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믿음,사랑, 소망으로 소문난 교회
2026-07-16 11:59:44
홍기칠
조회수   2
설교본문 살전1:1-10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07-15

20260715 수요설교

제목: 믿음, 사랑, 소망으로 소문난 교회

본문: 살전1: 1-10

 

I.서론

우리는 수많은 '소문' 속에서 살아갑니다. 맛집에 대한 소문, 좋은 주식에 대한 소문, 혹은 어떤 사람의 평판에 대한 소문이 매일같이 우리의 귀를 자극합니다. 소문에는 힘이 있습니다. 실체가 없는 헛소문도 사람을 흔들지만, 강력한 진실을 담은 소문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옮기게 하고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한마디로 좋은 소문이 난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마게도니아 지경으로 넘어가 세운 이 교회는, 빌립보에 이어 두 번째로 유럽지역에 세운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바울이 겨우 세 안식일’(3) 동안만 머물며 복음을 전했던 곳입니다. 유대인들의 극심한 박해와 폭동으로 인해 바울은 야반도주하듯 그곳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바울은 폴도들에 의해 추방되어 서쪽 베뢰아로 피신했다가 아덴을 거쳐 고린도에 이르렀습니다. 그후 디모데가 돌아와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편을 보고받고 편지를 썼는데 바울 서신 중 첫 번째로 쓴 서신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갓난아기를 거친 광야에 홀로 버려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당연히 유산되거나 무너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에게 디모데가 전한 소식은 충격적이리만큼 감격적이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 복음을 받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환난 중에서도 믿음을 지킬 뿐만 아니라,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더 나아가 온 사방에 '아름다운 믿음의 소문'을 퍼뜨리는 성숙한 교회로 성장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 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더 이상 보탤 말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서 있는 교회, 주변 모든 지역의 이정표가 된 교회. 도대체 무엇이 이 짧은 역사 속에서 이토록 위대한 믿음의 명가를 만들어 냈을까요?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졌던 신앙의 본질을 추적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교회와 우리의 신앙이 회복해야 할 '살아있는 복음의 흔적'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신앙의 삼위일체 - 믿음, 사랑, 소망의 실천 (1-3)

바울은 본문 1절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라는 인사말로 편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상태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좋은 소문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은 신앙의 핵심 가치인 '믿음, 사랑, 소망'이 관념에 머물지 않고 실제적인 삶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각각의 단어 뒤에 붙은 명사를 주목해야 합니다. '믿음의 역사(Work of faith)', '사랑의 수고(Labor of love)', '소망의 인내(Endurance of hope)'입니다.

 

믿음의 역사라고 할 때 여기서 '역사''행함'''을 뜻합니다. 야고보서의 선언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며, 생명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역사하게 만듭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은 단지 지적인 동의나 감정의 동요가 아니라, 우상을 버리고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로 이동시키는 '행동하는 실제적인 믿음'이었습니다.

 

사랑의 수고라고 할 때 '수고' '피땀 흘려 지칠 때까지 하는 노동'을 의미합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지체들을 돌보고 교회를 섬기는 헌신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감정적 호감이 아니라 에너지를 쏟아붓는 수고가 진짜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온갖 박해 가운데서도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병든 자와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해 구제를 했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했습니다.

 

소망의 인내라고 할 때 '인내'란 환경에 짓눌려 억지로 참는 수동적 인내가 아니라, 장애물을 돌파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켜내는 '능동적 견딤'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확신했기에, 그들은 로마의 압제와 유대인의 박해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견뎌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 만물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고난과 박해를 능히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과거에는 그리스도께 대한 구속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현재에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있고, 미래에는 재림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박제된 교리가 아닙니다. 믿음은 움직이고, 사랑은 수고하며, 소망은 버텨냅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체질이었습니다.

 

역사학자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그의 저서 기독교의 발흥에서 주후 2~3세기 로마 제국을 휩쓸었던 두 차례의 대역병인 천연두와 홍역이 돌았을 때 당시 기독교인들이 보여준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이교도들은 감염이 두려워 부모나 자식이 병들면 길거리에 내버리고 도망쳤습니다. 황제와 귀족들도 도심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도망치지 않고, 버려진 병자들을 찾아가 물을 먹이고 간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감염되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교도들의 눈에 이 행동은 미련해 보였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망의 인내'와 몸을 던지는 '사랑의 수고'가 결합된 기적이었고, '믿음의 역사'를 본 수많은 로마인들이 나중에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말로 로마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환난 날에 보여준 '믿음, 사랑, 소망의 수고'로 로마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로 그런 역사를 썼던 것입니다.

 

2. 복음의 사차원적 능력인 말, 능력, 성령, 확신 (4-5)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토록 강력한 신앙의 체질을 가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받은 복음이 인간의 지혜나 웅변술이 아닌, 하나님의 신적 권위와 능력으로 임했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것을 확신하는 이유는 바울 일행이 전한 복음이 말과 능력과 성령, 그리고 큰 확신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첫째, 복음은 '(Word)'로 전해집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며 성경의 종교이기에 반드시 언어로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인간의 화려한 언변이나 논리적인 ''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인간 철학이나 강연에 불과합니다.

 

둘째, 복음의 말은 '능력(Power)'이 따릅니다.

이 능력은 도덕적 변화를 일으키고 사탄의 결박을 끊어내며 죄인을 거듭나게 하는 초자연적인 신적 다이너마이트입니다.

 

셋째, 이 능력을 주도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죄인의 마음을 찌르시고 깨닫게 하셔야만 복음이 한 사람의 영혼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넷째, 그 결과로 우리 안에 '큰 확신'이 일어납니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영적 담대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단 3주밖에 복음을 전하지 못했음에도 그들이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받은 복음이 바울이라는 일개 인간의 '말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 깊은 곳에 성령이 폭발시킨 '능력과 큰 확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일행은 당시 교회 안팎에서 말로 사람을 속이고 유혹하는 자들과는 달리 진실된 말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이 복음에 일치하는 삶을 보여줌으로써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큰 감동과 확신을 줄 수 있었습니다. 껍데기만 기독교인인 사람은 환경이 바뀌면 신앙을 버리지만, 성령과 능력으로 복음을 체험한 사람은 어떤 박해속에서도 복음을 버리지 못합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목사가 하루는 런던의 거대한 크리스탈 팰리스(Crystal Palace)에서 설교를 앞두고, 마이크가 없던 시절이라 음향 테스트를 하기 위해 텅 빈 대성당 강단에 섰습니다. 그는 넓은 홀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성경 구절 하나를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스펄전은 음량이 적당한지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한 남자가 스펄전 목사를 찾아와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당시 크리스탈 팰리스 지붕에서 보수 작업을 하던 일꾼이었습니다. 텅 빈 건물인 줄 알고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처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외침이 들려온 것입니다. 그 한마디 '''성령과 능력'이 임하여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인간은 소리를 질렀을 뿐이지만, 성령이 역사하시면 그 말씀은 영혼을 쪼개는 능력이 됩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복음이 바로 이런 복음입니다.

 

3. 본받는 자에서 본이 되는 자로 신앙의 선순환 (6-10)

데살로니가 교회의 위대함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단계에서 머물지 않고, 타인의 이정표가 되는 능동적 단계로 나아가는 '신앙의 선순환'에 있었습니다. 6절과 7절을 연속해서 읽어보겠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주 아름다운 신앙의 영적 도약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디모데, 그리고 궁극적으로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성장을 거듭하여 이제는 주변의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지역의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자'로 우뚝 섰습니다. 복음의 모방자가 복음의 모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제자도의 원리입니다. 참된 교회는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복사해 내는 교회이며, 나를 통해 또 다른 예수의 제자가 태어나게 하는 교회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본이 되었는지 9절과 10은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전환을 세 가지 동사로 요약합니다.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라고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우상을 버리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의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버리고라는 말은 과거에 대한 철저한 회개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는 가이사황제 숭배와 온갖 헬라 신화의 우상 숭배가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그것을 과감히 끊어냈습니다. 우상을 버리지 않고는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섬기고라는 말은 현재의 삶입니다. 과거의 죄를 청산한 것에 머물지 않고, 이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이 되어 주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삽니다. 또한 기다리는지라는 말은 미래의 소망입니다. 영광스러운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며 종말론적 신앙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과거의 단절과, 현재의 섬김과 미래의 소망이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그 삶 자체가 세상 사람들에게 거대한 시각적 설교가 되며, 믿는 자들에게 복음의 교과서가 되는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라 불리는 선다 싱(Sundar Singh)이 하루는 영국의 한 대형 교회에 초청받아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서구 교회 성도들은 신비로운 인도의 전도자가 오니 큰 기대를 품고 모였습니다. 선다 싱이 강단에 올라와 특별한 웅변이나 화려한 신학 지식을 자랑하지 않고, 그저 고요하고 깊은 눈빛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십자가를 증거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한 청년이 옆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 선다 싱 목사님의 설교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분의 얼굴과 몸짓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 나오시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의 본이 된다는 것은 내 이름을 드높이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거울을 통해 내 뒤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투영되게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로 그런 투명한 거울이 되어 온 마케도니아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여주었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쏟아낸 이 감격의 찬사를 들으며, 우리는 부끄러움과 동시에 거룩한 열망을 품게 됩니다. 이 시대, 세상이 교회를 바라보는 소문은 그리 아름답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걱정거리가 되었다는 탄식도 들립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질로 돌아가면 교회는 다시 살아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우리 안에 ''만 가득한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큰 확신으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행동하는 역사가 되고, 우리의 사랑이 땀 흘리는 수고가 되며, 우리의 소망이 환난을 이기는 인내가 될 때, 세상은 다시 교회를 주목할 것입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3대 실천 전략을 제시합니다.

첫째, ‘내 삶의 우상을 과감히 버립시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물질의 우상, 성공의 우상, 내 자존심과 안락함의 우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내던지십시오. 진짜 회개는 방향 전환입니다. 세상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아서야 합니다.

 

둘째, ‘구경꾼의 자리에서 내려와 섬기며 수고하는 종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주일 하루 교회에 와서 예배만 드리고 가는 소비자가 되지 마십시오. 사랑은 필연적으로 손해를 동반하며, 헌신은 반드시 내 시간을 요구합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눈물 흘려 기도하고, 지쳐있는 지체의 손을 잡아주는 '사랑의 수고'를 오늘 당장 시작합시다.

 

셋째, ‘종말론적 긴장감을 가지고 주님 재림을 소망하며 오늘을 살아갑시다.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주님이 내일 오실 것처럼 깨어 소망을 품고, 내가 선 자리에서 고난이 와도 끝까지 '인내'로 버티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삶의 태도를 가질 때, 우리 교회의 소문은 바뀔 것이며,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의 소문이 바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라는 이 바울의 고백이, 오늘날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자랑스러운 고백이 되기를, 그리고 이 어두운 시대에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살아있는 믿음의 명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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