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성령충만한 삶
2025-12-24 22:31:27
홍기칠
조회수   48
설교본문 엡5:1-21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12-24

수요설교 251224 성령충만한 삶

본문: 5: 1-21

제목: 성령충만한 삶

 

I. 서론

바울 사도는 엡4:17-32절에 이어 계속해서 성도들의 새로운 생활표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4:17절에서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고 했는데 5:2절에서도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성도들이 행해야 할 성령충만한 삶이 무엇이지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하나님을 본 받는자 (1-4)

본문 1,2절에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처럼 우리들도 서로 용서하는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그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본받는자가 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범을 삼아야 할 구체적인 사랑이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희생적 사랑입니다. 53:4-6절을 보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을 위해 스스로 죽으셨고, 우리의 평화를 위해 수난 당하셨고, 우리의 기쁨을 위해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위해 자신의 위치나 권세나 영광을 다 내려놓으시고 오직 우리를 위해 그 모든 것을 다 주신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사랑은 즐거운 마음으로 수난과 죽음을 당하시고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된 것처럼 성도들의 희생적 삶도 하나님께 향기로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2:1절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산 제물이란 제물이 죽은 상태가 아니라 살아서 활동하는 상태로 우리 생애 전체를 하나님께 헌신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희생제물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바울은 본문3-4절에서 하나님을 본받고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을 본받는 성도들이 생활 속에서 제거해야 할 요소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음행이란 불법적인 성행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더러운 것은 행위나 말이나 마음의 생각 등 모든 부분에서 깨끗하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탐욕은 자기만을 아는 이기적인 마음을 뜻합니다. 여기서 탐욕은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는 잘못된 행위를 말합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온갖 종류의 성적인 죄를 망라한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형태의 성적 부도덕을 이름조차 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것에 빠지는 것을 피해야 할 뿐 아니라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것까지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4절은 성적 부도덕을 넘어 무례한 언동을 다룹니다. 누추함이란 음란한 말이나 음담패설과 같은 것입니다. 어리석은 말은 술취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고 희롱의 말이란 천박한 농담을 가리킵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말을 당연히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한 경박스런 말을 피하려면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자주 하는 것입니다. 경박한 말과 감사의 말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적 부정함과 탐욕은 둘 다 자기중심적인 욕심을 표현하는 반면 감사는 그와 정반대의 것으로 필요한 교정수단이 됩니다. 사실은 성을 포함해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선물은 농담의 주제가 아니라 감사의 주제가 됩니다. 그에 대해 농담하는 것은 하나님을 격하시키는 것이 되는 반면 그 선물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창조주의 축복으로서 그 선물이 지닌 가치를 보존하는 길입니다.

 

2. 하나님의 심판의 확실성(5-7)

본문 5절에서는 음행하는 자, 더러운 자, 탐하는 자를 우상숭배자라고 했습니다. 모든 탐하는 자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재물을 우선하므로 그것이 우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6:24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기 때문에 재물을 탐하는 자는 우상숭배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없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라고 했는데 그 하나님 나라에서는 우상숭배자는 기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로운 왕국이므로 불의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고전6:9-10절을 보면 불의한 자 곧 음행하는 자, 우상 숭배자, 간음자, 탐색하는 자, 도적, 탐욕을 부리는 자, 술취한 자, 모욕하는자, 속여 빼앗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의한 자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본문 6-7절에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불의한 자에게 임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한 사람도 멸망시킬 수 없다는 만인 구원설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영지주의자들은 몸으로 지은 죄는 영혼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헛된 말로 우리를 속이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런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도가 불의한 자들과 교제해서는 안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의 불의한 행동에 동참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더 적극적으로는 불의한 자들과 계속 접촉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3. 빛의 열매를 맺는 자(8-14)

본문 8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했습니다. 어둠은 무지, 오류, 악을 나타내고 빛은 진리와 의를 나타냅니다. 예수 믿기 이전의 사람은 어둠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은 후에의 성도는 빛에 속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인간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본문 8절에서 성도는 빛 자체라고 말합니다. 성도들이 어떻게 빛이 됩니까? 세상의 참 빛은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예수님은 8:12절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큰 빛에 속한 성도들도 모두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됩니다. 그러므로 빛에 속한 성도는 9절 말씀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러한 빛의 열매를 맺을 때 본문 11절처럼 주를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2:15절에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이 흠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삶을 통해 세상 가운데 빛을 비추기를 원하십니다.

 

빛은 어둠을 노출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본문 11절에 너희는 열매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고 했습니다. 즉 성도들의 삶이 세상의 악에 비칠 때 세상의 악이 어떤 것인지 노출시키고 그 악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의 삶은 불의와 타협적일 수 없고 오로지 악을 책망하고 노출시켜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사람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13절처럼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악은 도저히 숨거나 속일 수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13절은 빛의 자녀들인 성도의 행위와 불순종의 아들인 악한 자들의 행위를 비교하면서 악한 자들의 행위들이 빛의 자녀들의 삶에 의해 그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고 죄를 노출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책망 받는 모든 것이란 말로 책망한다는 것이 아니라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행위로 악한 행위를 드러내게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의 거룩한 생활이 어둠에 비칠 때 어둠에 속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그 사람 역시 참 빛되신 예수님께 속하게 되고 그 자신이 빛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4절에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아담 안에 있던 우리의 이전 상태가 잠, 죽음, 어둠이라는 말로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그리스도는 그 모든 것에서 우리를 구해주셨습니다. 회심은 바로 잠에서 깨어나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며, 어둠에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빛의 자녀들이 더 이상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모든 면에서 영적으로 사망선고 받은 악한 자들의 행위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분리시켜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고 권면한 것입니다. 본문 14절은 구약 이사야 60:1절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는 말씀과 비교가 됩니다. 이사야는 바벨론에 포로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즉 사60:1절은 구속받은 시온의 영광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영적으로 이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원수인 사망을 패하고 성도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문 14절에서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추이시리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4. 지혜 있는 자(15-17)

본문 15-17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지혜있는 자처럼 살아야 된다고 권면합니다. 지혜있는 자는 세상과 육체를 따라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자입니다. 지혜있는 자는 세월을 아껴 자신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는 것과 때가 악하다는 것을 압니다. 1734년 미국에서 일어난 대각성운동에서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던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드는 스무살 생일이 되지 직전 그의 유명한 결의안 70번째 조항에서 결심: 한 순간의 시간이라도 절대 잃어버리지 말고, 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방법으로 이용한다라고 썼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지금 살고 있는 때가 악한 때임을 알고 그 때를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세월은 흘러갑니다. 한번 지나간 오늘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24시간씩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있는 자는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선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매일 해야 할 일들을 설정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그 일들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합니다. 그들은 지혜는 다름아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본문 17절에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셨고, 우리에게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인생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은 성경말씀 속에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뜻입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특정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이런 경우에는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잡고 기도하며 경험많은 성도나 목회자의 조언을 참고하여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에 어긋나지 않게 행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키거나 타인이나 환경을 변화시킴으로 그 뜻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5. 성령충만한 생활(18-21)

바울사도는 이미 성도는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며 성령을 근심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성도가 이루어야 할 최고의 기준은 성령충만 받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때 단 한번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치심, 즉 성령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세례 받은 성도라도 날마다 성령충만 받아야합니다. 성령충만은 성도들이 계속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본문 18절에 술 취하지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술이 그 사람을 지배하여 거칠고 방종하고 통제되지 않는 행동에 빠집니다. 반면에 성령충만한 사람은 성령이 그 사람의 생각과 느낌과 말과 행동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상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본문 19-21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과 성도들 간에 아름다운 교제를 나눕니다.

본문 19절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이라는 말은 공예배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일 때 마다 하나님과 성도간에 노래하기를 좋아합니다. 시편 중 어떤 것들은 실제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권고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95편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차라고 했는데 이것은 예배에서 교제를 나누며 서로 찬양하라고 권유하는 말입니다. 술 취한 사람은 무질서와 방탕한 태도를 나타내지만 성령충만한 사람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는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평안과 기쁨과 관용이 있어서 서로 용납하고 대화하는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습니다.

둘째, 주님께 찬양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사람들 간에 아름다운 교제를 나눌 뿐 아니라 주님께 기쁨으로 찬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구속하심을 생각하며 찬송을 올리게 됩니다.

 

셋째,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20절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했습니다. 성령충만할 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불평 대신 감사가 항상 넘치게 됩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기 때문에 감사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본문 21절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친절함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가장 명백한 특징 중 하나는 서로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서로 간의 복종을 호소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아가페 사랑을 요구합니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성령충만하면 가능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그리스도께 복종할 뿐 아니라 성도 간에도 서로 복종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그들의 상호복종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복종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네 가지 태도가 나오게 만드는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것은 명령어이며 복수형태요 수동태 현재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 성령충만 받는 것은 성도들의 의무이고, 혼자가 아니라 교회공동체 전체가 받아야 하며, 성령이 우리를 채우시도록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은 지금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단번에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지만, 성령충만은 매일, 매순간 계속해서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충만을 사모하고 구해야 하며 모든 성도들이 함께 성령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모두 성령충만 받게 되면 교회공동체는 주님의 뜻을 더 잘 분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성도 간에도 더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고 협력할 수 있게 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빛의 자녀가 된 성도들이 실천해야 할 신앙생활의 기준을 한번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되 온갖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에 해당하는 성적으로 부도덕한 말은 입 밖에도 내지말고 그 대신에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하겠습니다. 성도들은 빛의 자녀로서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한 삶을 통해 어두움 속에서 불순종의 악행을 도모하는 자들을 일깨워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와 회개하고 빛의 자녀가 되도록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때가 악하기 때문에 항상 세월을 아끼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지혜롭게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늘 성령충만 받아 서로 화해하고 피차 복종하며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빛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성령충만 받아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통해 이 어두운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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