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빌라도 재판과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2025-04-24 09:36:46
홍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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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요18:28-19:16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5-04-23

수요설교 250423 빌라도 재판과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본문: 18: 28-19:16

제목: 빌라도 재판과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I. 서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단호한 뜻입니다. 2:23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여야 한다는 분명한 인류구원계획 아래 하나님이 내리신 결론입니다.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인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그 저주를 다른 누군가가 대신 받아야 했습니다. 그것도 적당히 받아서는 안되고 저주받은 자를 대신하여 죽어야 했습니다. 십자가 죽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 위에서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아셨습니다. 주님은 12:32절에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고 하셨습니다. 들리기 위해서는 매달려야하는데 매달리는 죽음은 십자가의 죽음 뿐입니다. 이 십자가 사형은 로마사형제도 중 가장 잔인한 사형제도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 빌라도의 재판과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II. 본론

1.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인류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그 일을 완성하시기 까지 결코 쉬지 않으십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일을 성사시키는 과정을 섭리라고 합니다. 목적을 두시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을 미리 다 정하시고, 그 뜻을 따라서 이끌어가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빌라도의 재판과정이나 대제사장과 그 무리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갈 때 한 행동을 보면, 하나님의 섭리가 십자가를 통해 어떻게 나타났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불법으로 새벽에 예수님을 심문한 후 빌라도 총독에게 재판하도록 넘겼습니다. 당시 유대는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함부로 사형을 선고하여 사람을 죽일 수 없었고 로마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당시 로마제국의 총독으로서 유대지방의 치안을 담당하던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긴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자신들의 종교문제로 인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면 로마당국도 유대인들의 인심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 묵인해주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이 그 예가 됩니다. 스데반은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하다가 유대인들의 산혜드린 공회에 끌려갔습니다. 그는 그들의 재판을 받던 중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영광스런 모습을 보고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은 귀를 틀어막으며 그를 밖으로 끌어다가 돌로 쳐 죽였습니다. 이것은 로마 정부의 허가를 받고 사형을 집행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으로 사형을 집행한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도 그들이 돌로 쳐 죽이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평소에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와 하나님은 하나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그것이 바로 자기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신성모독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당장 끌어다가 죽이면 그만입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빌라도 총독에게 끌고 간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은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는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법에 의하여 예수님을 그 당시 가장 잔인하다는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님을 넘긴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사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로마법이 그렇게 선고한 것도 아니고 빌라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유대군중들이 빌라도를 협박하면서까지 자청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로마 법을 어긴 어떤 죄도 발견하지 못하고 그가 무죄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라는 유대인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비겁하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한 것입니다. 결국 대제사장들과 무리의 증오심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도록 미워했습니다. 어떤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면 결국 그 증오는 정상적인 판단기능을 마비시키고 예측할 수 없는 돌발행동으로 이어집니다. 그들은 예수를 그냥 죽이는 것으로 만 안되고 가장 잔인한 십자가 형으로 죽도록 만들어야 분이 풀리겠다고 작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요 섭리였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전혀 알지 못하고 빌라도를 찾은 것은 오직 예수님을 가장 잔인하게 죽여 없애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본문 18:30절에 보면 처음에 그들은 예수님을 행악자라고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에게 잘 먹혀들지 않자 로마에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선동했다고 고소했습니다. 그것도 먹혀들지 않자 그들은 예수님을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 하며 로마황제 가이사를 반역했다고 몰아붙였습니다. 이 모든 고소내용은 거짓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충동질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셨는데 결국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는 하나님의 손이 된 것입니다. 어기스틴은 하나님께서는 악한 인긴의 의지를 통하여 자신의 의로우신 의지를 통하여 자신의 의로우신 의지를 성취시킨다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의 증오와 잔혹함이 도리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이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닙니까?

 

2. 비겁한 빌라도와 하나님의 섭리

빌라도는 자기 아내가 지난 밤에 꿈을 꾸고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27:19)”라고 간곡히 요청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에 관한 문제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심문도 하지 않으려 하다가 마지 못해 심문을 하게 됩니다. 18:33절에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본문36절에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다시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라는 말이냐?”라고 다시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37절에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왕인데 진리로 다스리고, 진리로 백성을 먹이는 왕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이 땅에 태어났고, 이를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왕국이 로마제국이나 유대인들이 꿈꾸던 독립된 이스라엘과 같은 정치적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왕국이요, 진리의 왕국이며 예수님 자신이 그 왕국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 만이 우리의 구원자요,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에 속한 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유일한 진리를 듣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이루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영토가 아니라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이고 이 나라 백성은 진리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이 나라는 현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나라이지만 앞으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천국입니다.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은 이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다시 재림하실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 왕국의 백성들은 기록된 말씀, 선포되는 강단말씀 그리고 기도를 통해 그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이 세상에 들어가서 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니 38절에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다시 묻습니다. 이 물음은 빌라도가 진리가 정말 궁금해서 한 말이라고 보다 네가 잡혀온 주제에 무슨 진리 타령이냐?”라는 비아냥대는 말인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진리의 근본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선포하신 적이 있습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죄사함받고 영이 살아나고,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빌라도는 로마법을 가지고 그를 사형시킬 죄목이 없다는 것을 알고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에게 설득조로 세 번이나 죄과 없다고 밝혔습니다. 본문 38절 하반절에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대제사장들과 군중들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막무가내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빌라도는 그들을 설득시키기 위하여 유월절 특사를 생각해내고 39절에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라고 했습니다. 40절에 그들은 더욱 소리질러 이 사람이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고 했습니다. 결국 빌라도의 계획은 어긋나고 강도인 바라바만 풀어주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예수를 죽을 정도로 때려서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도록 하자는 생각을 하고 군사들에게 명령했습니다. 본문 19:1-3절에 군인들이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옷을 입히고 유대인의 왕이라고 놀리며 채찍질하고 손으로 때렸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을 사정없이 때리니 예수님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고 살점이 찢겨 나갔습니다. 로마군인들의 채찍이 얼마나 무서운지 열사람 중에 한두사람은 매를 이기지 못해 죽어나간다고 합니다. 빌라도는 이정도로 때렸으면 유대인들이 그 모습에 동정심을 가지고 놓아주라고 할 줄 알고 그들에게 예수님의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다시 말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그들은 피를 보자 더욱 무서운 증오심이 불타올라 19: 6-7절에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다시 소리지르자 빌라도는 나는 죄를 찾지 못하겠으니 너희가 친히 데려가서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법에 의하면 예수님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기 때문에 그가 당연히 신성모독죄로 죽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본문 19:10절에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데 너는 어떻게 해주기를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본문 9:11절에 위에서 주시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애를 썼으나 유대인들은 오히려 빌라도를 협박합니다 본문 12절에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를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라고 협박했습니다. 그들은 로마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는데 예수님이 스스로 왕이라고 했으니 로마의 역적이 아닙니까? 이 역적을 놓아준다면 당신은 로마의 충신이 아닙니다.” 라고 협박을 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빌라도는 만약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면 이 유대인들이 들고 일어나서 로마 황제에게 고발이라도 하는 날이면 그의 입장이 난처해 질 것이라 여기고 그들 위협에 불안을 느낀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님은 로마법에 따른 죄가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음에도 결국 유대인들의 협박에 굴복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명령합니다. 전형적인 비굴하고 불의한 재판관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신앙고백을 할 때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고백할 정도로 역사적인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빌라도의 이 명령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빌라도가 군대를 동원하여 군중을 쫓아버리고 예수님을 석방했다면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을까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빌라도의 비겁한 정신, 타협적인 성격이 오히려 하나님이 뜻을 이루는 하나의 과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경우를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대제사장과 그 무리가 예수님을 증오하여 가장 잔인하게 죽이려고 했던 사악함이 오히려 세상을 사랑하여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 되었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처럼 자신의 지위유지에만 급급한 사람의 비겁한 성격이 오히려 세상을 멸망에서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참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3.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몇가지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이러한 사실을 놓고 볼 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그 무한하신 사랑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고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의 저주를 받게 하심으로 우리를 그 죽음의 저주에서 해방시키려고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대제사장이나 빌라도도도 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잔인하게 죽이려 했던 악한 대제사장들의 행동은 거꾸로 세상에 하나님 사랑을 더욱 넘쳐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들의 증오를 이긴 것입니다. 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십자가를 볼 때 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깨닫습니다.

 

둘째,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16:4절에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렇게 발악하던 사람들을 통하여 이 말씀이 진리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없애기 위한 십자가 처형이 오히려 세상을 구하는 능력이 된 것이야 말고 이 말씀에 가장 좋은 예가 되었습니다. 50:20절에도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의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그가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 형들이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양식을 사러 왔을 때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그 형들은 옛날 요셉을 팔았던 것을 생각하며 그가 복수를 할까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요셉이 50:20절에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30년 전에 형들이 행한 악행을 30년 후에 요셉과 그 친족들과 주변 민족들에게는 선으로 돌아오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선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악을 이렇게 선으로 바꾸어 선용하시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내 앞에 악행과 핍막을 볼 때 마다 믿음의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임을 믿고 기도와 인내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만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실 구원자이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사실이 빌라도 재판과정에서도 명백히 증명되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할 자는 죄가 없는 분이라야 합니다.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놀랍게도 예수님의 원수들의 입으로 명백히 증명되었습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이 죄없는 분이심을 증명했습니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27:4)”고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나무에 목을 매달았습니다. 또한 빌라도의 아내가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꿈을 통해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예수님의 소송문제를 손대지 말라고 전갈했습니다. 빌라도 자신도 예수님의 무죄를 증명했습니다. 재판을 하면서 그는 세 번이나 유대인들 앞에 나와서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고 선언했습니다. 헤롯왕 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 역시도 예수님의 죄를 밝혀내지 못했기에 자기에게 끌려온 예수를 다시 빌라도에게 보냈습니다. 한편 강도도 예수님의 무죄를 증명했습니다.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23:41).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총지휘했던 백부장도 이를 증명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바라보면서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하나님의 아들은 죄가 없는 분임을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죄없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분이 영원하고 온전한 제사를 드리셨기에 예수님께서 당하신 저주의 죽음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을 생각할 때 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6:14절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고백하며 평생 십자가만 자랑했습니다. 초대교회가 탄생하고 나서 300년 동안 기독교인들은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렸습니까? 그런데 그 혹독한 시기를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그들은 예수 십자가를 자랑하며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예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생각하며 늘 십자가를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히 성취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계시면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성취시키셔서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이 땅에 그리스도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교회를 통해, 믿은 성도들을 통해 이루어 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외친 대제사장들과 군중들, 그리고 그 위협에 굴복하여 비겁하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준 빌라도의 불의한 재판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사랑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 십자가 사건의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그리고 이 땅에 유일한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을 우리가 먼저 누리고, 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기 위해 부지런히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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