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옛사람과 새사람
2025-12-17 22:12:39
홍기칠
조회수   53
설교본문 엡4:17-32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12-17

수요설교 251217 옛사람과 새사람

본문: 4: 17-32

제목: 옛사람과 새사람

 

I. 서론

4:1-16절에서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의 통일성과 다양성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성도가 새로운 생활표준으로 살아야 할 교리적 이유를 17-24절까지 설명하고 실제적인 적용을 25-32절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성도가 도덕적 삶을 살아야 할 이유(17-24)

바울은 여기서 이방인들 즉 불신자들의 생활모습과 성도들의 생활모습을 비교하면서 성도들이 어떠한 생활을 해야 할 것인지 설명했습니다. 먼저 이방인들의 삶의 모습은 설명했습니다. 이방인들은 그 마음에 허망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허망하다는 것은 목적이 없고 무익하고 공허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졌다고 덧붙이고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소외된 것을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무정해지고 방탕해지고 만족할 줄 모르게 더러워졌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에게서 듣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모두 예수 안에 있는 진리에 따른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이방인들의 어둠과 무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배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대조했습니다. 이것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이방인들의 삶(17-19)

그런데 이방인들의 마음의 어두움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굳어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완고하게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먼저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무지하게 되고, 따라서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결국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떠나 있게 되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영적인 삶에 생명을 주는 유일한 원천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멀리하여 떨어진 그들은 허물과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음의 완고함이 마음의 어두움을 낳고 영적인 어두움이 심령의 죽음을 초래하며 결국 무절제한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이방인들의 삶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으로 인생의 목적을 상실한 가운데 소망이 없는 방황하는 삶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의 상태가 허망한 상태이기 때문에 감각이 없는 자가 되어 모든 더러운 것을 탐욕으로 행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죄악으로 가득찬 이방인들, 즉 불신자들의 자만고 왜곡의 끔직한 모습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삶(20-24)

성도들이 이러한 이방인들처럼 살아서는 안되는 이유를 세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일이나 그리스도를 아는 것, 또는 그리스도의 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 즉 그의 인격과 성품 등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적 내용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하는 것 보다 먼저 그를 우리의 믿음의 대상과 모본으로 알고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은 그분이 가능하게 하신 새 창조와 거기서 생겨난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꼭 붙잡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기독교 가르침의 내용입니다. , 그리스도가 그들의 주님이요 구세주임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웠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어떤 제자도의 삶을 살아야 할지를 배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철저한 회심과 재창조를 포함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어둠과 죽음의 길을 떠나 빛과 생명의 길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성도들이 그리스도에게 들었기때문입니다.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 지도자들을 통해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은 그리스도가 직접 말씀하신 것과 다름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성도는 목회자가 성경말씀을 할 때 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으로 듣고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바르고 신실하게 가르쳐야 함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셋째,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기때문입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음으로 배운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역 뿐 아니라 그 전 생애와 연합된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수난과 순종을 통한 승리와 영광을 배우는 것입니다.

 

2. 새사람을 입으라(22-24)

바울 사도는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에게서 듣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새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옛사람은 범죄한 아담에 속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며 악이나 죄의 세력 아래에서 살아가는 자기중심적, 독선적, 육적인 자연인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성도들은 옛 사람을 이미 벗어버렸기 때문에 옛 사람의 행위를 계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새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속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태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의해 새롭게 재창조된 거듭난 사람을 말합니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음으로써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재창조된 사람입니다. 의로움과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이요 영적 자질들로서 마음속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입니다. 특히 의로움은 형제들에게 정당하게 대하거나 모든 생활에서 올바른 태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올바르고 성결한 것을 나타냅니다. 진리는 의와 거룩함 두 특성에 다같이 연관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새사람의 생활원리인 의와 진리의 거룩함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되어 예수님의 의를 전가 받게 됩니다. 본문의 의는 전가된 예수님의 의를 근거로 자신이 이루어 가는 의를 강조합니다. 여기서 옛사람과 새사람의 구분은 성도 개인의 도덕적 경험을 강조합니다. 옛 사람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죄와 관련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더 이상 이런 일을 계속해서는 안됩니다. 옛사람을 버리는 일은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에서부터 떨어지는 일은 어느 것이나 그만두는 것이요, 새사람을 입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되어야만 하고 될 수 있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3. 새 사람이 지켜야 할 구체적인 예(25-32)

본문 25-32절에서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성품과 새생명을 얻은 새 사람이 지켜야 할 구체적인 사항을 6가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의 새로운 생활표준에 대한 교리적 설명을 한 후에, 일상생활에서 발견되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바울은 진리를 말하고, 분노를 자제하고, 도둑질하지 말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하고, 그리고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고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첫째, 거짓을 버리고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25)

본문 25절에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고 했습니다.

이웃은 일차적으로 예수 믿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교회는 진실성이 결여되면 세상과 다를 바 없는 단체가 됩니다. 여기서 거짓이란 거짓말을 말합니다. 성도들이 서로 속이려고 하면 그들의 사랑과 교제가 단절됩니다. 교제는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 세워지고 신뢰는 진리 위에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은 교제를 단절시키고 반면 정직함은 교제를 강화하게 됩니다. 성도는 교회 성도들 뿐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항상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음받은 새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실천사항입니다.

 

둘째,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26-27).

본문 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분노는 두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의로운 분노와 불의한 분노입니다. 불의한 분노는 버려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와 예수님의 진노는 의로운 분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선하고 참된 분노는 주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우리 인간들은 죄와 타협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악에 대해서는 분개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신다면 성도들도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모든 종류의 죄에 대해 의로운 분노를 내야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의로운 분노라 할지라도 지나치게 내게 되면 죄와 혼합되기 때문에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의롭지 않는 분노는 속히 회개하고 다시는 그런 분노를 내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경계하여 우리의 분노를 감찰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이 분을 내어도 라는 말은 세가지 부정적인 말로 제한합니다. 분노로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분노가 상처받은 자존심, 원한, 악의, 증오, 복수심 등에서 나온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자존심을 상했거나 개인적인 감정을 다치게 함으로 화를 내는 것은 교회의 분열을 일으키고 성도들을 이간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해가 지도록 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속히 당사자에게 사과하거나 화해해야 합니다.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계속 화를 품은 채 잠자리에 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분을 품으면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이 됩니다. 마귀는 불의한 분노와 의로운 분노의 경계선이 미묘함과 인간 자신이 분노를 책임있게 처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틈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와 그들이 증오나 폭력을 행사하고 교제를 깨도록 자극하므로 늘 경계해야 합니다.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헌터는 나를 화나게 하는 놈이 내 생명을 쥐고 있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비극적인 예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병원이사회에서 동료들과 격한 논쟁을 벌이다 분을 이기지 못해 그 자리에서 급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구약 삼상25장에 보면 다윗이 나발의 소유를 지켜주었음에도 그를 조롱하자 나발에게 화가 나서 그를 당장 죽이려 했습니다. 다윗이 나발을 죽였다면 사울왕과 다를 바 없는 살인자가 되는 오점을 남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남편 나발의 죄를 뒤집어쓰고 지혜롭게 중재를 하자 다윗을 그를 용서하게 됩니다. 삼상25:29절에 보면 그녀가 이렇게 말하며 다윗의 분노를 가라앉힙니다. “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 결국 그 지혜로운 여인의 충고로 다윗은 분노로 범죄하지 않았고, 다윗을 조롱하는 나발은 하나님께서 그를 치시매 죽고 말았습니다.

 

셋째, 도둑질하지 말고 수고하며 구제하라(28)

본문 28절에 도둑질 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 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둑질 하려고 사람이 없는 집에 들어가 방을 뒤졌으나 가난한 집이라 아무것도 훔칠 것이 없어서 책상 위에 놓은 책을 펴보니 그것이 성경책인데 펴 본 곳에 바로 이 28절 성경구절이었다고 합니다. 그 말씀을 읽고 어떻게 이 책이 나의 행동을 이렇게 잘 알고 있는가 하고 그 말씀대로 도둑질을 멈추고 선한 일을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도둑질 하지 말라는 모세율법의 여덟 번째 계명입니다. 이것은 광범위하게 적용됩니다. 이는 다른 사람의 돈이나 소유물을 훔지는 것뿐 아니라 탈세와 관세 탈루 등 정부에 내야 할 돈을 내지 않는 것, 종업원을 학대하는 고용주, 일제 제대로 하지 않거나 근무시간을 지키지 않는 직장인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계명의 실천은 소극적인 금지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해서 자신의 생활을 할 뿐 아니라 구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는 자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사랑의 수고를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수고와 희생으로 주는 자가 될 때 도둑질할 필요가 없게 된다고 말합니다. 성도들은 열심히 일해서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넷째, 악한 말은 입 밖에 내지도 말고 선한 말로 은혜를 끼치라(29).

본문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의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말은 하나님이 주신 멋진 선물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음을 반영하는 인간능력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말씀하시며, 우리도 그분처럼 말하기 때문입니다. 말은 우리를 짐승과 구분해 줍니다.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람 뿐입니다. 더러운 말은 정직하지 못한 말, 불친절한 말, 속된 말 등 썩은 말을 하지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 대신 우리는 말이라는 독특한 은사를 건설적으로 덕을 세우는데 즉, 사람들을 세우고 그들을 해하거나 파괴하지 않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은 마음속에 있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씀하셨으며 심판 날 그동안의 모든 부주의한 말들에 대해 이유를 대야한다고 했습니다. 말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대신, 그들을 돕고, 격려하고, 성원하고, 위로하고, 복돋우는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12:18절에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말의 순결은 깨끗한 마음의 증거입니다. 성도들의 말은 항상 은혜가운데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해야합니다. 칼빈은 듣는 자들에게 위로, 권면, 구원에 도움을 주는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내 말이 진실한가, 덕을 세우는 말인가 생각하며 말을 해야 합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30).

본문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인간들의 행동 뒤에서 보이지 않는 인격적 존재들이 활동한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방금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제 그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촉구합니다. 이로 보아 성령이 완전히 인격적인 분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무엇 때문에 근심하게 됩니까? 그분은 거룩한 영이시므로 언제나 거룩하지 않은 것들 때문에 슬퍼하시고 근심하십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거짓말 하는 것, 분을 내는 것, 도둑질 하는 것, 악한 말을 하는 것은 모두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신학자 반스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예로 드러난 악한 죄, 모든 종류의 분노, 음탕한 생각과 욕망, 감사하지 않는 마음, 성령을 무시하는 태도, 성령에 저항하는 태도 등 여섯가지를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거룩한 성령을 성도 안에 내주하게 하심으로 성도들이 자신의 것임을 구원의 날까지 인쳐 놓으신 것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때 까지 성려의 소유로 인침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것으로 도장 찍어 주시는 인장입니다. 성도는 이미 구원받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구원의 날 즉, 예수님의 재림때에 우리 몸이 영화로운 부활체로 변화될 구속의 종말 때 까지 그 구원을 보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치심 혹은 구속은 각각 구원의 과정의 처음과 끝을 말합니다. 이 두 경계선 사이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점점 더 닮아가고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불친절하거나 악독을 품지 말고, 용서하고 사랑하라(31-32).

본문 31.32절에는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31-32절에서 성도들이 버려야 할 것과 적극적으로 행해야 할 것을 다시 한번 열거합니다. 성도들은 모든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비방하는 것, 모든 악의를 버려야 합니다. 반면에 성도들은 서로 친절하게 행동하며 불쌍히 여기며 그리고 용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함 같이 하라고 권고합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생명과 바꾸면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하나님의 기준으로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렇게 하라 말씀하신대로, 우리 하나님을 그대로 따라 해야합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에 자신을 내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적인 사랑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희생제물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진리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도덕적, 윤리적인 삶을 말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본받고, 그리스도를 배우며,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일반인들의 윤리적 삶의 태도를 넘어서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세상의 도덕이나 윤리를 넘어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성령인도를 받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성도들은 항상 성령을 의지하면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옛사람은 죄지은 아담의 죄성에 따라 불의한 삶을 사는 사람이지만, 새 사람은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질서에 따라 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이미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삶의 패턴을 따라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 까지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운 바와 같이 그에게 듣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은대로 새사람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삶, 이웃을 유익하게 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하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었으니 새사람의 생활원리를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거짓을 버리고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고,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도록 합시다. 도둑질하지 말고 수고하며 구제하고, 악한 말은 입 밖에 내지도 말고 선한 말로 은혜를 끼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고, 불친절하거나 악독을 품지 말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합시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새사람의 변화받은 삶을 실천함으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며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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