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설교본문 | 롬10:14-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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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홍기칠 목사 |
설교일 | 2025-04-13 |
주일오전예배 250413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본문: 롬10:14-21
제목: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I. 서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누리는 복은 우주공간을 다 채우고도 남을 만큼 부요합니다. 롬10: 12,13절 말씀처럼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이 믿은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으니 그 은혜가 얼마나 크고 부요합니까? 예수님을 주로 인정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영생은 이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가 안되는 행복이니 얼마나 부요합니까?
그러나 아무리 예수님의 복음 안에 우리 모두를 부요하게 하는 복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그 예수님의 이름을 듣지 못하는 자는 구원의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듯이 복음을 들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믿음의 과정을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그 과정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전파의 사명을 함께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II. 본론
1. 유대인들의 변명
1) 복음을 못 들어서 못 믿었다는 변명
본문 14절에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기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누군가 복음을 전해야 들을 수 있고, 들어야 믿을 수 있고, 믿어야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내용을 17절에서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야 예수님의 부요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구원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불신앙임을 강조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불신앙에 대해 복음을 못 들어서 못 믿었다는 것과 들어도 깨닫지 못했다는 변명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이라면 못 들어서 못 믿었다는 변명이 타당하겠지만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못 들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에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요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발은 아름다운 발이요, 복된 발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18절에 “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수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말씀을 전하게 하셔서 그 소리가 온 땅에 가득하게 했는데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이 못 들었다는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도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만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자주 듣고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민족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제일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33년을 함께 살면서 천국복음을 증거하며 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마10:6절에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는데 여기서도 복음이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에 먼저 증거되리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이 살던 지역입니다. 이방인에 해당하는 것은 ‘땅끝’으로 맨 마지막에 나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 유대인들에게 우선적으로 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지만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행24:5절을 보면“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바울이 자가 동족들에게 전염병 같은 이단을 퍼트리는 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유대인들에게 열심히 전도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장 우선적으로 많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못 들어서 못 믿었다는 말은 변명과 핑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2) 복음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해서 못 믿었다는 변명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또 하나 들고 나오는 변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기는 들었지만 이해하지 못해서 못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억지변명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유대민족 만큼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는 은혜를 받은 민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구약 율법을 가지고 있었고 수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비롯한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도 있었습니다. 어릴적부터 그러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은 택한 백성으로 모세로 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십계명, 성막, 언약궤, 제사제도 등을 통해 얼마든지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나 그들이 거부하고 불순종했습니다.
그러니 이방인들에게로 그 복음이 전해졌는데 그들은 복음을 듣자 회개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믿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통해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서 믿도록 하려고 모세에게 벌써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도 “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방인들을 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방인들은 사모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 말씀을 한 두 번 듣고도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우상숭배하고 하나님을 몰랐던 이방인들이 돌아와 복음을 듣고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이방인들도 복음을 깨닫는데 하물며 유대인들이 깨닫지 못했다니 변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불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손을 벌리고 돌아오라고 간절히 부르고 계십니다. 본문 21절에 보면 “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마치 집 나간 탕자를 아버지가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듯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발 돌아오기를 종일 손을 벌리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수의 유대인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고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쉬운 길을 거부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리도 역시 이방인에게 복음을 허락하신 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아니었다면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니 그저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남
1) 우리가 믿는 내용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롬10: 9,10, 13절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사탄의 권세를 꺾으시고,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시기 위해 심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마음으로 믿고 그를 나의 구주와 삶의 주인으로 시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지 않는 것은 마치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 강물에 빠졌음에도 자기 힘으로 살겠다고 허우적거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강둑에 노련한 수영선수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가 살기 위해서는 빨리 살려달라고 강둑에 있는 수영선수에게 소리쳐야 합니다. 나 스스로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완전히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모르는 것이요 자기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우선 말씀을 들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2) 구원받는 단계
본문 14,15절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5가지 단계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보냄을 받아, 전파하면 전해진 복음을 듣고, 들은 말씀을 믿은 후에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됩니다. 먼저, 하나님이 주신 영적 권위로 구원의 길을 선포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 즉 전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부지런히 복음을 선포하고 전해야 합니다. 그 선포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시인하고 불러야 합니다. 롬10: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더라도 인생의 여정을 가는 동안 언제든지 우리의 믿음을 표현하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건져주시고 도와주시는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날마다 끊임없이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가 살아가는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3) 로고스의 말씀을 레마의 말씀으로 듣기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앞의 들음은 귀로 들어서 우리 안에 들어오게 하는 일반적인 듣기, 즉 hearning을 말합니다. 그러나 뒤에 있는 들음은 doing, acting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 말씀을 귀로 듣는데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저 아이는 말을 참 잘 들어“라고 할 때 이 말은 아이가 귀가 밝다는 뜻이 아니라 어른이 하는 말을 잘 듣고 잘 행한다는 뜻입니다. 17절 하반절에 그 행함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말씀의 능력이 임하면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십니다. 여기서 말씀은 헬라어 로고스(logos)가 아니라 레마라고 합니다. 로고스란 말씀을 의미합니다. 즉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든지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요1:1, 14절에서 언급되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로고스입니다.
그러면 레마는 무엇입니까? 내 마음 속에 와 닿아서 살아있는 능력으로 역사하는 말씀이 바로 레마입니다. 히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내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부딪칠 때 그 말씀에 감동되어 순종하는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말씀이 체험되는 것입니다. 그 레마의 말씀이 바로 나로 하여금 행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의 레마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삼켜 그 말씀이 내 속에 있고 내 것이 되면, 그 말씀이 살아 역사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내가 변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삼킨다는 것은 구체적을 무엇을 말합니까? 첫째, 모든 말씀에 철저하게 마음 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모든 말씀이 나를 위한 말씀이라고 믿고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이 나에게 레마가 됩니다. 예컨대, 고전 13장 사랑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고 자기와 관계가 좋지 않는 상대방이 있을 때 내가 비록 잘못한 일이 없다 해도 그 말씀을 묵상할 때 ”내가 부족하구나, 예수님이 나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 지셨지“라고 생각하며 그를 찾아가 용서하고 화해한다면 그 말씀이 바로 나의 레마의 말씀이 된 것입니다.
둘째, 말씀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끊임없이 가까이하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훈련을 거듭해야 합니다. 요14:26절에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생각나게 하심으로, 그 말씀이 내 안에 레마가 되게 해주십니다. 레마가 된 그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움직여 나를 말씀대로 실천하게 해주십니다. 여기서 말씀을 기억나게 해주신다는 것은 그 이전에 들은 말씀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즉, 말씀을 묵상하거나 암송하여 내가 기도하거나, 일을 행할 때 그 말씀이 생각나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성령충만 받는다 해도 말씀의 훈련이 없으면 결국 자기 생각과 판단대로 그릇 행하게 됩니다. 말씀 없이 성령만 따른다면 결국 감정의 지배만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말씀이 내 마음에 잘 심겨지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기도가 내 마음을 옥토로 만듭니다. 기도함으로 내 마음밭을 갈아 엎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이 나의 레마가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본문 18,19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미 수없이 말씀을 들었음에도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않고 자기 생각대로 말씀을 판단했기 때문에 레마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불순종 한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말씀을 많이 알았지만 말씀을 삼켜 자신의 레마가 되도록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만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말씀을 삼키지 않은 것은 자기 스스로 의를 세울 수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오래 믿을수록 조심해야 합니다. 오래 믿을수록 말씀을 다 안다고 착각하거나 교만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앞에 겸손하게 마음을 열고 말씀으로 거듭 훈련하고, 그 말씀이 내 안에서 레마가 되도록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아야 듣고 묵상한 말씀이 믿어지고 내 속에서 살아 역사하게 되고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복음을 전할 사명
지금도 우리 주변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복음을 듣지 못했고,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변명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3년 현재 80억 인구 중 기독인구비율이 천주교인을 포함해서 약 32%라고 합니다 아직 세계인구의 70%가 복음을 듣지 못했거나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복음 전하는 사명자들을 현장으로 보내십니다. 아직은 은혜받을 때요 구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 상반절 말씀처럼 “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야만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지상에 있는 교회와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마28: 18-20절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마지막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주시고 주님께서 전도자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보증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담대하게 나가서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복음 전파는 목회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모두 같은 복음전파의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기도하고 현장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거나 관계전도를 부지런히 해야합니다. 전도하고 싶은 사람을 태신자로 마음에 품고 기도하면서 그 사람과 여러 방면으로 관심을 표현하고 친절을 베풀고 친해지도록 진실하게 교제를 해야 합니다. 만나서 차나 식사를 대접할 수도 있고 생일을 알아서 예쁜 카드나 작은 선물도 보내는 등 교제하면서 마음이 열렸을 때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로 인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전도하지도 않고 기도만 하면서 그냥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직접 나가서 복음을 전파해야 그들이 부름을 받고 예수를 믿는 복음증거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16절에 “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사야가 믿음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듣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복음을 전해도 금방 믿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을 때 까지 계속 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부지런히 전해야 합니다. 한 두번 전하고 쉽게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죤헌트라는 사람은 “ 하나님을 제한 하지 말라”는 책을 썼습니다. 우리는 자꾸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쉽게 포기합니다. 복음을 잘 듣지 않기 때문에 더 자주 전해야 들음에서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그 심령이 성령의 감동을 받에 하나님의 시간표에 반드시 깨질 날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 D.L 무디 선생이 군에 갔는데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 총맞아 죽어가며 한 병사가 “제발 나에게 하늘 가는 길을 가르쳐 달라” 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5-10분 정도 지나면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았습니다. 소대장이 수소문하여 한 병사가 급히 달려왔습니다. 소대장이 시간이 없는데 할 수 있느냐고 하니 그 병사가 3분이면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병사는 임종을 앞둔 그 병사를 보고 주머니에 든 성경을 꺼내어 요3;1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는 말씀을 그 자리에서 몇 번이나 읽어주었습니다. 그 병사가 몇 번 듣더니 사색이 되었던 얼굴에 환희가 넘치면서 “나는 이제 예수를 믿겠다 나는 이제 주께로 간다”라고 고백하고 그 병사는 죽었습니다. 무디 선생이 그 전쟁에서 직접 겪은 것을 책에 기록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지금 당장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가장 간단하게 구원의 길을 제시할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은 이유가 복음을 듣지 못했거나 들어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변명하지만 그들보다 복음을 들을 기회가 더 적었던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것을 보면 그 변명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진짜 이유는 모세의 율법을 행함으로 의인이 되려는 잘못된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전도자가 복음을 전파하고, 그 전파된 복음을 듣고,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시인하고 불러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단순한 로고스로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내 속에 살아 움직임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레마의 말씀으로 듣고 믿을 때 행함이 있는 믿음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 문을 열고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 수용하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훈련을 하며,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심겨져 역사하도록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세계 인구 중 복음을 듣지 못한 70%의 사람들이 구원받으려면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 세계복음화의 사명은 주님이 주신 가장 큰 명령이므로 반드시 모든 성도들이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성도들도 말씀을 통째로 삼키고 기도하십시오. 말씀이 내 속에서 레마가 될 때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이고 전도자가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하는 전도자가 되고 레마의 말씀을 받아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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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 롬10:14-21 | 2025-04-13 | 홍기칠 목사 |
56 | 인간의 의와 하나님의 의 | 롬10:1-13 | 2025-04-06 | 홍기칠 목사 |
55 | 하나님의 무조건 선택을 통한 구원의 은혜 | 롬9:6-33 | 2025-03-30 | 홍기칠 목사 |
54 | 20250323 주일오전설교 (바울의 동족 구원의 소망/롬9:1-5) | |||
53 | 20250316 주일 오전설교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확신/롬8:31-39) | |||
52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 롬8:28-30 | 2025-03-09 | 홍기칠 목사 |
51 | 20250302 주일오전설교 (성령의 탄식과 간구/롬8:26-27) | |||
50 | 20250223 주일오전설교 (피조물과 성도의 고통과 소망/롬8:19-25) | |||
49 | 20250216 주일오전설교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과 책임/롬8:12-18) | |||
48 | 20250209 주일오전설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롬8:1-11) | |||
47 | 20250202 주일오전설교 (성도의 내적 갈등을 해결하신 예수/롬7:7-25) | |||
46 | 20250126 주일오전설교 (율법에 대해 죽고 성령으로 열매 맺는 자/롬7:1-6) | |||
45 | 20240119 주일오전설교 (하나님의 종/ 롬6:15-23) | |||
44 | 20250112 주일오전설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자/롬6: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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