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2026-08-30 21:58:57
홍기칠
조회수   4
설교본문 마1:1-25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08-30

20260830 주일오전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본문: 1:1-25 (요절: 1: 18-23)

 

I. 서론

성도 여러분, 오늘부터 우리는 신약성경의 첫 번째인 책인 마태복음을 강해하도록 하겠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합해서 공관복음이라고도 합니다. 공관이란 같은 관점으로 본다는 뜻으로 이 네 복음서가 각 저자들이 자신들의 시각으로 기록했지만 그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에 관한 내용을 기록했기 때문에 공관복음이라고 부릅니다. 지난번에 요한복음을 강해했기 때문에 오늘부터 마태복음을 강해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자는 가버나움 세관에서 일하던 세리 마태로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어 3년간 예수님과 동행한 결과를 바탕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마태복음에 기록했습니다. 기록연대는 주후 50년에서 70년 사이이며, 기록장소는 수리아 안디옥으로 추정됩니다. 기록목적은 주로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을 권고하기 위해 기록되었지만 전인류를 위한 복음서임에 틀림없습니다. 주요 특징으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쓰여졌으므로 구약을 인용한 부분이 많습니다. 구약예언이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표현이 많이 나와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4복음서 중 제일 처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본서는 왕의 복음이라고 할 만큼 예수님의 메시아직 중 왕직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본서는 사건의 시간적 연대순서가 아니라 내용의 종류에 따라 기술했습니다. 내용은 크게 예수님의 탄생과 유아기, 갈릴리 사역, 베레아 사역, 유대사역, 그리고 고난과 부활 내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절부터 17절까지는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는 족보이며, 18절부터 25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그 이름에 담긴 구속사적 의미를 다룹니다. 1장에서 수많은 사람의 이름이 빼곡하게 들어찬 족보를 마주하며 당황하거나 다소 지루하다고 느꼈던 경험이 다들 한 번쯤은 있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이름 중 어느 하나도 이유 없이 기록된 것은 없습니다. 족보는 단순한 인명 사전이나 역사적 기록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경륜과 신실하심, 그리고 인간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시는 구원의 거대한 서사가 숨 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시며,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1-17)

마태복음의 시작은 1절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라는 선언으로 출발합니다. 인류의 조상 옛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함으로써 죄악된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면 새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골고다 언덕에서 죄 문제를 해결하심으로써 구원역사의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마태는 이 족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시대에 살았던 가장 위대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그들의 왕국을 창시했던 다윗의 자손임을 강조함으로써 혈통적으로 메시아의 요건을 완벽히 갖추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유대민족의 조상이요 다윗은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왕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국기에 다윗의 별을 넣어 국가 상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은 그 후손 중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언했는데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족보에 맏아들만 족보에 오르지 않은 것은 육체의 혈통을 중시한 것이 아니라 구원의 계통을 강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여자들의 이름도 들어가는데 부패한 인간과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새로워진 인간을 다 같이 보여주심으로 구세주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신약 첫 책, 첫 장, 첫 구절에 구약의 조상들이 소개된 것은 신약과 구약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통일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족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메시아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다윗의 가문에 속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여기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적 사상에서 단순히 혈통적 후손만을 뜻하지 않으며, 약속의 계승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12:3절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약속하셨고, 삼하7:16절에서 다윗에게는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한 약속의 계승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 17절에는 이 예수님의 족보를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끌려갈 때 까지 14, 그리고 바벨론에서 끌려간 때로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 이렇게 모두 42대의 족보를 정확하게 기록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적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아브라함의 계보를 통해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족보는 꾸미지 않고 사실대로 기록했는데 그것은 인간의 죄의 깊이와 그리스도의 구원의 놀라움을 함께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한 두 가지 구속사적 약속의 성취이자 마침표임을 선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적으로 인간의 계보를 통해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어둠과 혼란 속에서도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한 후에 3:15절에서 여자의 후손, 즉 처녀의 몸을 통해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구원을 언약하시고,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언약하신 그 언약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끌어 오셨음을 보여줍니다. 바벨론 포로라는 절망적인 국가적 해체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폐기되지 않았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항해술이 발전하기 전, 거친 밤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해안가의 등대였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풍랑을 만난 배가 폭풍우를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저 멀리 등대가 변함없이 불빛을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마치 풍랑을 만난 배와 같았습니다. 왕조가 무너지고 성전이 파괴되며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 이후 약 400년 동안 하나님의 계시가 없는 침묵기가 찾아왔을 때,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잊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등대의 불빛을 끄신 적이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풍랑 속에서도 구원의 약속이라는 등대의 불빛을 끝까지 유지하셨음을 증명하는 영적 지도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기도 응답의 늦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나를 기억하고 계시는가?"라는 의문이 들 때, 마태복음의 족보를 바라보십시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약속을 이행하신 하나님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변함없이 언약을 이루시는 신실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연약함과 죄인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은혜 (1-17)

본문 3,5,6절을 보면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에게서 오벳을 낳고...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의 전통적인 족보에는 여성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더욱이 도덕적 격조가 높거나 위대한 인물들만을 추려 기록하는 것이 자서전적 계보의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족보에는 다섯 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다말, 라합, , 우리야의 아내(밧세바), 그리고 마리아입니다.

 

마리아 외에 네 명의 여자들은 수치스런 과거를 지녔거나 이방인도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것은 놀랍습니다. 다말은 시아버지와의 불륜으로 자녀를 얻었고, 라합은 여리고성의 기생이었으며, 도 이스라엘이 배척하던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이들 세명은 모두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는 다윗왕과 간통했고, 남편 우리야를 살인 교사했던 치욕적인 죄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이처럼 족보에 거룩하고 흠 없는 인물들만 나열된 것이 아니라, 이방인, 가난한 자, 도덕적 슬픔과 죄를 가진 자들이 파격적으로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것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귀인과 천민 등의 구별이 없이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자격을 갖춘 자들을 위한 보상이 아니라, 자격 없는 자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은혜(Sola Gratia)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죄악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막을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라는 비극을 은혜의 도구로 재구성하십니다.

 

일본에는 '킨츠기(Kintsugi)'라는 전통 도자기 수리 기법이 있습니다. 깨지거나 금이 간 도자기를 버리지 않고, 금이나 은 가루를 섞은 옻으로 깨진 틈을 메워 더욱 아름다운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기술입니다. 킨츠기 공예품은 깨진 흔적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금빛 선으로 드러냄으로써, 깨지기 전보다 훨씬 높은 가치와 아름다움을 지니게 됩니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영적 킨츠기 기술을 보여줍니다. 다말의 아픔, 라합의 수치, 룻의 이방인이라는 한계, 밧세바의 상처는 모두 인간의 시선에서 깨진 조각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깨진 조각들을 은혜의 금실로 연결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라는 가장 아름다운 구원의 도자기를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과거, 감추고 싶은 죄의 습관, 혹은 가정의 아픈 내력 때문에 스스로를 자책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주저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족보는 "하나님은 순결한 자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상하고 깨진 자를 치료하여 쓰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다."라고 선포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연약함과 과거의 상처를 은혜의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 맡겨드리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상처를 지닌 사람이라도 다 용납하시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3. 죄에서 구원하시고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18-25)

본문의 후반부인 18-25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과정을 다룹니다. 본문 23을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보라 처녀가 성령으로 감동되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할렐루야 아멘.

 

의로운 사람 요셉은 약혼한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율법적 단죄 대신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그 당시 처녀가 아이를 임신하면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이 일이 성령으로 된 것임을 알려주며 두 가지 핵심적인 이름을 제시합니다. 21예수(Jesus)라는 이름을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라고 해석했습니다. '예수'는 히브리어 '여호수아' 또는 단축형 '예수아'의 희랍어 표기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일차적 사명은 이스라엘을 정치적·경제적으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하나님과 단절시킨 근본적 원인인 '(Sin)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구원은 신약 전체의 중심내용이며 메시아가 오신 주된 목적입니다. 죄라는 문제를 구원론적으로 사용될 때는 생명과 관계되는 가장 큰 위험인 죄와 사망과 지옥으로부터 구조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죄 중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23절에 임마누엘(Immanuel)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는 뜻입니다. 7: 14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예언의 성취로 선포된 이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구원론의 핵심입니다. 임마누엘이란 인간을 초월해 계시던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와 고통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오신 성육신(Incarnation)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아담의 원죄를 물려받지 않은 거룩한 구속주로서 오셔야 했던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3:15절 말씀대로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 즉,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지 않았다면 그는 아담의 후손으로 여전히 죄인을 수 밖에 없으므로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리아를 데려왔고,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동침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동참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마리아의 합법적 남편이 되었고 메시아의 법적인 부친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성령으로 임신했던 첫아들 예수님을 낳고 난 후에는 요셉과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통해 예수님의 육신의 다른 동생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에서는 마리의 영원 처녀설과 무죄설, 승천설을 주장하며 성모 마리아로 숭배하고 있는데 그것은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거룩하고 두려운 존재, 성막 깊은 곳에 계신 초월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피와 살을 입으시고 우리의 눈물, 배고픔, 외로움을 직접 겪으시는 '손에 잡히는 은혜'로 다가오신 사건입니다. 그분은 멀리서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곁에 와서 함께 웃고 울어주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제2 아담의 첫 기원을 이루었으며 인류역사를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인 기원전(B.C:Before Christ)과 탄생 이후인 기원 후(A.D: Anno Domini)로 나누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 탄생이후 AD 2026, 지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책에는 예수님이 BC 4년에 태어났다고 했는데 그것은 역사기록의 오류였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태복음 1장은 수천 년의 역사를 뚫고 우리에게 다가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언합니다.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신 하나님, 수치스러운 자들을 품어 족보의 주인공으로 삼으신 하나님,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찾아오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요 예수님입니다. 이 은혜의 본문 말씀 앞에서 우리가 삶 속에 채택해야 할 3가지 영적 적용 전략을 제시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내 삶의 계획이 틀어지고 광야 같은 시간이 길어질 때 눈앞의 상황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재확인하십시오. 바벨론 포로시대 속에서도 족보의 맥을 이어가셨던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의 인생 족보 또한 인내로 써 내려가고 계심을 믿고, 매일의 말씀 묵상을 통해 언약 위에 바로 서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은혜의 관점으로 타인과 자신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과거의 죄책감에 사로잡히거나, 주변 사람들의 허물과 자격 미달이 눈에 띌 때, 다말, 라합, , 밧세바를 품으신 그리스도의 족보를 기억하십시오. 나 자신의 과거를 은혜로 용서하고, 내 이웃과 가족의 연약함을 비판하기보다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 가능성의 장으로 바라보며 용서와 화해의 삶을 실천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일상 속에서 '임마누엘' 되시는 주님과 동행하십시오.

염려, 질병, 혹은 재정적 위기로 마음이 녹아내릴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머리로만 알지 말고 순간마다 입술로 선포하십시오. 아침에 눈을 뜰 때, 출근길, 병원 진료실에서 "주님, 오늘도 임마누엘로 나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라고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의 고통을 이미 아시며, 주님 오시는 날까지 영원히 여러분을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2,000년 전의 옛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여러분의 삶 역시 그 영광스러운 구속사 족보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임마누엘 주님과 매일 동행하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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