 끼어 있습니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것이 결국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라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창세기 37장 이후는 언뜻 보기에 요셉이 중심인 것 같지만 창37:2절에 나타나 있듯이 야곱의 가족 이야기입니다. 38장은 요셉이 애굽에 있을 동안 야곱의 아들들이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저자인 모세는 요셉사건과 유다와 다말 간에 낳은 베레스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구원계획을 성취할 목적으로 그 구원계보를 38장을 중간에 기록한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유다는 성적으로 타락하여 정욕에 빠지고 말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며느리였던 이방 여인 다말을 통하여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끝까지 지키시며 그 구원계획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II. 본론

1. 유다의 타락

37장에서 요셉을 죽이지 않고 애굽으로 팔도록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유다입니다. 장자인 루우벤은 형제들에게서 지도력을 잃게 되었고,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사람들을 공격하여 야곱의 눈밖에 났고, 이제 유다가 장자의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유다는 요셉을 팔고나서 더욱 악한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았다면 유다는 약속의 축복에서 완전히 제외되었을 것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 이스라엘을 떠났습니다. 자기 형제들을 떠났습니다. 이 떠났다는 말은 문자적 의미는 이방인의 땅으로 내려갔다는 것이지만 내용적으로는 타락했다는 말입니다. 유다는 요셉을 판 행동에 앞장 선 것에 대해 후회하며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형제들은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거짓말로 속이고 침묵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도 기쁨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 있으면 형제들 간에도 불편하고 아버지 야곱을 보기도 민망스럽고 괴로워 독립하기로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는 이방인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가서 거처를 정하고 함께 가깝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유다의 아내가 죽고 외롭게 되자 창녀를 소개할 정도로 나쁜 친구였습니다. 히라의 소개로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결혼헀습니다. 그는 순전히 육체적인 매력에 이끌려 가나안 여인을 자기 아내로 취한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 야곱이 이방인 여자와 결혼하지 않으려고 멀리 밧단 아람까지 가서 자기 어머니 레아, 라헬과 결혼한 것을 유다는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유다는 요셉을 미디안 장사꾼들에게 돈을 받고 팔 것을 제안하여 성사시킬 만큼 돈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여자와 재물에 대하여 아주 세속적이었습니다.

 

유다는 수아의 딸을 아내로 맞아 아들 셋을 얻었습니다. 그들이 엘, 오난, 셀라였습니다. 그는 보다 잘 살기 위해서 가나안 땅으로 가서 유력한 친구 히라를 사귀고 아내도 얻고 아들도 세 명이나 얻었으니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가 살았던 곳이 거십이었는데 그 뜻이 거짓이란 뜻입니다. 유다는 직접 다말이라는 이방인 처녀를 선택하여 큰 아들 엘과 결혼시켰습니다. 세속화 된 유다는 이처럼 믿음 없이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 번영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유다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했기 때문에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지 못했습니다. 본문 7절에 그 아들 엘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셨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 앞에서 경배할 때 큰 죄악을 범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 기회도 주지 않고 즉시 자신의 진노를 엘에게 쏟아 부은 것을 보면 그 죄악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아들 오난의 범죄는 보다 구체적입니다. 그 당시 법에 따르면 형이 아들이 없이 죽었을 때 형수를 아내로 삼아서 형의 대를 잇게 하고 형수가 그 집안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둘째 아들 오난은 형의 죽음을 목격하고 생각이 달랐습니다. 형수 다말이 아들을 낳게되면 자기 아들이 아니라 형 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형의 후손이 끊어지면 자신이 장자가 되어 아버지의 유산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지만, 형수를 아내로 취하여 아들을 낳게되면 자기 몫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 9절에 오난은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기 때문에 다말과 동침하였으나 그 형에게 씨를 주지 않으려고 바깥에 사정을 해버렸습니다. 오난은 하나님께서 주신 씨를 거부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도 죽이셨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이렇게 해서 유다는 두 아들을 잃었고, 아무 죄없는 다말은 미망인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야곱의 가정에 큰 위기가 찾아 왔습니다. 유다는 겁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셀라마저 죽게 되면 자신의 대가 끊긴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유다는 두 아들이 죽은 것이 그들의 죄 때문인데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며느리 다말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막내 셀라가 클 때 까지 다말에게 기다리라고 하면서 친정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유다는 기업을 잇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이방여인 다말보다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한 자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고 신앙공동를 떠나 세상과 더불어 살면 반드시 화가 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적인 방법으로 뚫고 나가야 하는데 그는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못한채 뒤죽박죽 살고 말았습니다.

 

2. 다말의 믿음

다말은 가나안 여인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남편 엘이 죽고 둘째 남편 오난도 죽었고 자신은 친정으로 쫓겨 난 것입니다.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가 장성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다말은 아직 나이도 젊기 때문에 자기 동족과 얼마든지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다말은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 민족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녀의 계획이 성공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불에 타 죽고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다말이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걸까요? 그녀는 엘과 결혼하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섬기던 신과 자연스럽게 비교를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남편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죽음은 단지 사고로 인한 죽음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그 죽음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녀는 하나님은 살아계실 뿐 아니라 악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두려운 분임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 둘째 남편 오난의 죽음을 통해서는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오난이 죽게 된 이유는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씨를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다말은 더욱 더 하나님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자신을 통해서 태어나게 될 씨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 씨를 거부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죽이시기까지 하시는가?” 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는 거꾸로 말하자면 이 씨를 가지는 자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말이 되는데 이 씨가 도대체 누구인가? 결국 그 씨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약속하신 씨라는 것, 그리고 이 씨를 통하여 이스라엘 뿐 아니라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았을 뿐 아니라 이 씨를 어떤 일이 있어도 붙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말이 목숨 걸고 약속의 씨를 붙든 이유입니다. 그런데 딤나로 올라온 시아버지가 셋째 아들 셀라가 장성했는데도 자기에게 그를 주지 않자, 다말은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를 맺고 그 언약의 씨를 받기를 결심하고 모험을 감수한 것입니다.

 

 

3. 다말의 의가 드러남

얼마있지 않아서 유다의 아내가 죽었습니다. 이제 유다는 더 이상 자녀를 생산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성적 즐거움도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유다는 창녀를 보았을 때 서슴없이 그녀와 동침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신앙공동체를 떠난 사람은 도덕성을 잃어버리고 부도덕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말이 선택한 일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성경에도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 행위 자체는 매우 악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윤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역입니다.

 

실제로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를 사랑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시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것 때문에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정말로 복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약속의 씨를 자기의 것으로 받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다말은 시아버지가 셀라가 장성했는데도 자기에게 주지 않자 시아버지의 씨를 가져와서라도 며느리의 역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방여인 다말을 통해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게 됩니다.

 

한편 유다는 자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창녀가 시키는 대로 당장 돈이 없기 때문에 돈 대신 도장과 끈 그리고 지팡이를 요구하는 그녀에게 약조물로 주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신용카드를 맡긴 것과 같습니다. 유다는 그후 그 마을에는 창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부끄러움이 드러날까봐 자신이 한 일을 조용히 덮어두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다말이 잉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유다는 화가 나서 다말을 불태워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런 유다에게 다말은 유다가 맡긴 지팡이와 도장을 던지면서 이 사람 때문에 임신하게 되었다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그것을 본 유다는 자신의 바로 그 당사자임을 알고는 본문 26절에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자신을 통해서라도 씨를 얻어 자기 가문의 대를 이어주려한 다말의 생각과 행동이 자기보다 의롭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유다는 자기가 잘못한 것을 인정하면서 며느리가 옳다고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며느리를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유다는 회개하고 제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다말은 죽은 형제에 대한 의무인 시형제 결혼제도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하여 부끄러운 방법이지만 가문의 대를 이어줌으로써 며느리의 역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이 점에서 다말은 의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유다가 셀라를 계속 주지 않았다면 다말은 영영히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말은 유다에게서 세라와 베레스 쌍둥이를 얻게 됩니다. 룻기 4:18-22절을 보면 이 베레스의 족보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베레스 계보에 보아스가 나오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나오미의 며느리였던 이방여인 룻은 보아스와 재혼하여 오벳을 낳은 것입니다. 사사시대 베들레헴 사람들은 이방인 여자 룻을 아내로 맞이하여 나오미의 계보를 이어 주려한 보아스를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얻은 유다에게 비교하여 축복했습니다. 유다가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낳고 베레스 계보에 있는 대로, 보아스가 룻에게서 오벳과 이새와 다윗으로 이어지는 후손을 얻음으로, 이들에게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습니다. 이로 보건대 유다는 다말을 통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영원한 언약의 성취를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입니다. 야곱의 12지파 중에서 유다지파가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불신앙하고 부도덕한 사람 유다의 지파를 메시아를 탄생시키는 지파로 만드셨습니다.

 

유다는 다말의 신앙을 통해 자신을 깊이 성찰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말을 통하여 약속의 씨를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인 다말 앞에서 한 없이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유다는 다말로 인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했을 것입니다. 요셉을 장사꾼들에게 판 것과 이방인 여자와 결혼 한 것, 자기 아들도 이방여자와 결혼하게 한 세속화의 죄를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맏아들 엘의 대를 이어주지 않을려고 한 죄도 회개했을 것입니다. 악인에게 따라오는 재앙을 인하여 그는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연약함과 부족함과 불신앙 때문에 실수를 많이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큽니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죄 때문에 심히 절망하고 좌절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리석고 실수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약속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십니다.

 

43장에 보면 이러한 경험 때문에 유다는 나중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야곱의 마지막 아들 베냐민을 지키겠다고 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요셉이 아니라 유다의 가문에서 약속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은 이삭이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얻은 것과 마찬가지로 유다가 다말을 통해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얻게 되고 베레스를 통해 예수님 족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신앙공동체인 교회를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우리의 생명의 끈입니다. 교회에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시험은 지나가고 위기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놓치지 마십시오. 신앙공동체인 교회와 가족공동체인 가정을 떠나지 말고 꼭 붙들고 있으면 인생의 고난과 역경은 지나갈 것이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깊이 느끼고 누리게 될 것입니다.

 

둘째,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르시고 사명을 주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합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하나님이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들어 쓰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다말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말씀을 통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에서 네명의 여인을 보게 됩니다. 그중에 첫 번째 여인이 바로 다말입니다. 다말은 나머지 여인들의 그림자가 됩니다. 이들은 모두 이방여인들이었습니다. 라합은 정말 창녀였고, 밧세바는 자신의 남편을 죽인 다윗왕과 결혼하여 솔로몬을 낳았습니다. 룻과 다말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유다와 마찬가지로 이방인 모압 땅으로 가서 두 아들과 남편을 잃고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왔는데, 룻에게 자기 땅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다말처럼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더구나 예수님의 족보에 올랐습니다.

 

우리도 다말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전혀 참여할 수 없는 이방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셨습니다. 마말이 약속의 씨를 붙들었듯이, 약속의 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 하나님 자녀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말의 행위 자체로만 보면 정말 수치스런 일이지만 그녀가 가진 믿음은 우리에게 큰 모범이 됩니다. 다말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참된 신앙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신앙공동체 안에서 믿음을 굳게 지켜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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