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 설교본문 | 출15:1-21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5-12-21 |
주일오후설교 251221 구원의 노래
본문: 출15:1-21
제목: 구원의 노래
I. 서론
출14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200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놀라운 기적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 가운데 난 길을 따라 좌우에 바닷물결이 벽처럼 출렁거리는데도 믿음으로 걸어가 마침내 완전히 홍해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뒤쫓아 오던 애굽 마병들은 모세가 손을 내밀자 물이 다시 흐르자 모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큰 능력을 보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출15장은 홍해를 건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찬향하는 노래입니다.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모세의 노래
출15장에는 성경에 기록된 첫 번째 노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노래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로서, 그 어떤 시보다 생각의 엄숙함과 표현의 화려함 면에서 더 탁월하고 모세의 완숙한 심정에서 우러나온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성경의 첫 노래는 마땅히 구속의 노래로 명명되어졌는데 그 이유는 구속함을 받은 백성의 마음을부터 우러나왔기 때문입니다. 구속에는 두가지 위대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이 대속과 권능입니다. 구속은 속량과는 구분됩니다. 속량이란 구속의 일부입니다. 속량은 값을 지불했다는 의미이고, 구속이란 이미 값을 지불한 자를 이끌어 낸 것을 말합니다. 유월절 밤에 이스라엘은 애굽을 친 멸망으로부터 안전했고, 홍해에서 그들은 애굽사람들의 세력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구원, 즉 구속을 노래했습니다. 구속받은 백성, 그들의 구원을 의식할 수 있는 자만이 여호와 곧 구원자를 진심으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에 있는 자들은 예배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자신들을 의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자들에 의해서도 진정한 예배는 있을 수 없습니다. 불확실성과 의심은 두려움과 불신을 낳으며 즐거움과 찬양을 낳지 못합니다. 시106:12절에 “이에 그들이 그의 말씀을 믿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도다”라고 모세의 노래를 인용했습니다.
본문 1절에 “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여 일렀으되”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에서 구원하신 사건을 백성들이 감격적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노래로 가르친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찬송할 때 자신에게 깊은 은혜를 되새기는 기회가 됩니다. 구원의 은혜를 노래로 기억하는 것은 잊어버리지 않고 자꾸 마음 속에 새겨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찬송가사를 외워서 찬송하면 더 큰 은혜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평소에도 찬송을 많이 외워서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한 노래는 무엇입니까? 그들의 노래는 온전히 여호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여호와라는 말은 18개 절에 12번 이상 나왔습니다. 그 자신들에 관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얼마나 신성한 경배의 찬양입니까? 본문 1절 후반절에 “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으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노래의 주제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는 그가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전적으로 주장하시는 곳에는 언제나 그들의 심령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내십니다.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이끌어 내셨고, 그 대적을 멸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높이기 시작한 것은 그가 애굽 군대들을 물에 던지시면서 자신을 친히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높고 영화로우시다는 말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완벽하고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살다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려 주시는 높고 영화로운 분임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영화롭다고 찬양하는 이유는 말탄 자 애굽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건지시고 보호하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찬양할 분명한 대상이 있습니다. 높으신 하나님을 높여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요즈음 불교에서 찬불가를 부르는데 불교에서는 어떤 대상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부처가 되는 것이므로 찬양할 대상이 실제로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대상으로 찬양한다는 것은 불교 교리적으로 맞지 않는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본문 2절에 “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나의 힘이요 노래’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힘과 영적 노래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만큼 우리들의 행함에 능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나의 구원이시로다’라고 했는데 지금까지만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진심으로 이렇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대적의 땅으로부터 완전히 인도함 받고 그들의 원수가 죽기 전 까지는 이런 구원의 노래를 부를 수 없었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그것을 확실하게 그들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라고 찬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고 크기 때문에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라고 세 번이나 반복해서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나의 힘‘이란 말은 하나님을 의지할 때 어떤 세력이라도 이기게 하시는 능력을 주시더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힘이라고 경험하고 나면 나의 노래라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구원이시라는 것‘은 물론 영생을 얻게 하는 구원을 주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영혼 구원 뿐 아니라 우리의 생활의 문제도 다 해결해주시는 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구원 뿐 아니라 생활의 구원까지 체험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10:10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삼 2절에서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육을 모두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가 아닙니까?
본문 3절에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그 용사되심을 4,5절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역경을 통해서 나타났기 때문에 용사라는 말을 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역경에 처했을 때 나와 함께 하셔서 문제를 해결해주시더라는 말입니다. 여호와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출애굽과 홍해를 건너는 일을 통해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심판도 철저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바로의 군사들을 한 사람도 남김 없이 심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철저함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한편 심판의 철저함을 보고 경외함으로 근신해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아니었다면 애굽군대와 같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은 여러 형태로 반복됩니다. 본문 6,7절에 “ 여호와여 주의 오른 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태내시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 손이 원수를 부수시나이다/ 주께서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같이 사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른 손이란 강한 능력을 나타낼 때 표현하는 말입니다. 손이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직접 나타 내셔셔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 오른손의 전능하심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입니다.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가 살아있음을 나타내고, 구원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냄으로 그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여호와의 인격과 그 일을 보면서 마음 속에 자연스럽게 기쁨과 찬양이 흘러넘쳤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어떤 환경에서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처럼 주안에서 날마다 지속되어야 합니다.
본문 9.10절은 전능자가 그 대적을 엎으심이 아주 쉽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원수가 말하기를 내가 뒤쫓아 따라 잡아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내 욕망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배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거센 물에 납같이 잠겼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애굽군대는 모두 내가, 내가라는 말을 앞세웁니다. 자기들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고 그들의 소유를 다 탈취하겠다는 것입니다. 잠16: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교만하면 반드시 패망합니다. 이 오만한 애굽인들은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께서 이행할 일에 대하여 호언장담하고 홍해의 갈라진 물결 사이로 이스라엘을 추격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단 한번의 입김으로 막강한 진용 속에 정돈된 적군의 세력을 뒤집어엎음으로써 그들의 추격이 거미줄 보다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1절에 ”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말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자가 누구니이까“라고 외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오늘날도 성도들이 ”누가 주와 같으오며, 신들 중에 거룩한 말씀의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이니까?“라고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과연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이 거룩함과 영광을 찬양합니까?
본문 13절에 ”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거룩한 처소란 문자적으로는 가나안 땅입니다. 아직까지 가나안땅에 들어가려면 40년의 세월이 흘러야 하는데도 하나님께서 출애굽시키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셨으니 장차 가나안에 도착할 일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하시고 그곳을 하나님이 거하는 처소로 삼으실 것임을 확신하고 찬양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해석하면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 받고 앞으로 이땅에서 수십년을 살면서 주의 말씀과 은혜로 인도하시며 때로는 고난을 통해 연단하시고 믿음을 더 정결하게 하셔서 언젠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주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성화시켜 그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그의 임재 안으로, 하나님께로 가까이 인도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의 위치입니다. 벧전 3:18절에 ”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구속하신 자들을 영원히 있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로 인도하십니다. 그 처소는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이루어진것이나 의롭지 못한 자는 아무도 없고 그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모든 자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친히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로, 가깝게, 아주 가깝게, 내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만큼이나 그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감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4-17절까지는 홍해사건을 이방인들이 놀라고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노래했습니다. 미디안 사람 이드로도 모세에게 이 소식을 들었고, 라합도 두 정탐꾼에게 그 소식을 듣고 여리고성 사람들이 간담이 녹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수백년이 지난 다음에 블레셋 사람들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을 치신 일을 기억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모략을 행하시는 일에 저항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블레셋은 대부분 거인족속이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유명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블레셋 사람들도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넌 사실을 알고 두려워했습니다. 에서의 후손인 에돔도 놀라고 모압과 암몬도 롯의 후손인데 이들도 놀라고 가나안 거민들도 낙담할 정도로 출애굽사건과 홍해사건의 소문에 떨었다는 것입니다. 아직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이미 두렵고 떨리는 것은 이미 그들을 정복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바로 살면 세상이 두려워 떨면서 예수 믿는 자가 많게 하셔서 세상을 정복할 수 있게 하십니다.
본문 17절에 ”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가나안 땅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그 백성을 그곳에 정착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땅을 영원히 통치하실 것을 찬양한 것입니다. 그래서 18절에 ”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시도다“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승리케 하신 것을 찬양함으로 노래를 끝맺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대적 사탄이 우리성도들을 하나님의 약속의 유업에서 끌어내릴 수 없습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아무도 그럴 수 없습니다. 롬8:38-39절에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으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2. 미리암의 노래
본문 20-21절에 ”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른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미리암은 모세와 아론의 누이로서 최초의 여자 선지자였고 광야생활 중에 중요한 지도자 역할을 했습니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를 말합니다.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들고 나와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는데 여성들도 가만히 있어서 되겠느냐“ 하면서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된다고 앞장서서 가르치고 찬양했습니다. 당시에는 여자가 악기를 가지고 남자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자들이 그 심령에 찬양이 저절로 솟아나 승리를 찬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는 일에는 남녀노소 그 누구든지 다같이 참여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 앞에서 항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시험했습니다. “홍해로 들어가 보자 죽나 안죽나”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시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러 가지 끔직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 땅을 다스리시고 계심을 알고 주님께 돌아오면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자지 재난을 보며 더욱 경성하여 깨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으 전능하심을 보고 모세와 미리암과 함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진심으로 찬양하며 기뻐한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를 꺾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감격을 가지고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삼으시고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을 날마다 찬양하면서 이 복된 소식을 세상사람들에게 증거하는 복음의 증인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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