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 설교본문 | 골1:24-29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6-03 |
20260603 수요설교 (교회의 참된 일꾼)
본문: 골1: 24-29
제목: 교회의 참된 일꾼
1.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감옥이라는 가장 어둡고 제한된 처지에서 골로새 교회를 향해 눈물과 열정으로 쓴 편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내 인생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은 비단 세상 사람들의 질문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깊은 고민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부름받았는지 그 정체성을 명확하게 선언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교회의 일꾼'이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일꾼'이란 단순히 지위나 명예를 나타내는 말이 아닙니다. 이는 식탁에서 주인의 손과 발이 되어 먼지를 뒤집어쓰며 시중을 드는 '하인'이나 '종'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화려한 사도의 권위를 자랑하지 않고, 교회를 위해, 성도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을 위해 먼지를 뒤집어쓰는 식탁의 일꾼이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받은 우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지체인 우리는 과연 어떤 자세로 이 직분을 감당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참된 교회의 일꾼이 걸어가야 할 세 가지 신앙의 길을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II. 본론
1.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우는 일꾼 (24절)
바울은 본문 24절에서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고 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혔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고난이 기쁨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자신이 받는 고난이 개인의 죄나 실패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한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그 고난으로 인하여 복음은 매이지 않았고 도리어 전파되었기 때문이며 내세에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을 얻을 것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이 불완전하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하심으로 완벽하게 완성되었습니다. 다만, 완성된 그 복음이 온 세상 끝까지 증거되고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이 땅에 온전히 세워지기까지, 주님의 제자들이 이 땅에서 지고 가야 할 '사명적 고난'이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위해 고난받기를 기뻐하셨고, 이제 그분의 일꾼 된 우리에게 그 고난의 흔적을 이어받으라고 초청하십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머리와 몸의 관계이므로 머리가 받는 고난을 몸이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몸된 교회가 동참하는 것이 바로 교회 성도가 마땅히 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십자자 고난은 단번에 완성되었지만 그의 몸된 교회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재림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므로 아직도 그 고난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19세기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오랜 아프리카 사역을 마치고 잠시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몸은 아프리카의 혹독한 풍토병으로 야위어 있었고, 사자에게 물려 한쪽 팔은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한 학생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어떻게 그 황무지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 고생과 고난을 견뎌내실 수 있었습니까?" 그때 리빙스턴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젊은이, 그것을 고난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저를 구원하신 주님과 그분의 복음을 위해 가질 수 있었던 최고의 '특권'이었습니다. 나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기쁨에 취해 있었을 뿐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리빙스턴은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는 것을 고생이 아닌 영광스러운 특권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너무 편한 신앙생활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를 섬기다가 조금만 자존심이 상하면, 조금만 내 시간과 물질에 손해가 오면 쉽게 낙심하고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참된 일꾼은 교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고, 교회가 든든히 서 가기 위해 필요한 수고와 눈물, 즉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기꺼이 채우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일꾼이므로 그 복음을 위한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고 그 고난을 채우는데 목표를 두었습니다. 그가 이런 고난을 통하여 복음의 일꾼으로서 일하게 된 이유는 그가 하나남께서 맡기신 청지기의 소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온전히 전파하는 일꾼 (25-28절)
바울은 본문 25,28절에서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신 직분의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며, 그 말씀의 핵심은 27절에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비밀'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비밀이 무엇입니까? 바로 27절에서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비밀이라는 말은 복음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계시 밖에서는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독생자를 보내시는 특별한 계시가 있기 전에는 하나님의 복음을 누구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특별한 계시가 있는 신약시대에도 개인에 따라 이 복음을 아는 자가 있고 모르는 자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떤 사람에게는 그 복음이 성령으로 말마암아 알려졌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의 비밀이 족장시대, 선지시대를 지나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감추어졌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고난과 부활로 말미암아 드디어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이 증거하는 복음의 내용, 즉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음의 중심은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것은 곧 내세에 우리가 영광의 부활을 받을 소망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에는 인간의 철학, 영지주의적 신비주의, 혹은 율법주의적 전통을 알아야 특별한 구원에 이른다는 거짓 가르침이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은 어떤 소수의 엘리트만 아는 폐쇄적인 비밀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분 안에서 영광의 소망을 보게 되는 열려 있는 비밀입니다.
따라서 일꾼의 사명은 다른 세상적인 자랑이나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28절에서 "각 사람"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대충 무리로 뭉뚱그려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 한 영혼을 말씀으로 권하고 지혜로 가르쳐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성숙한 자)'로 세우는 것이 일꾼의 궁극적인 사명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전체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성숙을 위해 기도하고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워터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의 강병을 격파한 웰링턴 장군은 교회에 출석했을 때 사람들이 상좌에 앉으라고 권했으나 그는 사양하며 “여기에는 윗사람이 없고 다 동등합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도 자기를 칭찬하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노했다고 합니다.
설교자도, 교회 일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역을 통해 내 이름이 드러나고 내 능력이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삶의 위대한 작곡가이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온전히 전파되고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녀들에게 세상의 성공 비결을 가르치는 데는 열심이면서, 내 안에 계신 영광의 소망인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는 인색하지 않습니까? 구역원들을, 이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자로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전파자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3.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이의 능력을 따라 수고하는 일꾼 (29절)
바울은 본문 29절에서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세우며, 고난을 감당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를 위해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수고하다'는 말은 '피해나 상처를 입을 정도로 지치고 녹초가 될 때까지 에너지를 쏟아붓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적당히 취미 생활하듯 주의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온 생명과 진을 다 짜내어 성도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의 연약한 육체로 쓰러지지 않고 이 엄청난 사역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요? 바울은 그 비결을 명확히 밝힙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수고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수고는 인간적인 열정과 오기, 야망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의 안에서 끊임없이 초자연적인 에너지를 공급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동적인 일하심에 믿음으로 반응한 결과였습니다.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쉽게 지치고, 좌절이 오며, 알아주지 않을 때 시험에 듭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기쁨과 헌신이 가능해집니다.
영국의 유명한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George Müller)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평생 동안 동역자도 없고 재정적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기도만으로 수천 명의 고아를 먹이고 입혔습니다. 그의 수고와 사역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어떻게 그 거대한 사역의 짐을 혼자 짊어지고도 지치지 않고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뮬러 목사님은 자신의 낡은 성경책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일 아침 저는 제 힘과 지혜를 완전히 내려놓고, 제 안에서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채우는 기도의 시간을 갖습니다. 내가 고아들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주님이 하시는 일에 나는 그저 손발을 내어드릴 뿐입니다. 그렇기에 이 수고는 제게 무거운 짐이 아니라 매일의 기적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의 방에는 무릎꿇고 기도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바울이 고백한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르는 삶"이 바로 조지 뮬러의 삶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일을 하다가 지치셨습니까? "이제는 더 못 하겠다"라는 마음이 찾아왔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내 힘과 내 열정으로 바벨탑을 쌓으려 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공급처를 내가 아닌, 내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께로 다시 옮겨 심어야 할 때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오늘 우리는 골로새서 1장 24절~29절을 통해 사도 바울이 고백한 '참된 교회의 일꾼'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일꾼은 첫째,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 기꺼이 내 육체에 채우는 자입니다. 둘째, 내 지식이 아닌 오직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전파하여 영혼을 세우는 자입니다. 셋째, 내 혈기가 아닌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힘을 따라 힘써 수고하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배의 문을 나서는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이 말씀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세 가지 실천 전략을 제시합니다.
첫째, '불평 노트'를 '고난의 감사 노트'로 바꾸십시오.
이번 한 주간, 교회나 가정, 직장에서 복음과 성도들을 섬기다가 힘든 일, 자존심 상하는 일, 억울한 일이 생길 때 비난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대신 골로새서 1장 24절을 암송하며 "주님, 이것이 교회를 위해, 주님을 위해 내 육체에 채우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의 기회입니까? 감당할 힘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로 바꾸어 보십시오. 고난이 변하여 영적 자부심과 기쁨이 되는 기적을 경험할 것입니다.
둘째, 매주 한 명의 영혼에게 '그리스도의 비밀'을 구체적으로 나누십시오.
바울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힘썼습니다. 여러분의 구역원, 혹은 아직 주님을 모르는 가족이나 이웃 중 '한 사람'을 마음에 품으십시오. 이번 주에 그 사람을 위해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거나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며, 내 안에 계신 영광의 소망,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삶과 언어로 구체적으로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사역과 봉사 전에 '성령의 공급하심을 구하는 5분 기도'를 먼저 들이십시오.
예배 안내를 서든, 찬양대로 서든, 구역장을 하든, 혹은 직장에서 업무를 시작하든 내 지식과 경험을 의지해 곧바로 뛰어들지 마십시오. 무릎을 꿇고 5분 동안 "주님, 제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일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에너지를 공급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후 사역을 시작하십시오. 나의 지침이 끝나고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세 가지 실천을 통해, 바울처럼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 "참으로 착하고 충성된 교회의 일꾼이었다" 칭찬받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복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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